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임대아파트 구산그린빌. ⓒ은평구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안준호입니다. 27년 전, 저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뇌병변 1급의 장애인인 저를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에 위치한 사회복지법인 은평천사원의 생활시설에 맡기셨습니다. 유년시절부터 자라온 곳이라 저에게는 따뜻한 집이며, 함께 생활한 친구들과 원장님 내외분 역시 친가족과 다름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 저는 많은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여느 일반 가정의 아이들처럼 고등교육도 받고 자립재활의 기틀을 만들어가며, 비록 장애인이지만 일반인들과 어우러져 사회생활에 동참하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 왔습니다. 노력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불편한 신체를 움직여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학원을 다녔던 적도 있었으며 어느 추운 겨울날에 얼어붙은 두 손을 비벼가며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홀로 집으로 귀가했던 뼈저린 서러움 또한 느껴보았습니다. 수많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려고 했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취업의 문턱을 넘을 수 없었던 슬픔도 맛보았습니다.

결혼하려니 주거 문제가 걸림돌

이러한 제가 이제는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즉, 생활시설에서 퇴소를 하고 자립생활의 일환으로 독립을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솔직히 시설수급자로써 생활시설에서만 생활한 저로서는 퇴소절차나 앞으로의 행로에 대해 결정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 가는 도중, 제일 중요한 주거문제와 관련해서 의문점이 발견된 것입니다. 생활시설에서 퇴소를 할 경우에 일정한 거주지가 있어야 하는데, 제 형편으로는 주택마련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영구임대아파트와 임대주택입니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와 장애인이 우선순위로 배정받을 수 있는 혜택임과 동시에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결혼이라는 명분을 제외하더라도 일단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생각한다면 누구든지 일정하게 거처할 곳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임대아파트에 대해서 한 가지씩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전제조건이 되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임대아파트의 밀집지역은 도심지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동횔체어를 사용하는 중증장애의 신체조건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여간 해서는 쉽지 않은 일이며, 또한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터전을 쉽게 떠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고 판단해서입니다.

영구임대아파트 입주하기, 이렇게 어렵나요?

여러 가지 상황에 맞추어 하나씩 준비하던 중, 은평천사원 근처에 판자촌 주민들을 위해 새로 지은 ‘구산그린빌’이라는 영구임대아파트가 있습니다. 바로 근거리여서 제가 천사원의 여러 복지서비스를 받기에 적합한 곳이더군요. 아파트 거주민들은 입주할 사람들은 대부분 입주한 상태라며 아직도 6평과 9평에 해당하는 세대수가 비어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 대중교통인 지하철을 이용해 무려 세 시간 반에 걸쳐 도착한 SH공사, 상담원에게 직접 문의해 보니 “충분히 신청자격 요건이 되니까 해당 동사무소로 가셔서 신청하시면 되는데 ‘구산그린빌’은 마포통합관리센터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곳이예요”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며칠 후, 동사무소를 찾아가기 전에 마포통합관리센터로 전화를 걸어 같은 문의를 하였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동의 번거로움을 줄여보고자 한 처사였습니다. 그 곳에서의 답변 역시 해당 동사무소에 신청하라는 말뿐이었고,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사를 찾아가 그동안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처음에 구산그린빌은 신청접수를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더니 이내 마포통합관리센터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만에 담당부서와 담당자를 찾아 연결이 되었지만 그 곳에서는 또다시 본사로 문의해 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정말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공무원이 “그 편한 생활시설에서 왜 나오려 하느냐?" 망언

그렇다면, 과연 저는 어디에, 누구를 찾아가서 정확한 문의와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것일까요? 임대주택 또한 신청을 해도 어느 시기에 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는 사회복지사의 말씀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은평구청의 사회복지사가 하시는 말씀이 저를 더욱 황당하게 만들더군요.

“아직 공개입찰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서 당장에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영구임대아파트에 얼마나 들어가기 힘든데 그 편한 생활시설에서 나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생활시설에서 독립하여 자립하려는 모든 장애인들은 결혼도 하지 말고 독립생활도 꿈꾸지 말라는 뜻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명색이 국가의 녹을 받는다는 공무원이 인권침해, 그것도 장애인 차별과 같은 무시하는 발언을 하셔도 되는 것인지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해당 관계자 여러분, 국가의 원동력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으로부터 나오며 발전한다고 배웠습니다. 비록 지금까지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가꾸며 살아갈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한 국민으로서 이웃에게 보답하고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지금까지 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새해에 가정의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은평천사원 생활인 안준호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