둘째 날 아침은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먹고 야나가와(柳川)로 뱃놀이를 하러 갔다. 야나가와로 가는 길은 도시를 벗어난 시골 길이라 곳곳에 비닐하우스가 있고 보리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일본은 맥주가 유명해서 맥주보리도 많이 재배한단다.

야나가와 뱃놀이. ⓒ이복남

야나가와란 에도시대 일본은 성주가 사는 성이 있고 성 주변에는 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수로 즉 해자(垓子)가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성은 없어졌으나 해자는 지방정부에서 관광 상품으로 개발해서 뱃놀이를 하고 있는데 성공한 케이스란다. 한 배에 10여명이 양쪽으로 늘어져 앉으면 뱃사공이 긴 장대 노를 저으면서 수로를 한 바퀴 도는 코스였다. 가이드는 뱃사공이 노래를 불러 주면 손뼉을 치라고 했다.

우리가 탄 배의 사공은 제일 먼저 ‘돌아와요 부산항’을 우리말 그리고 일본어로 불렀다. ‘노란샤쓰의 사나이’도 불렀다. 우리 측에서 답가로 ‘내 나이가 어때서’와 ‘봄날은 간다’를 부르기도 했다. 수로에는 곳곳에 나무가 늘어져 있고 다리도 많아서 고개를 숙여야 되는데 부산사람들이 많이 다녀간 탓인지 뱃사공이 ‘수구리’라고 해서 많이 웃고 고개를 숙이고 엎드리기도 했다. 일본에는 노인들이 많다지만 뱃사공 중에는 여든이 넘은 사람도 있단다. 뱃놀이 중에 나무나 다리를 지나갈 때는 손님들은 뱃전에 엎드리고, 뱃사공은 위로 뛰어 넘던데 여든이 넘은 사람들이 나뭇가지나 다리를 어떻게 뛰어 넘는지 모를 일이다.

닭고기 정식. ⓒ이복남

다음 코스는 유후인온천(由布院温泉)인데 원래 유후인은 갑부들의 휴양지였으나 얼마 전부터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과 상점들이 붐빈다고 했다. 유후인에 도착하니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관광객은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 들리는 말소리가 우리말 이었고 관광버스에 붙은 여행사와 가이드가 한국이름이었다.

점심은 쿠루미야(胡桃屋 クルミヤ)식당에서 닭고기 정식으로 먹었다. 긴린코(金鱗湖)라는 금린호는 온수와 냉수가 동시에 흐르는 신비한 호수란다. 긴린코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에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녔고, 군데군데 미나리와 쑥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미나리와 쑥이 남아 날 것 같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자기 것이 아니면 아무도 손을 안 됩니다.” 가이드의 설명이다.

벳푸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벳푸로 가는 길옆에는 삼림이 울창했다. 일본에는 소나무는 잘 자라지 않고 삼나무와 히노끼라는 편백나무 그리고 대나무가 무성했다. 이런 상록수는 모두가 화산이나 지진 등 재난방지용이란다. 지금은 봄이지만 조금 더 지나면 낙엽수에 푸른 잎이 나고 가을이 되면 온 산하가 울긋불긋 단풍이 든단다. 일본 사람들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조용한 사람들이지만 1억 인구라 여행하는 사람들은 많단다. 그러나 고속도로비가 비싸므로 웬만해서는 국도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했다.

벳푸의 유황재배지. ⓒ이복남

그리고 숲이 울창하기는 해도 우리나라 같은 등산객이 없단다. 화산과 지진이 두렵기도 하고 복지가 잘되어 있다고 해도 자연재해나 개인의 실수를 정부에서 부담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산에서 조난을 당한다면 119를 부르고 여차하면 헬기도 부를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그 모든 것이 개인 부담이라 헬기를 한 번 띄웠다하면 그 비용은 평생을 갚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교육이 없고 동네마다 국민체육센터가 있어 누구나 운동을 하고 체력은 기를 수가 있단다. 일본사람들은 친절하지만 우리처럼 유치원에서부터 배꼽 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상대의 얼굴을 보고 항상 웃으면서 인사를 한단다. 즉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칼을 차고 다니는 사무라이들이 마음에 안 들 때는 기리(きり) 즉 베어도 좋다는 것이 용인되어 있었기에 고개를 숙이는 순간 상대가 목을 벨 수도 있으므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은 대부분이 화산지역이지만 일본에서도 온천이 제일 유명한 곳이 오이타 현의 벳푸(別府)라고 했다. 일본은 화산과 지진, 비와 습기가 많아서 다다미에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일본 그리고 온천을 느껴보려면 다다미방에서 자보기도 해야 된다고 했다. 벳푸는 온천마을이라 산 곳곳에서 하얀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얀 김이 난다는 것은 땅속에서 온천이 끓고 있다는 것인데 온천이 유황성분이란다. 그래서 벳푸에서는 유황을 재배하여 상품화 시킨단다.

가마도지옥의 담배 쇼. ⓒ이복남

목욕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유황을 귀히 여긴다고 했다. 온천은 전부 입장료를 내야 되는데 우리 일행은 가마도지옥으로 갔다. 우연한 발견인지 잘 모르겠지만 끓고 있는 온천수에 담배연기를 뿜으니 수증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안내원이 한국말로 담배 쇼를 하고 있었는데, 안내원은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에게 담배연기를 직접 뿜어 보라고 했다. 요즘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안내원을 그 사람을 어떻게 골랐을까. 그 사람은 흡연자였던 것이다. 일본에도 금연구역은 많은데 여행지마다 흡연자들을 위해 재떨이가 비치되어 있었다. 가마도지옥을 돌아 나오면서 80c의 뜨거운 온천물을 후후 불어가며 마셔보고, 온천수에 삶은 계란도 10개를 사서 하나씩 나눠 먹었다.

저녁은 후쿠오카로 가서 먹어야 되므로 온천체험 시간은 한 시간 밖에 여유가 없다고 했다. 우리가 간곳은 효탄온천이었는데 목발을 사용하는 장애인은 온천 바닥이 미끄러울까봐 부부는 가족실로 가고 나머지는 각각 남녀 탕으로 들어갔다. 한국과 별반 다른 것은 없는 것 같지만 온천물이고, 그리고 목욕대야와 앉는 의자가 전부 나무였다. 그리고 실내탕은 온도에 따라 서너 개의 욕탕이 있었고 문을 열고 나가면 노천탕도 있었다. 일본의 목욕은 욕탕에서 몸을 담그는 것이므로 절대로 때를 밀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너무 적다고 했으나 갈 길이 바쁘니 어쩔 수가 없었다.

텐만구의 소머리. ⓒ이복남

온천도 하고 이제는 다시 후쿠오카로 돌아가야 했다. 고속도로는 차가 별로 없고 한산했으나 운전자들은 절대로 100km 이상으로 속도를 내지는 않는단다. 차 번호판이 노란색도 있고 흰색도 있었는데 대부분이 자그마한 경차지만 노란색은 더 작은 600cc 이하란다. 기름 값은 싸지만 고속도로비가 워낙 비싸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아 평일에는 도로가 한산하단다.

한국사람들은 부의 척도를 큰 평수의 아파트와 비싼 차에 두지만, 화산과 지진이 많은 일본은 도심 외에는 아파트도 없고 이층집이 있는 자신의 정원에서 아기자기한 분재를 키우는 것이 부의 척도이자 소망이란다.

일본은 150년 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촌마게(丁髷, 일본상투)를 자르고 근대화를 시작한 무서운 나라란다. 예전부터 백제를 추앙하던 민족이 언제부터인가 한국을 침략한 전적은 있지만 그래도 노벨상을 25개나 받았단다.

일본은 혼자문화이고 우리는 음주가무를 즐기는 어울림문화이기에 가라오케가 일본에서 시작되었지만 한국에서 활성화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교통신호와 질서를 지키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조용한 나라란다.

텐만구와 비매. ⓒ이복남

버스에서 오갈 때마다 김경희 가이드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한국과 일본을 두고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다고 했다. 장애인복지에서 얘기하는 것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인데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장애인복지와 일맥상통한 것 같다.

두 시간을 달려 후쿠오카 톨게이트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옆에 루트인 와카미야 인터 호텔이 있었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인데 덩그렇게 호텔만 있었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도 어제처럼 주변에는 돌아볼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 각자가 조금씩 챙겨온 소주와 안주를 들고 10명이 한 방에 모였다. 싱글베드이고 방도 작지만, 각자의 방에서 의자를 들고 와서 10명이 포개 앉아서 주거니 받거니 몇 순배가 돌면서 많이 웃고 즐거워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부라면 한 이불을 덮는 사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은 개인주의이기 때문에 부부간에도 한 이불을 덮는 일은 없다고 한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어릴 때부터 적게 입고 적게 먹는 것을 길들이기 때문에 퇴근해서 목욕을 하고 비루(ビール, bier) 한잔을 마시고 다다미방의 찬 이불 속에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작은 행복이란다.

텐만구 거리. ⓒ이복남

셋째 날 아침은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満宮)로 갔다. 텐만구는 헤이안시대의 학자인 스가와라미치자네(菅原道真)를 모신 곳인데 가이드는 백제사람이라고 했다. 스가와라미치자네의 학문이 워낙 출중해서 천왕의 신임을 받자 주변의 모함으로 내쳐진 곳이 후쿠오카였다. 이곳에서 화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2년 만에 죽었다.

그의 시신을 소달구지가 끌고 갔는데 소가 한 곳에 머물러 눈물을 뚝뚝 흘리더란다. 소가 울면서 걸음을 멈춘 곳이 지금의 텐만구인데 나중에는 천왕도 그의 학문을 인정하여 천왕만 쓸 수 있는 구(宮)의 칭호를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를 2년이나 버티게 한 것은 이웃에 살던 할머니의 매화떡 즉 우메가와모찌였기에 텐만구로 가는 길에는 가게마다 우메가와모찌를 팔고 있었다.

텐만구 입구에는 눈물을 흘렸다는 소가 있었다. 고신규(御神牛)의 머리를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얘기가 있어 사람들이 하도 머리를 만져서 소머리는 반질반질했다. 고신규 뿐 아니라 텐만구가 학문의 신을 모신 곳이라 일본에서도 입시철만 되면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소머리를 만지고 학문의 신에게 기도하느라고 발 디딜 틈이 없단다. 텐만구 앞에서는 동전을 던지고 손뼉을 두 번 쳐서 신을 깨워 자신이 왔음을 알리고 기원한다고 한다.

일본에 신사가 많은 것은 학문의 신이라는 텐만구 뿐 아니라 물신 바람신 등 모든 조물주를 신으로 받들어 모시기에 유일신이라는 기독교가 설 자리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학문의 신이 교토에 살 때부터 매화를 좋아했는데 텐만구에 그를 모시자, 오른쪽에는 어느 날 교토에서 날아왔다는 비매(飛梅)가 있었다. 그 밖에도 텐만구 주변에는 6천 그루의 갖가지 매화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직 사쿠라는 필 시기가 멀었지만 그 대신 매화는 만끽할 수가 있었다.

일본에서도 유명하다는 우동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동집은 계단이 하나 있었는데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고, 장애인주차장은 비어 있었다. 가는 곳마다 장애인주차장이나 경사로는 그런대로 잘되어 있었는데 장애인차량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기에 주차장은 언제나 비어 있었다. 아무리 급하다 해도 제일 좋은 자리에 마련된 장애인주차장은 장애인차량이 아니라면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모양이다.

우동집의 장애인주차장과 경사로. ⓒ이복남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라 공항으로 향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자들은 젊다 또는 예쁘다를 좋아하는데 일본 여자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귀엽다는 말을 좋아한단다. 그래서 나이가 든 할머니도 예쁜 옷이나 예쁜 장신구를 하고 다니는데 모두가 귀엽게 보이려고 그런다는 것이다. 귀엽다의 일본말은 가와이(可愛い)란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처음에 얘기했듯이 미리 휠체어를 신청하지 못한 것과 우리나라는 공공건물이나 고속도로 휴게실 등 곳곳에 정수기가 있어 물은 얼마든지 공짜로 먹을 수 있는데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수돗물을 그냥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어디에도 음수대나 정수기는 없었다. 그렇다면 물은 화장실 밖에 없는데 한국인의 정서에 화장실물을 그냥 먹는 사람은 없을 테니 물은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사 먹어야 했다. 식당에서도 물을 마시는 것은 괜찮은데 병에 담아가지는 못하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공중화장실은 잘 되어 있는데 가는 곳마다 물내림 시스템이 달라서 볼일을 다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봐야하는 등 난감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2박3일 동안 날씨도 좋았고, 하나투어의 김경희 가이드도 안내를 잘 해 주었다. 우리 팀은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 그리고 자원봉사자 등 총 10명인데 이동할 때마다 다른 여행객들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었던 우리 팀을 불평 없이 참고 기다려 준 일행들도 고마웠다. 함께했던 우리 팀원들도 덕분에 즐겁고 좋은 여행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여행은 삶의 활력소이자 내일을 위한 충전이다. 모두 무탈하게 잘 다녀 올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가능케 해 준 부산장우신협과 한국장애인기업협회 조창용 지부장에게 감사드린다. 그야말로 후쿠오카의 봄의 향기를 맘껏 느낄 수 있는 좋은 여행이었던 것 같다.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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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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