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얼마만큼 타인에게 용서를 구한 적이 있습니까?”

잘못에 대한 용서는 신이 아니라 잘못을 당한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어야 함에도, 가해자가 신에게 회개를 구하고 나는 구원받았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것이 과연 진정한 용서일까.

‘목소리의 형태’ 영화 포스터. ⓒ네이버 영화

‘목소리의 형태’ 는 오이마 요시토키의 원작만화를 바탕으로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목소리의 형태’는 일본 영화인데 원작의 제목은 ‘聲の形’이다. 원작자는 숨겨진 메시지도 알아채는 마음을 작품에 담고자, 소리 성(声), 손을 뜻하는 창 수(殳), 그리고 귀 이(耳)가 합쳐진 글자 聲을 보고 작품의 이름을 ‘聲の形'(목소리의 형태)라 짓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이시다 쇼야가 다니던 학교에 니시미야 쇼코가 전학을 왔다. 쇼코는 첫 인사를 “처음 뵙겠습니다. 니시미야 쇼코라고 합니다.” 라고 쓴 노트를 친구들 앞에 들어 보였다. 쇼코는 말을 못하는 청각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쇼야 등 친구들은 새로 전학 온 쇼코를 사사건건 괴롭혔다.

귀가 들리지 않는 쇼코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보청기였다. 그런데 보청기를 빼서 던져 버리기도 하고, 귀 가까이 대고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쇼코의 귀에 있는 보청기를 확 잡아 빼는 바람에 쇼코의 귀에 피가 흐르는 상처가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쇼야는 조금도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 쇼야가 쇼코의 보청기을 강제로 빼는 바람에 쇼코의 귀가 다치기도 했다며, 쇼코의 어머니는 쇼야의 따귀를 때렸다. “그동안 너 때문에 쇼코가 보청기를 8개나 새로 맞췄어.”

노트에 쓴 글씨로 인사하는 쇼코. ⓒ네이버 영화

쇼코는 쇼야 등 친구들에게 당하는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 버렸다. 쇼코가 전학을 가자 쇼야와 함께 쇼코를 괴롭혔던 아이들은 쇼코의 왕따 사건에서 자신들은 빠지고 쇼야를 주동자로 몰아갔다. 쇼코가 없는 세상에서 쇼야는 또 하나의 왕따가 되어 혼자 쓸쓸히 방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쇼야는 우연히 쇼코를 다시 만난다. 그 후부터 쇼야는 쇼코를 계속 찾아서 따라다닌다. 쇼야는 쇼코에게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고 싶었던 것이다.

용서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쇼야는 쇼코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은 꿀떡같았고, 그래서 열심히 수화도 배웠지만 쇼야는 용서해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쇼코는 쇼야 등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어린 시절 죽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었다. 쇼코는 쇼야가 왜 자신을 따라 다니는지 잘 알지 못했기에, 자신을 쫓아다니는 쇼야를 볼수록 지난날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 더욱 더 절망한다.

쇼코와 쇼야의 만남. ⓒ네이버 영화

영화는 쇼야와 쇼코의 잘못된 만남으로 시작하여 쇼코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어린 시절, 그리고 괴롭힘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자 견디지 못한 쇼코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고, 몇 년 후 쇼야가 쇼코를 다시 만나서 마음으로나마 용서를 구하는 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쇼코가 가고 없는 학교에서 쇼야는 점점 더 외톨이가 되어 쇼코가 사용하던 책상에 그가 쓴 낙서를 지우는 등 지난날을 후회하며 방황한다. 쇼야가 쇼코를 괴롭힌 것은 어쩌면 관심이나 사랑의 또 다른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아이들은 장난삼아 연못에 돌을 던지지만 개구리는 그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목소리의 형태’가 청각장애인 영화라고 알고 있었기에 청각장애인 박진희(53)씨와 강주수 수화통역사와 같이 영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막상 영화관에 가 보니 청각장애인은 별로 없는 것 같았고 대부분이 젊은 커플들이었다.

어차피 외국 영화라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영화가 아니더라도, 자막이 나오니까 청각장애인도 영화를 보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장애인 젊은 커플들이 많다는 것은 약간은 의외였다.

박진희 씨와 강주수 수화통역사. ⓒ이복남

필자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같이 영화를 본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다. 영화에서도 쇼코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수화가 나왔는데 청각장애인 박 씨와 강주수 수화통역사나 수화를 알아보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일본수화가 한국수화와 다르기는 해도 많은 부분이 비슷하고 그리고 자막이 함께 나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박 씨가 말하기를 자신은 부모들이 따돌림을 당한다고 처음부터 배화학교(청각장애인학교)에 입학을 시켰단다. “어렸을 때 일반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서 배화학교로 전학을 온 아이들도 있었다.”며 농아들의 이야기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박 씨는 어른이 되어서도 농아라고 억압하고 무시해서 죽고 싶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에 나오는 쇼코의 따돌림 이야기는 대부분의 농아들이 당하는 일이라 그런 일은 별 문제도 아닌 것 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에 큰 감동은 없다고 했다. 만약 청각장애인 청소년들이라면 좀 더 다른 느낌이었을까.

벚꽃나무 아래에서. ⓒ네이버 영화

필자가 이 글을 쓰려고 여기저기 자료를 찾다보니까 ‘목소리의 형태’에 비록 청각장애인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청각장애인 영화라기보다는 청춘영화인 것 같았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것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소통해서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섬세한 감성영화였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 같았다.

영화에서 쇼야는 청각장애인 쇼코를 괴롭힌 것에 대해서 그를 괴롭혀도 쇼코가 반항하지 않고 웃기만 하는 것에 더 재미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쇼야는 쇼코를 괴롭힌 것에 대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지만 차마 그 말은 못하고 그 대신 “나는 네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어, 자신의 부족한 부분도 사랑하면서 사는 거야”라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수화로 말하기도 했다.

쇼야의 눈물. ⓒ네이버 영화

‘목소리의 형태’를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5월 9일에 개봉했는데 누적 관객 수는 275,453명이라고 한다.(영화진흥위원회 제공 2017.06.07.) 이 정도의 관객 수라면 그런대로 성공한 흥행작인 것 같아서 다행이다.

한 가지 유감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의 형태’에 대한 후기를 카페나 블로그에 올려놨는데, 청각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그야말로 소통과 용서에 관한 감성로맨스 이야기뿐이었다. 원작자의 정확한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목소리의 형태’는 청춘커플을 위한 감성로맨스 뿐만은 아닐 것이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왕따라는 사회적 문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지매 즉 왕따에 대한 트라우마는 가해자나 피해자, 심지어는 방관자들 모두에게도 큰 상처로 남아서 살아가는 동안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그러므로 설사 장애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학창시절 일진이니 뭐니 하면서 누군가를 괴롭히고 왕따 시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에게 살아가는 동안 극복하기 쉽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므로.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