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차돌 시인의 '혀로 쓰는 세상'을 한국어로 낭독하는 이상헌씨.ⓒ에이블뉴스

어둠 속 잔잔한 음악이 깔리며 시집을 든 한 명, 한 명에게 차례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다.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차례로 낭송된 작품은 바로 뇌병변장애인 노차돌(43세, 남) 시인의 작품이다.

“난 오늘도 혀로 세상을 산다”…사랑을 노래하는 노차돌 시인의 작품이 4개의 언어로 낭송되자 관객들의 마음도 촉촉이 젖어 들어갔다.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서울 대학로에서 펼쳐지는 ‘2014 장애인문화예술축제’ 속 4개 언어 시 낭송 페스티벌 ‘시로 세상을 품다’에서다. ‘시로 세상을 품다’는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4개 언어 방식으로, 장애인예술인협회가 8일 대학로 좋은공연안내센터 내 다목적홀에서 개최했다.

이중 눈에 띄는 인물은 사랑을 노래하는 뇌병변장애인 노차돌 시인이었다. 노차돌 시인은 1972년 강원도 산골 거진에서 뇌성마비 1급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학교의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하고 고등학교 2학년 학생에게 글을 배웠던 노 시인은 독학으로 한글을 깨쳤다.

그가 처음 글을 쓰게 된 것은 바로 열여덞 살에 첫사랑 고백을 하기 위해서였다. 첫 사랑을 위해 쓰게 된 그의 글은 어느새 시가 됐다. ‘솟대문학’ 추천완료를 거쳐, 시집 ‘어느 화성인의 사랑이야기’를 출간했다.

그런데 그가 시인이 되기까지 시련도 있었다. 뇌병변장애 1급을 갖고 있지만 글을 쓰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갑작스런 경련이 찾아온 것이다. 마비증상이 더욱 심해진 노 시인은 손발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시를 쓰는 그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일.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노 시인, 혀끝으로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질질 흐르는 침, 침 때문에 키보드가 망가지기 일쑤였지만 멈추지 않았다. 손이 아닌 혀로 마음을 그려내게 된 것.

노 시인은 지난 2008년 솟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후부터 지은 시가 180여편이다. 인터넷 블로그 ‘햇빛바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감성이 넘치는 사랑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한 획 한 획 행복을 쓰는 노 시인의 ‘혀로 사는 세상’ 작품은 이날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로 관객들을 만났다.

8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4개 언어 시낭송 페스티벌 '시로 세상을 품다'.ⓒ에이블뉴스

난 오늘도 혀로 세상을 산다

혀로 컴퓨터를 하고

혀로 쇼핑을 하고

혀로 흘러가는 세월 구경도 하고

혀로 떠나려 하는 그 사람도 잡는다

어쩌면 이런 내가 보기가 싫어서

이렇게 아프게 하고 떠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난 오늘도 혀로 컴퓨터를 켜서 그 사람의 사진을 한참 바라본다

한국어 이상헌씨의 가슴저미는 낭송에 이어, 소피 보우만이 영어를, 마츠다 이쿠노가 일본어를, 한홍화가 중국어로 그의 아픈 사랑 이야기의 시를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다목적홀을 가득메운 관객들은 저마다 자신의 방식대로 그의 작품을 관람했다.

이날 시낭송 페스티벌에서는 노 시인의 작품 외에도 서정슬 시인의 ‘가을 편지’, 김준엽 시인의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김율도 시인의 ‘고통과 아름다움은 산 위에 산다’ 등이 함께 낭송됐다. 낭송된 작품이 담긴 시집 ‘별에서 온 시’는 모든 관객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방귀희 회장은 "이번 시낭송 페스티벌은 세계 최초로 4개 언어로 시도됐다는 점에서 특별함이 있다"며 "시낭송 이외에 시인에 대한 스토리텔링으로 장애시인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줘서 감동이 더욱 전해졌다"고 말했다.

8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4개 언어 시낭송 페스티벌 '시로 세상을 품다'.ⓒ에이블뉴스

8일 시낭송 페스티벌에서 노차돌 시인의 '혀로 쓰는 세상'을 영어로 낭독중인 소피 보우만.ⓒ에이블뉴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