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병창 창시자 최준.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엄마, 엄마! 준이 피아노병창 해요.”

“그래 알았어.”

최준의 모든 활동을 함께하는 그의 그림자인 엄마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최준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피아노와 놀았기 때문에 그냥 하는 소리려니 했다.

그런데 최준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홍보가를 하는 것이었다. 마침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오는 날이어서 준이가 말한 피아노병창을 선생님과 함께 들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엄마와 선생님은 동시에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준이 피아노병창의 감동이 예사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준아, 너무 좋다. 아주 멋져.” 선생님이 칭찬하셨다.

“준아, 어떻게 피아노병창을 생각했어?” 엄마가 물었다.

“가야금+판소리는 가야금 병창, 피아노+판소리는 피아노병창이예요.”

판소리를 할 때는 북을 쳐 주는 고수가 필요하다. 공연 부탁이 들어왔을 때 고수 선생님 스케줄을 먼저 물어봐야 하고, 장애인 공연은 출연료가 적어서 고수 비용을 드리면 교통비도 남지 않을 때가 많아서 준이 엄마는 고수 문제로 걱정이 많았다. 엄마의 걱정에 무관심해 보이던 준이가 고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아노병창을 창조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창 반주인 피아노곡을 최준이 작곡했다는 사실이다. 최준은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 악보를 볼 줄 몰랐다.

한 소절 들려주면 그것을 따라하는 방식으로 동요 한곡의 연주를 완성하는 정도의 실력이었는데 2010년부터는 사물에 대한 느낌을 일기를 쓰듯 음악으로 표현하였다. 연주를 하고 그것을 오선지에 그려넣었다. 바로 작곡이었다.

준이가 작곡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깊이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겼다.

“엄마, 오늘 삼겹살 맛있었어요. 준이가 작곡해요.”

“또 했어? 잘 했어. 오늘 삼겹살은 어떤 맛인지 들어볼까.”

준이가 작곡한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으면 엄마도 그 상황이 그대로 상상이 될 정도로 교감이 되었다. 이 교감이 엄마를 넘어 다른 사람들과 된다면 준이의 피아노병창은 세상을 소통하게 만들 것이다.

최준 공연모습. ⓒ한국장애예술인협회

27살, 답답하다

엄마는 아들의 나이 27살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700여 명의 관객 앞에서 흥보가를 완창할 때는 천재 판소리 소년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발달 장애 2급의 장애로 판소리를 한다는 것이 신기했기에 받은 찬사였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을 때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줄 알았던 아들이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벅찼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그리고 대학교 도전은 엄마가 아들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주며 어렵지만 헤쳐 갈 수 있었다.

보통의 자녀는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으로 자립을 하지만 준이는 취업에 도전할 수가 없다. 예술 활동이 경제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립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래서 엄마 마음이 더 무거운 것이다. 맞벌이 부부여서 첫아이 준이는 시부모가 키워 주었다.

퇴근을 하고 아이가 엄마를 기다릴 것 같아 부지런히 달려가면 아이는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이는 엎드려 누워서 장난감을 뱅뱅 돌리고 있었다. 서운했지만 바쁜 엄마는 보채지 않는 아기가 오히려 고마웠다.

아기의 발육이 더딘 것이 이상해서 병원에 가면 30개월이 돼야 진단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냥 돌아왔다. 어른들은 늦되는 아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여 불안감과 기대감을 갖고 시간을 보냈다.

“자폐증입니다. 지적장애죠.”

이 진단을 받기까지 젊은 엄마는 자기 아이에게 장애라는 멍에가 씌워질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때부터 온갖 치료가 시작되었다. 아이 지능 발달에 도움이 되는 치료는 모두 해봤다. 심지어 이름이 나빠서 장애가 생긴 것 같아 개명을 하려고 했지만 그 당시는 개명 사유가 뚜렷하지 않으면 개명이 되지 않아 이름조차 바꿔 주지 못하였다.

판소리를 만나고

초등학교 1학년 때 피아노 학원에서 쫓겨났다. 준이가 건반 하나만 계속 쳐서 피아노가 고장이 났다며 못 가르치겠다고 하였다. 준이가 그 음을 몹시 좋아한다는 생각보다는 자폐증의 이상 행동인 줄 알았다.

엄마가 근무하는 회사 위층이 피아노 연습실인데 그곳에 오는 손님 가운데 한 분에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엄마는 다가가 무턱대고 물었다.

“저 선생님, 피아노 선생님이시죠?”

“그런데요?”

“우리 아이한테 장애가 있는데 학원에서 받아 주지를 않아서 피아노를 못 배우고 있어요.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를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마침 그분은 독일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는데 커리큘럼에 특수교육이 있어서 장애아동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분은 신민임 선생님인데 뮤지컬을 하듯이 노래를 부르며 피아노를 가르쳐주어 준이가 아주 흥미로워했다.

좋은 선생님 덕분에 준이의 피아노 실력은 조금씩 향상되었다. 준이가 피아노부터 시작을 한 것이 피아노병창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게 하였던 것이다. 준이가 판소리를 하게 된 것은 사물놀이 학원에 보낸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준이는 가만히 두면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관심이 있어 하는 것을 배우게 했다. 사물놀이는 준이의 에너지를 발산시키는데 아주 좋았다.

“틀렸어. 틀렸어. 틀렸어.”

준이는 음에 민감해서 다른 아이들이 실수를 하면 그때그때 틀렸다고 말해 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방해가 된다고 또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엄마는 그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학생에게 집에 와서 준이를 가르쳐 주면 안 되겠느냐는 부탁을 했는데 그 여학생 전공이 판소리였다. 엄마는 판소리가 준이의 언어 발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좋았다.

최준 공연모습2.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소리꾼 최준

판소리를 배운 후 준이 생활 자체가 판소리였다. 초인종을 누르고 “이리 오너라.”라며 춘향가를 불렀다. 기러기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기러기가 춤을 춰요.”라며 춤을 추었다. 엄마는 아이의 행동이 마냥 신기했을 뿐 공연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판소리 선생님은 공연을 권했다.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허둥거렸고, 무엇보다 준이가 무대 위에서 2시간 동안 판소리를 할 수 있을까 싶어 걱정이 되었다. 하다가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 어쩌나, 사설을 잊어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였다.

하지만 한복을 입고 한 손에 부채를 들고 700여 명의 관객이 모인 큰 무대에서 소리를 하는데 엄마가 봐도 너무 멋있었다. 목에 핏줄이 서고, 머리 옆 핏줄도 뚜렷이 돋아났다.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준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반응을 보내는 관객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반응에 호응을 하기도 하였다. 최준은 소리꾼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 후 최준이 개인발표회는 물론 여러 공연에 참여하고 상도 많이 받았다. 음반도 발매하였다.

엄마는 최준이 명창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을 꾸준히 하며 그것으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바랄 뿐이다.

최준과 함께 무대에 올라 아들의 장애를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최준의 피아노병창을 감상하고 박수를 치며, TV 방송에 나가 지하철 노선을 외우고 어느 지하철 소리인지를 알아맞히는 묘기를 하지 않아도 최준의 음악성을 인정해 주는 사회가 된다면 그때 비로소 최준은 발달 장애 소리꾼이 아니라 판소리 최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송희 선생님과 함께. ⓒ한국장애예술인협회

# 주요 경력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비학교 수료(판소리)(2009. 2. 21)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수료(2009. 2. 23)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졸업(2014) 외.

2004 KBS-1TV‘ 국악한마당’ 판소리‘ 춘향가’ 2005 신민임 피아노 독주회 피아노 협연(세종문화회관 소극장) 2012 에이블 아트 콘서트 ‘우리도 예술인이다’(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 2014 국립중앙박물관 후원음악회 축하공연(국립중앙박물관 으뜸홀) 2015 유네스코 교육기금마련 양방언 ‘나눔콘서트’ 출연(통영국제음악당) 2015 KBS-1TV 국악한마당 ‘피아노병창’ 흥보가 중 ‘화초장’ 대목 2016 KBS-1TV 국악한마당 ‘피아노병창’ 흥보가 중 ‘놀보 심술부르는’ 대목 <영화음악> 단편영화 ‘무등산 연가’(2014) 단편영화 ‘짧은 하루’(2015), 독립영화 ‘엄마의 편지’ 테마음악 작곡(2016) <음반> 피아노병창/Jun Choi 피아노병창 음반 발매(악당이반 2014) FIRST LOVE/최준 PIANO 음반 발매(BEATBALL 2013.7) 音, 소리에 빠지다/최준 Piano &Pansori 음반 발매(제이오엔터테인먼트 2008) <방송> 2012. 1. 20~24 KBS-1TV <인간극장> 의 ‘아들아, 너의 세상을 들려 줘’ 2014. 5. 24 SBS-TV <스타킹> 2015. 6. 24 EBS-TV <다큐프라임> 감각의 제국 3부 ‘감각의 변주곡, 기억’ 외.

# 수상 경력

2005 제5회 종로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부문 중등부 우수상 2007 제7회 인천국악대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 고등부 판소리 최우수상 수상 2008 제11회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전국판소리경연대회’ 고등부 장려상 수상 2009 박록주 명창기념 ‘제9회 전국국악대전’ 판소리 고등부 장려상 수상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기념 ‘MBC 2013 스페셜 위대한 탄생’ 대상 수상 외.

# 개인 발표회

● 아홉 번째 발표회 | 최준 피아노병창 | HARMONINE(삼청로 146/2016.4.29)

● 여덟 번째 발표회 | 최준 피아노병창 | 소리, 피아노를 만나다 피아노병창 음반 발매 공연(국립극장 달오름/2014. 11. 5)

● 일곱 번째 발표회 | 최준 피아노병창 | 2013, 피아노로 판을 만들다(나루아트센터/2013. 5. 23)

● 여섯 번째 발표회 | 최준 피아노병창 | 피아노로 판을 만들다(북서울 꿈의 숲/2011. 12. 10)

● 다섯 번째 발표회 | 최준 판소리 완창 | 박록주제 興甫歌(상설무대 우리소리/2009. 2. 28)

● 네 번째 발표회 | 최준 Piano & Pansori | 音, 소리에 빠지다(서울 남산국악당/2008. 3. 30)

● 세 번째 발표회 | 최준 피아노 독주, 이중주 | 休 여름, 쉬어가다(금호아트홀/2006. 7. 4)

● 두 번째 발표회 | 최준 판소리 김세종제 춘향가 | 춘향 만나는 봄, 思春期(삼청각 예푸리/2006. 4. 1)

● 첫 번째 발표회 | 최준 판소리 박초월제 흥보가 | 홍보야, 노~올자!(국립국악원 우면당/2003. 4. 12)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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