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하 엄마 미영씨는 준하의 하나뿐인 단짝이다.ⓒ에이블뉴스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발달장애인법이 가장 필요한데, 보건복지부가 우리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거예요. 그래서 머리까지 밀 수밖에 없었어요.”

발달장애인은 24시간 떨어지지 않고 항상 돌봐야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부담감은 누구보다 클 수 밖에 없다. 아이를 낳고 세상을 원망한 적도 많았다던 박미영(47)씨를 만났다. 미영씨는 발달장애 1급 준하의 하나뿐인 단짝이자, 준하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어머니다.

준하의 집에 처음 방문한건, 따뜻한 5월초 저녁. 학교를 마치고 막 집에 들어온 준하는 ‘안녕하세요’라는 말 대신, 밝은 미소로 반겼다. 그를 본 미영씨는 “준하가 오늘 기분이 좋은 거 같다”며 덩달아 기뻐했다.

흰 피부에 이목구비도 잘생겨 '인기쟁이'라는 준하는 현재 발달장애1급이다. 겉은 사춘기에 들어선 15살 중학생이지만, 엄마 미영씨가 없으면 홀로 할 수있는게 없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 미영씨에게 허락을 맡는 영락없는 어린아이다.

얼마 전 어버이날, 준하가 학교에서 만들어온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줬다고 기뻐하는 미영씨는 지난 시간 어린 준하의 장애 때문에 상처 받았던 날들을 떠올릴수밖에 없다.

준하는 초등학교 6년을 통합학급에서 생활해왔다. 준하가 초등학교에 첫 입학하던 시기는 특수교육보조원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신변처리를 일일이 미영씨가 할 수 밖에 없었다. 준하가 학교를 간 시간, 그녀는 학교 근처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담임선생님의 연락을 기다리며, 근처에서 대기 할 수 밖에 없던 상황.

“준하는 신변처리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잘 안되는 편이에요. 학년이 바뀌거나 하면 2달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고학년이 되도 신변처리가 안되서 학교 근처에서 항상 (선생님의 연락을)기다렸어요. 1학년때는 담임선생님이 장애학생을 처음 맡아보는 거라서 서로 정신없는 상황이었죠”

인터뷰 내내 미영씨에게 ‘음식을 먹겠다’라는 시늉을 보이는 준하는 식탐이 너무나 많다. 방울토마토를 맛있게 먹던 준하는 양치를 한 후, 다시 바나나우유를 먹고, 또 방울토마토를 찾았다.

이처럼 스스로 식탐을 조절할 능력이 부족해 끊임없이 음식을 찾는 준하때문에 학교 주변 상인들과 얼굴을 붉힌 사건들도 많을 수 밖에 없다.

미영씨는 “수업시간에 몰래 사라져서 슈퍼에 달려가서 과자를 ‘칙’하고 뜯었어요. 뜯으면 무조건 살수밖에 없잖아요. 그래가지고 도둑으로 몰리기도 하고 욕도 많이 먹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학교 안에서는 준하가 없어져서 큰 소동이 벌어진 시간, 준하에게는 슈퍼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미영씨가 연락이 가서 달려가면 혼자 그 자리에서 4000원어치를 먹어버려 놀랐던 적도 많았다.

식탐이 많은 준하는 방에서 음식사진 보는것이 낙이다.ⓒ에이블뉴스

식탐이 많아 여전히 같은 일을 반복하자, 미영씨는 준하를 엄하게 혼내는 대신 아예 학교 주변 상인들에게 일일이 준하를 데리고 인사하러 다니는 방법을 선택했다.

“준하는 인지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냥 상인들에게 준하를 일일이 소개해주고 이해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오히려 나은 방법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해를 샀던 상인들도 준하가 와도 저에게 바로 연락할 수 있게해서 얼굴 붉히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어요.”

준하의 나이는 15살. 얼굴에 여드름이 피어나고, 부모에게 반항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또래 청소년들과 다를바가 없다. 준하의 식탐 때문에 미영씨는 이를 말리느라 얻어맞기도 하고, 유리창도 깼다. 이를 ‘사춘기’로 받아들이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준하가 6학년때 사춘기가 너무 심해서 새벽에도 냉장고를 뒤져서 먹을 정도로 식탐이 심했어요. 준하에게 먹지말란 소리는 스트레스였기 때문에 저를 때리기도 하고, 거실 유리창도 깨는 수준이었죠. 요즘에는 혼자 방에서 자위를 심하게 해요. 엄마 몰래 한다고는 하는데, 끙끙대는 소리가 너무 자주 들릴때면 저도 민망해질때가 많죠(웃음)”

이처럼 준하를 누구보다 아끼는 미영씨는 준하를 낳고 미영씨만의 생활을 포기했다. 본래 미영씨는 대학시절부터 운동권에서 활동하며, 노동조합원으로 현장에서 뛰어왔지만, 준하를 낳고나서는 어린 준하를 돌보는 일에만 열중했다.

하지만 준하를 위한 사회의 서비스는 너무나 열악했다. 혼자 아무것도 못하는 중증장애인인 준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은 아이를 요리조리 피해가기만 할 뿐이었다. 이에 미영씨는 다시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준하가 걱정되는 것은 성인기인데, 성인기에서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준하가 살수 있는 직업이나 평생교육, 의료적인 서비스, 장애연금 등이 준하를 다 피해가고 있어요. 경증의 소수 아이들은 몇 년 교육을 받을수는 있지만 다시 시설과 집으로 돌아오고 있죠. 우리 아이들도 당당히 살 수 있는 세상이 돼야 해요.”

2010년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위해 미영씨가 삭발식을 하고 받은 증서.ⓒ에이블뉴스

인터넷커뮤니티를 통해 알게된 부모모임을 통해 새누리부모연대 광명지부 회장으로 있는 미영씨는 2년전 보신각앞에서 눈물의 삭발식도 거행했다. 바램은 딱 하나, 우리 아이가 세상에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발달장애인법’ 제정이다.

“장애인복지 관련해서 많은 법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실제로 인지능력 문제가 없는 신체장애인 중심이에요. 그들은 이동권, 보장 용구 제공 등이 되면 머리로 사고해서 선택할 수 있지만, 발달장애같은 경우는 의사소통이나 고민돼야 하는 부분이 너무나 많아요. 우리아이를 평생 누군가 돌봐야 하는게 아니라 이제는 비장애인들처럼 당당히 이사회에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가장 절실하냐란 질문에 미영씨는 망설이지 않고 ‘직업’이라고 택했다. 1시간이라도 준하가 노동을 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댓가가 보장이 된다면 충분하지 않겠냐란 거다. 단, 준하의 적성에 맞고, 준하가 원하는 직업이어야 한다는 것. 그를 위해 ‘잡코치’ 제도는 너무나 필요함을 지적했다.

미영씨는 “발달장애 성인들이 소득도 너무 낮고 얻어 맞는 노동력착취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갈곳이 없으니까 어쩔수 없는 선택인데, 아이들에 대한 적성이나 특성에 맞는 직업을 찾을 수있게 잡코치가 참 필요한거 같다”며 “유행하는 제과제빵, 바리스타에 아이들을 끼워맞추는게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을 개발하는 거 참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미영씨는 “비장애인들은 발달장애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참 많다. 그래서 일부로 ‘장애’부모가 아닌 발달장애 부모라고 나를 소개한다”며 “법이 만들어지면 발달장애 범주에 대한 논란도 있겠지만은, 가장 절실한 것은 법을 만들겠다는 정당의 의지와 사회의 관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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