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입소 직후에 찍은 재호의 사진. 이 때가지만 해도 재호는 여는 또래 아이들처럼 건강하고 밝아 보인다. ⓒ윤삼호

2008년 2월5일, 경남 창녕의 한 치매노인병원에서 자폐성 장애 어린이 박재호군이 숨졌다. 공식적인 사인은 ‘호흡부전’. 하지만 기자가 두 달 동안 추적한 결과, 재호는 단순히 호흡곤란으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재호는 왜 죽었을까? 이 사건은 지난 5월6일 MBC 에서 방영되어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었지만, 방송된 것이 전부는 아니다. 앞으로 이어질 글들은 박재호군 사망 사건을 통해 바라본 시설 장애 어린이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올 3월 초, 기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정연주(여. 34세)씨로부터 재호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당시 공립 특수학교인 경주 경희학교 교사였던 정 선생의 이야기는 이랬다.

‘경희학교에 박재호라는 자폐성 장애 학생이 있었는데, 이 아이는 생활시설인 ‘경주푸른마을’에서 살았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부터 재호의 등이 뒤로 휘어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담임 교사는 시설 담당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지만, 시설 측에서도 그 원인을 잘 모르고 있었다. 재호의 증상이 점점 심해지더니, 11월 초에는 혼자서 걷지도 못하고 의자에 앉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곧바로 시설로 돌려보냈는데, 올 2월 개학을 하고나서 재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설에서 아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흔히 있는 일이어서 처음에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그 시설은 배가 아픈 아이도 부산에 있는 정신병동으로 보내요”라는 말에 갑자기 의구심이 생겼다. ‘어린 아이들을 정신병동에서 치료하다니, 그것도 경주가 아닌 멀리 부산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순간, 장애인 시설과 정신병동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 이 셋 사이에 뭔가 불길한 함수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재호의 죽음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배 아픈 아이도 정신병동에 보내요”

정 선생은 문제의 정신병원인 ‘중앙장림병원’에 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재호와 같은 시설에 거주하는 자기 반 아이가 장염에 걸려 그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이다.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폐쇄병동 안으로 들어갔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병동 안은 나이든 어른들 뿐이었는데, 그 속에 우리 아이가 혼자 있더군요.”

정 선생은 돌이켜 보니 배 아픈 아이를 왜 정신병동에 입원시키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선배, 아무리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라지만, 배가 아프면 내과나 소아과로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속으로, ‘당연한 걸 질문이라고 하냐’ 싶었다. 담임 선생이 그런 걸 보고 왜 가만있었냐고 나무라고도 싶었다.

기자의 속내를 읽었는지, 정 선생은 “병문안을 마치고 나오는데, 그 녀석이 뒤따라 나오면서 자기도 신발을 챙겨요. 내가 데리려 온 줄 알았나 봐요. 겨우 10살인데, 그 모습을 보니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4월 30일, 기자는 재호와 시설 아이들이 배만 아파도 보낸다는 중앙장림병원 9층 정신병동 안으로 직접 들어갔다. 큼직한 자물쇠가 달린 철문 안으로 들어서니, 200평 남짓한 병동 안은 남녀 정신질환자들로 가득 차 있다. 미성년자는 없고, 입원 환자 60명 모두 성인들이다. 환자들은 방안에 누워 TV를 보거나 하릴없이 복도를 거닐고 있다. 모두들 무표정한 얼굴이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괴성을 지르는 사람,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사람, 날뛰는 사람들로 온통 북새통일 줄 알았는데, 생각과 달리 그곳은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는 공간이었다. 담당 의사의 말로는 주로 알코올 중독자들이고, 정신분열증 환자도 일부 있다고 한다.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넓은 방들이 있다. 한 방에 10여명씩 생활할 수 있는 크기다. 간호사실 바로 앞에는 3~4평 규모의 1인용 병실이 두 곳 있는데, 이른바 문제 환자를 격리하는 독방이다. 이 방에는 다른 방에 없는 침대가 놓여 있다. 침대의 네 모서리에는 구멍이 나 있는데, 환자를 묶을 수 있는 줄을 매기 위해서다. 재호도 이 독방에 갇혀 양팔과 양다리가 묶인 채 지내기도 했다.

“서지도 못하는 아이를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지…”

재호는 이 병동에 두 차례 강제 입원하였다. 지난해 11월 6일부터 12월 13일까지, 그리고 잠시 퇴원했다가 12월 28일부터 올 1월 14일까지 재입원했다.

그런데 재호의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입원하기 훨씬 전부터였다. 경희학교 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2학기가 시작되면서 재호의 몸이 뒤로 젖혀지고, 제대로 걷지 못하고, 교실에서도 엎드려 고통을 호소하고, 이상 행동도 늘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담임 교사는 시설 담당자에게 알리고 병원에 데려 갈 줄을 부탁했지만, 시설 측은 재호를 그대로 방치했다고 한다.

11월1일자 담임 교사의 노트에는 “재호, 병원에 가지 않고 계속 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바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지, 의심스럽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고 적혀 있다. 또, 10월 26일자에는 “재호방 복지사님께 재호를 병원에 데려다 검사 받아 보라고 채근함.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고 써 있다.

내부 제보자들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한 제보자는 “재호의 상태를 사무실에 보고했는데, 입원시키라는 말이 없었어요. 그래서 머리에 보호 장구만 착용시키고,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방에 혼자 두었어요.”

정신병원의 환자 돌리기

정신병동에 입원한 재호는 매일 ‘징징거리고, 흐느껴 울고, 팔 흔들고, 머리를 벽에 박으며 자해’를 했다. 이런 증세가 심해지면, 담당 의사는 어김없이 항정신성 약물을 주사하여 재호를 억지로 재웠다. 이런 일이 퇴원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되풀이 되었다.

그러다가 올 1월 14일, 재호는 중앙장림병원에서 또 다른 정신병원인 ‘부곡온천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사정’ 때문이라고 진료기록부에 적혀 있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두 병원의 담당 의사를 만나 들어 보았다.

우선, 중앙장림병원 신경정신과 김 아무개 과장의 말. “재호의 증상이 너무 심해 정신병동 환자들의 불평이 심했어요. 또, 당시 환자들이 많아 병상이 부족하기도 했고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중증 환자를 큰 병원도 아닌 시골 병원으로 보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퇴원 당시에는 증세가 호전되어서 그랬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부곡온천병원 장 아무개 원장의 말은 다르다. 재호가 자기 병원으로 올 때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도 다루기 어려운 환자였지만, 그 쪽 병원에 환자가 너무 많고 재호를 보기 힘들다면서 부탁을 하기에 마지못해 받았다”는 게 장 원장의 주장이다.

누구 말이 맞든, 중증 환자였던 재호가 특별한 의학적 사유도 없이 정신병원을 옮긴 건 분명하다. 이처럼 정신병원들끼리 환자를 이리저리 돌리는 것을 ‘회전문 현상(revolving door)’이라 부른다. 이런 현상은 보통 두 가지 이유로 발생한다. 그 하나는 장기입원심사를 회피하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서로 환자를 ‘부조’해주기 위해서다. 장기입원심사 대상이 아니었던 재호의 경우는 두 번째일 가능성이 높다. 즉, 병상이 부족한 정신병원이 병상이 남는 정신병원에 환자를 ‘부조’해주고, 반대 상황이 되었을 때 거꾸로 환자를 ‘부조’받는 식으로, 두 병원이 재호를 돌린 것이 아닐까 싶다.

치매노인병원에서 죽은 14살 어린이

결국, 재호는 부곡온천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거기는 14살 된 재호가 죽을 곳이 아니었다. 두 번이나 가 보았지만, 기자는 그곳에서 입원 환자는 물론이고 병문안 온 사람들 가운데서도 어린 아이라곤 보지 못했다. 그 병원은 노인전문병원이었고 입원 환자 대부분은 치매 노인들인데, 어린이 환자가 있을 까닭이 없다.

진료기록부를 보면, 부곡온천병원으로 와서도 재호의 증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울고 소리치고 자해하는 등 이전 병원에서 보이던 증상 그대로였다. 처방도 똑 같았다. 이전 병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재호가 이상 증세를 보이면 항정신성 의약품을 주사하여 재우는 것이 치료의 전부였다.

그러던 중, 2월 4일 오후 8시45분에 재호의 호흡이 갑자기 나빠졌다. 간호사들이 응급조치를 취했으나, 재호는 곧 혼수상태에 빠졌다. 다급해진 병원 측은 9시30분에 시설로 전화를 해서 부모에게 알리도록 했다.

아들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어머니가 경북 상주에서 택시를 타고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경, 그러나 재호가 이미 깊은 혼수상태(병원측 주장) 혹은 사망상태(유가족측 주장)가 된 뒤였다. 어머니는 2년 만에 아들을 만났는데도, 대화는커녕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같이 간 딸의 입에서 ‘엄마, 이건 오빠가 아니야’ 라는 말부터 나오더군요. 나도 알아볼 수가 없었어요. 양쪽 눈은 흰 반창고로 가렸고, 통통하던 얼굴은 해골이 되어 있었고, 온 몸은 싸늘했어요. 오른쪽 귀는 찢어져 피딱지가 붙었고, 양쪽 발가락은 모두 새까맣게 멍들고 찢겨져 있었고, 몸 여기저기에도 멍자국이 있었어요.”

다음날 아침, 담당 의사가 출근하자마자 한 일은 재호의 사망진단이었다. 2008년 2월 5일 오전 8시 10분이 사망 시간이다. 1994년 1월 22일 태어난 재호는 이렇게 하여 14년이라는 짧은 삶을 마감했다. 설을 꼭 이틀 앞두서였다. 무뚝뚝해 보이는 재호 아버지는 “이번 설에는 팔다 남은 과일이라도 몇 상자 챙겨 와서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재호의 사망진단서에는 ‘직접사인 : 호흡부전’, ‘중간선행사인 : -’, ‘선행사인 : -’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무런 선행사인(직접사인의 구체적 원인을 의학적으로 설명해주는 죽음의 원인)이 없다. 그래서 재호가 정말 왜 죽었는지 더 궁금해진다. (‘경주푸른마을 장애 어린이 사망 사건 취재기②’에서 이어집니다.)

*윤삼호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현재 대구DPI 정책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몇몇 장애인 단체 활동가를 거쳐 지금은 부산에 있는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화의 정치>, <장애학: 과거, 현재, 미래>, <동정은 싫다>, <장애와 사회, 그리고 개인> 같은 장애학 서적을 번역했습니다. 장애학 특히 장애 역사에 관심이 많고, 지금도 틈틈이 자료를 읽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류 학계가 외면하는 장애인의 역사를 현재와 연결하여 유익한 칼럼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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