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7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유나이티드와 함께하는 가족음악회’가 열렸다. 필자도 장애인 10여명과 함께 이 음악회를 보러갔다. 물론 돈을 내고 간 것은 아니다. ‘유나이티드와 함께하는 가족음악회’는 유나이티드 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초대권으로 입장할 수 있는 무료초대였다.

트롬본을 연주하는 양이훈 씨. ⓒ이복남

평소 음악회에 갈 기회가 적었던 필자가 어떻게 해서 이 음악회에 갔는가하면 이 음악회에 트롬본을 연주하는 시각장애인 양이훈 씨가 ‘T.I.F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객원으로 참여하면서 필자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7시가 조금 못 되어 문화회관에 도착하니 양이훈 씨가 로비에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연주자가 여기에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했더니 시간이 되면 들어간다고 했다. 음악회는 7시 30분에 시작인데 7시부터 입장이 가능했다.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은 1,400석인데 객석은 거의 다 찼다.

객석의 불이 꺼지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곡은 베르디의 아이다 중에서 개선행진곡이었다. 첫 번째 곡이 끝나고 지휘자 김봉미는 인사를 하고 다음으로 연주하는 베르디의 리골레토에 대해서 설명했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이라는 노래로 많이 알려진 리골레토는 16세기 프랑스의 왕과 권력자의 부도덕성과 횡포를 고발한 [왕의 환락 Le Roi s'amuse]이라는 빅토르 위고의 희곡이었는데 군주와 귀족들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초연 이후 상연이 금지되었다. 베르디가 ‘왕의 환락’이라는 희곡에 반해 검열에 걸리지 않도록 각색한 것이 리골레토란다.

무대는 이탈리아로 옮겨서 실존하지 않는 만토바 공작을 내세웠다. 궁정의 광대 리골레토는

호색적인 만토바 공작을 부추겨서 만토바 공작이 귀족의 부인이나 딸들을 농락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리골레토는 혹시라도 만토바 공작이 자기 딸 질다를 넘볼까봐 노심초사 하면서 질다에게 절대로 외출을 하지 말라고 한다. 딸이 아버지 리골레토에게 대답하기를 아버지 말씀대로 바깥외출은 하지 않았고 교회만 다닌다고 했는데 교회에서는 이미 젊고 멋진 남자를 만났던 것이다.

유나이티드 음악회 팸플릿. ⓒ이복남

만토바 공작은 리골레토가 어여쁜 여자를 숨겨두고 있어서 리골레토를 괘씸하게 여기며 그 여자를 유혹했는데 그 여자가 바로 교회에서 만났던 리골레토의 딸 질다였다.

리골레토는 자신이 아끼던 딸 질다 마저 농락한 만토바 공작을 참을 수가 없어서 여관에 묵고 있는 자객 스파라푸칠레를 시켜서 만토바 공작을 죽이라고 한다. 이를 모르는 만토바 공작은 여관으로 들어가서 자객의 여동생 마달레나를 유혹하는데 만토바 공작을 연모하게 된 마달레나는 오빠에게 만토바 공작의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자객은 이 방을 처음 들어오는 손님을 죽여 만토바 공작의 시체로 대신하기로 한다. 밖에서 이 말을 엿들은 질다는 만토바 공작이 잠든 방으로 들어서다가 자객의 칼에 찔리고 만다. 자객 스파라푸칠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이 죽인 시체를 자루에 넣어 리골레토에게 갖다 준다.

시체 자루를 받은 리골레토는 만토바 공작을 죽였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 자루를 강으로 끌고 간다. 그 때 유쾌하게 ‘여자의 마음’을 부르는 만토바 공작의 노랫소리를 듣고 놀라서 자루를 풀어보니 자루에서 나온 시체는 만토바 공작이 아니라 자기 딸 질다였다.

김봉미 지휘자는 리골레토의 줄거리를 설명하고 오늘 부를 유명한 아리아 몇 곡을 소개 했다. 첫 번 째 곡은 테너 김동원이 부르는 ‘이 여자나 저 여자나(Questa o Quella)였다. 두 번째 곡은 ‘딸아, 나의 아버지(Figlia, mio Padre)’를 소프라노 김경란과 바리톤 제상철이 이중창으로 불렀다. 세 번 째 곡은 소프라노 김경란이 부르는 ‘그리운 이름이여(Caro nome)’이고, 다음은 바리톤 제상철이 부른 ‘이 천벌을 받을 놈들아(Cortigianni)’이고, 다시 테너 김동원이 그 유명한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을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프라노 김경란과 바리톤 제상철의 이중창으로 ‘Final duett’를 불렀다.

여기까지가 1부였는데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8시 30분부터 10분간의 휴식시간이 지나고 이어서 2부가 시작되었다.

제일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양이훈 씨. ⓒ이복남

2부의 첫 곡은 쿠르티스(Curtis)의 ‘나를 잊지 마세요(Non Ti Scordar Di Me)라는 물망초를 바리톤 제상철이 불렀다. 김봉미 지휘자의 설명에 의하면, 옛날에 도나우강(江) 가운데 있는 섬에서 자라는 이 꽃을 애인에게 꺾어주기 위해 한 청년이 그 꽃을 꺾어오다가 급류에 휘말리자 가지고 있던 꽃을 애인에게 던져 주고는‘나를 잊지 말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고 해서 그 꽃을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꽃을 ‘물망초’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다음 라라(A. LaLa)의 ‘그라나다(Granada)]는 테너 김동원이 불렀고, 김성태의 ’동심초‘는 소프라노 김경란이 애절한 목소리로 불렀다. 동심초(同心草)는 김성태가 1945년에 작곡한 가곡인데 가사는 7세기 중국 당나라 시인인 설도(薛濤)의 작품 춘망사(春望詞)를 김억이 번안한 것이라 한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이어서 정지용의 시 향수(鄕愁)에 김희갑이 곡을 붙인 가곡 ‘향수’를 소프라노 김경란, 테너 김동원, 바리톤 제상철이 다 같이 불렀다.

음악회의 마지막은 러시아의 음악가 보로딘(Borodin)의 ‘플로베츠인의 춤(Polovtsian Dance)’에 대해서 김봉미 지휘자가 설명을 했는데 플로베츠인의 춤은 4개의 파트로 구성된다면서 각 파트별의 시작을 오케스트라의 시범으로 직접 보여 주면서 설명한 다음에 ‘플로베츠인의 춤’을 연주했다.

문화회관 로비에서 양이훈 씨. ⓒ이복남

마지막 곡이 끝난 다음에도 관객들은 오랫동안 박수를 쳤고 오케스트라와 출연가수들이 다 함께 인사를 해도 박수소리는 끊이지 않아 앵콜 곡으로 라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를 부른 후에야 음악회는 끝났다.

음악회가 끝나고 극장을 나와 화장실을 다녀오니 양이훈 씨가 트롬본이 든 악기통을 들고 나왔다. 그가 시각장애인임을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그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피나는 노력으로 트롬본 연주자가 되었음을 음악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몰랐을 것이지만.

“원장님, 이제 제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저는 양이훈 씨의 말을 못 믿는다고 안 했는데요.”

“원장님이 아니라 제 말을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양이훈 씨의 말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아무튼 10월의 깊어가는 가을밤을 수놓은 아름다운 선율이었고 그 아름다운 선율에 양이훈 씨의 트롬본이 일조하였으렷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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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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