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어린이는 발등과 손등을 몽둥이로 맞아 멍이 들어 있다. ⓒ윤삼호

재호의 공식적인 사망원인은 호흡부전, 즉 호흡곤란이다. 왜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부곡온천병원’ 장 아무개 원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누구든 갑자기 호흡곤란이 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기가 동전을 삼켜도 호흡곤란이 될 수 있고, 노인이 떡을 잘못 먹어도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미심쩍다고 하자, 이번에는 “장애 아이는 평균 수명이 원래 좀 짧다”면서 재호의 죽음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했다.

14살 어린이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호흡곤란으로 죽었는데, 이것이 정말 자연스러운 과정일까? 이에 대해 대구대학교 조한진(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약사 출신인 조 교수는 자폐나 지적 장애 그 자체가 생명을 단축시키지는 않는다며, “이런 장애가 평균 수명을 줄인다는 건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렇다면, 재호는 왜 죽었을까? 취재하면서 내린 결론은, 재호의 죽음은 어느 한 가지 요인 때문이 아니라 이 아이의 삶에 구조적이고도 폭력적으로 작용한 시설 시스템 그 자체 때문이었다. 시설에 만연한 폭력과 약물 남용, 그리고 시설 그 자체가 가진 억압적 본성이 재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말이다.

일상적 폭력, “죽여버릴거야!”

내부 제보자들과 장애 어린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경주푸른마을에서 폭력은 일상이었다. 더군다나 폭력의 대상이 주로 어린이들이었다.

경희학교 박연화(여. 39세) 교사는 시설 아이들의 증언을 비디오에 담았다. 그 가운데, 박 교사가 어느 여자 어린이와 나눈 짧은 대화를 보면 시설 내 폭력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교사 : “(멍이 든 손과 발을 가리키면서) XX야, 여기 누가 때렸어?”

어린이 : “최OO 선생님.”

교사 : “남자야, 여자야?”

어린이 : “여자요.”

교사 : “뭘로 때렸어?”

어린이 : “몽둥이로요.”

교사 : “머리도 때렸어.”

어린이 : “예.”

교사 : “왜 때렸어?”

어린이 : “(변기에) 뭘 넣는다고요.”

교사 : “그래서 어떻게 했어?”

어린이 : “제가 원장 선생님께 간다고 하니, 가서 일러(바쳐) 라고 했어요.”

교사 : “그래서 원장 선생님한테 갔어?”

어린이 : “아뇨.”

교사 : “왜 안 갔어.”

어린이 : “...”

아이들의 증언을 듣고 나서, 박 교사는 자신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몸서리가 쳤다고 한다. “생활지도원들이 아예 큼직한 몽둥이를 들고 다닌대요. 그러다가 규칙을 위반하거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보면 머리, 어깨, 손, 발, 다리 등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내리친다고 해요. ‘죽여버릴거야’ 라고 소리치면서요.”

박 교사는 기자에게 폭행 피해 어린이들의 사진도 보여 주었다. 사진 속 아이들의 몸은 팔, 다리, 손, 무릎 할 것 없이 온 몸이 상처투성이(사진)였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최근에 촬영한 것일 뿐, 이전에는 이 보다 더 심한 폭행 흔적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렇게 때려도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은 한 겨울에도 생활실 베란다에 내쫓고 문을 걸어버린다고 한다. 박 교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어린 아이들이 추위에 못 견뎌 울부짖어도 절대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고 해요. 오줌을 싸고 똥을 싸도 그대로 둔답니다. 아예 베란다에 세수 대야를 갖다 놓고, 거기서 대소변을 보도록 한대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하는지….”

“재호가 제일 많이 맞았어요”

재호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재호를 직접 돌보았다는 생활지도원 A씨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지난 해 여름부터 재호의 증상이 심해졌어요. 자주 울고, 밥도 잘 먹고, 자해도 심해지고…. 특히 재호는 밤에 이상한 소리를 냈는데요, 귀신 소리 같았어요. 그래서 재호가 많이 맞았어요”라고 말했다.

생활지도원 B씨도 비슷한 증언을 하였다. “우리 방에서 재호가 제일 많이 맞았어요. 자해한다고 때리고, 밤에 잠 안 잔다고 때리고, 시끄럽다고 때리고, 밥 빨리 안 먹는다고 때렸어요.”

재호가 시설에서 어느 정도 폭행을 당했는지는 ‘중앙장림병원’의 진료기록부에도 잘 나타나 있다. 12월28일, 재호가 이 병원에 입원하던 날 간호기록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Rt eyebrow, cheek, whole body contusion 자국 심하며(brown color), Rt ear swelling redness 보임.” (번역하면, “오른쪽 눈썹과 볼, 그리고 온 몸에 멍 자국 심하며(갈색), 오른쪽 귀가 빨갛게 부어 있음.”)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병원 신경정신과 김 아무개 과장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이런 폭행에 시달리면서 재호의 이상 증세는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등이 활처럼 뒤로 휘어지고, 밤새 잠 안 자고 울고, 심지어 변기물까지 마시는 극단적인 행동장애를 보이기 시작했다. 생활지도원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재호가 처음에는 대소변도 가릴 줄 알았는데, 많이 맞다보니 나중에는 옷에다 실례를 했어요. 그러면 또 더 맞고….”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 셈이다.

이에 대해, 경주푸른마을 문영자 원장은 시설 안에서 폭행은 절대 없으며 아이들의 몸에 난 상처는 모두 자해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PD수첩’에 출현해 폭행 사실을 고백한 내부제보자를 찾아가 증언을 번복해 달라고 ‘읍소’하고 다닌다고 한다. 스스로 앞뒤가 안 맞는 처신을 하고 다니는 셈이다.

재호가 이렇게 폭행당했다는 말을 듣고, 재호 어머니 김숙이(45)씨는 한동안 눈물만 흘렀다. 한 참이 지난 뒤에서야, “우리 아이는요, 자폐가 있었지만 너무 얌전한 아이였어요. 엄마, 아빠가 일 나가고 없어도 혼자서 집에서 놀다가 배고프면 밥 챙겨 먹었어요. 어떨 땐 아빠가 장사를 나갈 때 데리고 다녔는데, 차 안에서 가만히 혼자 잘 놀았어요. 돈 안 들이고 잘 키워준다고 해서 거기로 보냈는데, 착한 우리 아이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어요?” 라며 울먹였다.

“내 자신이 무서웠어요”

폭력이 일상화된 까닭에 시설 직원들이 자신의 행위에 무감각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한 생활지도원이 “저는 주로 아이들의 발바닥을 때려요” 하기에, 기자가 “왜죠, 표시가 안 나서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태연스럽게 “아뇨, 어떤 한의사가 말했다던데, 머리가 모자라는 아이들은 발바닥을 맞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그래서요”라고 했다.

물론, 폭력에 가담한 자신의 행위를 크게 뉘우치는 생활지도원도 있었다. 한 때 푸른마을 생활지도원이었던 C씨는 “아무 생각없이 아이들을 때리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 속에 있다가는 내가 어떻게 될지, 내 자신이 무서워지더군요. 그래서 시설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C씨는 시설을 떠나 지금은 지역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고 있다. “좀 더 인간다운 환경에서 사회복지사 본연의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폭력을 일삼지 않을 수 없다며, 시설이라는 비정상적인 환경을 탓했다. 경주푸른마을의 경우, 한 방에 12~14명의 생활인들이 있는데, 주간에는 생활지도원이 4명 근무하다가 야간에는 1명만 남는다. 그러다 보니 업무가 과중하여 생활지도원들의 스트레스도 그만큼 심해진다. 혼자서 10명이 넘는 아이들을 씻기도 밥 먹이고 재우고, 또 그 다음날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등교까지 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생활지도원들은 그들대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짜증이 심해진다고 한다. “아이들은 많은데 손은 하나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못 이겨 아이들을 두들겨 패서 통제”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 같은 시설 환경에 대해, 독일에서 중증 지적 장애인의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영남대 교육학과(특수교육 전공) 정은 교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커뮤니케이션 부재를 지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의 몸이 꼭 필요해요. 어린 아이는 엄마가 안아 줘야 하고 연인끼리도 서로 살갗을 부딪쳐야 하지요.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입니다.” 그런데 시설에 있는 장애 아이들과 생활지도원들 사이에는 이런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제한적이다. 이렇게 될 경우, “자폐나 지적 장애 아이들은 자기 몸을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삼는데, 이것이 ‘자해’로 나타난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정 교수의 설명대로라면, 자기 의사를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폐증 어린이였던 재호는 ‘자해’를 통해 주변 어른들에게 무언가를 절박하게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재호의 구조 신호를 알아들을 수 없었고, 호소가 절박하면 할수록 오히려 폭력의 수위만 높아졌을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그 어린 생명이 어떻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겠는가?(경주푸른마을 장애 어린이 사망 사건 취재기③에서 이어집니다.)

한 남자 어린이의 팔이 찢어져 속살이 훤히 보이는데, 이 아이는 치료도 받지 않은 상태로 학교에 왔다. ⓒ윤삼호

한 남자 어린이의 무릎 부위에 심한 멍자국이 보인다. ⓒ윤삼호

*윤삼호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현재 대구DPI 정책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몇몇 장애인 단체 활동가를 거쳐 지금은 부산에 있는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화의 정치>, <장애학: 과거, 현재, 미래>, <동정은 싫다>, <장애와 사회, 그리고 개인> 같은 장애학 서적을 번역했습니다. 장애학 특히 장애 역사에 관심이 많고, 지금도 틈틈이 자료를 읽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류 학계가 외면하는 장애인의 역사를 현재와 연결하여 유익한 칼럼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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