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궁긴장으로 죽어가는 환자. 이 그림은 19세기 영국 의사 찰스 벨이 그렸다. ⓒ찰스 벨

5월 6일자 'PD수첩'에 시설 측이 촬영한 재호의 생전 모습이 등장한다. 몸은 바짝 말라 뼈만 앙상하고, 머리에는 자해 방지용 헤드기어를 쓴 재호가 소리를 지르면서 몸부림치고 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경주푸른마을 문영자 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러니까 병원에 입원을 시켰죠”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다. 얼핏 보기에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들은 재호가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취재기②’에서도 적었지만, 재호는 자폐증 어린이치고는 얌전한 편이었다. 이는 재호 부모님과 이웃 사람들, 그리고 경희학교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한 사실이다. 재호를 직접 돌보았던 한 생활지도원도 “재호가 밥도 혼자 잘 먹고 대소변도 스스로 가렸고, 가끔 잠을 잘 자지 않기는 했지만 자해가 심한 편은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던 재호가 2007년 여름을 지나면서 갑자기 자해를 심하게 하기 시작했다.

대체 재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재호가 하루에 알약 10개씩 먹었어요”

'PD수첩'을 보면, 경주푸른마을 이 아무개 간호사는 재호의 감정기복이 심해지면 “할로페리돌을 0.75에서 1.5로 올렸다”고 말한다. 그게 무슨 약이냐고 묻자, 간호사는 “정신의약품인데, 자해하고 요런…”이라며 얼버무린다.

재호에게 매일 먹였다는 할로페리돌(일명 할돌), 이 약물은 1958년 얀센이 개발한 가장 초보적인 정신병 치료제이다. 할돌은 뇌신경 세포의 흥분 전달 역할을 하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어서 주로 정신분열증 치료제로 쓰인다.

이 약물을 복용한 사람은 행동이 눈에 띄게 무뎌지고 온순해 진다. 그래서 정신분열증과 아무 관계도 없는 자폐인들에게 이 약을 먹이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물론, 자폐증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현대 의학으로 자폐증을 치료할 방법은 없다), 자폐인의 행동을 ‘통제’할 목적에서다.

하지만 할돌로 ‘도파민’ 분비를 억지로 차단하면 그 부작용으로 파킨슨병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근육 경직, 진전(떨림), 정좌(定座)불능, 호흡곤란, 불면, 우울, 환각, 구갈, 발열 및 발한 따위의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이 약 제조사인 명인제약은 어린이나 영양불량으로 신체가 피폐한 환자에게는 신중하게 투여하라고 경고한다. 특히 ‘저용량으로 단기간 투여시에도’ 파킨슨병의 전형적 증상인 ‘불수의운동(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지가 떨리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경희학교 교사들과 생활지도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재호는 쉴 새 없이 팔과 머리를 흔들고(불수의운동), 몸이 굳어지면서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고(근육 경직), 의자에 앉아 있지도 못해 바닥에 엎드려 있고(정좌불능), 밤새도록 잠을 자기 않고(불면), 한 숨을 내쉴 때가 더러 있고(호흡곤란), 수시로 욕실로 들어가 변기물을 마시고(구갈), 팬티를 자주 내리고 열이 나고(발열, 발한), 흥분되어 소리를 지르면서 자해를 했다. 이 모든 증상들은 약품 설명서에 기록된 할돌의 부작용들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재호가 시설에서 먹은 약물은 할돌뿐만이 아니다. 시설 생활지도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재호는 각종 항정신병 약을 하루에 10알씩 먹었다고 한다. 더구나 재호는 집에 있을 땐 항정신병 약물을 전혀 먹지 않던 아이였다. 왜 안 먹였느냐고 묻자, 재호 어머니 김숙이씨는 “그런 약이 있는 줄도 몰랐고요, 약 먹일 필요도 없었어요”라고 대답했다. 집에서는 약을 먹지 않다가 시설에서 갑자기 독한 항정신병 약물을 다량 복용하였으니, 재호의 가느린 몸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재호가 시설에서 매일 먹었다는 할리페리돌. 이 약의 부작용으로 파킨슨병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윤삼호

“약에 취해서 식물인간처럼 있었어요”

사정이 이런데도 재호의 증상이 심해질수록 오히려 약물 복용량을 늘렸다는 시설 간호사의 거리낌 없는 말투에서, 시설 측이 약물의 부작용을 모르고 있었거나 알고는 있었지만 달리 손쓸 방법이 없었거나 둘 가운데 하나 일 것이다.

그런데 몇 가지 정황으로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재호가 약물중독 때문에 자해를 한다는 건 시설 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한 생활지도원은 “재호가 약을 너무 많이 먹어 약물에 중독된 것 같았어요. 약에 취해서 눈은 동태눈깔이 되고 식물인간처럼 있을 때도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생활지도원은 재호의 상태가 ‘약물 중독 때문인 것 같다’라는 말을 시설 촉탁의사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한다.

재호의 상태가 이렇게 악화되고 있었는데도, 경희학교 담임과 생활지도원들이 재호의 입원을 건의했는데도, 어쩐 일인지 시설 측은 재호의 입원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정신병동으로 보냈다.

약물 중독을 또 다른 약물로 치료(?)한 ‘중앙장림병원’

그렇다면 병원에서는 재호를 어떻게 치료하였을까? 재호가 약물 중독에 의한 파킨슨병 증상을 보였다면 병원 측은 항파킨슨제를 처방하였을 터, 정말 그랬을까?

재호가 입원하자 중앙장림병원 신경정신과 김 아무개 과장(경주푸른마을 촉탁의)이 취한 첫 조치는, 재호에게 벤조트로핀 메실레이트 1mg과 아티반 2mg을 주사한 다음 곧바로 정신병동으로 보내 15시간 동안 침대에 묶어두는 일이었다. 억지로라도 잠을 재워야 했을 테니까 수면제 아티반을 주사한 것은 당연했고, 문제는 벤조트로핀이었다. 이 약물은 할돌과 반대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약물이어서 파킨슨병 치료제로 쓰인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의약품 정보 사이트인 'KIMS'을 보면, 벤조트로핀은 ‘파킨슨증후군뿐만 아니라 항정신병약(할돌 등) 투여로 인한 추체외로증상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추체외로증상이란, 항정신성 약물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근육 경직, 정좌(定座)불능, 불수의운동 따위를 일컫는 말이다. 이로 미루어볼 때, 병원과 시설 측은 재호가 할돌 등 약물 부작용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진료기록부도 이런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입원 3일째인 11월9일자 간호기록지를 보면, 재호의 증상이 ‘약물 side (effect)’, 즉 약물부작용으로 추측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약물이 체내에 축적되어 이미 중독 상태까지 이른 재호에게 응급조치로 벤즈트로핀을 투약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었을 리 없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정신과 전문의는 재호의 진료기록부를 보더니 약물 중독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제 생각에는 약물 부작용을 보이면 투약을 중지하고 경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하더라도 부작용이 쉽게 없어지지는 건 아니지만…”라고 말했다. 약물 부작용이나 중독은 치료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더구나 벤즈트로핀 역시 많은 부작용이 있는 약물이다. 명인제약의 약품 설명서를 보면, 벤즈트로핀은 정신착란, 환각, 흥분, 불안, 우울증, 조절장애 따위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할돌 부작용을 잡으려다보니 이제 신경계 부작용을 걱정해야 할 형국이 된 셈이다.

매일 마약류를 주사 맞은 재호

다급해진 병원 측은 급기야 여러 항정신병 약물들을 한꺼번에 쓰기 시작했다. 진료기록부를 보면, 중앙장림병원은 벤즈트로핀을 비롯하여 트라조돈(항우울제), 아티반ㆍ바리움ㆍ인도잘(신경안정제), 오르필(행동장애 치료제) 등을 닥치는 대로 투약했다. 이런 식으로 병원 측은 재호에게 하루 평균 5종류의 항정신성 약물을 매일 처방하였다. 물론, 시설에서 주로 먹던 할돌은 제외되었다.

이 약물들 역시 부작용이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트라조돈의 경우 부작용이 심해 제약사 스스로가 청소년에게 투약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명인제약 약품 설명서를 보면, 이 약은 심한 근육 강직, 운동마비(파킨슨병 증상), 불면, 흥분, 자살충동 등 부작용이 많고, ‘소아 및 청소년에 대한 안전성 및 유효성이 확립되지 않았으므로 이 약을 투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적혀 있다.

아티반과 바리움은 더 심각하다. 이 두 약물은 중독성이 너무 강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이 그 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을 정도다. 약품 설명서를 보면, 이 약물들을 ‘정신장애자에게 투여하면 오히려 불안, 흥분, 우울, 자극 과민, 착란, 환각, 기타 행동장애 등 역설적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더욱이 아티반 주사제의 경우 ‘18세 이하 소아에 대한 안전성 및 유효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특히, 재호는 아티반을 집중적으로 주사 맞았다. 이 약물은 강력한 신경안정 효과뿐 아니라 수면 효과까지 있어서 재호를 ‘통제’하고 ‘관리’하는데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진료기록부를 보면, 중앙장림병원은 재호가 이상 증세를 보이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아티반을 주사하였다. 어린아이에게 마약류를 매일 주사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주사량이 제약사 권장치를 훨씬 초과하였다는 점이다. 일동제약 약품 설명서를 보면, 아티반은 ‘체중 kg 당 0.025~0.03mg’를 주사하도록 권장한다. 입원 당시 재호의 몸무게가 28kg이었으니 이 아이에게는 0.7mg~0.84mg이 적정 주사량이다. 하지만 실제로 병원 측이 재호에게 주사한 양은 매일 2mg씩이었다. 다시 말해, 중앙장림병원은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아티반을 권장치의 35~42배나 초과하여 재호에게 매일 주사하였다는 것이다.

14살 어린이였던 재호는 이런 항정신성 약물들을 매일 복용하거나 주사로 맞으면서 중앙장림병원 정신병동에 56일 동안 격리되어 있었다.

재호가 중앙장림병원에서 매일 주사로 맞은 아티반. 이 약은 중독성이 강해 마약류로 분류되어 있다. ⓒ윤삼호

그나마 인간적인 ‘부곡온천병원’

약물 중독 증세로 재호의 고통이 나날이 더해갔지만, 부산의 중앙장림병원은 이 아이를 시골병원인 부곡온천병원으로 보냈다. 부곡온천병원 장 아무개 원장은 “다루기 어려운 환자였지만, 그쪽 병원은 병상도 부족하고 또 재호를 돌보기가 너무 어렵다고 간곡하게 부탁하기에 좋은 생각에서” 재호를 받았다고 했다. 재호가 약물 부작용 증상을 보인다는 말은 듣지 못했단다.

그런데 부곡온천병원은 중앙장림병원과는 재호에게 전혀 다른 조치를 취했다. 이 병원은 소화제 알리벤돌, 간질 및 행동장애 치료제 오르필, 그리고 항우울제 이미프라민 정도만 투약했고, 그 용량이나 투약 횟수도 이전 병원보다 훨씬 적었다. 그나마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신, 부곡온천병원은 탈수 증상을 방지하고 전해질을 공급하기 위해 재호에게 링거를 매일 주사하였다. 단 이틀만 재호에게 링거를 주사한 중앙장림병원의 조치와는 대조적이다.

두 병원이 같은 환자를 두고 왜 이렇게 처방이 다르냐는 질문에, 부곡온천병원장 장 아무개씨는 입장이 곤란한 듯 “그건 그쪽에 문의해 보라”고만 했다.

반궁긴장’, 죽음에 이르는 고통

중앙장림병원은 재호의 약물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어이없게도 더 독한 약물을 더 많이 투여하였다. 그러자 재호의 몸이 뒤로 활처럼 휘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흡사 곡예사의 재주를 연상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이 병원 김 아무개 과장은 “어린 아이가 보챌 때 등을 뒤로 젖히는 행동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런 행동이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재호만의 특이한 능력이라고도 말했다. 과연 그것이 재호의 ‘특이한 능력’이었을까?

그 해답은 부곡온천병원의 간호과장이 정확하게 짚어 주었다. 이 아무개 간호과장은 “재호의 몸이 뒤로 심하게 휘어졌는데, 어느 정도냐면 머리가 뒤로 젖혀져 발에 닿을 정도였어요. 그럴 때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주 고통스러워 했어요”라고 말했다. 재호가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발작의 일종”이었다는 것이다. 이 병원 장 아무개 원장은 이 발작이 “반궁긴장(反弓緊張), 다른 말로는 후궁반장(後弓反張)”이라고 확인해주었다. 이어서 장 원장은 “반궁긴장은 파상풍이나 약물부작용 때문에 나타나는 증세”라고 말했다.

장 원장이 말하는 반궁긴장은 ‘전체 신체 근육계의 운동력의 최고치를 보여 주는 것이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것은 경련성 움직임으로서, 이 움직임은 뇌의 최대 흥분에 대한 반응형태이다.’(프로이트의 <히스테리 연구> 272p) 반궁긴장은 어린 아이의 ‘보채는 행동’이나 개인의 ‘특이한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가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발작 형태라는 것이다. 발작 순간에 극도의 고통이 수반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반궁긴장이라는 극단적인 중독 증상마저 보이자 전문의조차 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경을 헤매고 있던 재호를 시골 병원, 그것도 노인전문병원으로 보낼 합리적인 이유가 없지 않는가.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내린 잠정적 결론은 이렇다. 재호는 시설에서 매일 먹은 여러 약물 중독 혹은 부작용에 노출되었고, 결국 자기 몸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인 자해를 통해 절박하게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온 거라곤 폭행과 또 다른 약물뿐이었다. 고통에 못 견뎌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심한 폭행과 더 독한 약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버텨보려 했지만, 28kg 여린 몸뚱이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재호의 직접 사인은 ‘약물과 폭력의 악순환’이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경주푸른마을 장애 어린이 사망 사건 '취재기④'에서 이어집니다. 이번 기사가 늦었습니다. 기자의 의료 지식이 일천하여 전문가들로부터 계속 자문을 받아야 했고, 또 약물 중독이나 부작용은 입증하는 것이 어려워 신중을 기하느라 '취재기③'을 올리는데 한참이나 걸렸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윤삼호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현재 대구DPI 정책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몇몇 장애인 단체 활동가를 거쳐 지금은 부산에 있는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화의 정치>, <장애학: 과거, 현재, 미래>, <동정은 싫다>, <장애와 사회, 그리고 개인> 같은 장애학 서적을 번역했습니다. 장애학 특히 장애 역사에 관심이 많고, 지금도 틈틈이 자료를 읽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류 학계가 외면하는 장애인의 역사를 현재와 연결하여 유익한 칼럼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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