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문턱없는 희망여행' 2차 청주 향기여행을 떠나기 전 이건형·노선주 부부와 아들 이찬우. ⓒ에이블뉴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행복과 재미를 느끼고, 지루한 삶 속의 활력까지 되찾게 된다. 이 때문에 ‘여행’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나 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여행’을 즐기고 싶어도 ‘장애’로 인한 소외감과 활동참여의 제한, 이동의 어려움 등으로 쉽게 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장애인들을 위해 한국관광공사와 하나투어,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에이블복지재단이 손을 잡았다.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저소득 장애인들에게 즐겁고 편안한 여행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무료 여행지원 사업 '문턱 없는 희망여행'을 마련한 것.

1차 평창 가을여행에 이어 2차 청주 향기여행이 19일부터 20일까지 1박 2일 동안 진행됐다. 이번 여행은 뇌병변·지체 장애인 25명, 비장애인 28명 등 62명이 참여한 가운데 ‘속리산 국립공원 법주사’, 청주 ‘제빵왕 김탁구 드라마 전시체험관’, 대전‘국립중앙과학관’ 관람 등 다채롭게 진행됐다. 그들의 특별한 여행을 쫓아가 봤다.

19일 오전 7시 40분 여의도 이룸센터 2층 로비에는 다양한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아빠와 엄마·딸들과 함께 온 가족도 보이고, 아빠와 아들 단 둘이 온 가족, 엄마와 딸들이 온 가족, 갓난쟁이 아기와 같이 온 엄마 등 청주 향기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의 구성은 다양했다.

토요일 꽤 이른 아침. 피곤할 법도 할 텐데 모여든 사람들 표정에는 긴장감과 떨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표정들로 가득했다. 모두들 한 손에는 여행 가방 하나씩을 들고 있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빨간색 점퍼를 나란히 입고 있는 부부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신혼여행 겸 가족여행 떠난 이 씨 가족

흔히 동네에서도 ‘잉꼬 부부, 닭살 부부’라고 불리 우는 결혼 21년차 이건형(49세, 지체 2급)·노선주(44세, 지체 2급)부부. 이 들 옆에는 눈 땡글, 장난기 가득한 아들 찬우(4세)도 있다. 사내 녀석이 어찌나 까불까불, 장난기가 많은지 처음보는 가족들과도 쫑알쫑알 얘기하며 웃음꽃을 피운다. 찬우를 바라보는 이 씨 부부는 ‘밥을 먹지 않고 바라만 봐도 배부른 것’처럼 흐뭇하게 바라본다.

누구에게나 이번 여행이 특별하겠지만 이 씨 부부에게 청주 향기 여행은 더 특별하다. 부부에게도 처음, 찬우도 처음, 이 씨 가족이 난생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기 때문. 혹시나 늦을까 초조한 마음에 이 씨 가족은 1시간 채 잠을 자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한 5시쯤 여기에 도착한 것 같아요. 찬우도 설레였는지 잠도 안자고, 우리도 홀딱 밤 세고 왔죠. 졸려서 칭얼 거릴텐데 잘 노는 걸 보니 애도 기분이 좋은가봐요. 사실 창피한 말이지만 신혼여행도 가지 못해서… 이번 여행이 저희에게는 신혼여행이자 가족여행이 됐거든요.”

이 씨 가족은 부부와 찬명(18세)이, 늦둥이 찬우까지 4명이다. 고등학생인 찬명이는 수업 때문에 여행을 함께하지 못했다. 엄마의 마음이 어디 그럴까? 애타는 마음은 다 똑같다.

“찬명이는 지 부모가 장애인이라 그런지 또래 애들보다 생각이 깊어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으니까 대학도 안 간다고 하더라구요.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는거라고…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아마 이런 형편 알고 안 가겠다고 하는 것 같아요. 이번 여행도 못 가서 아쉽지만 다음에 꼭 같이 가자고 하더라구요.”

열심히 단팥빵과 소보루빵을 만들고 있는 이 씨 가족. ⓒ에이블뉴스

빵의 맛보다는 가족 사랑의 맛!

이 씨 가족에게 여행 중 ‘어떤 곳이 제일 좋았냐’고 묻자 모두 입을 모아 ‘김탁구 제빵왕 세트장’이라고 손 꼽는다. ‘제빵왕 김탁구’는 지난해 이 씨 가족이 재방송까지 챙겨가며 한 회도 놓치지 않고 봐온 드라마다. 특히 이 씨 부부는 찬우가 ‘제빵왕 김탁구’를 보면서 OST인 ‘그 사람’ 노래를 좋아했다며, 흥얼거리면서 돌아다녔던 게 생각난다고 얘기한다.

이 씨 가족은 제빵사의 설명을 들으며 '단팥빵, 소부르빵'을 이리저리 손 바닥을 굴리며 열심히 만들더니, 결국 시중에서 파는 빵보다는 2% 부족한 모양의 빵을 만들어냈다. 직접 만든 빵. 맛은 어떨까?

노 씨는 “솔직히 파는 빵보다는 맛있지는 않지만…우리가족이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빵의 맛 보다는 가족의 사랑을 먹는 것 같다”고 웃어보인다.

단팥빵, 소보루빵 1개씩을 남겨놓은 빵이 담겨 있는 봉투를 품에 안으며 “찬명이를 갔다줘야 겠다”고 얘기하는 노 씨. 여행 내내 집에 혼자 있을 큰 아들 찬명이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청주 향기여행 일정 중‘속리산 국립공원 법주사’에 가기 위해 걸어올라가고 있는 이 씨 가족의 뒷모습. ⓒ에이블뉴스

이번 여행, 가족에게는 ‘원동력’

최근 문화바우처 카드 보급 등 장애인에게도 ‘문화’는 꼭 누려야하는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정작 이 씨 가족은 “장애 가족에게 여행뿐만 아니라 문화 생활 조차도 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실질적으로 수급비, 장애수당 등 이들에게 주어지는 월 130만원으로는 네 식구의 생활비로는 빠듯하기 때문.

“기초수급비랑 장애수당까지 다 해도 월 130만원 정도 나오는데 월세가 35만원이 또 나가거든요. 4명이 그 돈으로 살아가기 힘들죠. 여행은 꿈에도 생각 못하죠. 문화생활 조차도 하기 어려운데. 작년에는 찬우가 졸라서 ‘서울대공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비용이 비싸니까 다시 갈 엄두가 안 나더라구요. 장애 가족에게 문화든 여행이든 그런 것 같아요. 갈 엄두 자체가 안 나는 거.”

하지만 노 씨는 이번 첫 여행이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최고’였다며 연신 엄지 손가락을 살짝 들어보인다. 옆에 있던 찬우도 ‘최고, 최고!’ 라고 연신 외친다.

이 씨 부부는 이번 ‘여행’으로 눈과 입이 즐겁고 콧 바람 제대로 냈다며 연신 ‘다들 감사하다’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을 정도로 너무 행복한 시간이였어요. 자주 이런 기회가 있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래도 기회가 없는 다른 장애 가족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지요. 이번 여행이 우리 가족에게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어요.”

신혼여행 조차 가지 못했다고 얘기하는 노 씨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 이 씨는 미안한 마음에 “다음에 좋은 기회가 또 생기게 되면 단 둘이 가보자”며 역시 ‘잉꼬 부부’ 티를 낸다.

노 씨는 옆에서 “그래도 우리 식구 다 같이 가야지”라고 말하며 ‘둘’보다는 ‘셋’, ‘셋’보다는 ‘넷’이 함께하는 게 더 행복하다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깨닫고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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