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결산]-①장애등급제

다사다난했던 2014년이 끝나간다. 특히 6‧4 지방선거, 2년째 접어든 박근혜정부의 정책 중 올해 장애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무엇이었을까?

에이블뉴스가 인터넷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한 ‘2014년 장애인계 10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해를 결산하는 특집을 전개한다. 그 첫 번째는 이제는 기정 사실화됐지만 과정이 험난한 장애등급제.

2년이 훌쩍 넘은 광화문 노숙농성에 정부가 올 초 장애인정책조정위를 열어 빠르면 2016년부터 등급제를 폐지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럼에도 등급제를 대신할 장애판정도구에 대한 장애계와 정부의 갈등으로 여전히 뜨겁고 혼란스러운 최고의 관심사.

에이블뉴스가 실시한 ‘2014년 장애인계 10대 키워드’ 설문조사에서는 ‘장애등급제’가 최고의 키워드로 뽑혔다.

지난 3월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14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모습.ⓒ에이블뉴스DB

■이제는 현실로 다가온 ‘등급제 폐지'=장애계가 줄기차게 정부를 향해 주장해왔던 말. “우리는 소와 돼지가 아니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해달라는 주장에 올 초 정부가 구체적 계획을 갖고 드디어 응답했다.

지난 3월 제14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열고, ‘2014년도 장애정책 추진계획’을 확정하면서 빠르면 오는 2016년부터 장애등급제를 대신할 새로운 장애인 종합판정 도구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것.

지겨웠던 폭염과 한파 속에서도 항상 자리를 지켰던 광화문 농성과 아픈 9개의 영정 사진. “장애등급제 폐지 서명 좀 부탁드릴게요!”라는 애절한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한 명, 한 명 서명을 해왔던 국민들.

오랜 기간 광화문을 지켰던 장애인들을 주목하기 시작한 일간지까지. 2년이 훌쩍 지나서야 드디어 장애등급제 문제점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된 것.

그러나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장애판정도구를 개발하기 위한 보건복지부의 ‘장애판정체계 개편기획단’ 속 장애계 인사가 24명 중 4명에 불과한 것. 위원이 학계, 정부관계자로 치우쳐 장애계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정부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당시 복지부 측에서는 “장애판정도구 개발이다 보니 아무래도 전문가적인 입장의 의견이 많이 필요해서 그렇게 됐다”며 “별도로 의견 수렴을 통해 충분히 받겠다”고 해명했지만 의견 수렴의 장도 없이 물 흐르듯 판정도구 개발에 대해 잊히는가 했다.

결국 10월, “처음부터 다시 장애등급제 폐지를 논의하라!”며 뿔난 일부 장애인단체가 정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기획단이 복지부 법인 장애인단체를 대상으로 ‘장애판정도구 설명회’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이 점거하며 분노를 일으킨 것.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계 기획단 구성 첫 단추부터 잘못됐다며 만들어진 장애판정도구는 현재의 장애등급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점수’ 그 자체라는 주장을 펼치며 설명회를 무산시켰다.

설명회가 무산된 뒤로, 장애계의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는 주장에 열린 연구진과의 간담회에서는 입씨름만 오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발표된 장애판정도구가 아닌 “왜 점수냐. 추진단부터가 문제다”라는 말꼬리를 잡고 비트는 상황에 건설적인 논의 없이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지난 10월 장애판정도구 설명회를 점거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모습. 이날 점거로 설명회는 결국 무산됐다.ⓒ에이블뉴스DB

■장애계 안에서도 갈등, 넘길 수 있을까=일부 장애계의 말꼬리 잡는 모습에 장애계는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놓고 장애계가 하나로 뭉쳐야 하는 상황 속, 아무런 진전 없이 입씨름만 오가는 모습에 서로간의 갈등은 심화 돼 버렸다. 호되게 당한 장애판정도구는 기약 없이 ‘그들만의 리그’가 돼 버린 것.

또 현재 장애계에서는 장애판정도구 외적으로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대신할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의견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

법을 위해 함께 논의했던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최근 각각 독자적인 초안을 발표한 것.

정부의 장애판정도구를 바탕으로 장애인 정의, 직접지불 방식제도 근거 등 전달체계 위주로 구성된 한국장총표. 그리고 등록제 등급제를 완전 폐지, 원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만큼의 서비스를 준다는 전장연표.

그러나 이들 초안들은 장애계 모두를 아우르지 못 한 채 의원 발의를 목표로 막바지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라!’를 첫 외칠 당시 장애계는 하나였다. 누구도 의료적 관점으로만 판단하는 장애등급제 폐지 주장에 반기를 들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로 다가온 지금은 어떠한가.

장애계 안에서의 갈등, 이어지는 정부 불신 등으로 폐지 여정이 그야 말로 ‘가시밭길’과도 같다. 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바꾸기까지의 과정은 너무나 중요하다.

장애판정도구 개발 과정을 공개하지 않은 정부도, 모든 과정에 브레이크를 걸고 하나가 되지 못하는 장애계도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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