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로병사는 자연의 섭리라고 한다. 필자도 이제 늙고 병들어 죽을 날이 가까워진 모양이라 몇 해 전에는 뇌경색으로 장애를 입었다. 그래도 양손만은 아직 쓸 만했는데 몇 달 전에는 왼손의 손목이 부러졌다. 다리가 부실하다보니 발이 미끄러지면서 왼손을 짚었는데 그만 부러져버렸다.

처음에는 다친 손이 너무 아파서 한참을 울었다. 한 5분쯤은 저절로 눈물이 나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던 같다. 왼손은 금방 부풀어 올랐다. 겨우 진정을 하고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퉁퉁 부은 왼손을 보더니 엑스레이(x-ray)부터 찍자고 했다.

엑스레이를 살펴 본 의사는 분쇄골절이라며 3개월을 진단했다. 수술할 정도는 아니나 3개월은 왼손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의사의 말이 아니라도 왼손은 너무 아파서 사용할 수도 없었다. 의사는 왼손을 손가락부터 팔꿈치까지 반깁스를 했다.

2~3주 후에 붓기가 빠지면 통깁스를 할 테니까, 그때까지 손을 절대 움직이기 말고, 가능하면 손을 가슴보다 높게 하고, 그리고 하루에 우유를 두 잔 이상 마시라고 했다. 간호사가 왼손을 목걸이(?)에 걸어 주었다.

주사도 맞고 약도 먹었지만 통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더욱이 겨울이었다. 왼팔은 목걸이에 걸고, 코트에 오른팔만 넣어서 앞 단추를 채웠다. 옷이 영 불편했다. 반팔티셔츠를 입었고, 왼팔은 반깁스를 했으니 시집 간 딸이 털토시를 사와서 오른손에 끼워주었다.

팔이 쑤시고 아팠지만 그렇다고 출근을 안 할 수도 없었다. 컴퓨터 작업을 할 때는 한 손으로 떠듬떠듬 자판을 쳤다. 오래 전에 만났던 한 시인이 생각났다. 그는 구식 타자기로 시를 쓰고 있었는데 컴퓨터를 쓰지 않는 이유는 손 때문이라 했다. 컴퓨터 자판은 한 자를 치고 나면 빨리 자판에서 손을 떼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같은 글자가 ㄹㄹㄹㄹ 이렇게 이어진다. 그는 손이 자유롭지 못하여 손대신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자판을 쳤는데 입은 손처럼 빠르지 못하기에 컴퓨터가 아닌 구식 타자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날마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다시 엑스레이를 찍었고, 그리고는 일주일분 약을 처방하고는 일주일 후에 오라고 했다. 손은 여전히 퉁퉁 부었고 낮이나 밤이나 아팠다. 왼팔은 목걸이로 목에 걸고, 왼팔이 덜렁거리는 코트도 영 불편했다. 수소문 끝에 망토를 하나 구입했다. 팔이 달린 코트 보다는 망토가 훨씬 편했다.

물 없이 머리감는 노린스 삼푸. ⓒ이복남

머리는 하루에 한 번 또는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감아야 되는데 팔을 목에 걸고 있으니 머리를 감을 수가 없었다. 이웃에 사는 딸이 물 없이 머리 감는 노린스 삼푸를 가져 왔다. 스킨처럼 생겼는데 방에 앉아서 어깨에 수건을 두르고, 삼푸를 머리에 바르고 문지르면 거품이 난다. 손으로 비벼서 충분히 거품을 낸 후 수건으로 닦으면 된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손의 붓기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출근을 한다니까 목에 걸게 했지만 다친 손을 심장 보다 높게 해야 붓기가 빠집니다.” 팔을 내린다고 의사가 야단(?)을 쳤다. 아하, 그래서 다치면 꼼짝하지 말라고 입원을 시키는 구나. 집에서 가까운 정형외과를 다녔는데 병원에 가면 왼팔 또는 오른팔에 초록색 통깁스를 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나이가 들면 겨울철에 낙상사고가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3주일이 지나자 엑스레이를 찍어 본 의사는 손의 붓기가 덜 빠졌지만 반깁스를 풀고 통깁스를 했다. 통깁스를 해도 통증은 여전했고, 밤에 잘 때는 팔을 머리위로 만세를 부르고 잤지만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왼팔을 목걸이로 걸고 다니자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했다. ‘아이고, 이 추분데 우짜자꼬 팔을 뿌랐나보네.’ ‘세상에나, 조심 좀 하지 우짜다가 그랬을꼬.’ 사람들은 필자가 안 돼 보였는지 쯧쯧쯧 혀를 찼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한 손 장애를 체험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리고 보는 사람마다 뼈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된다며 홍화씨 콩 우유 견과류 멸치 사골 미역 다시마 시금치 연어 청어 등 별의별 음식을 처방했다. 어떤 사람은 애기 똥물을 걸러 먹으라고 했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깁스를 해 있는 동안은 손가락도 까딱하지 못할 만큼 아프고 힘이 없었다. 어쩌다가 무엇에 손가락 끝이 닿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랐고 악 소리가 나게 아팠다. 그러나 통깁스를 하고 부터는 왼손에 비닐 랩을 씌우고 노란 고무줄로 군데군데 묶어서 목욕도 하러 갔다. 물론 왼손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나가시(ながし) 즉 목욕관리를 받았다.

통깁스를 하고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도 하고, 이틀에 한 번씩은 물로 머리를 감았다. 때로는 딸이 와서 머리를 감겨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한 손으로 머리를 감았다. 그러나 왼손을 전혀 사용할 수 없으므로 설거지하기가 정말 어려웠고 소매 단추도 잘 잠그지 못했다. 핸드백 지퍼는 입으로 올릴 수가 있었으나 애들(손자들) 잠바 지퍼는 잠글 수가 없어서,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때도 지퍼는 못 올리고 그냥 보내야 했다. 애들이 왜 단추(지퍼)를 안 잠거냐고 했다. 할머니는 손이 없어서 못한다고 했더니 왼손을 가르치며 ‘할머니 손 있네?’라고 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통깁스를 한 필자의 왼 팔. ⓒ이복남

애가 둘인데 둘을 데리고 어린이집에 보낼 때도 작은 애는 오른손에 잡고, 큰 애는 왼쪽 코트의 팔 없는 소매를 잡게 했다. 그리고 손바닥까지 통깁스를 하고 있으니까 손가락 사이에 물집이 생기고 헐었다. 그래서 물티슈를 잘라서 손가락 사이마다 끼워 넣었다.

출근 떼는 러시아워를 피하기 때문에 좌석이 있었다. 퇴근 때도 택시를 타거나 봉사자들이 와서 태워주거나 했고, 버스를 탈 때는 충무동을 돌아오는 버스를 거꾸로 타야 했다. 그래야 자리에 앉을 수 있으니까. 사실 두 손이 있는 사람들은 한 손만 있는 사람들의 고충을 잘 모를 것이다. 특히 한 손에 핸드백과 짐을 들고 버스를 타기란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보행 장애에 상지는 관절이나 기능이나 아무것도 포함되지 않는다.

지체기능장애 등급기준에 의하면 한 손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면 3급3호(한 손의 모든 손가락을 완전마비로 각각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사람: 근력등급 0, 1)가 된다.

그러나 손목이 부러진 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장애다. 경험자들에 의하면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된다니까 말이다.

일주일마다 병원엘 갔고 갈 때마다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두 달이 지나자 깁스를 풀어도 되겠다고 했다. 통깁스를 할 때는 왼손에 하얀 붕대를 감고, 그 위에 석고가 칠해진 초록색 붕대를 감고 물 칠을 했었다. 깁스를 풀 때는 니퍼(nipper)로 양쪽에 앞뒤로 잘라서 자국을 내 놓고 그 자국에서 일직선이 되도록 전기톱으로 잘랐다.

통깁스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일주일 한 번씩 병원엘 갔는데 깁스를 풀고는 날마다 병원에 오란다. 두 달 동안 깁스를 했으니까 적어도 두 달 동안은 물리치료를 해야 되는데 당분간은 손이 더 부을 수도 있단다. 깁스를 푼 손은 더운 물에 담가 깨끗이 씻고 내일부터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더운 물에 손을 담그니 두 달 동안 사용하지 않았더니 손바닥은 껍질이 몇 겹이나 일어났다. 바케츠에 더운 물을 받아서 왼손을 씻고 또 씻었다. 자고 일어나니 정말 손은 더 부어올랐다. 다음날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더운찜질을 하고 적외선과 초음파치료를 하고,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레이저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의사는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이라고 했지만 손가락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은 아프기도 하고, 힘도 안 들어가는데다 손이 퉁퉁 부어 있어서 손가락이 구부려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아질 임시 지체 상지 기능장애 3급3호다.

필자는 장애인복지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직접 손을 다쳐 깁스를 하기 전에는 한손 장애의 불편에 대해서 짐작만 했었다. 그러나 필자가 팔을 다쳐 통깁스를 하고서야 한 팔 장애의 비애와 불편을 깨닫다니 참 못난이 같다. 아무리 동병상련이라고 해도 장애라고 다 같은 장애는 아닐 것이다. 이번 일로 인해 팔이나 다리를 다쳐서 한 팔 또는 한 다리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할 뿐이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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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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