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한 여고생 4명이 고사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 ⓒ에이블뉴스

“사실 학교 정문을 들어서면서도 실감은 잘 안나요. 하지만 지금까지 준비해 온 만큼 최선을 다해야죠.”

매해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선배의 수능이 대박나길 기원하는 후배나, 고사장 문 앞에서 애타는 마음에 발을 동동 거리며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서울맹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다. ‘진짜 여기가 수능 보는 곳이 맞아?’ 라고 생각 할 정도로 매우 조용했다.

현재 서울맹학교에서는 서울지역의 시각장애 수험생 22명이 수능시험을 치르고 있다.

8일 수능 당일 오전 7시 30분경. 서울맹학교 안에는 일찍 고사장에 입실한 시각장애 학생들이 보였고, 이들 옆에는 든든한 학교 교사와 부모님들도 있었다. 떨리고 초조한 마음에 서로 별 다른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부모와 교사는 무언의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때 마침 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들렸고, 별 얘기 아닌 말에도 배꼽잡으며 깔깔깔 웃는 19세의 여고생 4명이 고사장으로 들어왔다. 이중 서울맹학교에 다니는 최유민 학생(시각장애 1급, 19세)은 유난히 궁금증이 많아 교실 안에 무엇이 있는 지 물으며 다녔다.

떨리지 않냐는 기자의 물음에 “담담하다.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하하하” 라고 웃으며 답을 피해가기도 했다. 이내 같이 수능에 응시하는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며 당찬 여고생의 포스를 뿜어내기도 했다.

최 양은 “수능에 응시한다는 사실이 잘 실감나지 않는다. 막상 시험이 시작되면 나도 모르게 긴장 될 까봐 약간 겁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공부해 온 만큼 최선을 다해서 뒤 늦게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고사장 안 자리에 착석한 한빛맹학교 김상현 학생. ⓒ에이블뉴스

또 다른 고사장 안. 유독 늠름해 보이는 김상현 학생(시각장애 1급, 한빛맹학교)이 보였다. 수시모집에 합격되면 굳이 정시(수능)를 보지 않아도 될 법 한데 김 군은 침례신학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수시로 합격했지만, 수능도 준비해왔다고 밝혔다. 이번 수능에서 점수가 잘 나오면 대구대의 재활심리학과에 진학하겠다는 내심 당찬 포부도 갖고 있었다.

김 군은 어렸을 때부터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사람의 심리를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에 결국 심리학과를 1지망 목표 학과로 정했다.

그는 시각장애 수험생으로서 수능을 준비해오면서 겪었던 어려움도 털어놨다. 텍스트로 전환되지 않은 교재들 때문에 공부 할 수 있는 범위는 적었고, 텍스트로 전환 되는 준비 기간도 많이 걸려 실제 정안인보다 적다면 적은 시간동안 수능을 준비했다.

“정안인(시각장애를 가지지 않은 비장애인)이 공부를 하는 데 어려움은 없잖아요. 교재도 여러권 씩 볼 수 있고.. 그런데 시각장애인 같은 경우 텍스트로 된 교재가 없으니 공부 할 수 있는 게 항상 제한되어 있더라구요. 텍스트로 전환되는 것도 너무 오래 걸리고…”

“한소넷 같은 점자단말기를 수능 치를 때 사용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테이프로 들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거든요. 아, 저녁 9시 넘게까지 시험을 계속 보면 집중력이 떨어져요. 점자단말기 이용하는 대신 편리하니까 시간도 1.7배 줄 필요없죠. 1.5배만 줘도 될 것 같고. 꿩 먹고 알 먹고 인 거죠.”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한 뒤 정부가 실제 시각장애 수험생들의 불편한 점을 청취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시각장애 수험생 입장에서 불편한 점, 애로사항 등을 듣고 시험 편의지원 정책들을 고쳐나갔으면 좋겠어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르잖아요.”

한편 시각장애 수험생들은 매 교시 1.7배의 시간연장을 받아 오후 9시 38분에 수능시험을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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