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대의 관습이나 풍속 중에는 현대와 맞지 않아서 버려야 할 것도 있지만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을 존중하고, 두레나 품앗이 같은 공동체는 계승 발전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본받지 않았으면 싶은 전통적인 습관 중에서 아직도 계승하고 있는 것들이 더러 있다. 그 중에서도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은 게 ‘원수를 갚아 다오’이다. 부모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때 자식에게 유언하기를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한다. 자식은 부모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원수를 갚는다.

‘제로니모’ 그리고 ‘바르샤바 1944년’ 입장권. ⓒ이복남

그런데 A가 아버지의 원수인 B의 아버지를 죽였다면, B 또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A를 죽일 것이다. 따라서 원수가 원수를 죽이고, 원수가 원수를 낳고 원수를 갚는 일은 자자손손 대물림하게 된다. 원수를 갚는 일이 과연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것일까. 그 결말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도 마찬가지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10월 2(목)일부터 10월 11(토)일까지 영화의 전당을 비롯하여 부산일원에서 펼쳐졌다. 필자도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나눔표를 받았는데 우리가 선택한 첫 번째 영화는 10월 9일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상영되는 ‘제로니모’였다.

야외극장은 좌석권이 없는 선착순이라 한 시간 전에 도착했음에도 이미 가운데 자리는 거의 다 선점이 되어 있었다. 한 시간을 어떻게 기다리지 했더니 1시간 전부터 ‘달달한 레드카펫’이라는 재능나눔음악회가 열렸다. 부산시립교향악단과 진보라밴드의 협연으로 일곱 곡이 연주되었는데 여섯 번째는 대부분이 아는 곡으로 침묵의 소리로 알려진 ‘Sound of Silence’였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이복남

영화가 시작되고 화면의 오른쪽에서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필사적으로 달린다. 신부가 저렇게 달린다면 분명 결혼식장에서 뛰쳐나온 것일 텐데 도대체 누가 쫓아오기에 누구를 피해서 숨이 턱에 차도록 헉헉거리면서 달리는 것일까.

그때 왼쪽에서 오토바이를 탄 한 남자가 나타났고 남자와 여자는 격정적으로 만나서 포옹했다. 그렇게 달려온 신부는 누구를 피해서 달린 것이 아니라 그리운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제로니모’는 토니 갓리프 감독의 작품으로 프랑스의 어느 빈민가 이야기다. 원치 않는 결혼식에서 뛰쳐나온 신부는 터키 이민자 집안의 닐이고 그의 애인 루키는 집시인데,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제로니모가 닐과 루키를 숨겨 준다.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철없고 무모한 사랑의 도피를 하고 있는 닐과 루키에게 과연 내일이 있을까. 닐의 오빠 파질은 동생의 결혼식을 파토 낸 루키를 죽이겠다며 찾아다니고, 가문을 더럽힌 동생 닐도 죽여서 가문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고 한다. 영화는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파질의 무리들과 루키를 감싸는 집시들의 대결로 전개되는데 그 대결사이에는 오지랖 넓은 제로니모가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도망친 신부와 애인 루키. ⓒ부산국제영화제

제로니모가 있는 곳에서 터키 집안의 파질 무리와 집시 집안의 댄스파티가 열리고, 파질은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 뱃속에 칼을 감추고 있었다. 감독은 이질적인 두 공동체의 갈등과 폭력을 음악과 춤으로 대체하려는 모양이었지만 폭력장면은 끔찍했다.

터키는 무슬림 국가인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성의 인권보다는 가족의 명예를 중시한다며 ‘명예살인’을 합리화 시키는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사형(私刑)이 근절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루키의 병명은 무엇이었을까. 닐 대신 파질의 총에 맞은 제로니모의 생사는 어찌 되었을까, 파질은 정말 여동생 닐을 죽였을까, 모든 것은 의문점으로 남긴 채 영화는 끝났다.

제로니모와 비보잉 대결. ⓒ부산국제영화제

영화가 끝난 후 참가들의 이야긴즉 제로니모가 중재자를 자처한 것은 그도 집시이고 어머니도 그들 손에 죽었으므로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려고 그랬을 것 같다고. 했다.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원수는 또 원수를 낳게 마련이므로 누군가는 그 고리를 끊어 주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본 영화는 10월 10일 ‘바르샤바 1944년’이다. 잔 코마사 감독의 폴란드 영화인데 1944년 여름, 나치 치하에 있는 바르샤바에 생긴 일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이에다 실을 맨 남자아이는 두려움에 떨면서 울고 있는데 실을 잡은 형 스테판은 겁내지 말라고 동생을 달래면서 하나 둘 셋으로 동생의 이마를 쳐서 이를 뽑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의 이 뽑는 장면은 그쪽이나 우리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이 다음에 나오는 참혹한 전쟁과 대치되는 평화의 모습일까. 주인공 스테판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초콜릿 공장을 다니는데 출근하는 아침마다 집을 나서면서 어머니와 동생이 배웅하는 이층 창문이 보이는 데서 머리위에 하트를 만들면서 인사를 하는 착한 아들이고 좋은 형이다.

전쟁터에서 하수구를 빠져 나온 연인. ⓒ부산국제영화제

스테판은 군사 행위에는 가담하지 않기로 어머니와 약속했었다. 그러나 나치로부터 수모를 당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비밀 봉기에 가입하고 그곳에서 한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

봉기는 성공한 듯 했으나 갑자기 펑 하고 하늘에서 비가 쏟아진다. 그 비는 붉은 피였고 이어서 토막 난 신체들이 쏟아졌다. 사흘이면 끝날 거라던 봉기는 전쟁의 비참한 참상으로 이어졌다. 물자가 부족하여 독일군의 전리품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하여 흰색과 붉은 색으로 구성된 폴란드 국기 모양의 완장을 차고 있다.

온 천지에 널브러진 시체와 아우성치는 부상자들, 시궁창 같은 하수구를 지나고 펑펑 터지는 포탄과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혹함이 너무도 끔찍했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영화는 폴란드 봉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라는데 전쟁의 참상이 너무나 끔찍해서 몸서리가 쳐졌다. 이 봉기로 20만 명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에서는 100만 명이 넘었다는 것 같다.

바르샤바 봉기의 참상들. ⓒ부산국제영화제

필자는 한국전쟁 즉 6.25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 후에 보고 듣고 배운 전쟁의 참상은 너무나 끔찍했다. 그럼에도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지금도 하고 있다. 영화를 같이 봤던 일행 중에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사람이 있었다.

“월남에서는 저도 저랬어요. 안 죽이면 내가 죽을 판이니 다른 것은 생각할 틈도 없었어요.”

죽고 죽이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무사귀환을 했던 사람이 그 후 공사장에서 부상을 당하여 장애인이 된 사람이었다. 인생이란 새옹지마(塞翁之馬)라 그 누가 앞일을 알겠는가.

‘바르샤바 1944년’ 같은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알기 위해서 누구나 한번쯤은 봐야 될 영화 같지만 그 끔찍한 영화를 필자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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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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