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여성장애인개발센터에서 직업훈련을 받고 있는 여성장애인. ⓒ김예솔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주최하고, 보건복지부와 외교부가 후원하는 “2015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11기 ‘Jump. s'팀이 지난 10일부터 19일까지 라오스에서 ‘장애의 빈곤과 국제협력‘을 주제로 연수를 진행했다

7명의 팀원들은 연수 일정을 소화하며 장애인의 교육과 직업 활동을 이해하고, 국제협력의 가능성과 방향을 모색하고 돌아왔다. 연수의 내용을 연재로 소개하고자 한다.

가끔은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할 때가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늘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꿔왔다. 그 ‘어딘가’의 기준은 명확했다. 내가 있는 ‘여기’보다, 자유로워야하고, 기회가 많아야 하고, 깨끗하고, 기준이 있고, 그러면서 장애인을 약자가 아닌 평등한 사람으로 추구 하는 곳이어야 했다. 미국이 나에게는 그런 꿈의 나라 중에 하나였다. 비로소 2008년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을 가다’는 내게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2015년, 7년이 흘러 나는 다시 비행기를 올라탔다. 4명의 씩씩한 친구들이 모였고, 2015 장애청년드림팀을 꾸렸다. 이번에는 비행기의 방향이 동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내가 늘 꿈꾸던, 잘 갖추어진 나라가 아니었다. UN이 정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라오스로 우리는 떠났다.

연수 중 라오스의 여성장애인을 만나고 싶었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장애인이며, 동양인, 그리고 여성이라는 삼박자가 맞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라오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라오스의 여성 장애인들에겐 한 가지 더 있었는데, ‘가난’이 있었다.

앳된 얼굴의 훈련생들이 건물 안 복도 바닥에 자리를 피고 앉아서 폐지를 말아 장식품을 만들고 있다.ⓒ김예솔

지난 13일 방문한 비영리기관 ‘라오스여성장애인개발센터’는 1990년 여성장애인들이 모여 재봉작업을 한 이래 2002년 정식 센터로 문을 열었다. 주된 역할은 라오스 여성장애인들의 직업교육, 여성 장애인 인권 운동이다.

직업 교육 프로그램은 공예, 바느질, 영어, 사회성 계발, 사업, IT가 있다. 1년과 2년 과정이 있어, 수료한 후 취업을 연계해주기도 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방문자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음을 알 수 있게 매우 정갈하고 잘 관리가 되어있었다. 라오스 연수 내내 구경하기 힘들었던 빔 프로젝트로 센터를 소개하는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또 벽 한켠에는 이곳에서 생산된 공예품들을 진열하고 판매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곳은 라오스 관광책자에도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방문자 1명당 5달러의 입장권을 판매하고 있다. 기념품 판매와 입장료가 이 센터 운영의 고정적인 수입으로 보였다.

잘 정돈된 방문자 공간과는 달리, 센터의 훈련생들의 공간은 열악했다. 4명의 앳된 얼굴의 훈련생들이 건물 안 복도 바닥에 자리를 피고 앉아서 폐지를 말아 장식품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딱딱한 나무로 만든 좌식의자 위에서 장시간 작업을 할 것을 생각하니, 엉덩이에 욕창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24살인 그녀는 “익숙해져 괜찮다”며 내게 웃었다. 이렇게 작업해서 얻는 수입은 한 달에 50달러라고 했다. 하루 센터 방문 입장료가 5달러에 비해 그녀의 임금이 터무니 이 낮은 것인지, 센터 입장료가 터무니없이 비싼 것인지, 생각에 다다르자 조금 화가 났다.

IT 수업이 있는 컴퓨터실이 있었지만, 한국 기준으로 2000년도 초반에 쓰던 모니터, 낮은 사양의 컴퓨터 12대가 전부였다. ⓒ김예솔

또 대부분의 교육이 수공예에 집중되어있다. IT 수업이 있는 컴퓨터실이 있었지만, 한국 기준으로 2000년도 초반에 쓰던 모니터, 낮은 사양의 컴퓨터 12대가 전부였다.

센터장 Chanhpheng Sivila에 따르면, 하드웨어의 절대적인 부족도 있지만, IT를 가르칠 전문 인력이 없음이 더 큰 도전과제라고 했다.

센터는 해외 원조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건물 곳곳에는 일본, 호주정부의 후원을 받았다는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가장 쉬운 지원은 어쩌면 돈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과의 교류는 3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많은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라오스에 건물을 지어주고, 필요한 물품을 조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협력했으면 좋겠다.

여성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수공예에 제한시키지 않고, 또 단순 컴퓨터 활용능력에 그치지 않도록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전문성으로 시간을 투자해서 이곳의 여성들을 교육하면 좋겠다. 그래서 여성이자 장애인이지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설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나는 다시 익숙한 환경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휠체어로 다니기 어려운 환경들이 파편처럼 퍼져있다. 나는 이런 크고 작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 각자의 세계에서 나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있다고 믿기에, 라오스사람들에 비해 내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늘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꾸던 소녀는 성장한 것 같다. 내가 그들을 위해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글은 ‘2015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Jump. s'팀의 김예솔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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