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기능 향상을 장려하기 위한 ‘제33회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가 오는 20일부터 23일까지 경상남도 창원시 창원컨벤션센터(CECO)에서 열린다.

고용노동부와 경상남도가 주최하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웹마스터 등 20개 직종의 정규직종과 건축제도CAD 등 10개의 시범직종, 레저 및 생활기능경기 총 38개 직종으로 치러진다.

또 지난 3월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종합우승의 효과로 참가선수가 증가해 전국 17개 시도 총 396명의 참가할 예정이다. 이번 전국대회에 참가하는 이색 선수 5명을 소개한다.

제과제빵 직종에 도전하는 문중섭 선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밀가루가 빵으로, 중년의 아름다운 도전=2009년, 한국과 중국 양국 간의 투자정보자문회사를 설립하고 두 자녀와 함께 유학을 겸한 사업을 하던 중이었다.

평소 건강했던 문중섭(52세, 남)씨는 단순 통증이나 과로로 인한 증세이려니 했던 허리통증이 하반신 마비를 동반하는 척추골수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인생의 나락을 확인했다.

계속된 병원 생활을 뒤로 하고 2011년, 고향인 인천 옹진군의 작은 섬 시도에 들어가 전동스쿠터에 몸을 지탱하며 재활을 시작했다. 계속된 통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밥 먹듯이 하고 결국 2012년 1월 뇌병변 4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이후에도 사지를 찢기는 듯 한 통증과 마비로 병원 생활을 계속 했지만, 인생을 이렇게 마무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2015년 2월 대전직업능력개발원 외식분야(제과제빵)에 입학했다.

직능원에서의 교육과 생활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평소에 제과제빵에 관심도 있었지만 배워가면서 보니 남다른 소질도 발견할 수 있었고 목표를 가지니 나 자신도 내 주변도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중섭씨에게 “장애인기능경기대회”라는 아름다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메르스로 전국이 시끄럽던 지난해 여름, 문씨는 인천 대표로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하지만 7시간 동안 진행되는 3단 케이크 완성은 체력적으로 무리였던지 작품 완성을 못해 실격되고 말았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하지마비와 발목 골절까지 3차례 수술과 입원으로 6개월간의 휴학을 마친 지금, 문씨는 다시 아름다운 도전을 한다. 이번에는 더 큰 꿈을 꾼다.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우승과 세계대회 도전’이다.

“밀가루가 빵이나 과자로 변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 듯, 내 자신이 변해 나와 가족에게 기쁨을 주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도전은 계속할 것입니다”

건축제도CAD 직종에 도전하는 서수권 선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인생 제2막, 건축에 대한 꿈=서수권(32세, 남, 지체3급)씨는 어린 시절 손재주가 많아 톱과 못, 망치를 가지고 산에 올라가 나무로 만든 자그마한 아지트도 만들곤 했다.

항공고등학교를 다니며 항공기체구조와 공기역학과 같은 별난 분야를 배웠고 건축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채 평범한 삶을 살 줄 알았다.

대학교에서 열심히 배워 처음으로 입사하게 된 건설회사에서의 하루하루는 행복했고 서씨의 손길이 닿은 건물의 완공식이 있는 날은 뿌듯함을 숨길 수 없었다. 각자의 주인에게 분양이 되어 나가는 아파트의 각 호실을 보고 있노라면 고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27세, 한창 사회활동에 전념하고 있을 때 찾아온 교통사고로 그 끝을 모를 만큼의 인생의 추락을 맞이하게 됐다. 순간의 생각과 판단으로 말미암아 그의 운명이 뒤바뀌고 만 것. 그로 인해 느낀 아픔은 가족이 없었더라면 감당할 수 없었을 거라고 지금도 회상하곤 한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욱 더 단단해 진다는 말이 있듯이 끝을 모를 만큼의 추락을 느낀 후, 모든 면에서 많이 성숙하게 됐고 두 세배의 운동과 재활을 꾸준히 지속한 결과 2012년 런던에서 열리게 되었던 장애인기능올림픽 대표선수 선발전에도 참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넘치는 의욕과 부담감으로 너무 혹사한 몸이 버티지를 못하고 결국 부상을 입어 런던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는 아픔도 겪었다.

이후, 좌절하지 않고 다시 훈련과 노력을 통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조정 경기에 참가해 여러 차례 입상을 해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그 덕분에 어릴 적부터 꿈이던 건축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찾게 된 부산직업능력개발원 건축분야에 입학하면서 전산응용건축제도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고 2016년도 지방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해 최종 금상을 수상하게 됐다.

“작년 지방대회는 메르스 때문에 연기되었습니다. 덕분에 밤 12시까지 매일 연습하고 또 연습했고, 결국 1등을 했습니다. 이제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1등과 국제 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의 국가대표가 되는 꿈을 매일 꾸고 있습니다.”

워드프로세서 직종에 도전하는 김혜림 선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사서의 꿈 대신 PC를 잡다=어릴 적, 운동장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소꿉장난을 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김혜림(22세, 여)씨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었다. 조산으로 태어난 혜림이는 3살 때 뇌병변 · 지체 1급의 장애를 받고 책을 친구삼아 자랐다.

자상하신 부모님 덕분에 혜림이는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것을 책을 통해 경험하며 ‘사서’로서의 꿈을 키워갔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으나 장애의 어려움으로 실습기회도 갖지 못하자 대학교를 자퇴했다.

꿈이 사라지고 난 뒤,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던 끝에 새로운 꿈을 찾아 부산직업능력개발원 정보기술분야의 문을 두드렸다.

왼손이 불편해 다른 사람들보다 키보드 속도가 더디고 실력이 늘지 않아 눈물을 흘리는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씩씩하고 묵묵하게 시간을 견디어 냈다. 지방경기대회에 출전신청서를 작성한 이후로는 쉬는 시간, 주말도 반납하며 연습에 매진했다.

“큰 대회에 참가했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참가하는데 목적을 두고 대회를 준비했습니다. 한글, 영어 타자연습을 매일 꾸준히 하고, 지난해 문제를 풀면서 모르는 부분은 선생님께 여쭈어보고 다음에 실수하지 않으려고 메모 하면서 연습을 하다 보니 입상의 욕심이 생겼습니다. 다행히 부산 지방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좋은 결과로 보답해드릴 수 있어 기쁘고 앞으로 9월에 있을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습니다.”

혜림이에게 장애인기능경기대회는 단순한 대회가 아닌 자신의 새로운 목표에 다가가는, 다시 시작하는 첫 발걸음이다. 사서의 꿈을 포기하고 찾아온 성취는 혜림이에게 자신감을 얻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고 이제 또 하나의 꿈을 꾸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앞으로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여 제가 꼭 필요한 곳에 취업을 하고 싶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미래는 그려지지 않지만, 남은 훈련기간 동안 저만의 꿈을 계획하고, 그 꿈을 위해 더욱 노력해 부모님에게 자랑이 되는 딸이 되고 싶어요!” 라며 밝게 웃는 혜림이의 꿈을 응원합니다.

컴퓨터수리 직종에 도전하는 이인환 선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6번째 도전, 불가능은 없다= 휠체어 없이는 이동할 수도 없는 이인환(47세, 남, 지체2급)씨는 이번에도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도전했다.

2011년도부터의 도전이니 벌써 6년째 도전이다. 그것도 양손이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에게 양손을 정밀하게 사용해야 하는 컴퓨터 수리 직종이다.

이인환씨는 선천적 장애인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학교도 다닐 수 없었던 그는 부모와 친구들에게 의지한 채 누구보다 힘든 학창시절을 겪어냈다.

장애로 인해 지속적인 배움을 가지지 못한 그에게 컴퓨터는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고 앉아서도 할 수 있는 컴퓨터 수리 기술을 익히기 위해 밤낮없이 매달렸다.

신체적 장애 때문에 작업대도 사용할 수 없는 그는 바닥에서도 늘 웃는 얼굴로 컴퓨터를 수리한다. 그런 그에게 기능경기대회라는 도전은 값지다.

2011년도부터 도전한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작년부터는 우수한 성적을 거둬 경남 대표로 전국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한 해 한 해 입상 성적이 좋아지는 것도 그에게는 기쁨이다.

이인환씨는 본인도 어렵게 생활하는 중증장애인이지만 본인의 기술을 활용해 장애청소년이나 장애인 가족들에게 손수 조립한 컴퓨터를 선물하기도 한다.

배움의 꿈이 있었으나 장애로 인해 학업을 중도에 그만둬야 했던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돕고 싶은 자그마한 선행이다. 그의 선행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그리고 그의 도전도 계속될 것이다.

귀금속공예 직종 금메달을 향한 엄마의 도전. 김수진 선수 모습.ⓒ한국장애인고용공단

■‘엄마란 이름으로’ 금메달 향한 희망의 일기=가끔 비장애로 살다 불의로 사고로 장애인이 되어 장애인으로서 점차 적응해 가는 장면들을 TV를 통해 시청하곤 한다.

모두 장애를 인정하고 새로운 삶을 선택해 열심히 사는 모습들이 드라마 속 이야기로 비춰지지만 실제로 드라마 같은 삶을 겪은 이웃이 있다.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어 방황하던 시절, 교통사고로 인해 하지마비 지체 1급 장애인이 된 김수진씨(27세, 지체1급)가 바로 그 TV속 드라마 주인공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 김수진씨는 철없던 나이에 아이를 낳게 됐고 아이의 아빠는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아이가 태어나기 두 달 전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태어난 아이와 열심히 살아가던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니 병실에 누워있었다. 어머니에게 어찌된 것인지 물으니 교통사고 후 1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는 것이다.

담당 의사선생님에게 다리에 감각이 없을 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다리를 움직이려 애를 써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고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김수진씨는 한동안 엄청난 좌절감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어떻게라도 살아내야 했다. 3년 동안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았으며 척수장애인들과 많은 정보를 주고받으며 아이와 열심히 살아보려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아야 했다.

척수장애인들과 정보를 받던 중 휠체어를 탄 사람은 취업이 어렵다고 말을 들었다. 그녀는 그래도 전문 기술을 배우면 취업이 가능 할 거란 생각으로 인터넷으로 장애인이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보던 중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일산직업능력개발원을 알게 됐다.

중증 장애로 인해 전문 기술 없이는 취업이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2015년 7월, 내 아이를 위한 도전이란 생각으로 직업훈련을 받아 보기로 했다. 일산직업능력개발원 귀금속 공예과에 입학하면서 체계적인 직업훈련을 받으며 지내던 중 장애인기능경기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담당 선생님은 열심히 하면 입상이 가능하다고 격려해 주셨다. 그 후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참가 입상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능대회를 준비하면서 담당 선생님의 체계적인 지도를 받았으며,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준비한 덕분인지, 6월 지방장애인기능경기대회 귀금속 공예직종 부문에 참가해 당당히 금상을 차지했다.

이제 김수진씨에게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바로 9월 창원에서 개최 예정인 제33회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해 자신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시험해 보는 것이다.

김수진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도전하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속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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