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장애 1급 우창수 작가.ⓒ에이블뉴스

손가락 하나로 천하를 얻으려다 관절염만 얻다. 그래서 그래도 나는 작가다.

홀로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뇌병변장애인 1급 우창수 작가(43세)의 블로그 속 프로필이다.

그의 작은 블로그에는 시나리오를 향한 오랜 집념과 그 만의 철학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최근 본 영화는 물론, 직접 써온 글들이 빼곡히 담겨있다. 주소도, 닉네임도 ‘시나리오’다.

학창시절 때부터 꾸준히 시를 써왔던 중증장애 우창수 학생은 30년이 지나 자신의 이름을 건 시나리오 집을 발간하게 된다. 최근 솟대문학에서 출판한 ‘내 손가락 끝의 지옥도’가 그 것.

1998년 KBS라디오드라마 ‘무대’로 시작한 우 작가는 현재 라디오드라마만 20편 가량을 써온 베테랑 작가다. 라디오 외에 희곡, 소설, TV드라마도 집필했다. 최근 발간한 시나리오 집에는 지옥도, 현상학, 낯선 거울, 탈의관음도 등 총 4편의 작품이 담겨있다.

특히 애정이 간다는 지옥도 작품은 고구려 시대에 에어리언 같은 괴물이 싸우는 이야기로, 오랫동안 하고 싶던 그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지옥도 같은 경우는 고구려시대에 에어리언 같은 괴물들이 싸우는 이야기 예요. 가장 재밌게 쓴 작품이기도 해요. 여자들은 무협, 괴물이 들어가니까 기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는 어릴 적부터 좋아했어요. 괴물이 이쁠리 없잖아요. 근데 괴물은 자기가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잖아요. 장애를 갖고 태어난 제가 이상하게 꼭 감정이입 되더라구요.”

중증장애를 갖고 있는 우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중, 고등학교를 일반학교로 졸업했다. 대학교에도 당당히 합격해 4년간 철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4년간 연극동아리에서 연출을 맡았던 우 작가는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전설의 인물이기도 했다.

“대학교에서 4년 동안 연극동아리를 했어요. 배우로써 연기도 했지만 주로 연출을 맡아서 시나리오를 많이 썼지요. 아직도 후배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사일거예요(하하). 대학 졸업을 한 이후에는 시나리오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아카데미를 다녔었어요. 어떤 계기로 시작했던 건 아니에요. ‘이 길로 가볼까?’라는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아카데미에서의 문제점은 없었다. 글쓰기에 자신 있던 우 작가는 대화보다는 묵묵히 글을 쓰며, 오로지 글로 소통을 해왔다. 글에 올인했던 그의 진정한 능력을 인정받았을까. 라디오 작가로 시작했던 20편 이상을 쓰며 승승장구 해나갔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원했던 영화의 길에서 큰 문턱에 걸리고 말았다.

“배우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써먹기가 힘들었어요. 제 희극을 제작사 여러 군데 보내면 연락이 오더라고요. 글이 좋다고요. 그래서 갔더니 계속 퇴짜만 놓는 거예요. 장애인이라는 이유였죠. 제작사측에서는 장애를 이유로 퇴짜를 두지 않는다고 핑계를 댔지만, 사실 시나리오를 하게 되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안 되다 보니 발을 들여놓기 힘들었어요.”

자신이 쓴 희극을 다듬고 있는 우창수 작가의 모습.ⓒ에이블뉴스

처음에는 큰 상처를 받았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퇴짜를 맞다보니 이제는 ‘그러려니’한다는 그는 최근에는 대형 기획사에서도 콜이 왔었다. 장애가 있는 몸으로 힘들게 미팅 장소에 도착했지만, 역시나 답은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될 거다’라는 신념을 갖고 지금도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제가 굳이 장애라고 밝히지 않는 이유는 제가 시나리오를 쓰는데 장애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연한 기회로 3년 전 MBC드라마넷 드라마 별순검 시즌3 작품을 한 적이 있는데 거의 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다보니까 문제가 없었어요. 자꾸 수정 요구가 온다는 것은 불편했지만요(웃음). 그래도 참 좋은 경험이었어요. 촬영장에도 가봤으면 했는데 그러진 못했네요.”

비장애인과의 경쟁만을 해왔던 우 작가, 알고 보니 지난해 열렸던 제14회 장애인영화제에도 출품한 경험도 갖고 있었다. 14분가량의 연쇄살인마와 장애인의 만남을 그린 ‘the carrier2’ 작품이다. 영화제 기간 동안 관객과의 대화에도 초대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 작품은 천사 같은 외모의 연쇄살인마와 그녀의 정체를 알아챈 뇌성마비 장애인의 만남을 그린 단편 스릴러 물이예요. 배우와 카메라감독도 직접 구해서 촬영을 했었죠. 직접 배우로도 참여해 찍었는데, 제 모습을 보기가 너무 오그라들 정도예요. 감독과의 대화에도 초대돼서 상을 받나 기대했는데, 상을 못 받아서 많이 아쉬웠어요.”

장애인영화제에 출품하기까지 우 작가의 혼자 노력이 아닐 터. 당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활동보조인의 도움이 컸다. 예술영화를 좋아하던 활동보조인과 함께 영화에 대해 토론하다가 작품을 만들어보기로 했던 것이다. 함께 출연한 여자 연극배우와도 작품을 계기로 오는 6월 연극 시나리오를 작성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구한 여배우와 작품을 통해 많이 친해졌어요.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고요. 올 여름쯤 올릴 연극 시나리오를 쓰기로 했어요. 제목은 변증법적오팔리어 구요, 인터넷에 올린 사진 몇 장에 홀려 만나지도 않고 선뜻 돈을 쓰는 남자들을 보며, 생각을 한 작품 이예요. 실제로 그런 여자가 눈앞에 있으면 간이라도 빼주겠다는, 그런 내용을 담았어요. 외모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깨자 라는게 제 의도구요.”

드라마와 영화, 욕심 많은 우 작가는 오전 동안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쭉 컴퓨터에 앉아 작품에만 몰두한다. 하지만 그를 유일하게 방해하는 자가 있었으니, 머리가 희끗한 아들에게 “컴퓨터 좀 그만해라!” 외치는 77세의 노모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저에게 구박만 하세요. 운동 좀 해라, 컴퓨터 좀 그만해라 하구요. 4남매 중 막내인 저를 40년 간 돌보셨어요. 학교 다닐 때도 매일 같이 오셔서 데려다주시고, 점심때는 직접 오셔서 밥도 먹여 주시고. 한 번은 점심시간 끝날 때쯤 오셔서 정신없이 먹일 때도 있었고요. 대학교 때도 역시 저를 하루 종일 따라다니셨고요.”

인터뷰 사진 촬영 중 “아이고~ 주름 봐라 주름”이라고 타박하는 노모의 꿈은 중년의 아들이 장가가는 것. 그럼에도 우 작가, 35세 이후부터 결혼은 포기했단다. 영원히 어머니와 살고 싶다는 그를 향해 어머니의 구박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구박 속에서도 40년간 함께해온 정이 묻어나온다. 43세의 우창수 작가, 그는 현재도 글을 쓰고 있고, 계속 글을 쓰고 싶은 것이 유일한 꿈이다.

“겨울이 아니면 1주일에 한 번씩 강남역에 위치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봐요. 집에서도 책을 많이 보고, 항상 작품만을 생각해오고 있죠. 현재는 써둔 연극작품을 토대로 장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이 작품으로 영화제도 출품하고 싶고요. 현재 공동 작업이 추세라서 몸 때문에 못하고 뒤돌아오지만, 언젠가는 독립영화관에 제 작품이 올라가겠죠. 그날을 위해 오늘도 저는 키보드에 손을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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