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제주장애인인권영화제' 강윤미 집행위원. ⓒ제주장애인연맹

선철규. 일명 '지렁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는 누워서 24시간을 지낸다. 먹고, 마시고, 놀고, 자고, 생각하고, 보고 등등..

그는 무엇이든 누워서 한다. 그래서 그에게 붙은 별명이 '지렁이' 하지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빨빨거리고 돌아다닌다고 그의 '지렁이'라는 별명에는 '번개 맞은'이라는 단어가 추가됐다.

일명 '번개 맞은 지렁이'. 욕망에 충실한 그는 그래서 '번개 맞은 지렁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별명이 붙게 된 데에는 10년 이상을 시설이라는 세상과 격리시켜버린 높이 쌓아올려진 담장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의 세상과 만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이 되면 당연하게 따라오는 '자립', 혹은 '독립'이라는 책임감은 중증의 장애인에게는 용납되지 않는다. 시설에서 지내고 있던 중증의 장애인이 시설을 떠나 자립을 꿈꾼다는 것은 상상으로도 허용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설을 떠나 독립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 모든 편의가 다 잘(?) 갖추어진 시설을 왜 떠나려 하느냐? 는 호된 질타만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자신의 뜻과 의지가 담긴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신이 만들어갈 꿈을 하나씩 키워줄 그런 자신만의 독립된 삶의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선철규의 꿈틀거리는 걸음은 그래서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영상동아리 '장애 in 소리'가 2010년에 만든 <선철규의 자립이야기 '지렁이 꿈틀'>(이하 <지렁이 꿈틀>)은 그가 세상과 함께 살기 위한, 그 강렬하고 뜨거운 열망을 하나씩 이뤄 나가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動(동). 行(행): 움직여서 행하라”

올해도 어김없이 평범한 사람들과 만나기 위한 평범한 장애인들의 제주장애인인권영화제가 오는 8월 27일과 28일 제주영상미디어센터 예술극장에서 있다.

인권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누구나 부여되는 평범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증의 장애인에게 있어 그 평범함은 당연함이 아니라 고집이나 욕심이라고 치부되어진다.

왜?

우리는 왜? 라는 이 물음표를 앞에 두고 고민을 좀 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음표의 칸을 채우기 위해 떠올려지는 단어들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

저 몇 개 되지 않은 말줄임표의 점들 속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당연함조차 배제되어지는 그 어떤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존재하지 못한다.

더운 여름날,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던져 땀을 씻는 것.

추운 겨울날, 함박눈을 맞으며 친구들과 거리를 걷는 것.

외로운 날, 포장마차에 앉아 두런두런 사람의 소리를 듣고 내는 것.

이 모든 일상들이 장애인이라고 해서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되어지는 것들은 왜인가?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은 욕구가 똑같은 무게와 가치로서 해소될 수 있기만을 원한다. 누구보다 더 큰 것,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되고자 하는 이 욕구를 우리는 이 사회와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렁이 꿈틀'. 이 영화에서 우리는 이러한 일상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쟁취'라는 거센 단어들로 학습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생각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 이들.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왜 이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제12회 제주장애인인권영화제 상영작 '지렁이 꿈틀'.ⓒ제주장애인연맹

*이글은 ‘제12회 제주장애인인권영화제’ 강윤미 집행위원이 보내왔습니다. 강 위원은 제주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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