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연금공단(이사장 최 광)이 장애인서비스연계사업 필요성 전파를 목적으로 ‘우수사례 공모를 진행했다.

이번 공모에는 공단 18개 지사 47명의 복지플래너가 총 54편의 우수사례를 제출했다. 모두 장애인이 장애인서비스 연계를 통해 경제 문제, 건강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이룬 내용이 담겼다.

공단은 1·2차 심사결과 수상작으로 최우수상 1편, 우수상 3편, 장려상 9편 등 총 13편을 선정했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다섯 번째는 장려상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손’이다.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손

김노남 복지플래너(서울북부지역본부)

장려상을 수상한 김노남 복지플래너. ⓒ국민연금공단

5월초 따뜻한 봄 날. 잔인한 4월을 보냈기에 5월은 더 아름다웠고, 아직까지 계절의 여왕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5월의 따뜻한 봄 햇살이 모두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서대문구 어느 고지대 반 지하에는 봄 햇살이 아직 비추지 않고 있었다.

처음 그 분을 방문했을 때 바깥 날씨마저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척추6급의 70대 신규장애등록 어르신에게는 그늘만 허락된 듯이 보였다. 방안은 냉기가 돌고 난방이 들지 않아 발이 시렸다.

곰팡이 냄새는 내가 하루 종일 흡수한 봄 햇살을 순식간에 내쫓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혹시라도 얼굴을 찡그릴까 조심하며 가볍게 인사했다. 최대한 가볍게 인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르신은 눈물을 글썽인다. 쉽게 흘린 눈물이지만, 쉽게 그치지는 않았다. 어르신의 손을 잡았다. 내 손에 봄 햇살이 남아있기를 바라며…….

“난 지금까지 독신이야. 30대 초반에 딸을 하나 입양하여, 어렵게 교육시켜 전문대학까지 교육시키고, 결혼까지 시켰어. 그 년이라도 잘 살길 바랬는데 못난 애미가 키워서 그런지…… 그년도 지지리 복도 없지.”

딸 이야기할 때는 그래도 애정이 담겨있었는데, 자신의 건강상태를 이야기하실 때는 남 얘기하듯이 냉정하시다. 10년 전 척추수술을 하였으나, 호전은 되지 않고 오히려 무릎관절과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어가는 증상으로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한 상태라 하신다.

어르신의 말씀이 끝날 때까지 나의 손은 어르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중에는 어르신이 내 손을 잡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르르 떨리는 내 손을 어르신이 잡아주셨던 거다. 도와드리고 싶었다.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었다. 냉정해지지자. 따뜻한 말 한마디는 나 말고 누구라도 해줄 수 있을 거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지만, 그래도 가장 필요한 것을 여쭤보았다.

“지하 말고 평지에서 살고 싶어”

내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리고 또, 또. 욕심내셔도 돼요. 힘든 거, 필요한 거 말씀

하세요. 말로 다하진 못해도, 나의 눈은 말하고 있었고, 어르신의 눈도 알았다고, 용기를 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기초수급자로 지정은 되어있지만, 사위소득 때문에 수급비가 깎여 월20만원 수급비와 다니고 있는 절에서 5만 원가량 지원을 해 주며, 따님은 본인 살기도 어려워 1년에 몇 십만 원 쥐어주는 게 다라고 하신다.

들어오는 곳은 이게 다인데, 나갈 곳은 왜 이리 많으신지.

매달 월세가 15만원에다 공과금 납부하고 나면 3만 원 정도로 생활하셔야 한다고 한다. 치아는 아래 어금니 양쪽이 다 없고, 부분 틀니나 임플란트 등을 이야기하실 때는 회상하는 것처럼 말씀이 공허하시다.

내가 처음이면 안 될 텐데. 이렇게 힘드시게 사시는 분을 방문한 게 내가 처음이면 안 될 텐데. 어르신 말씀대로 우선 이 집부터 어떻게 해드리고 싶었다. 이런 집에서는 없는 병도 생길 것 같았다.

임대주택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 그렇잖아도 구청에서 무슨 서류가 하나 왔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며 꺼내놓으셨다. 임대주택 신청 대상으로 선정되었으니 LH 공사에 내방하여 추첨에 참가하시라는 내용이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어르신 손을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르신에게 관련 내용을 최대한 자세히 안내해 드렸다. 꼭 참석하셔야 햇살 들어오는 집으로 갈 수 있다고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집을 나오면서도 다시 한 번 말씀드렸다.

헤어질 때야 놓았던 우리 두 손은 어르신의 간절함과 꼭 도와드리겠다는 나의 약속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다음 날부터 주민 센터와 구청 등에 긴급생계비나 월세지원금, 무료 임플란트 치료 등 어르신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기초수급자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중복 혜택은 안 된다는 답변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실망하면, 어르신은 절망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해결책을 찾아 다녔다.

일단 서비스위원회에 상정해놓고, 수시로 어르신께 연락을 드렸다. 아직까지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어르신은 전화드릴 때마다 너무나 반갑게 반겨주시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셨다.

어느 날, 어르신은 평상시와는 다르게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처음에는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못 알아들었다. 원래도 사투리를 쓰셔서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그나마 흥분하셨는지 더욱 빠르게 말씀하시고 계셨기 때문이다. 한동안 대답만 하고 있었는데, 대답하던 내 목소리도 어르신을 따라서 상기되었

다. 임대주택에 당첨되셨다는 말이 수많은 말 중에서 똑똑히 들렸기 때문이다.

걱정이 내 팔자인가? 그렇게 바라던 일인데 어르신께 마음껏 축하드리질 못한다. 이사비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역시나 어르신도 이사비용이 걱정이시란다. 혹시라도 실망하실까봐, 저라도 같이 이삿짐 나를 테니까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켜드렸지만 내심 걱정이었다.

다행히 서비스위원회를 통해 해결방법이 나왔다. 서대문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인력지원을 하고, 홍은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무료 탑 차를 지원키로 하였다. 또한 7월1일부터 기초수급자는 본인부담금 20%만 부담하면 치료도 가능하고, 나머지는 무악재에 있는 조 치과에 치료 지원을 의뢰해 놓았다. 그리고 8월4일 두 복지관의 손길을 통해 무사히 이사를 마쳤다.

추석 전에 집들이에 초대받았다. 집도 좋았지만, 10년은 더 젊어지신 모습의 어르신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우리는 두 손을 꼭 잡아, 한참을 울며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 번호 키 에 비밀번호를 누르시면서 나한테 넌지시 비밀번호를 불러주신다. 비밀번호를 그렇게 알려주시면 안 된다고 하니, 지비(전라도사투리) 가 오고 나서 좋은 일만 생겼다고 당신이 없어도 언제든지 들어오라고 한다.

“저 손버릇 나쁜데요.”

하니, 어르신은 활짝 웃으며 또 다시 내 손을 꼭 잡는다.

“아니야,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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