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모두의영화관 팀이 지난 8월 24일 Vicdeaf에 방문했다. ⓒ이주연

지난 2006년 12월 13일 장애인 인권 및 기본적인 자유권 보장을 천명한 UN 장애인 권리협약이 회원국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협약에는 차별 금지, 개인의 천부적인 존엄성 존중, 기회의 평등, 장애아동의 발전 역량 존중 등 장애인의 권리 증진과 관련된 여덟 가지 항목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접근성(accessibility)’ 항목이다.

누군가가 ‘장애인’으로 규정되기 위해선, 일차적으로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라는 의학적 원인이 존재한다. 그들 대부분은 이러한 원인 때문에, 이차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그런데 이들이 겪는 사회적 소외의 상당수는 장애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접근성이 확실히 보장되어 있지 않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시설, 교통, 제품, 서비스, 정보통신망 등의 환경을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하는 ‘접근성’의 논의가 시급한 것이다.

‘2016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모두의 영화관 팀은 지난 8월 24일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청각장애 권익기관 Vicdeaf와 호주 장애기관들의 대표자 격인 Australian Federation of Disability Organisations(이하 AFDO)에 방문했다. 구체적으로는 호주 내 시각, 청각장애인의 영상 매체 향유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날 아침이 밝자, 우리는 서둘러 기관으로 향했다. 첫 번째로 방문한 Vicdeaf는 호주 빅토리아 지역에 거주하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청각장애 권익 기관이다. 호주 연수 중 처음으로 방문하는 청각장애 권익 기관이었기에, 원활한 소통이 가능할지 약간의 걱정이 앞섰다. 팀 내에 국제수화를 조금 구사할 수 있는 팀원이 있었지만 호주수화는 한국수화와도, 국제수화와도 매우 상이한 언어였기 때문이다. (수화는 만국공통어가 아니다. 수화 역시 한 집단이 사용하는 하나의 공통된 언어 체계이기에 국가별로, 지역별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기관에 도착하니 오늘의 인터뷰를 도와줄 전문 수화통역사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던 Vicdeaf의 프로젝트 매니저 마이클(Michael Parremore) 씨가 구화를 할 수 없는 농인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매우 감사한 배려가 아닐 수 없었다.

Vicdeaf에서는 빅토리아 지역에 거주하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통역사 제공은 물론이고, 보청기나 인공 와우 같은 장비를 대여 및 판매하고, 오슬란(Auslan, 호주 수화) 티칭 클래스를 정기적으로 열어 청각장애인들의 일상생활 영위를 돕는다. 비록 우리의 연수 주제인 캡셔닝(Captioning,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서비스)과 직접적으로 관여된 단체는 아니었지만, 호주 내 개방형 영화 제작 단체인 Open Captions Australia와 같은 비영리단체에 재정적 지원을 하는 등 간접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우리는 마이클 씨와 인터뷰를 나누며, 호주 내 영화관 접근성 상황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청각장애인들은 현 호주 시스템에 불만족을 표하고 있었다. 어떤 기기를 사용하는 지와는 상관없이, ‘폐쇄형’ 시스템(필요한 관객들에 한해서만 화면해설 및 청각장애인용 자막을 제공해주는 시스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선 별도의 해설 및 자막 수신기가 필요함) 자체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음은 인터뷰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2016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모두의영화관 팀이 지난 8월 24일 Vicdeaf에 방문했다. ⓒ한빈

Q. 청각장애인들이 이렇게 폐쇄형 시스템을 싫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영화관 측에서 제공하는 장비가 Captiview든 RW든, 청각장애인들의 불만은 해소되지 않을 겁니다. 핵심은 그들이 영화를 볼 때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에 있죠. 청각장애인들이 폐쇄기기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영화 관람 전 카운터로 미리 가 문의를 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선 운전면허증이나 신분증을 맡겨야 하고, 세부적인 인적사항을 적은 뒤에야 장비를 받고 영화관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폐쇄기기를 들고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장애인들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하는 비장애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각장애인들은 폐쇄 시스템을 꺼립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청각장애인들의 불편은 계속됩니다. 그들은 기기를 카운터에 다시 가져다줘야 하고, 신분증(운전면허증)을 돌려받아야 합니다. 그제야 그들은 영화관을 떠날 수 있습니다. 비장애인의 경우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티켓을 사고, 상영관으로 들어간 뒤 앉고 싶은 자리에 아무 데나 앉고,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상영관을 떠날 수 있습니다.

비장애인과 비교했을 때 청각장애인들은 추가적인 압박이 있는 셈이죠. 제 생각에 동등하지 않은 상황 같습니다.(I feel that that is not equal.)

또한 Captiview과 RW 같은 폐쇄 기기의 문제점들이 점차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막 지연, 자막 잘림, 실제 영화 대사와 비교했을 때 심각하게 축약된 내용의 자막이 나오는 경우 등이 있죠. 가끔 청각장애인들은 영화를 보는 도중 밖에 있는 데스크로 나와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그럼 영화관 스태프들은 “오, 죄송해요. 그런데 지금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네요.”라고 말한 뒤, 어쩌면 미안한 마음에 영화 예매권 하나를 무료로 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당신이 바랐던 결론이 아니죠. 어쨌든 당신은 자막의 이상 때문에 원래 관람하던 영화를 못 본 셈이니까요. 종합해서, 현재 호주의 영화관은 청각장애인 관객들에게 이상적인 환경이 전혀 아닙니다.

Q. 한국은 폐쇄형 기기 상용화의 문턱에 서 있는데요, 많은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어떤 타입의 기기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는데, 우선 자막 같은 경우에는 안경(글라스) 방식이 있을 수 있고, 패널 방식이 있을 수 있겠죠. 이어폰의 경우엔 일반 이어폰과 골전도 이어폰 등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 제안이 있으십니까?

A. 국내 장애인 커뮤니티에 사전 조사를 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어떤 장비를 사용하는 게 가장 편할지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무언가를 시행하기 전, 트라이얼(Trial, 시험 도입) 해보는 것을 강력 추천해 드립니다. 이를 통해 수집한 피드백은 장애인 커뮤니티가 어떤 방식의 시스템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아직도 여러 가지 기술을 시험 중입니다. 현재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영화관에서 제공되고 있는 Captiview 같은 폐쇄형 기기에 불만족을 표하고, 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죠. 이는 기기 도입 전, 충분한 사전조사와 검토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선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결과적으로 Captiview와 같은 효용성 없는 장비의 도입은 예산을 낭비할 뿐이고, 장애인 당사자들로 하여금 영화관으로 가는 발길을 끊게 만듭니다. 이는 영화관 접근성을 더 낮추는 결과를 낳습니다.

Q. 당신이 꿈꾸는 ‘모두의 영화관’은 어떤 모습인가요?

A. 저희도 무엇이 최상의 해결책인지는 모릅니다. 이상적으로, 청각장애인들은 실제 영화 스크린 위에 자막이 함께 삽입된 ‘개방형 영화’를 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하는, 현장감 있는 영화관 경험 또한 놓치고 싶지 않아 하죠. 그래서 만일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잉크(invisible ink) 같은 것이 발명되어, 스크린 위에 잉크로 자막이 삽입되고, 필요한 사람들만 안경을 써 자막을 읽을 수 있다면, 또 그 안경에 추가적으로 헤드폰이 연결되어 있어 시각장애인들도 화면 해설을 들을 수 있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영화 관람 환경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다양한 종류의 장애 권익 기관이 입주해있는 로스 하우스(Ross House)의 공용 회의실 예약 보드 모습 ⓒ이주연

마이클 씨와 수화통역사 모두 다음 일정이 잡혀있는 상태라, 인터뷰는 이 정도 선에서 끝이 났다. 이후 우리는 다양한 장애 권익 기관이 입주해 있다는 로스 하우스(Ross House)로 향했다. 장애인대표기관인 AFDO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로스 하우스에는 AFDO 이외에도 다양한 기관들이 줄지어 입주해 있다. 시각장애인 권익 단체 Blind Citizen Australia부터 시청각중복장애기관 Ablelink까지, 이곳에 들르지 않았다면 마주하지 못했을 단체들이다.

그래서일까? 건물 구석구석 배리어프리적인 설계가 돋보였다. 층마다 휠체어 높이에 맞는 스위치가 설치되어 있어 누구나 용이하게 문을 열 수 있다. 층별 내부 구조가 비슷해 다른 층에서 일하던 직원이 새로운 층에 와도 익숙해지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우리가 방문할 AFDO는 로스 하우스 2층에 위치해 있었다. (참고로 1층엔 Dukes Coffee Roasters라는 카페가 입점해 있다. 플랫화이트가 끝내주게 맛있는 멜버른의 커피 맛집이다.) 가볍게 사무실 문을 열자 CEO인 매튜(Matthew Wright) 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사회 의장인 캐롤(Trevor Carroll) 씨는 막 정부 부처 장관과의 미팅을 끝냈다고 했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위층에 있는 회의실로 이동했다.

*이 글은 2016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모두의 영화관의 이주연님이 보내왔습니다. 모두의 영화관 팀은 8월16일부터 25일까지 ‘호주 내 시각, 청각장애인의 영상 매체 향유 방법’을 주제로 호주연수를 진행했습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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