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고향에서는 고구마를 많이 심었다. 고구마를 수확하는 날이면 밭에서 고구마를 구워먹었다. 나는 그때마다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서 큰 화재가 일어나지 않을까 해서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실제로 한번은 고구마를 굽다가 불똥이 가까운 초가집 지붕에 날아가서 큰 화재가 일어나는 일도 있었다.

지금 전주 자림학교 학생들과 교사들, 학부모들의 심정이 그때 내 마음과 같을 것이다. 자신들과 아무관련이 없는 문제 때문에 자림학교가 폐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14일 전주지방법원에서는 자림복지재단 설립허가가 취소되었다. 수년 동안 지적장애인 원생들의 성폭력을 방치한 것과 어려가지 문제들을 저질렀기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림복지재단이 자림학교의 예산관리와 집행을 주관하는 운영재단이고, 운영재단이 없어지면 학교도 폐교되어야 한다는 법조항에 의해서다.

그래서 대법원에서 작년 12월 14일 전주지방법원의 판결이 인정된다면 학교와 아무 연관이 없는 자림복지재단의 문제로 특수학교 하나가 없어지게 된다. 특수학교를 더 늘려야 하는 전북의 현재 상황에서 오히려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자림학교는 공중분해 형태로 없어질 수도 있다. 지난 2월 22일 사전에 아무 언질도 없이 자림학교의 신입생 전원을 다른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으로 전학시키라는 통보와 학급 수 감축 조치가 내려졌다.

이에 따라 신입생 전원이 은하학교로 재배치되었다. 학교가 정상이 되면 다시 온다고 약속하고 감축된 학급의 학생들도 학교를 옮겼다. 남아 있는 학생들도 재판 진행상황에 따라 다른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으로 전학을 생각하고 있다.

전북교육청에서는 대법원에서 최종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런 조치를 계속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자림복지재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2·3년이 걸린다. 그 사이에 자림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자연스럽게 폐교가 될 수도 있다. 만에 하나라도 대법원에서 자림북지재단의 설립허가 취소가 인정이 되지 않게 돼도 그때는 자림학교가 폐교되고 난 이후일지도 모른다.

전북교육청이 자림학교 신입생들을 다른 곳으로 재배치하는 것에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항의하자 전북교육청은 학교에서 2시간짜리 학부모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조금이나마 자신들의 의견을 전북교육청에 전달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기대하던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생각과 달리, 전북교육청의 답변은 무성의하고 원론적인이었다.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의견을 듣고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2월 22일 조치에 대한 배경과 조치에 따라 줄 것을 통보하는 자리였다. 그 다음날도 교사들과 학부들이 전북교육청까지 찾아갔지만 전날에 답변을 무한반복해서 들어야만 했다.

도정질의에서 최진호 의원의 질문에 교육감의 답변을 생각하면 교사들과 학부모들에게 했던 답변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답변에서 전북교육감은 사회복지재단이 문제가 생기면 그 산하기관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조치였다고 말했다. 추후 대법원에서 자림복지재단 설립허가가 취소되면 관계 법률상 자림학교도 폐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될 경우 자림복지재단의 정관에 따라 학교시설은 전북도에 귀속시키고 학생들은 다른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으로 전학시킬 대안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전북교육감의 담변을 듣고 매일 책상에서 문서로만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까 지적장애학생들의 특성을 모르고 마련한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지적장애 학생들은 생활환경이 변화되면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변화된 생활환경에 적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장애특성상 자신들의 의사를 정확하게 주변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어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힘들다.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힘들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자체가 큰 스트레스가 된다.

대법원 판결이나 학생 수 감소로 자림학교가 폐교되고 자림학교 학생들이 낮선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에 전학 갔게 된다면 자림학교 학생들은 새로운 생활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도 형성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받아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전북교육감이 이것을 알고 있었다면 자림학교가 폐교되면 학생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수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별화 교수법이다. 저마다 다른 장애정도와 특성을 가지고 있는 학생 맞춤식 교육인데, 나는 대학교 재학시절 가장 이상적인 개별화 교수법은 두 명의 교사가 학생 한명을 교육하는 것이라는 말을 교수님에게서 자주 들었다.

교사 한명이 장애학생을 집중적으로 관찰하여 적절한 교육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알맞은 교제교구를 제작하고, 또 다른 교사는 그것들을 활용해서 장애학생을 지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씀하셨다.

아직까지 우리 특수교육 환경에서는 이런 개별화 교수법으로 장애학생들을 지도 할 수 없다. 한 교사가 여러 명의 장애학생들 지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림학교가 폐교 된다면 한 교사가 더 많은 지적장애 학생들을 지도하게 될 것이고 지적장애 학생들은 질이 떨어지는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법대로 자림학교를 폐교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전북교육감의 특수교육에 대한 무지함을 보는 듯하다. 나는 전북교육감이 에바다학교와 서울다원학교의 사례들을 살펴봤으면 좋겠다.

1990년 연대 후반에서 2000년 연대 초반까지 우리사회를 깊이 반성할 수밖에 없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청각장애인들이 재학하는 에바다학교 사건이었는데 전 이사장이 운영비를 착복하고, 생활시설에서 청각장애학생들에 대한 폭력과 성폭행이 있었다.

청각장애 학생들 중에는 지독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동네 쓰레기통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기까지 했다.

이런 생활을 견디기 못한 한 청각장애학생이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했고 학부모와 교사들이 참여하면서 사회 이슈화가 되었다. 지역에 토착세력과 깊은 유착관계를 맺고 있었던 이사장을 몰아내는 것은 쉽지는 않았지만 7년이란 투쟁한 끝에 이사회 교체란 성과를 거두었다.

이 성과는 에바다학교에 재학하던 청각장애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의 투쟁도 있었지만 경기도교육청의 결단이 있어서 가능했다.

한 논평가는 광주인화학교도 에바다학교처럼 새로운 이사회로 교체하고 광주인화학교를 운영했다면 장애학생들에게 더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해줄 수 있었다고 사설 쓴 것을 봤다.

작년 9월 서울다원학교가 개교했다. 구 명수학교가 이사장 자녀들의 재산분쟁으로 학교가 폐교위기에 몰리자 지적장애학생들의 교육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서울다원학교이란 교명을 지어주고 시립특수학교로 전환하여 개교한 것이다. 거기에 필요한 자금은 이사회 재산 114억은 공적자금으로 전환해서 마련했다. 행정 처리를 하는데 편리함보는 지적장애학생들의 교육 권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울시교육청의 모습이다.

자림학교도 에바다학교나 서울다원학교처럼 새로운 재단에 맡기거나 공립, 도립, 시립으로 전환하면 학교 운영은 정상화 될 수 있다.

이러한 대안들을 전북 교육계가 계속 외면하다면 자림학교는 공중분해 되든지 대법원 판결에 따라 폐교 될 수도 있고, 전북 특수교육은 앞으로도 전국에서 꼴지를 면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은 전주에 사는 장애인 활동가 강민호 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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