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자립생활리더, 연구자와 함께(2006년). ⓒ정희경

[2010년 특별기고]⑤릿츠메이칸대학대학원 박사과정 정희경씨

일본의 장애인운동가들은 우리의 중증장애인운동의 역사를 압축의 역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일본이 40년 동안 느리게 성장해온 것과 달리, 우린 10년도 되지 않아 제도를 만들어냈고 우리나라의 사회와 문화가 장애인의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압축의 역사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미처 챙기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2010년에는 이 놓쳐버린 몇 가지들이 잘 실행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동료상담가의 배치와 자립생활프로그램 개발을 자립생활센터들에게 희망합니다.

사실 너무 절실합니다. 동료상담가는 동료상담을 수단으로 하여 자립생활을 하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정신적인 서포트를 합니다. 가족이나 활동보조인과의 관계 또는 지역 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억압이나 차별의 감정들로 부터 해방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억눌렸던 화를 풀어주는 작업입니다.

또한 자립생활프로그램은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습득하고 연습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로 관계(가족, 활동보조인, 지역주민)를 잘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내가 주권을 가지고 리드할 수 있는 방법을 선배장애인에게 전수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결코 이용자 교육과는 다른 것이며, 달라야 합니다.

활동보조서비스가 제도화 되었던 2007년부터 최근까지 한국을 오가면서 자주 들었던 말은 ‘비장애인 코디네이터의 권력화’, ‘까다로운 이용자’, ‘활동보조인의 자질’ 등이었습니다. 즉 활동보조서비스의 트러블에 관한 말들이였습니다. 트러블이 생겼다고 자꾸 이용자교육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활동보조인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보수교육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일부는 맞는 거 같지만 정답은 아닌 거 같습니다.

트러블이 생기면 동료상담가(당사자코디네이터)가 개입하고, 이용자에게 개별 자립생활프로그램에 참가하게 하여서 트러블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이용자 스스로가 찾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중증장애인들은 평생을 활동보조인과 함께 동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옆에 있는 활동보조인과 비장애인코디네이터는 과연 중증장애인의 평생 중에 며칠을 몇 년을 함께 할까요? 중증장애인이 자기에게 알맞은 활동보조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본인의 몸에 맞게 활동보조인을 교육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기술을 자립생활프로그램을 통해서 습득한다면 활동보조인이 자주 바뀌더라도 항상 본인에게 알맞은 활동보조인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사회생활이나 자립생활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으면 개별 동료상담을 통해서 풀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활동보조서비스 시장은 더 커질 것이며 힘 있는 기관의 중개기관들과 경쟁을 해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립생활센터는 다른 중개기관들과 차별화 되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동료상담가의 배치와 자립생활프로그램의 실시일 것입니다.

우리의 성과를 우리가 기록하고 그것을 우리의 무기로 삼기를 희망합니다.

최근에 당사자 주권과 현장의 경험들이 환영받고 당연시 되면서 활동가들의 연구 참여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이 되기도 합니다.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국가는 수시 각각 그들의 이권과 편의에 따라 정책을 바꾸고 서비스를 늘렸다 줄였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재빨리 장애인의 실태를 문서화해서, 정부가 좋아하는 숫자로 통계를 내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과 시스템이 필요합니다만 아직 그 만큼의 힘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긴박할 때는 하루 만에 전국의 자립생활센터의 생생한 목소리를 문서화해낼 수 있을 만큼의 능력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해야 할까요? 당연히 리더들, 활동가들이 해야 할까요? 아쉽게도 그들은 미래를 계획하고 조직을 운영하고, 다른 단체들과 연대하는 것만으로도 늘 시간에 쫓겨, 능력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해 낼 수가 없습니다.

꼭 박사나 연구자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당사자주권에 동의하고 좋은 결과를 당사자들에게 기꺼이 돌릴 줄 아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보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잘 활용했으면 합니다.

정부청사와 복지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천막농성을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만큼 중요한 것은 강력한 리더십이며, 또한 국가 정책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정보력과 대안제시의 능력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립생활의 정책이나 서비스에 대한 주도권을 다시 관료들로부터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 최고의 자립생활리더가 저에게 “우리만 잘해서 자립생활운동이 성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당사자주권에 동의하는 연구자들이 적절한 시기에 서포트를 해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국가나 정부를 상대로 주도권을 잡아왔다고 생각한다”라고 가끔 이야기 해주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대를 통한 투쟁’을 희망합니다.

지난 연말에 국회를 통과한 정책들을 보면 답답해서 숨이 막힙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선택은 하나뿐이고 싸워야지요. 정태수열사가 후배육성에 열을 올렸던 것은 권리를 주장해야 할 때 주장할 수 있는 후배들이 되길 바라서였을 것입니다. 최옥란열사의 죽음은 분명 국가정책과 잔인한 사회적 편견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었습니다. 이 두 분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아직 상처이며, 송구스러움입니다. 2010년이 5년 후에 10년 후에 중증장애인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또는 그 후배들이 상처와 아픔의 해로 기억되지 않도록 끝까지 싸워 이겨내길 희망합니다!

2010년 올 한해는 투쟁의 현장에서 여러분들과 자주 만나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싶습니다!

일본교토에서 정희경.

*이 글은 일본 교토에 위치한 릿츠메이칸대학대학원에서 첨단종합학술연구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정희경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2010년 경인년 새해를 맞아 특별기고를 받고 있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누구나 기고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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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일본의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보조를 시작했고, 99년부터 한국과 일본사이에서 동료상담,연수,세미나 등의 통역을 통해 자립생활이념과 만났다. 02년 부터는 활동보조서비스코디네이터로 일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장애인운동과도 만났다. 그렇게 10년을 죽을 만큼 열심히 자립생활과 연애하고 사랑을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본에 있다. 다시 한번 일본의 정보를 한국에 알리고 싶어 이 공간을 택했다. 일본의 장애인들 이야기(장애학)와 생존학(장애,노인,난치병,에이즈,죽음,윤리)이야기를 이곳에서 풀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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