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는 최근 근로자의 날을 맞아, ‘2014 장애인 고용지원 인식개선 문화제 시상식’을 개최했다.

장애인 고용지원 인식개선 문화제는 장애인근로자를 위한 유일한 예술축제로, 장애인근로자의 잠재된 문화예술 역량을 계발하고, 장애인도 근로 주체임을 알려 올바른 장애 인식 개선에 기여할 목적으로 지난 2000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다.

이번 공모전에는 운문, 산문, 사진, 컴퓨터그래픽, 창작만화, 광고 등 6개 부문에 총 407명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작품 1023점을 접수했고, 1·2차 심사를 통해 총 78점이 결정됐다. 에이블뉴스는 운문, 산문 부문 입상작 26점을 소개한다. 산문 분야 가작 수상작 5편이다.

이수의 숲길 여행

양주혜

지금부터 들려 드릴 이야기는 어느 산 속 깊은 마을에 사는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청년이 사는 마을은 장의산(障碍山) 이라 불리는 아주 커다란 산 속에 숨어 있습니다.

산이 너무 높고 험해서 아무도 오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산 밑에 있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그 곳에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그 마을에서 살고 있는 이수(耳手)라는 청년은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태어 날 때부터 모든 것을 귀와 손으로 알아 가야 했습니다.

보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으로 불행해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이수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 하여 멀리 했습니다.

이수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유는 청년이 된지 꽤 시간이 지나고서도 일거리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숲 근처에 있는 나무꾼장의 집을 찾아가 나무꾼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뻤습니다.

그런데 나무꾼 장은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수 자네는 안돼!"

이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무꾼 장은 이수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습니다.

"앞이 안 보이는데 나무를 어떻게 하겠나."

이수는 나무꾼장의 말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도 근처 숲으로 자주 나무를 하러 나갔기 때문입니다.

도끼질을 하다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 그늘 아래서 새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바람을 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나무꾼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집을 고쳐주는 공장의 공장장을 찾아가 일을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공장장은 바쁘다는 듯 이수를 밀어내며 말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나? 자네에게는 무리일세"

이수는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연이어 거절을 당하기 일쑤였지만 이수는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찾아 간 곳은 식당이었습니다.

이수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어머니가 일을 나가셨고 그 덕에 동생들의 점심밥은 항상 직접 차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살림은 잘 할 수 있다고 자부 하였지만 식당 아주머니의 대답 역시 반갑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곳을 돌아 다녀 보았지만 어느 일터에서도 이수를 반갑게 맞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수는 자주 가던 숲길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숲이 들려주는 소리는 정말 깨끗하였습니다.

그 곳에서는 어느 것 하나 이수에게 냉담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이수는 잠시 멈칫 하였습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길의 기운도, 바닥의 감촉도 자주 거닐던 숲길과 달랐습니다.

숲길을 걸으며 마음속으로 잠깐 다른 생각을 한 터였습니다.

잠시 고민 하던 이수는 달리 방법이 없어 햇빛이 뜨겁게 등을 빛 추는 곳을 피하여 나무 그늘을 찾아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요?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수가 소리 나는 방향을 향해 발소리의 주인을 불렀습니다.

"계세요?"

그러자 발소리가 이수 쪽을 향해 들려오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그 사람의 목소리는 이수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이었습니다.

이수는 물었습니다.

"숲속마을 사람이세요?"

지나가던 사람은 말했습니다.

"이 산에 마을이 있었군요? 저는 산 아래 있는 마을 사람입니다."

이수도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이 숲에 있는 마을 사람인데 산책 하던 중에 길을 일어서 그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그 청년은 어느새 이수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청년은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호영(互影)이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 날 처음 만났지만 마음이 잘 맞았습니다.

그러자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 놓게 되었습니다.

호영은 새로운 여행에 도전 하는 것을 좋아하여 아무도 오르지 않으려는 장의산에 오르기로 결심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수는 마을에서 일거리를 구할 수 없었던 이야기와 그 덕에 매일 이 숲을 돌아다니며 찾아 낸 경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호영은 뛸 듯이 기뻐하였습니다.

이수는 그 이유가 궁금하여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습니다.

호영이 대답 했습니다.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은 이곳이 이리 아름다운 곳인지 몰라요!! 겉으로 보면 매우 험난해 보이거든요."

이수는 계속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줄곧 생각 했어요. 이 멋진 곳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고."

호영은 이 산의 근사함에 감탄하며 이수에게 말했습니다.

"어때요? 나와 함께 사람들에게 숲속 구경도 시켜주고 이야기도 들려주면서 이 산을 소개 해주는 일을 해보지 않을래요?"

"아주 조금의 값을 받으면 당신과 나의 일당도 벌 수 있을 거예요."

이수는 대답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외면했어요. 내가 잘 할 수 있을 까요?"

호영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하하 내가 기뻐한 이유는 당신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찾아 낸 당신만이 알고 있는 길을 구경 시켜 주세요."

이수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띄워졌습니다.

호영이 이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힘이 필요해요. 우리 같이 해봐요! 사람들도 반드시 좋아할 거예요."

이수는 호영의 말에 힘을 얻어 함께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 날 이후 호영과 이수는 매일 함께 산을 오르내리며 길도 익히고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생각 하였습니다.

꽃과 나무를 심기도 하고 길을 손질하기도 하였더니 점점 멀리서 바라보는 산도 아름다워졌습니다.

산의 입구도 예쁘게 꾸몄습니다.

이수는 마을 나무꾼 장과 집수리공장장에게 부탁하여 함께 숲을 여행 하던 사람들이 묵어 갈 수 있는 작은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수가 손수 만든 '숲속여행'이라는 글자가 패인 나무판을 내건 작은 오두막이 산 아래 호영이 사는 마을 앞에 지어졌습니다.

두 사람이 숲속여행길 소개를 시작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여러 마을에서 장의산을 구경하러 왔습니다.

아마 지금도 열심히 사람들과 산을 오르며 맑은 소리와 깨끗한 감촉을 느끼고 있겠죠?

에필로그

이수가 어릴 때 어머니가 이수에게 자주 해주던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수야 신이 너에게는 큰 선물을 주었단다."

그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선물은 다른 방법으로 만나는 세상이 이수에게 가져다주는 무한한 호기심과 끈기였습니다.

풀이

장의산

障 : 막힐 장

碍 : 거리낄 애, 푸른들 의

山 : 뫼 산

이수

耳 : 귀 이

手 : 손 수

호영

互 : 서로 호

영 : 그림자 영

비가 내린 후

이상훈

올해는 장마가 여느 해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유난히 집중호우가 많은 탓에 뉴스에선 연일 피해상황이 보고되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날도 한차례 비가 쏟아졌다. 이상기후 탓인가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것 같은 폭우가 쏟아지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하늘이 말끔히 개고 있었다. 학원갈 준비를 하던 현우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보며 가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고민하고 있던 터에 출발시간에 딱 맞춰 비가 그쳐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비가 또 내리기 전에 얼른 출발해야겠다.’

성급히 현우가 차에 올랐다. 다니는 학원은 회사에서 차로 30분 정도를 가야하는 거리에 있었다. 출발한지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투둑 투둑’ 소리와 함께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급한 마음에 속도를 내보려 하지만 출퇴근 시간과 맞물려 점점 도로가 막히고 있었다. 어느새 비가 출발하기 전처럼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와이퍼는 최고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차창 밖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까 비가 그치질 말던가, 갑자기 이렇게 쏟아지면 어쩌라는 거야.”

짧은 시간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인해 도로엔 여기저기 사고차량이 눈에 띄었다. 평소보다 30분이나 늦게 학원에 도착했다. 마침 학원건물 앞쪽에 주차할 만한 자리가 하나 보였다. 주차를 했지만 현우는 차에서 내릴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머릿속으론 몇 번이고 그냥 돌아갈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발을 짚고 다니는 현우는 우산을 쓸 수 없었기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이 비를 맞고 학원에 가면 온몸이 비로 젖게 될게 뻔했기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0여분쯤 지났을까 빗방울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현우는 더 지체하다가는 학원시간에도 늦게 될 거 같아 얼른 차에서 내렸다.

몇 걸음 채 걷지도 않았는데 빗방울은 다시 굵어지고 빠르게 내리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해보지만 마음이 급해서인가 평상시 보다 걸음이 더디게 걸어진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현우는 빨리 걸어지지 않는 걸음에 괜스레 화가 났다.

건물 안에 도착했을 땐 이미 온몸은 비로 흠뻑 젖어 머리에선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손으로 머리와 옷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 보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옷 깃 속으로 스며든 물기가 흘러내려가는 느낌에 현우는 소름이 돋았다. 이런 꼴로 학원에 들어가기도 난감했지만 1주일 남은 졸업작품을 완성해야 했기에 그냥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 현우를 망설이게 하는 게 학원으로 올라갈 계단이었다. 형광등 불빛이 비추는 계단은 물기로 인해 미끄럼을 탈 만큼 매끄럽게 보였다. 3층까지 올라가야하는데 큰일이다. 예전에 계단에서 미끄러져 크게 다친 경험이 있는 현우는 이런 날 계단을 오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한계단 한계단 올랐다.

“안녕하세요!”

낯익은 목소리에 돌아보니 같은 학원에 다니는 학원생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계단이 많이 미끄러운데 올라갈 수 있겠어요?”

“그러게요. 계단이 엄청 미끄럽~ 읍”

말을 하는 사이 목발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런 현우를 학원생이 얼른 잡아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그냥 제가 업어드릴게요.”

“아니에요 옷도 젖어서 그냥 제가 올라갈게요.”

“괜찮아요. 학원시작 시간도 다 되가는데 그냥 업히세요.”

“죄송해서 어쩌죠.”

건장한 체구의 학원생은 현우를 가볍게 들쳐 업고 계단을 올랐다.

“고마워요”

“아니에요~ 이따가 끝나고 가실 때도 제가 도와드릴게요.”

현우를 자리에 내려주고 돌아서 자신의 자리로 향하는 학원생의 등이 물기로 젖어 있었다.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너무 미안하고 그냥 올라올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현우가 다니는 학원은 컴퓨터그래픽을 가르치는 학원이었다. 우연히 신문광고 속에 나온 모델하우스 투시도가 사람 손이 아닌 컴퓨터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현우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다음날부터 배울 수 있는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회사근처 30분 거리에 학원이 있었다. 수강신청을 위해 찾아온 현우를 본 학원원장은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과 안전상의 문제로 수강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같이 찾아와 수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는 현우를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수강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눈이 오는 날이나 오늘같이 비가내리는 악천후 속에서도 학원을 빠지는 일이 거의 없어서 학원생들 중 가장 참석률이 높았다. 기술 습득도 빠른 편이어서 함께 다니는 학원생들이 현우에게 안 되는 것을 물어 볼 정도였다.

처음 수강생은 30명 이었다. 중간 중간 취업이 되어 나간 학생들이 있어 학원졸업을 1주일 남긴 지금은 현우를 포함 6명만이 남아 졸업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학원에 처음 올 때만 해도 새로운 기술을 배운다는 것만으로 만족했지만 다들 취업해 나가는 것을 보니 현우도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학원원장도 현우의 성실함과 우수한 실력을 인정해 우선적으로 구인요청이 들어오면 추천을 하지만 장애인이라는 말에 면접조차 보자는 회사가 없었다.

오늘 수업도 끝이 났다. 학원에 들어올 때 도움을 줬던 학원생이 현우에게 다가온다.

“내려가시죠.”

“네~”

내려 갈 때는 올라가는 것 보다는 한결 수월하고 젖은 학원생의 등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에 부축만 해달라고 부탁하고 천천히 학원을 내려왔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어스름해져 있었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아니에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학원생이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 달려간다. 고마운 마음에 현우는 학원생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모든 일에는 깨달음이 있다던가... 그동안 현우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았다. 부담스럽고 불편해서였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 다른 사람의 호의를 거절하면 호의를 베푼 사람이 오히려 더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세삼 깨달을 수 있었다. 호의를 감사하게 받으면 그게 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것 또한 오늘 배운 깨달음 중 하나였다.

차에 올랐다. 차를 운전해 회사 기숙사로 향하는 내내 현우는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이제 일주일 후면 여기도 끝이구나~ 홀가분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무엇을 위해 1년이란 시간을 이곳에 투자했을까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그동안 다니면서 어려웠던 일들이 그때 느꼈던 감정까지 되살아나 순간 울컥하는 게 올라왔다. 갑자기 피곤함이 밀려왔다. 감기기운도 있어서 현우는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잠에 들었다.

일주일을 졸업 작품을 만드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완성된 졸업 작품을 보면서 2년 동안 고생하면서 배운 보람이 있다고 현우 스스로 뿌듯함이 들었다. 다른 이들도 현우의 작품을 보며 전문가 이상의 솜씨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우씨 그동안 정말 고생했어요.”

학원장이 수료증을 건네주었다. 그의 표정에서 많은 감정이 오가고 있음을 현우는 느낄 수 있었다.

“네 원장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제가 해야죠, 현우씨처럼 유능한 학원생을 배출할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요.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학원원장으로부터 건네받은 수료증을 보고 있노라니 그동안 힘든 것 참아내며 열심히 다닌 결과물이라는 것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심 눈물을 감추려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눈물방울이 콧등을 타고 내린다. 그렇게 2년간의 학원생활이 끝이 났다.

한동안 현우는 공허함 때문에 미칠 거 같았다. 매일 다니던 학원을 졸업하고 나니 남는 시간이 여유가 아닌 강박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학원도 열심히 다녔는데 그쪽계통으로 취직해야 하는 거 아냐?”

위로인지 건네는 다른 사람들의 말도 부담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다른 사람 모르게 컴퓨터그래픽 구인광고란에 나온 회사에 전화도 해보았지만 역시나 장애인을 구인하려는 업체는 없었다.

한번은 장애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이력서를 들고 면접을 간적도 있었다. 회사업주는 그런 현우를 보며 당황한 기색이 영력했다.

“저희가 검토를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열심히 할게요. 꼭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연락은 없었다. 용기를 내 면접을 봤던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죄송하지만 다른 분을 채용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감사하다는 말을 한 것에 화가 났다.

‘머가 감사한데, 이 멍충아~ 장애인 고용이 그리 싫냐~ 치사한 인간들아 잘 먹고 잘살아라. 욕이나 할 걸 미련한 놈’

스스로 자책하는 자신이 더 싫게 느껴졌다. 어쩌면 장애 때문만이 아니라 실력에서도 모자란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생각들은 현우를 더 약하게 만들었다. 이젠 더 이상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생각지도 않았다. 그저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저녁이면 회사 동려들과 술을 마시거나 다른 즐거움을 찾아 헤매는 것이 일이었다. 한심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허탈함을 잊어버릴 수 없을 거 같았다.

몇 개월이 지나서야 예전과 같은 생활에 현우는 익숙해 질 수 있었다. 이렇게 무의미한 삶을 살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도 다시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우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로 차를 몰고 가는 중이었다.

신호등에 노란불이 들어왔다. 그냥 지나치려는 순간 건너편에 경찰이 눈에 들어왔다. 다급히 신호등 정지선에 차를 세웠다. 이내 보행자 신호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건너기 시작했다. 신호위반을 하지 않은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무의식 적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낮선 이가 눈에 들어왔다. 학원에 다닐 때 도움을 줬던 그 학원생이었다. 여전히 밝은 표정에 귀에는 이어폰을 낀 채 책을 읽으며 건너고 있었다.

평상시 현우의 성격으로는 그냥 아는 사람이 지나가네 라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고마움이 생각나 길을 건너 같은 방향 인도로 앞서가는 학생을 따라갔다. 클랙슨을 몇 번 울리고 나서야 학원생은 현우의 차를 바라보았다. 창문을 열고 현우는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첨에 학생은 누구지 하는 표정으로 현우를 쳐다보다 이내 기억이 났는지 차로 다가오며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네 안녕하세요.~ 이런데서 만나네요.”

“그러게요. 잘 지내시죠?”

“네 전 잘 지내고 있죠 머 하하”

건장한 체구에 얼굴은 미소년 같았으며 표정은 늘 밝아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함과 웃음을 짓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청년이다.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같은 방향이면 태워다 드릴게요.”

“정자동 쪽으로 가는 길이에요.”

“잘 됐네요. 저도 그쪽으로 가는 길인데. 타세요.”

현우가 가는 길은 정반대 길이었다. 하지만 고마운 마음을 언젠가 꼭 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던 터라 같은 방향이라고 한 것이다.

“오~ 진짜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차를 출발해 가는 내내 이야기가 오갔다. 학원에 다닐때도 한번쯤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현우의 성격에 먼저 말을 거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아 2년 동안 같은 학원에 다니는 학원생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계단에서 도움을 받으며 건넨 말들이 전부였었다.

“참 그러고 보니 서로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요”

“하하 그렇네요. 전 승훈이에요 전승훈”

“아현우이에요”

“아~현우.. 이름 좋으신데요.”

“나이가?”

“저 올해 23이에요. 저보단 형님 같은데 몇 살이세요?”

“29살 먹었어요.”

“정말이요? 진짜 동안이신데요.~ 전 25살 정도로 봤는데. 어쨌든 편하게 형님이라 부를게요. ~ 하하”

“동안이라니까 기분 좋은데요. 하하”

“편하게 말씀하셔요.”

“그~~ 그럴까?”

“네. 그래야 저도 편하게 형님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통성명까지 마친 후 훨씬 편한 느낌으로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형님 학원 졸업했는데 그 계통으로 일하시는 거예요?”

“아니, 실력이 없어서 취직이 안 되네”

“에이~ 형님 실력을 제가 아는데”

승훈은 의아해 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실력도 그렇지만 장애인이라서 더 취직이 어려운거 같아”

“아직 우리나라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허울 뿐인거 같아요.”

승훈은 현우의 아픈 곳을 찌른 것이 아닌가 내심 걱정이 됐는지 이렇게 말하곤 잠깐 동안 말이 없었다. 현우는 그런 승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승훈아 너는 그럼 그쪽계통에 일을 하고 있는거야?”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현우가 말을 꺼냈다.

“아뇨~ 저 다른 학원에 갈려고요.”

“다른 학원?”

“네. 앞으로 인터넷이 뜰 거 같아서요. 그쪽 공부를 해보려고요.”

승훈은 다시 활기 띤 목소리로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현우는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돌려 승훈의 얼굴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네~ 컴퓨터 네트워크라고 보시면 돼요. 홈페이지라는 건 아셔요?”

지난번 신문에서 홈페이지 관련한 기사를 언 듯 보았던 게 생각났다.

“자세히는 모르는데 홈페이지라는 단어는 들어본 거 같아”

승훈은 가방에서 먼가를 꺼내보였다.

“다음 달부터 학원 시작해요. 지금 수강생들 모집 중인데 형님도 관심 있음 한번 읽어보시고 수강 같이해요.”

승훈이 꺼내 건네준 건 수강생 모집관련 학원 광고전단이었다.

“형님. 저 여기서 내려주시면 되요”

승훈이 말을 하다 목적지를 지나쳤는지 다급하게 말했다. 현우는 얼른 차를 세웠다.

“형님 고마워요 담에 또 봬요”

“그래 담에 보자~ 잘 지내고~”

차에서 내린 승훈은 차안으로 머리를 다시 들이민다.

“형님 홈페이지 만드는 학원에서 보길 바라요. 하하”

이렇게 말하고 승훈은 차문을 닫으며 빨리 가라고 손짓한다. 가볍게 목례로 답한 현우는 출발했다.

“이런~”

승훈을 태워다주기 위해 약속시간에 늦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결국 약속장소에 늦은 현우는 친구와 짧은 만남을 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홈페이지?’

현우는 아까 승훈이 건네준 전단지를 꺼내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대략적으로 내용은 파악이 되었지만 생소한 단어와 내용이라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힘들게 다녔던 학원을 떠올리니 엄두를 내기조차 싫었다. 현우는 전단지를 휴지통에 버리고 자리에 누웠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참 재밌는 친구야’

낮에 만났던 승훈이 생각나 피식 웃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기숙사 휴게실에서 현우는 TV를 보고 있었다. 심심한 생각에 TV를 보고 있지만 딱히 재미있는 프로가 없었다. 여기 저기 채널을 돌리던 현우는 뉴스자막에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와 돌리던 채널을 멈추고 뉴스의 내용에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뉴스의 내용은 지난번 승훈이 말한 대로 앞으로 인터넷을 통해 또 다른 혁명과도 같은 시대가 돌아 올 거라는 내용이었다. 내용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우는 갑자기 지난번에 휴지통에 버린 전단지가 생각났다. 황급히 방으로 돌아온 현우는 방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다. 꼬깃하게 구겨진 전단지가 아직 휴지통 안에 들어있었다.

‘다행이다’

휴우 하는 한숨을 내 뱉은 현우는 전단지를 펴 다시금 내용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지난번에는 별 생각 없이 읽어서인지 오늘 읽은 내용은 정말 새롭고 흥미로 가득 찬 내용들이었다. 현우는 다음날 아침 일찍 전단지에 있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친절히 현우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상담을 받는 동안 그래픽학원에 다닐 때 느꼈던 힘들었던 기억은 까마득히 잃어버린 채 다시금 배워야겠다는 욕망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현우는 ‘세상의 중요한 업적 중 대부분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한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라는 데일 카네기의 명언을 평상시 좋아했다. 힘든 가정형편, 불편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현우는 살아왔다. 잠시나마 학원졸업 후 느꼈던 좌절감은 현우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마저 들게 했지만 다시금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홈페이지제작학원은 숙명처럼 여겨져 상담 후 바로 수강신청을 하였다.

다행히 이번 학원은 엘리베이터도 있어서 다니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형님!”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직감할 수 있었다.

“승훈아!”

반가운 마음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건넸다. 승훈은 다가오며 현우의 손을 잡으며 특유의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형님 올 줄 알았어요, 하하”

“승훈이가 오라라는데 와야지~”

“하하 정말요.. 학원원장한테 학원생 유치비라도 받아야 하나.”

“그래, 그래서 소주나 한잔 마실까?”

“그거 좋은데요. 하하”

역시 승훈은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현우는 그렇게 다시금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학원에 등록하면서 현우는 이번엔 진짜 취업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그저 배우고 싶은 기술을 배우는 것이라 다짐했다. 지난번 느꼈던 좌절감을 사전에 막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것은 인터넷과 홈페이지(웹디자인)과정이었다.

웹디자인도 컴퓨터디자인을 활용한 기술이라 그전에 배웠던 포토샵, 일러스트가 큰 힘이 되었다. 다른 학원생들은 처음 접하는 프로그램이라 헤매고들 있었지만 현우와 승훈은 능숙하게 강사가 내주는 과제를 처리하고 있었다. 승훈의 사교성과 현우의 프로그램 활용능력 덕에 두 사람은 다른 학원생들과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현우는 새로운 기술습득에 희열을 느끼며 매일 매일이 즐거웠다. 학원과정은 6개월 코스였다. 승훈은 가정 사정으로 인해 3개월을 채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현우는 승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지만 그동안 사귄 다른 학원생들 덕에 나머지 3개월을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준 승훈을 현우는 늘 마음속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포토샵, 일러스트 외에 데이터베이스, 드림위버, 플래시, ftp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배웠으며 처음 자신이 만든 홈페이지가 컴퓨터에서 구동될 때의 희열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6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현우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졸업을 하였지만 홈페이지 제작과 관련한 회사에 취직할 수 없었다. 또 한 번 좌절감은 다가왔지만 처음 다짐과 지난번 겪었던 경험으로 큰 상처로 남지는 않았다.

그렇게 학원졸업 후 현우는 다시금 평상시 생활로 돌아왔다. 하루8시간 일하고도 학원비, 교통비 등으로 지출한 비용으로 인해 생활에 여유가 없었으므로 잔업, 야근을 하며 한동안 지낼 수밖에 없었다.

“공장장님이 잠깐 오라는데”

같이 일하는 수영이 라인에서 납땜 작업을 하고 있는 현우에게 다가와 말을 전했다.

“왜 오라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수영은 귀찮다는 듯 짜증스런 말투로 답하고는 밀차를 밀고 자신이 가야할 곳으로 가버렸다.

“저 자식 왜 저래?”

“신경 쓰지 마 쟤 저러는 게 한두 번이야”

옆에서 같이 작업하고 있는 은효가 수영 때문에 기분 나빠하는 현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얼른 공장장에게나 가보라고 말했다.

공장장에게 가는 동안 현우는 무슨말을 하려고 그러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똑! 똑!’

“들어와”

“부르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어서와”

공장장은 책상에서 일어나 현우를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하며 소파의 자기자리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현우씨 학원에서 어떤 거 배웠다고 했지?”

뜬금없는 질문에 의아해 하며 현우는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배운 게 홈페이지 제작과정이었습니다.”

“그래? 그게 컴퓨터에서 하는 거 맞지?”

“네~ 그런데?~~”

“혹시 현우씨 장애인기능대회라는 거 알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며 공장장이 현우에게 물었다.

“네~ 들었던 거 같아요”

“거기 한번 출전해보지”

“네?”

공장장이 이런 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현우는 웬일이지 싶은 마음에 되물었다.

“며칠 전 세미나에 갔더니 거기 강의하는 사람이 얘기를 하더구만”

담뱃재를 커피를 마시다 남긴 잔에 털며 공장장은 말을 이었다.

“지방대회, 전국대회, 세계대회 등에 출전할 수 있다고”

“네~”

“거기에 현우씨가 출전해서 우승하면 자네한테도 좋고, 또 우리 회사도 홍보할 수 있겠다 싶어서..”

‘역시 그거였군’

순수한 마음에 자신을 염려해주는 것일까 하는 기대를 했던 현우는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글쎄요. 대회에 나갈 만큼 잘하지 않아서요..”

공장장이 처음에 말을 꺼냈을 때는 그런 게 있었지. 한번 출전해 볼까하는 마음을 잠시나마 먹었었다. 하지만 속내를 들어내는 공장장을 보니 긍정의 표현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한번 준비해 보라고. 필요한 거 있음 도와줄 테니~ 미스김 들어와봐.”

공장장은 성격상 말을 꺼내면 바로 실천에 옮기는 스타일이다. 인터폰으로 은영을 불렀다.

“네~ 차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 그건 됐고 저기 현우씨한테 필요한 게 먼지 물어봐서 해주라고.”

“네???, 아~ 알~겠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뭘 해주라는 건지 알 리가 없는 은영은 되물었지만 공장장이 실눈을 뜨며 쳐다보자 이내 알겠다고 대답했다. 워낙 공장장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은영이었다.

이런 은영을 다른 직원은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질은 불같지, 다른 사람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공장장 비서를 10년을 넘게 하고 있었으니 다른 사람들이 오해 아닌 오해를 할 정도였다.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해.. 둘 다 나가봐”

현우의 의견을 애초부터 들을 사람도 아니었다. 공장장은 자기 말이 끝나자 다시 책상으로 가 서류검토를 하느라 이내 고개를 처박고 몰두하기 시작했다.

현우와, 은영은 공장장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공장장님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이에요?”

은영은 현우가 앉으려는 의자를 잡아주며 물었다.

“아~ 저 보러 기능대회에 나가라네요”

은영도 현우의 앞자리에 앉으며

“그래요. 그거 잘 됐네요.. 현우씨가 하면 잘 할 거예요.”

“전 아직 출전할지 말지도 결정 안했는데요.”

은영은 탁자위에 있는 과자의 껍질을 벗겨 현우에게 건넨다.

“한번 도전해 보세요. 머든 해주라고 했으니까 제가 도와드릴게요.”

현우는 은영이 건넨 과자를 베어 물으며

“그럼 저 출전해서 좋은 성적 거두면 데이트한번 해주실래요?”

현우가 말을 뱉고 나서 흠칫 놀랐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머리가 노래지며 얼굴이 빨개졌다.

평상시 은영을 좋아하던 현우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 숨이 멎을 거 같았다.

“그러죠 머. 그럼 꼭 금메달 따셔야 해요!”

은영은 현우의 그런 마음을 알리 없었기에 농담이라 생각했는지 흔쾌히 대답했다.

당황하는 자신을 발견할까봐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그럼 일하러 갈게요.”

“네, 필요한 거는요?”

걸음을 옮기며 현우는 은영이 자신의 상기된 얼굴을 볼까봐 재촉걸음을 하며 대답했다.

“그냥 대회 관련 자료나 뽑아주세요. 그리고 제가 신청서 작성해서 드리면 그거나 신청해 주세요. 수고하세요.”

도망치듯 말을 하고 현우는 은영의 방을 나왔다. 방을 나와 자리에 돌아와 일을 하기 위해 작업도구를 잡았다. 손이 떨려 도저히 인두질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은영이 어떻게 들었을까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 강제적으로 현우는 장애인기능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대회가 시작되자 현우는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과제집을 읽어 내려가는데 내용정리가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니 벌써 컴퓨터 작업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현우는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다.

다행히 조금 있으니 긴장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눈을 떠 과제집을 읽어 내려갔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내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학원에서 배운 것들도 생각나기 시작해 컴퓨터 작업을 시작했다.

현우가 참가한 종목은 웹마스터과정이었다. 과제는 주어진 내용에 맞게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실타래의 꼬여있던 실이 풀리기 시작한 듯 현우는 빠르게 손동작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감독관이 현우의 자리로 와 유심히 현우가 작업하는 것을 응시하고 있었다.

현우는 그런 감독관의 시선이 부담되지 않았다. 문제가 어려웠다면 당황했겠지만 늘 상 해오던 일처럼 이번과제는 현우에게는 쉬웠기에 특별히 긴장이 되지 않은 탓이다. 한참이나 감독관은 현우를 바라보다 다른 이에게 돌아갔다.

어느덧 4시간의 시간이 흘렀다. 심사평과 심사결과는 다음날 하는 대회규정으로 바로 성적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잘하셨어요?”

공장장의 배려로 은영이 대회 장소에 따라왔다. 대회를 마치고 나오는 현우의 가방을 들어주며 은영이 궁금했는지 물었다.

“그냥 과제집대로 끝내긴 했어요.”

“잘하셨어요. 수고하셨고요.”

현우와 은영은 대회장소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가 삼겹살에 소주를 주문했다.

“공장장님이 웬일로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돈을 주시더라고요.”

정말 의례적인 일이다. 공장장이 사람을 배려하는 게...

삼겹살이 노릇하게 익자 은영은 소주병을 들어 따기 시작했다. 앳되고 귀여운 얼굴에 소주병을 따는 모습을 바라보느라 소주를 따라 주는 것도 잃어버리고 있었다.

“한잔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현우씨 내일 좋은 결과를 위해 건배해요!”

현우는 그런 은영의 행동이 마냥 귀엽기만 했다. 건배를 하고 소주를 들이켰다. 긴장이 풀려서 인가 목으로 넘어가는 소주가 쏴하게 느껴졌다. 소주잔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눈앞에 은영의 젓가락에 삼겹살이 들려 현우의 입가에 와있었다.

“드세요 맛있게 익었어요.”

놀랄 겨를도 없이 은영이 건네는 삼겹살을 받아먹었다.

“맛있죠^^”

애교 섞인 말투로 두 손을 모으며 그녀가 웃어 보인다.

“네~ 진짜 맛있어요. 은영씨도 얼른 드세요. 아님 제가 다 먹어버릴 거예요.”

“안돼요~”

그렇게 저녁식사를 끝낸 후 숙소로 돌아왔다. 잘자라는 말을 건네고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현우는 숙소방에 들어서자마자 자리에 누웠다. 소주를 마셔서 약간 어지러운 것도 있었지만 은영과 함께한 시간동안 두근거려 죽을 거 같은 기분을 참느라 긴장했었다. 그런 긴장이 풀리자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피곤해도 잠은 오지 않았다. 내일 발표되는 결과도 궁금했고, 무엇보다 은영이 생각나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공장장이 시켜서 이긴 했지만 이렇게 자신을 위해 따라와 준 은영이 너무나 고마웠다.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잠이 들기 전 반쯤 감긴 눈으로 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3시를 시계바늘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현우는 잠이 들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현우가 깨어났다. 혹시 늦은 건 아닌가 싶어 시계를 보니 7시 반이었다. 다행이다 싶은 안도감에 다시 현우는 누웠다. 또다시 어제의 기억들이 떠올라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라, 감히 누구를...’

대회에 와서 결과보다 은영을 생각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지만 좋은 감정을 누를 수는 없었다. 대회장에 갈 준비를 마치고 현우가 숙소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직 은영은 나와 있지 않았다. 먼저 차에 올라 은영을 기다렸다. 잠시 후 은영이 달려 나왔다. 머리에 고무줄을 묶으며

“언제 나오셨어요? 제가 너무 늦었죠?”

하는 미안 섞인 인사를 하며 차에 탔다.

“아니에요 저도 좀 전에 나왔어요. 어제 잠은 잘 잤어요?”

“네. 어제 소주를 너무 마셨나 봐요.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침까지 잤어요.”

“다행이다. 숙소가 불편할까봐 걱정했는데”

“제 걱정 해주신 거예요.. 고마워요 현우씨”

고맙다는 말을 하며 은영이 현우 팔을 잡았다. 갑자기 현우는 숨이 차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색하지 않으려 참으며 현우는 대회장으로 차를 몰았다.

어제 대회를 치렀던 교실로 들어서자 벌써들 대회에 참가했던 참가자들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들이 들어왔다.

“어제 편히들 쉬셨나요?”

심사위원장이 참가자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을 의식했는지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네”

참가자들은 다들 대답하고는 얼른 심사결과와 총평을 해주기를 기다렸다.

심사위원장은 준비해온 결과지를 꺼내들며 총평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 대회에 참여하신 분들이 총 열네 분이었습니다. 이중 과제를 제대로 끝마친 분이 여덟 분이었습니다.

절반이상이 아직까지 제대로 기술을 구사하지 못한 채 대회에 참여하셨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 대회였습니다. 과제를 마친 여덟 분들 중에서도 몇 분을 빼고는 그저 과제를 마친 정도라 잘하셨다고는 말씀드리기 어려웠고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심사위원장이 참가자들을 쳐다본다. 참가자들은 심사위원장이 말하는 부류 중 어디에 속해있는지 궁금해 하며 말을 이어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들이었다.

“우선 잘하신 분들 거를 보면서 말씀드리는 게 이해가 쉬울 거 같네요.”

심사 위원들은 심사위원장의 사인에 맞춰 미리 준비해둔 컴퓨터의 모니터를 켰다. 4대의 컴퓨터의 모니터 속에 현우가 제작한 홈페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현우는 너무도 기뻤다.

시상은 금상, 은상, 동상, 장려상 이렇게 하기에 이중 하나는 획득한 게 분명했기에 몇 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처음 대회에 참가한 현우는 시상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 중에 어떻게 제일 잘한 거 같아요?”

심사위원장이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참가자들 간에 희비가 교차하며 심사위원장이 하는 질문엔 크게 반응하지 않으며 작은 소리로 몇 번이요 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이거 하신 분이 누구시죠?”

심사위원장이 현우가 제작한 홈페이지가 열려 있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현우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 분께 박수쳐주세요. 금상입니다.”

다들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순간 현우는 믿기지 않아 한동안 아무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굳은 채 서있었다.

“와~”

은영의 기뻐하는 소리에 현우는 정신을 차렸다. 은영은 자신이 상을 탄 것처럼 펄쩍펄쩍 뒤며 마냥 좋아하고 있었다. 현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런 현우를 보며 은영도 눈물을 흘렸다. 심사위원장의 평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더 이상 현우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지방대회 금상을 획득한 현우는 그해 가을 전국대회에서도 금상을 땄다. 그때의 감동은 지방대회 때와 마찬가지였고 전국대회에도 은영이 따라와 기쁨을 함께 해 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전국대회에는 은영이 꼭 가야한다고 공장장에게 휴가를 내고 와주었다는 것을 회사 동려인 은효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은효는 현우가 다니는 회사 공장장의 조카였다. 은효가 전국대회에 따라가야 한다고 휴가를 내자 둘 사이가 궁금했던 공장장이 조카인 은효를 불러 물었던 것이다.

은영은 지방대회 때 혼자서 대회준비물을 들고 다니는 현우의 모습이 안쓰러워 누군가 같이 가줘야겠다는 생각에 따라와 주었던 것이다. 그런 은영을 공장장은 오해를 했던 모양이다.

전국대회도 끝나고 현우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변화가 있다면 은영과 많이 가까워졌다는 것 이외에는 달라진 게 없었다. 굳이 변화를 찾자면 회사 앞에 현우가 전국장애인기능대회에 금상을 수상했다는 광고현수막이 붙었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랄까...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전화 한통이 현우에게 걸려왔다.

“아현우씨 되시죠?”

“네 그런데 누구시죠?”

“현우씨 지방기능경기 때 심사위원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지방기능대회 때 한참동안 뒤에서 현우가 작업하는걸 보고 있던 심사위원장이 생각났다.

“아~ 네 안녕하셨어요.”

“허허 기억나셨나보네”

“네 당연히 기억하죠, 그때 상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현우씨가 잘해서 탄 상인데 저한테 감사할게 뭐있어요.”

“그래도 심사위원장님 좋게 봐주셔서 탄 거라 생각해요.”

“허허, 아무튼 전국대회에서도 금상 타신 거 축하드려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 전화한 이유는 내가 아는 후배가 인터넷 관련 회사를 차린다고 하길래 현우씨를 소개하려고 하는데 어떠신가 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을 받아서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허허 그럴 거예요. 오늘 당장 답을 달라는 거 아니니까 천천히 생각해보고 전화번호 알려드릴 테니 통화한번 해보시고 결정하세요.”

그렇게 바라던 일인데 지난번 면접 보러 갔다 잘 되지 않았던 일이 생각나 어떻게 해야 하나 좀처럼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문득 은영이 생각났다. 대회 이후 가끔 고민거리가 있을 때 서로가 들어주는 사이가 되었기에 현우는 은영에게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의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은영씨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오늘은 약속이 있는데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뇨~ 그냥 은영씨 맛있는 거 사드리려고 그랬어요. 아쉽지만 다음에 사드릴게요.”

“미안해서 어쩌죠.”

“아니에요. 담엔 꼭 시간내주세요.”

“네 그럴게요.”

다음날 은영이 현우가 일하는 자리로 커피를 들고 왔다.

“좋은 아침, 모닝커피 한잔 하세요.”

“네 고마워요.”

“어제 저한테 할 말 있으셨죠?”

“아닌데요.”

“현우씨 행동 보면 이제 대충 짐작 할 수 있거든요. 무슨 일인데요?”

현우는 은영이 건네준 커피를 마신 후 말을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다.

“어서 해봐요. 무슨 일인데요.”

은영은 현우의 어깨를 장난스레 툭 치며 빨리 말해보라며 재촉했다.

“저 사실은 지난번 지방기능대회 때 심사위원장 보시던 분이 어제 전화가 왔어요.”

“그분이요? 왜요?”

궁금해서 눈이 또 동그래진다.

“제가 출전했던 종목에 관련된 회사에 취직해볼 생각 없냐고요.”

“정말이요, 와~ 잘됐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가신다고 하셨죠?”

질문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뇨, 확답을 하지 않았어요.”

현우는 다른 회사로 가면 은영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컸는데 지금의 은영 표정에서는 자신처럼 아쉬워하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왜요? 그렇게 바라시던 일인데 빨리 전화해서 간다고 하셔요. 다른 사람이 들어가기 전에요.”

잘됐다며 얼른 전화해보라는 은영에게 무엇을 기대한 것인가. 현우는 약간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이따가 전화하기로 했어요. 간다고 해야겠네요.”

퉁명스런 어투의 말이 튀어나왔다.

“현우씨 올해는 좋은 일이 넘쳐나네요. 정말 축하해요.”

“뭘요, 암튼 고마워요.”

“진짜 축하해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 가는 은영을 보며 현우는 가슴 한편이 시려 옴을 느꼈다. 은영은 너무도 기뻐해 주고 있다. 당연한 것인데도 현우는 못내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은영의 입에서 현우를 못 보게 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표현되기를 기대했던 것일까...

현우는 회사에 월차를 내고 심사위원장이 소개한 회사에 면접을 보러갔다. 소개한 회사가 있는 건물 3층 엘리베이터에 내린 현우는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디자인회사라면 인테리어가 남다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입구에는 컴퓨터부품들이 여기 저기 흐트러져있었으며 전자회사에서 늘 보아왔던 조립대 위에선 두 사람이 컴퓨터를 수리하는 중인지 분해한 컴퓨터본체를 골똘히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며 현우가 둘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현우를 돌아보며 인사에 답을 했다.

“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죠?”

둘 중 키가 작은 남자가 여기에 온 용건이 무엇인지 묻는다.

“오늘 면접보기로 해서 왔거든요.”

“면접이요?”

되물으며 남자는 현우를 의자에 앉으라며 자리로 안내했다.

“아~ 디자이너 면접 보러 오신 거예요?”

이내 기억이 났는지 남자가 되묻는다.

“네”

“그러셨구나, 잠시만요.”

남자는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디자이너 면접 보러 오셨는데요.~ 아.. 네, 알겠습니다.”

조금 있으려니 체격 좋은 남자가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현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희 사장님이세요.”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장을 현우에게 소개했다.

“네, 안녕하세요.”

의자에서 일어서며 현우는 인사를 했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사장은 현우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조그만 통로를 지나니 사무실이 또 하나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사장 책상이 창가에 놓여있었고 책상 두개씩이 양옆으로 벽을 보고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키가 앉아있는데도 무척이나 커 보였으며 며칠 동안 밤을 샌 모양인지 덥수룩한 수염에 머리엔 비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한사람은 키가 작고 화장기 없는 깨끗한 피부의 앳된 얼굴에 딱 보기에도 이쁘다라는 생각이 드는 여자가 있었다.

사장과 처음 보는 사람이 들어서자 두 사람은 일어나 인사를 건넨 후 다시 자리에 앉아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딱 보기에도 바쁜 듯 보였다.

현우는 사장이 안내하는 책상 옆 의자에 앉았다.

“차 뭐로 드릴까요?”

전화를 걸어줬던 남자가 현우에게 물었다.

“아니 괜찮아요.”

사장은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며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사장은 체격이 무척이나 컸다. 약간은 뚱뚱해 보이긴 했지만 보기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부리부리한 눈동자를 보자 사장의 포스가 절로 느껴졌다.

현우는 가지고 온 이력서를 사장의 책상에 놓았다. 이력서를 들어 내용을 사장은 읽기 시작했다.

“이쪽일은 해봤어요?”

“아뇨, 학원만 다녔습니다.”

“그럼 전에는~”

“전자회사를 다녔습니다.”

이력서에 기재를 했는데도 사장은 현우에게 물었다. 이력서를 제대로 본건지 책상위에 내려놓는다.

“아 우리 소개를 안했네.”

사장은 명함 꽂이에서 명함하나를 꺼내 현우에게 건넸다. 대표 손장혁, 옆에 서있던 남자도 명함을 꺼내 현우에게 건넸다. 과장 한기영.

“잠깐 이리들 좀 와 봐요.”

사장은 일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불렀다. 여자는 얼른 달려왔다. 남자는 바쁜데 귀찮다는 듯이 민기적거리며 일어서 사장의 자리로 왔다.

“오늘 면접 보러온 아현우씨에요. 인사들 하세요.”

면접 보러온 사람을 인사까지 시키는 게 현우는 의아했다. 아직 정식으로 회사에 들어 온 것도 아닌데.

“이쪽은 디자이너 팀장 장학수씨, 이쪽은 디자이너 김수연씨에요.”

“안녕하세요”

수연이 인사를 했다. 팀장은 고개만 끄떡였다. 됐다는 듯 사장은 두 사람을 일보라는 시늉을 보냈다.

“사장님 저도 급하게 처리할게 있어서요.”

한기영 과장이 사장에게 나가봐도 되냐는 듯 물었다.

“그러셔요.”

인사를 하고 한기영 과장이 나갔다.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이렇게 앉아있는 자리가 현우는 무척이나 불편했다. 잠시 후 사장이 말을 시작했다.

“현우씨 소개해주신 분이 제 대학 선배에요.”

“아~ 네”

“들어오실 때 봐서 알겠지만 원래 저희는 컴퓨터 조립, 수리를 전문으로 하다가 그쪽은 그냥 주력하지 않고 인터넷관련 디자인을 주력사업으로 해서 운영 중이에요.”

“네”

“디자인 회사라고 해서 기대하셨을 텐데 놀랬죠?”

“아~ 아뇨”

현우는 마음을 들켰나 싶어 움찔했다. 사장은 알고 있다는 듯 웃음 짓고는 잠시 또 말을 멈췄다. 그의 표정에서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영력했다.

“현우씨!”

“네”

“사실 현우씨 이렇게 목발 짚고 어렵게 걷는 거 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배가 디자인 잘하는 사람인데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해서 그럼 한번 보자고 했는데. 사실 현우씨한테는 미안하지만 조금 불편하신 게 아닌 거 같아서... ”

말을 꺼내고도 미안한지 잠시 사장은 말을 멈추었다.

“그러실 거예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현우는 사장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내 마음을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미안하기도 하고,,,”

“아니에요.”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어차피 분위기가 현우를 받으려는 게 아닌 듯 싶었다.

“그럼 현우씨 이렇게 해봅시다.”

일어서는 현우에게 사장은 무엇인가 결심한 듯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

“3개월 동안 수습기간을 두고 일을 한번 해봅시다.”

현우는 일말의 희망이 보여 기뻤다.

“3개월 동안 하는 거 봐서 채용여부는 그때 결정하기로, 그렇게라도 할 용의가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알겠습니다. 고민해보고 내일 중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회사 내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현우는 회사를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디자인회사에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지만 3개월이라는 단서조항이 마음에 걸렸다. 3개월 해보고 안 되면 회사에 입사를 시킬 수 없다는 것 아닌가... 일단 이곳에 다니려면 지금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하는데 3개월 뒤에 실업자가 될 수도 있기에 마냥 좋아 할 수도 없었다.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 포장마차에 들렀다. 복잡한 기분을 정리시키기엔 소주만 한 것이 없었다. 소주 한 병을 시켜 마시려는데 은영이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현우씨”

“은영씨”

“누구랑 약속 있으신 거예요?”

현우가 은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뇨 그냥 혼자 왔어요. 앉아도 되요?”

“그럼요 앉으셔요. 여기요 소주잔 하나 더 주세요.”

은영의 표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요?”

그런 은영이 걱정돼 현우가 은영의 소주잔에 소주를 부으며 물었다.

“아니에요. 참 면접은 잘 봤어요?”

“네.”

“어떻게 됐어요? 가기로 하신 거예요?”

“3개월 수습을 가지자네요.”

“네? 3개월 수습이요?”

“네~”

현우는 소주잔을 비웠다. 은영도 소주잔을 비웠다. 다시 소주잔을 채우는 동안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현우씨 용기 내요. 시련이 크면 보상도 큰 법이라고 우리 아빠가 늘 말씀하셨어요.”

현우는 고맙다는 듯 웃음으로 대신한다. 다시 소주잔을 비웠다.

“그래도 가보려고요. 뭐 3개월 해보고 안 되면 할 수 없죠.”

“그래요. 현우씨는 잘 하실 거예요. 자 우리 건배한번해요.”

둘은 건배를 한 후 다시 잔에 술을 채웠다.

“은영씨 무슨 일 있죠?”

은영은 안주로 나온 홍합탕의 국물 한 수저를 떠 마시고 소주잔을 또 비웠다.

“속상해요...”

은영의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은영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현우는 걱정이 되서 은영이 빨리 무슨 말인지 해주길 바랐다.

“저보고 공장장 세컨드라고 하더라고요.”

은영의 눈에 눈물이 떨어지며 울기 시작했다.

“어떤 놈이 그래요. 누구에요 그런 말 하는 미친놈이”

순간 화가 난 현우는 소리를 크게 지르며 말했다. 다른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던 손님들이 현우를 놀래 쳐다봤다.

“저 잠깐만요”

은영이 포장마차 밖으로 나갔다. 한참 만에 들어온 은영이 얼마나 울었는지 눈두덩이가 부어있었다. 그래도 표정은 한결 밝아져있었다.

“미안해요. 저 소주 한잔 더 주세요.”

현우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은영의 소주잔에 소주를 부었다. 소주잔에 소주가 채워지자마자 은영은 다시 소주를 들이킨다. 현우는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해야할 지 난감했다. 누가 그런 말은 한 건지 물어보고 싶지만 속상해 할까봐 묻지도 못하고 은영에게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은영의 소주잔에 술이 떨어지는걸 보고 있다 채워주는게 전부였다.

“현우씨도 그렇게 생각해요?”

한참만에 은영이 입을 열었다.

“무슨 그런 말을 해요. 절대로 그렇게 생각 안해요”

“그럼 다행이에요.”

또 한동안 둘은 말없이 소주만 마시기 시작했다. 어느새 소주3병을 마셨다. 현우도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마시다가는 지금 은영을 집에 보낼 수 없을 거 같았다.

“은영씨 이제 집에가요.”

은영의 표정을 보니 은영도 많이 취한 듯 싶었다.

포장마차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온 후 현우가 은영을 보내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 했다.

“저 현우씨 차에서 조금만 쉬었다 갈게요.”

“네? 네~ 그러세요.”

둘은 현우의 차에 올랐다. 아무 말 없이 둘은 그렇게 차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은영을 현우는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창문에 비치는 그녀의 모습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 보였다. 현우는 갑자기 흔들리는 느낌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깜박하고 차에서 잠이 든 것이다. 정신이 확 들었다. 옆자리를 보니 은영은 가고 없었다.

‘이런 바보 같은 놈~’

은영을 집에까지 데려다 줄 생각에 조금만 눈을 붙인다는 것이 새벽까지 자고 말았던 것이다. 은영이 앉아있던 의자에 쪽지하나가 놓여있었다. 현우는 얼른 쪽지를 펴 읽기 시작했다.

‘현우씨 미안해요~ 너무 속상해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저 택시타고 집에 갈게요. 걱정하지 마시고 들어가세요. 주말 잘 보내시구요. 그리고 저 회사 사직서 냈어요. 그래서 현우씨 보기 힘들 거 같아요. 잘 지내시구요. 가시려고 하는 회사에 가셔서 잘되길 바랄게요.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그리고 현우씨 제가 좋아했어요. 몰랐죠^^’

현우는 쪽지를 몇 번이고 되뇌어 읽었다. 어제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제대로 된 위로도 해주지 못하고, 좋아하면서 좋아한다고 말도 못한 자신이 너무 싫었다.

‘은영씨~ 미안해요.’

눈물이 쏟아졌다. 이젠 더 이상 은영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찢어질거 같음을 현우는 느꼈다. 그렇게 은영은 현우의 가슴속에만 남아있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면접보고 온 회사에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던 이유 중 많은 부분을 은영이 차지하고 있었다. 3개월 수습 뒤 채용여부를 결정짓자는 것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지만 은영이 퇴사한 마당에 더 이상 고민은 무의미 했다.

월요일 아침 일찍 공장장이 출근하자마자 현우는 사직서를 제출하기 위해 그를 찾아갔다. 사직서를 건네자 공장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특유의 기분 나쁜 말투로 현우에게 그만 두는 이유를 물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웬 사직서??”

“공부를 좀 해보려고요.”

차마 다른 곳으로 가기위에 그런다고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회사 다니면서도 학원 같은데 잘 다녀놓고, 공부하기 위해 그만둔다는 게 말이 돼? 불편한 게 있으면 말을 하라고 도와줄 테니까. 그만둘 생각 말고”

사직서 제출만 하면 될 거라 생각했던 현우는 공장장의 지금 태도에 적잖이 당황돼 다음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게~ 기숙학원 같은데 갈려고요~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해서요..”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다 보니 거짓말이 반복되 나왔다. 차라리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을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지금 이 순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알았어. 나가봐”

공장장은 자신의 배려를 무시하는 현우가 못마땅했는지 퉁명스런 말투로 대답하고는 나가보라는 시늉을 했다. 현우가 맡아 하던 일은 실습을 위해 나와 있던 실습생이 하게 되어 인수인계는 하루 만에 이뤄질 수 있었다. 그렇게 현우는 7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7년이라면 길지도 그렇게 짧은 시간도 아니기에 그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현우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억 속에 있던 나빴던 기억들도 그저 추억속의 한 장면처럼 아쉽게 느껴졌다.

그동안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현우는 퇴사 후 기거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3개월 후 채용여부가 정해지는 마당에 회사근처에 방을 얻기도 불가능했기에 하는 수 없이 부모님이 계신 집에서 당분간 출퇴근하기로 마음을 정한 후 집으로 향했다.

영문을 모르는 부모님은 현우에게 상처가 될까 염려되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못하는 눈치였다. 자초지경을 설명하자 현우의 아버지는 조금 신중하게 결정하지 그랬냐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현우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걸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현우는 출근시간 보다 2시간 먼저 집을 나섰다. 현우의 집에서 회사까지는 차로 1시간 이상을 가야하는 거리에 있었다. 출퇴근 시간에 교통량이 많은 구간을 지나가야 했기에 첫 출근 부터 지각할 수 없다는 심정에 일찍 나선 것이다. 다행히 회사엔 40분가량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한 현우는 주차한 채로 차에 앉아있었다.

가만히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있던 현우의 눈에 낯익은 이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는 덥수룩 들떠 있었고 듬성듬성 수염이 난 채로 초췌한 모습을 한 남자가 회사 건물에서 나와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지난번 면접 보러 갔을 때 디자인팀장이라고 소개받았던 사람이었다. 보아하니 날을 샌 모양이었다. 지난번에 봤을 때도 흡사 저런 모습이었는데 원래 저렇게 지저분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우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깔끔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지저분한 사람을 자연스레 싫어하는 경향이 있었다. 저런 사람과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출근시간 10분전에 회사에 들어섰다. 사무실 안에는 지난번에 보지 못한 한사람이 이제서 일어났는지 접이식 침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담배냄새, 발냄새 등으로 사무실 안은 온통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누구시죠??”

그 남자가 들어서는 현우를 보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출근하기로 한 사람입니다.”

“아~ 네... 들어오셔요..”

침대정리를 마친 남자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기 시작했다. 현우는 숨이 막혀 죽을뻔했다. 정리 안된 책상엔 지저분하게 서류뭉치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먹다만 사발면 그릇엔 파리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차라리 현우가 다니던 공장이 훨씬 깨끗했다.

조금 있으려니 지난번 면접 봤을 때 봤던 낯익은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사를 건네고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사장이 들어왔다.

“왔어요?”

“네, 안녕하세요.”

조금 있으려니 아침 일찍 나갔던 팀장이란 사람이 들어왔다. 아까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고 현우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말끔한 정장차림에 초췌했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모델처럼 준수한 외모를 한 팀장이 현우를 보자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자 다들 모여 봅시다.”

사장은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지난번에 다들 보셨던 현우씨가 오늘부터 3개월 동안 우리 회사에서 수습으로 일을 할 거예요. 수습기간동안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랍니다.”

이렇게 소개를 마친 후 수연에게 현우를 맡기고 사장과 팀장은 바쁘게 나갔다. 수연은 현우에게 커피한잔을 타다 주며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무실이 지저분한 이유, 지금 사장과 팀장이 바쁘게 나간 이유, 오늘 처음 본 사람에 대한 소개까지 해주었다.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아 머쓱하게 앉아 있는 것만큼 어색한 게 없는데 수연은 그런 기분을 알고 저러는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디자인하다보면 납기일 때문에 밤을 새는 일이 많아요. 저도 여자라 사무실 들어오면 남자들 냄새때문에 한동안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 이해하면서 부터 그냥 참아지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저를 여자로 생각 안 해요.”

털털한 성격의 수연은 현우를 아무 부담감 없이 대해주었다. 그런 수연이 현우는 고마웠다.

처음 현우가 맡게 된 일은 연예인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쓰일 플래시 작업을 돕는 일이었다. 수연이 기본적인 디자인을 해서 넘겨주면 그것에 간단한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는 일이었다. 다행히 지금 하는 일은 현우가 디자인 작업중에 좋아하던 것이라 어렵지 않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일을 하는 중에 사장과 팀장이 들어왔다. 갔던 일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었는지 둘은 들어와서도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수연씨 오늘 야근해야 할거 같아.”

팀장이 사장과 이야기를 마친 후 수연에게 다녀온 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옆에서 듣자하니 일을 맡긴 업체에서 요구사항이 있었던 모양이다.

“잘됐네~ 현우씨랑 같이 하면 되겠네. 아까 보니까 현우씨 잘하던데요~”

수연은 혼자 해야 할 일을 같이 할 수 있게된 기쁨에 한껏 업이 된 목소리로 현우에게 맡겼던 일을 사장과 팀장에게 보여주며 현우에 대한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현우가 작업한 것을 보며 나름 잘했다는 표정을 두 사람도 짓고 있었다.

현우는 그렇게 회사 첫 출근 날부터 야근이 시작되었다. 마무리 단계에서 오류가 발생해 사이트 오픈일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현우가 프로젝트에 투입되면서 속도가 빨라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누구보다 수연이 현우에게 고마워했다. 현우가 없었다면 그 일을 혼자서 처리해야 했기에 지금 수연에게는 현우가 너무나 고마운 존재였던 것이다. 현우는 꼬박 3일을 밤을 새워가며 일을 했다.

야근은 생각도 못하고 왔기에 3일내내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해 출근첫날 봤던 팀장의 몰골을 자신이 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현우는 웃음이 나왔다. 첫날 출근할 때 속으로 얼마나 욕을 했던가.. 그런데 3일 만에 자신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웃음이 나왔고 이렇게 빨리 적응이 된 것이 신기해서도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3일 만에 집에 돌아온 현우를 보며 부모님은 무슨 회사가 첫 출근부터 야근을 그것도 3일씩이나 시키냐며 이상한 회사라고 그만두라고 들어서는 현우를 몰아세우며 말했다. 현우는 지치고 몽롱한 정신이었기에 부모님의 이런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난히 깔끔을 떨던 현우이었지만 피곤이 목까지 차올라 샤워를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마치고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현우에게 어머니가 어제했던 이야기를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하시며 만류하였지만 현우는 아무 대꾸 없이 출근길에 올랐다. 오늘도 40분가량 일찍 도착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팀장이 간이침대에서 아직 잠을 자고 있었다. 팀장은 어제 야근을 마치고도 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마무리 작업을 한 듯 보였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나오셨어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일찍 깨셨네요.”

“아니에요 일어날 시간이에요.~”

간이침대를 접어 책상사이로 밀어 넣으며 팀장은 현우가 자리로 들어올 수 있도록 비켜주었다.

“저 좀 씻고 올게요.~”

“아~ 네 다녀오세요.”

팀장이 씻으러 나간사이 현우는 얼른 창문을 열었다. 3일 있는 동안 적응했다 생각했지만 집에 다녀오니 쾌쾌한 사무실 냄새가 역하게 다시 올라왔다.

“일찍 나오셨네요.”

돌아보니 사장이 들어오고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며칠 힘들었죠?”

“아~ 아뇨..”

“어쨌든 현우씨 덕분에 일이 일찍 마무리돼서 다행입니다.”

사장은 흡족해 하며 현우의 어깨를 툭치며 말했다.

현우는 그날부터 또 다른 프로젝트를 맡아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수연은 5년차 배태랑 디자이너이었기에 현우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지난번 일을 함께 도와준 보답에서였는지 친절히 알려줘 일을 쉽게 처리 할 수 있었다.

1주일이 그렇게 흘러갔다.

“현우씨 이거 한번 맡아봐요.”

사장은 현우에게 연예인 홍보용 홈페이지 제작을 진행해보라며 작업계획서를 내밀었다.

“어느 분하고 진행하는 거죠?”

현우는 사장이 건네는 작업계획서를 받아보며 물었다.

“이번 건 현우씨 혼자서 한번 해봐요.”

“네?? 저 혼자서요?”

“왜? 못하겠어요?”

사장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현우에게 되물었다.

“아뇨~ 한번 해보겠습니다.”

현우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됐지만 어쩌면 이번이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하겠노라 대답을 해버렸다.

“기간은 1주일~ 가능하겠어요.”

사장과 대화를 나누면서 작업지시서의 사이트맵을 살짝 봤기에 1주일 정도면 가능하겠다 싶은 생각을 마침 하고 있던 현우는 사장이 묻자마자 가능하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현우는 연예인 홈페이지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돌아와 앉자마자 현우는 연예인 홈페이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연예인 홈페이지는 다른 홈페이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연예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일까 이미지와 사진을 강조한 인터렉티브한 디자인으로 제작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현우는 벤치마킹을 하면서 자신감이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대답할 때와는 달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떨어지자 평소에 잘 다뤘던 디자인 툴들도 생소하게 느껴져 현우는 미칠 지경이었다. 오더를 받은 지 하루가 지나도록 현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뭐가 잘 안돼요?”

수연이 현우가 당황해서 안절부절하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의자에 앉은 채 다리로 밀고 현우에게 다가와 묻는다.

“네. 사장님이 이걸 만들어 보라고 하셨는데 혼자 하는 것도 처음이고 너무 디자인들이 화려하게 잘 만들어져있어서 엄두가 나질 않네요.”

수연이 작업지시서를 넘겨보며 말했다.

“연예인 홈페이지네요?”

“네~”

“음~.. 쉬운 건 아니네요. 사장님이 현우씨한테 너무 큰 숙제를 내주셨네”

수연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요. 자료로 받은 사진 중에 가장 잘 나온 사진을 먼저 보세요. 그리고 그 사진을 가장 잘 표현할 방법이 뭔지를 우선 고민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사진과 비슷한 느낌의 다른 사이트들을 보면 어느 정도 디자인느낌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현우는 수연이 알려준 데로 자료로 보내준 사진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느낌이 있는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연예인이라 사진 하나하나가 작품같이 느껴졌다. 사진에 다른 요소들을 많이 넣어 디자인하는 것보다는 사진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현우는 최대한 간결하면서 단순한 디자인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느낌을 한번 잡으니 작업속도도 몰라보게 빨라졌다. 현우는 퇴근도 잊은 채 작업에 몰두했다.

“퇴근 안해요?”

다들 퇴근하고 둘만 남아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낀 팀장이 현우에게 자신이 즐겨먹는 과자 하나를 건네며 묻는다.

“네~ 이것 좀 마저하고 갈려고요.”

“현우씨 열정이 대단한 거 같아요. 나름 디자인 실력도 좋은 거 같고요.”

팀장은 성격이 무뚝뚝했다. 이렇게 몇 마디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세요. 저도 기회가 되면 사장님한테 현우씨 얘기 좋게 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디자인팀장한테 칭찬 섞인 격려를 받으니 힘이 절로 났다. 그렇게 현우는 이틀을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하여 작업을 끝마쳤다.

“사장님 작업 다했습니다.”

현우의 말에 사장은 놀라며 현우의 자리로 달려왔다.

“벌써요? 어디 한번 봅시다.”

사장의 큰 목소리에 다들 무슨 일인가 현우의 자리로 몰려왔다. 현우는 사장님의 평가가 어떻게 날지 걱정이 되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작업한 홈페이지를 창에 띄웠다. 사장은 마우스를 클릭해가며 현우가 작업한 홈페이지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현우는 돌아서 사장의 얼굴을 쳐다보고 싶었지만 가슴이 떨려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사장이 열어보는 페이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라 질문이라도 했으면 했지만 사장은 아무 말 없이 이 페이지 저 페이지를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고 있었다. 현우는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장이 준 시일이 남았는데 좀 더 검토해보고 말을 할 걸 성급했다는 자책이 들기 시작했다.

“잘했네”

현우는 누군가 한말에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수연씨가 도와줬구먼”

과장이 현우가 작업한걸 보며 말했다.

“아니거든요. 제일도 바쁜데 누굴 도와줘요.”

수연은 질색하며 과장의 말을 받아쳤다. 평소에도 과장과 수연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지금처럼 말하는 말투를 누구보다 수연은 싫어했었다.

“생각보다 잘했네요. 수고했어요.”

오랜 시간 현우가 작업한 홈페이지를 보고 있던 사장이 짧은 평을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잘했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현우는 기쁘지 않았다. 너무나 형식적인 말투와 표정으로 진심이 담기지 않은 거 같았기에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진짜 잘했어요.”

수연이 현우에게 격려조로 칭찬을 해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현우는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이틀간 잠을 재대로 자지 못한 탓일까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머리가 핑 돌았다. 퇴근시간 집으로 가는 동안 현우는 팔에 힘이 빠져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신중하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회사출근도 늦어버렸다. 어제 갑자기 긴장이 풀린 탓에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들어서기가 어느 때보다 부담스러웠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멋쩍게 다들 현우를 쳐다보았다.

“현우씨 지각하면 안되는데~”

사장이 들어서는 현우를 쳐다보며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담부턴 조심하겠습니다.”

“현우씨 이따 잠깐 얘기좀 합시다.”

“네..”

현우는 하루 종일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잠깐 얘기하자던 사장은 세시를 넘기고 있는데도 별다른 말없이 자기 일을 하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 걸까 하루 종일 걱정이 되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현우씨 잠깐 봅시다.”

사장은 현우를 데리고 공용으로 사용하는 휴게실로 향했다.

“뭐 마실래요?”

자판기에 동전을 밀어 넣으며 사장이 물었다.

“저 아무거나 주세요.”

사장은 냉커피 두개를 뽑아와 현우에게 하나를 건넸다.

“힘들지 않아요?”

아침에 단호한 어투와는 전혀 다르게 부드러운 말투로 현우가 일하는게 어떠냐고 물어왔다.

“아니요. 다들 잘 도와주시고 힘들지 않습니다.”

캔 하나를 쉬지 않고 들이킨 사장은 웃음 띤 얼굴로 현우에게 말을 이어갔다.

“처음 현우씨 봤을 때 솔직히 부담도 되고 장애인을 접해본 적이 없다 보니 걱정도 앞서고...”

사장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근데 1주정도 현우씨 하는 거 보면서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가끔 잃어버리게 되더라고요..”

다시 담배 한 모금을 들이마신다. 현우는 사장이 무슨 말을 하기 위해 저러는지 걱정이 되 손끝이 떨려왔다.

“석 달 뒤 보자고 했던 거 취소하고 다음 주부터 정식적으로 출근하세요..”

현우의 온몸에 소름이 확 돋아 올랐다. 아침까지도 자책하며 잘못될 거 같은 기분에 걱정으로 하루 종일 보냈었는데 의외의 말을 들으니 머리도 멍하고 손은 왜 이리도 떨리는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정말 열심히 할게요..”

지난시간들이 생각나 눈물이 핑 돌았다.

현우는 그렇게 2주 만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현우는 가끔 힘들 때가 있으면 지난날 힘들게 학원을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며 시름을 달래곤 한다. 그래도 그렇게 힘든 거 포기하지 않고 견뎌낸 자신을 스스로가 위로하며...

커피잔을 손에 든 채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현우는 지금처럼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아가며 학원을 다니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은 그저 옛 기억 속에 아련함으로 다가왔다. 그때 느꼈던 가슴 아픈 기억도 이제는 많이 무뎌져 있었다.

“사장님 다녀왔습니다.”

거래처 미팅 갔던 직원이 다녀온 것을 보고하기 위해 현우의 방으로 들어왔다.

“고생했어요.”

미팅 다녀온 직원의 어깨가 비에 젖어있었다. 현우는 안쓰러운 마음에 수건을 건네며 고생했다는 말을 전한다.

신경섬유종증

김홍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우측 눈의 시력이 없었다. 다행히 좌측 눈은 잘 보였다.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지라 초등학생이 되고서야 겨우 알 수 있었지만, 좌측 눈의 시력은 2.0이었다. 우측 눈도 외관상으로는 아무런 표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는 시력이 없다는 것을 쉬이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자란 곳이 산골 마을인데다가 우리 집안이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나의 병명이라든지, 또 치료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 판국이라 나의 질병의 원인을 알아보고 치료할 계제가 아니었다.

나는 한눈으로만 사물을 바라보면서 자랐고, 어느새 익숙해져 불편함도 모른 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해마다 보건소에서 출장 나와 신체검사를 실시했다. 의사는 내 병명을 ‘결막염’이라고 하면서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라고 했다. 나는 그제야 병명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20살 시절에 군의관으로부터 징병검사를 받았다. 그는 몇 가지 장비로 정밀 검사를 하고는 ‘결막염’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라고 단정 짓지도 않았다. 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다고만 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징병검사 시트지에는 우측 눈 시력 없음으로 인해 ‘제2국민역’이라고 휘갈겼다. 나는 군 면제 대상자로 분류되어졌다.

단기대학 무역과를 졸업한 후, 곧바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최종 면접에서 통과하자, 회사 인사과에서는 지정병원에 가서 건강진단서를 받아 올 것을 요청했다.

나는 시력검사를 받을 때, 간호사가 대충대충 넘어가는 것을 눈치 챘다. 나는 먼저 좌측 시력을 측정한 후, 우측은 좌측과 동일하다고 힘줘 말했다. 간호사는 내가 너무 자신 있게 말한 때문인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입사를 하고 보니, 해마다 지정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대형버스를 동원해서 회사로 출장을 나와 건강 검진을 실시했다.

나는 건강 검진을 실시하는 날마다 월차를 내거나 출근을 했다가 적당히 핑계를 대어 조퇴를 하는 방법으로 교묘히 비켜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관리직의 경우에는 한쪽 눈 시력이 없더라도 별 상관이 없었다. 잘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쫓겨날까봐 지레 겁을 먹었던 탓이었다.

20대 후반에 결혼을 하고 연년생으로 사내아이만 둘 두었다. 큰아이가 숫자를 익힌 후에 시력을 측정했더니, 우연의 일치인지 나처럼 우측 눈의 시력이 없었다. 그 시기에 갑작스레 외환위기를 맞닥뜨렸다. 하루가 다르게 달러화 대비 원화의 가치가 급전직하로 평가절하 되었고, 유동성 위기에 처한 중견기업들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나가떨어졌다.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종업원이 300인 이상이었고, 나름대로는 탄탄했던 중견기업이었다. 그러나 위기가 장기화되자,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웠든지 경영자는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사무직은 일방적으로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러나 노조의 힘을 등에 업고 버티는 생산직에 대해서는 똑같은 방법으로 처리할 수 없었다.

회사는 노조와의 끈질긴 협상 끝에 ‘소사장제’로 개편했다. 소사장제는 일종의 1인 기업체와 유사한 형태였다. 즉, 생산 부서의 조장들이 개인별로 사업자등록을 내어 기존의 자기 조원들을 데리고 독립하는 식이었다.

소속만 바뀌었을 뿐 일하는 형태는 그대로였다. 이런 방법으로 사원들을 정리하여 회사에서는 각종 복리후생비를 절감했다.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후, 나는 서울에 있는 선배로부터 동업을 제의받았다. 선배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와 같은 부서에서 과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서울에서 직원 열 명 안팎을 데리고 무역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선배가 내 우측 눈의 시력이 없음을 알고 있었던 터라, 내 신체의 부적격에 대해서는 부담감을 가지지 않았다.

서울로 옮겨온 지 5년쯤 지났을까. 작은 회사에서 전 직원이 가족처럼 화기애애하게 지내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청력이 심하게 나빠졌다. 스무 살 때부터 가끔씩 귀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기는 했지만, 아주 잠깐씩이라 크게 개의치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상대방의 말을 쉽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발음을 쉬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상대방이 내뱉는 발음이 마치 짹짹거리는 참새소리나 기계음처럼 들렸다.

이대로 계속 방치하다가는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아 회사에서 가까운 이비인후과 의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귀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면서 신경외과에서 진료를 받아보길 권했다. 나는 그길로 큰애를 데리고 대학병원 신경외과 병실에 입원했다.

의사가 권하는 대로 뇌, 눈, 귀, 척수에 대해 MRI 등 정밀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 병명은 ‘신경섬유종증’이었다. 의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병은 신체의 신경 계통에 섬유질의 종양이 다량으로 발생하여 신경을 압박하고, 종양이 서서히 커지면서 신경계를 아주 망치는 몹쓸 질병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시신경에 있는 종양이 점점 커지면 시력을 잃게 되고, 청신경에 있는 종양 또한 점점 커지면 청력을 완전히 잃게 되는 질병이었다. 뿐만 아니라, 운동신경계에도 종양이 발생하여 서서히 사지의 근력을 잃게 하는, 그리하여 종국에는 사지가 마비되는 아주 무시무시한 질병이었다.

검사 당시, 나의 상태는 우측 눈은 종양이 시신경을 완전히 잠식한 상태였고, 양쪽 청신경에도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중추신경계인 척수 전반에서도 여러 개의 종양이 신경을 압박하고 있었고, 말초신경계에서도 종양이 발생하여 운동과 감각 신경을 압박하고 있었다.

나와 함께 검사를 받았던 큰아이는 시신경에서만 종양이 발견되었지만, 의사는 질병(신경섬유종증)의 특성상 아이 또한 성장하면서 종양이 전 신경계로 퍼져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의사는 신경섬유종증은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유전되는 선천성 질병이며, 유전비율은 대개 50%라고 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어느 나라에도 치료법이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의사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한순간에 온몸에서 맥이 풀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작은애도 병원에 데리고 와서 MRI와 혈액검사 등 정밀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작은애한테서는 종양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나마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나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외가에서는 나와 같은 질병을 앓고 있거나 과거에 앓은 적이 있었던 분은 한 분도 없었다는 것이다.

의사가 2세들 중 절반은 부모를 닮는 질병이라고 했기 때문에, 의사에게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따지듯 물었으나, 의사는 질문의 본질을 두루뭉술하게 비껴갈 뿐,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나처럼 돌연변이도 더러 있다고만 했다.

의사는 나의 MRI 검사에서 나타난 후두부(後頭部) 경추에서 발견된 엄지 반 토막 크기의 종양이 자칫 사지마비, 더 나아가 전신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다면서 은근히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후두부를 개봉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거니와 회사일도 산적해 있었던 터라, 수술을 미루고 퇴원했다. 그러나 집에서 아내가 하는 말을 단박에 알아듣지 못하고 두 번 세 번씩 자꾸 되묻다 보니 아내는 짜증부리기 일쑤였다. 아이들도 아빠 때문에 못살겠다며 아우성이었다.

나 또한 짜증을 내는 날이 날로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식구들은 갈수록 나를 기피했고, 점점 대화가 실종된 가정으로 변해갔다.

회사에서의 사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이 업무와 관련하여 보고를 할 때 내가 단박에 알아듣지 못하고 자꾸 되물을 땐, 그들의 얼굴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 어려 있었다. 또한 돌아서면서 은근슬쩍 내뱉는 말은 나에게 큰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동업자인 선배 또한 나로 인해 사무실의 분위기가 점점 고약해져 가는 것에 대해 은연중에 불만을 표하곤 했다, 회사의 일이 지연되거나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땐,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다. 나는 자진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는 이 이상한 질병으로 인해 시름겨웠던 때문에, 경추신경(頸椎神經)에 있는 종양을 제거하면 청력이 회복될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내와 상의 후 경추신경에 있는 종양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수술을 하기 직전에 나는 애틋한 심정으로 주치의에게 물었다.

“교수님, 경추신경에 있는 종양을 제거하면 청력이 좋아질 수도 있나요?” 그러나 주치의는 나의 간절한 소망을 져버린 채,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경추에 있는 종양과 청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종양을 제거하더라도 청력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습니다. 다만, 사지마비의 속도를 늦출 수는 있습니다.” 나는 의사의 말은 귓등으로 흘린 채, 오직 청력이 좋아지기만을 바라며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 결과는 의사의 말과 일치했다. 청력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되레 더 나빠졌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청력마저 완전히 잃었다. 뿐만 아니라 손가락의 근력 부족으로 수저조차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경추신경에 있던 엄지 반 토막 크기의 종양을 제거하지 않았더라면 사지마비가 왔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한순간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나는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수술 직후, 나는 근력 부족으로 인해 혼자서는 걷기는커녕, 일어서지도 못했다. 의사는 재활운동을 해야만 혼자서도 일어서고, 또한 걸을 수도 있다고 했다. 퇴원 후, 나는 이제 더 이상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을 듯해 아내에게 고향으로 내려가서 살길을 모색해 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완강히 반대했다. 아내는 이제부터는 자신이 돈을 벌어 아이들과 생활을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더러는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내려가서 재활운동에 매진하길 바랐다. 사실 나는 청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탓에 서울의 골목길에서 재활운동을 할 자신이 없었다. 한동안 아내와 옥신각신하다가 마지못해 나 홀로 고향으로 내려왔다.

고향집에 도착하자, 한동안은 가족과 떨어져서 사는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생활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걷기조차 어려운 내 몸도 몸이지만,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것이 몹시도 서글펐다.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가 초등학생인 어린 두 아이를 잘 데리고 사는지에 대한 걱정 또한 태산 같았다. 한편으론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만사가 귀찮았다.

수술 후유증의 증상은 30분 이상 앉아 있거나 서 있을라치면, 수술 부위 언저리인 목과 어깨가 끊어져 나갈 듯이 아팠다. 누워 있을 땐 그나마 통증이 덜해 참을 만했다. 그러다보니 자연 누워있는 시간이 잦았다. 나는 수술 후유증인 통증을 참지 못해 수시로 확 죽어버릴까 하면서 부모님께 앙탈을 부리기도 했다. 그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눈물로 호소하셨다.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 적도 부지기수였다.

어느 정도 심리적인 안정을 찾고부터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마을 앞에 방천길을 걸었다. 동구 밖에는 들판사이로 하천이 나 있었고, 하천 양 가의 방천길은 오래전부터 콘크리트로 포장이 돼 있었다.

거리는 왕복 십 리쯤 되었다. 혼자서도 걷고부터는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이 심한 날은 혼자서 마을버스를 타고 읍내의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재활은 또 왜 그렇게나 더디든지…. 1년쯤 지나자, 다리에 웬만큼 근력이 붙어 부모님이 하시는 농사일을 조금이나마 거들 수 있었다. 그러나 고작 열 살짜리 아이들이 돕는 수준이었다.

그 이후로는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더 이상은 근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수술을 한 의사를 찾아가서 물었더니, 딱 거기까지라고 했다. 수술 전의 15% 정도였고, 그것도 신체의 부위별로 각기 달랐다. 손가락의 경우 근력 부족으로 인해 손수 손톱을 깎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의사는 다행이라고 했다. 만약 그때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사지마비가 왔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되었다면 이렇게 혼자서 병원을 방문하지도 못했을 거라면서…….

어이가 없었지만 그 말은 거짓은 아닐 터이다. 진료를 마친 후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더니, 의사는 내 손을 잡고 끌어당겨 되앉혔다. 그는 지금껏 큼지막한 메모지에 써 내려온 글 아래에 다시 휘갈겼다.

<앞으로도 꾸준히 운동하세요. 운동을 게을리하면 그 마저도 못 걸어요. 그리고 수술을 한 자리에 또다시 종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의사가 휘갈긴 메모지 몇 장을 북북 찢어 가방에 넣은 후 진료실을 나왔다. 그 이후, 나는 고향에서 힘닿는 대로 부모님의 일을 도왔고, 방천길도 쉼 없이 걸었다.

고향에 온 지도 어느덧 8년이 지났다 그동안 내 주변에서는 크고 작은 일이 많이 발생했다. 나는 수술후유증인 통증이 웬만큼 완화되고부터는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곰곰 생각해보니 학창시절에 문학, 특히 단편소설을 즐겨 읽었던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글쓰기밖에 없는 듯했다.

연필이 제대로 쥐어지지 않아 자판기를 두드린다. 인터넷카페의 ‘문학 동호회’에 가입해 회원들끼리 서로의 글을 나눠 읽으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워가고 있다. 이다음에 꼭 ‘단편소설집’을 내고 싶다.

몇 해 전부터 나는 문학작품 공모전에 작품을 응모해왔다. 그런데 장애 특히, 중증장애인이 비장애인들과 경쟁을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렵지가 않았다. 한 걸음 물러서서 가만히 관망해 보니, 비장애인과는 글쓰기에서조차 애초부터 출발점이 같지 않았다. 비장애인들이 저만큼 앞서 있었다.

나는 아직은 비장애인들과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할 게재가 못 되는 듯해, 뒤로 미뤘다. 최근에는 장애인과 관련된 공모전에만 작품을 응모하고 있다. 그런데 현상 공모전 자체가 턱없이 부족했다. 해마다 열리는 현상 공모전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에서 주최하는 <장애인근로자문화제>, 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에서 주최하는 <민들레문학상>, 기껏해야 이 정도가 다였다. 그나마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은 주최 측에서 예산 부족 관계로 더 이상은 주최하기가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나 유관 단체에서는 장애인들이 보다 더 많은 문학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현상 공모 등의 방법으로 저변 확대에 발 벗고 나서주시면 참 좋겠다. <끝>

오사카 기행

서해웅

벌써 30분 째 오사카 남바역 근처를 헤매고 있었다. 교토 여행을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룻밤 묵어가려고 오사카에 숙소를 예약했는데 약도 설명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친구는 애를 먹고 있었다. 시각장애인 친구에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인파로 북적이는 시내를 헤맨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번이나 숙소 직원에게 전화를 걸고도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친구는 전형적인 요즘 젊은 애들이었다.

스마트폰 하나로 못 하는 게 없었다. 길 찾기는 기본이었다. 낯선 곳에 가서도 스마트폰을 열어 검색 한번 하고 나면 곧장 길을 찾곤 하였다. 그러나 이곳은 일본,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없었다. 숙소 주인이 적어 놓은 간단한 설명만 가지고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너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가서 보고 올게."

나는 친구의 캐리어를 들고 길 한쪽으로 비켜섰다. 나를 남겨 두고 친구는 숙소를 찾아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오사카에서 나는 두 번이나 낯설었다. 첫 번째는 오사카 시내의 저녁 풍경과 다국적 언어들이었다. 주황색 불빛과 우리나라와 반대인 차선이 좀 달랐다.

또 지나가는 사람들이 쏟아 놓는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같기도 하고 독일어 같기도 한데 하여튼 국적을 알 수 없는 언어들이 내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 낯설음은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이제야 진정으로 서울을 떠나왔구나’ 하는 안도감마저 느끼게 했다. 큰 맘 먹고 해외여행을 왔는데 서울과 다를 것이 없다면 서운할 뻔했다.

두 번째 낯설음은 숙소를 찾기 위해 나만 남겨 두고 친구가 사라졌을 때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내가 외국에 와 있기 때문이거나 친구가 나를 남겨 놓고 가서가 아니었다. 말도 안 통하고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도시 한 구석에 시각장애인 혼자 남겨 놓고 갔다고 해서 친구를 원망하거나 겁이 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과거의 나를 발견했다.

그 과거 속 내 모습이 지금 바라봤을 때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아직은 시각장애인이 아니었던 시절 나는 헤매는 것을 즐겼다. 아버지 차를 타고 큰 도시로 나가면 으레 보이는 간판을 죄다 읽으며 외우고 다녔고 혼자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집으로 가는 새로운 길이 없나 하고 골목 이곳저곳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바람에 집에 늦게 들어오곤 하였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기가 일쑤였다.

언제부턴가 내가 좀 변하기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는 전혀 딴 판이 되었다. 길도 가던 길로만 다니고 낯선 곳은 혼자 가기 꺼려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나도 어느 새 그런 생활 주기에 익숙해져 있지만 오늘 오사카에서 지난 날의 나와 지금의 나를 대면한 순간 그 시간의 거리감에, 내 달라진 모습에 너무나 낯설음을 느꼈다.

어려서부터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돌아다니는 것을 참 좋아했다. 가만히 집에 있는 것보다 친구들과 밖에 나가 뛰노는 것을 좋아했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으레 친구네 집에 전화를 건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핸드폰이 일반화 되지 않아서 집 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면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들이 전화를 받곤 하였다. 요즘에는 발신번호도 뜨고 개인마다 전화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화 예절이라는 게 따로 필요하지 않지만 그때는 전화 예절이라고 해서 학교에서 따로 교육을 할 정도였다. 일단 친구네 집에 가서 둘이 만나 뭐하고 놀지를 정하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돈다. 주위에 친구 집을 돌아다니며 집에 있는 애들을 불러낸다.

하나 둘 사람이 모이면 그때부터 축구를 하든 비석치기를 하든 총 싸움을 하든 하는 것이다.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아주 멀리까지 가기도 하고 영화 <친구>에 나오는 것처럼 계곡으로 수영을 하러 가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도 이런 성향은 변함이 없다.

물론 현실적 한계 때문에 활동 범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기회가 되면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나다닌다. 이번 오사카 여행도 일본 여행을 가는 친구를 따라 오게 되었다.

날이 흐려지고 있었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좀 있으면 소나기가 퍼부을 것 같았다. 불안함이 몰려 왔다. 이 상황에 비까지 내리면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걱정을 하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에이씨! 길 약도만 잘 그려 놨어도 금방 찾는 건데. 괜히 어만 데서 해매고 있었다니깐!"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장 난감할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내가 어딘가를 가자고 했는데 옆에 같이 가는 정상인 친구가 그것을 찾지 못할 때 정말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 이번 오사카 숙소는 다행히 내가 잡은 것은 아니지만 친구가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방향도 못 잡고 있는 친구를 이리저리 따라다니다 보면 열차의 마지막 칸이 된 기분이 든다.

앞에서 가는 대로 무작정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끌려 다니는 것이다. 어느 때는 내가 직접 다니며 찾고 싶을 때도 있지만 낯선 곳에서 혼자 길을 찾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막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를 나서는데 비가 쏟아졌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숙소는 찾고 나서 비가 내렸으니 말이다. 곧 그칠 것 같기는 했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우산을 가지고 나왔다. 저녁은 오코노미야끼를 먹기로 했다. 자주 일본 여행을 다녔던 친구는 가끔 만나 저녁을 먹을 때면 이런 말을 했다.

"아, 이거 진짜 일본 가서 먹어 봐야 되는데……."

그 말로만 듣던 오사카에서 드디어 오코노미야끼를 먹게 될 줄은 아니 먹게 될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먹게 될 줄은 몰랐다. 먹어 보니 정말 우리나라 일식집에서 파는 것 하고는 맛이 달랐다. 아마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시장한 탓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먹는 것 보다 맛이 있었다.

이래서 그 나라 음식은 그 나라에 직접 가서 먹어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일부러 배를 다 채우지 않고 오코노미야끼 가게를 나왔다. 타고야끼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사카 시내를 걸어 다니며 타고야끼를 파는 곳을 찾았다. 우리나라 길거리 음식과 같기 때문에 식당이 아니라 즉석식품 가게에서 팔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 '도톰보리'에 도착했다.

우리나라로 보자면 청계천 같은 곳이었다. 인공 개천 위로 관광객들을 태운 보트가 지나갔다. 조그마한 나무다리를 건너니 그곳에 타고야끼 가게가 있었다. 우리는 개천이 내려다보이는 난간에 기대어 서서 이쑤시개로 타고야끼를 집어 먹었다. 가쯔오부시도 많이 짜지 않고 맛이 좋았고 타고야끼는 정말 맛이 많이 달랐다.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다.

"기본 베이스로 쓰이는 빵가루가 달라서 그럴 거야. 우리나라는 밀가루를 많이 넣는데 여기는 뭔가 다른 재료를 쓰는 것 같아."

밀가루 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맛에 민감하다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도 밀가루 특유의 텁텁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재료를 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단가도 안 맞고 구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돈키호테' 라는 만물상이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더불어 사람도 너무 많아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간간이 한국말로 아이들을 찾는 엄마의 말이 들리곤 하였다.

"병수야! 병수야!"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이놈의 애들은 어디가나 말썽이군' 어린 시절 나도 말썽이란 말썽은 다 피웠다. 그래도 어디 가서 애들하고 싸운다거나 패고 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맞고 다니기는 했는데 그것도 머리 하나는 더 있는 형들한테나 맞고 다녔지 동급생들과는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네 형들은 왜 그렇게 동생들을 못 살게 굴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학교 유리창은 한 학기에 한 번씩은 깨 먹었던 것 같고 방안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깨뜨린 화분이며 유리잔이며 안경은 또 왜 그렇게 깨뜨리고 다녔는지 그래도 내 몸 하나 안 다치기 다행이었다.

"일본 왔는데 슈크림 빵도 먹어 봐야지!"

먹으러 온 건지 보러 온 건지 물론 먹는 것도 여행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또 빵집을 찾아 헤맸다. 오늘은 하루 종일 헤매고만 찾고만 다니고 있었다.

“어, 태극기다!”

빵집을 찾아 큰길가로 나왔는데 친구가 외쳤다. 아마 오사카에 잇는 영사관인 모양이었다.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 일본하고 외교적으로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은데 일본 한 복판에 저렇게 태극기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언제쯤이면 우리도 이웃 나라와 좀 친하게 지낼 수 있으려나. 아무튼 정치나 외교는 그 일을 맡은 분들이 해야 할 일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지금처럼 서로서로 일본이든 한국이든 관계없이 서로 교류하며 지내면 되는 것이다.

나라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해서 평범한 사람들까지 서로 미워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빵집은 보이지 않았다. 목이 말랐다. 물 대신 술 한잔 하고 싶었다. 친구 녀석이 두리번거리더니 레스토랑을 하나 찾아냈다.

입구에 그곳에서 파는 음식 메뉴들이 적혀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키가 큰 점원이 계단 아래 서 있었다. 지배인 같았는데 예약을 했느냐고 물었다. 친구가 유창하게 일본어로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다른 점원이 와서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칵테이르!"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칵테일을 마시곤 했는데 이름 발음이 아무래도 조금 달랐다. 메뉴판에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로만 적혀 있었다. 친구가 읽어 주는 술 이름을 듣고 대강 짐작을 했다. 데낄라가 섞여 있는 칵테일 두 잔을 시켜서 먹었다.

술맛은 그저 그랬는데 식당 인테리어가 무척 예뻤다. 칸막이가 있을 만한 자리마다 마치 벽처럼 어항이 있었다. 식당 안을 빙 둘러 어항이 이어져 있었다. 조명도 바다 느낌을 주는 파란색이었다. 가볍게 칵테일 한 잔을 마시고 나오면서 친구는 언젠가 다시 와 봐야겠다며 레스토랑 팸플릿을 한 장 가지고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침내는 슈크림 빵을 샀다. 너무 배가 불러서 그 자리에선 못 먹고 다음날 아침으로 먹기로 했다.

다음 날 날씨는 맑았다. 가방을 챙겨 남바역으로 갔다. 나에게는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이지만 친구는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먼저 인천으로 돌아가고 친구는 여기서 다시 나고야로 여행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었다. 남바역에서 헤어져 공항에는 나 혼자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친구는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한참 생각하더니 공항까지 데려다 주어야겠다고 말했다. 나도 실은 좀 겁이 났기 때문에 공항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언젠가는 나 혼자 다니고 싶어!"

두 달 전에 비행기 표를 예약할 때 내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요즘에는 기차역이든 공항이든 장애인 편의를 많이 봐 주기 때문에 일단 그곳까지 가기만 하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여행이라고 하는 게 물론 역이나 공항까지 가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내게는 하나하나가 다 경험이기 때문에 나중에야 어떻게 방법이 있으리라 믿고 일단은 혼자 비행기라도 한번 타 봐야겠다 싶어 돌아올 때는 혼자 오기로 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처음 가는 거니까 인천공항에서 출발해야겠다. 김포공항은 뭐랄까 좀 허전해. 음, 뭔가 여행가는 기분이 안 나더라고!"

친구는 세심한 면이 있었다. 난생 처음 해외여행을 하는 나를 위해 작은 것 하나도 다 배려해 주었다. 김포공항은 공항도 작고 뜨는 비행기도 많지 않아서 뭔가 비즈니스하는 곳 같다며 여행의 설렘을 느끼기엔 아무래도 조금 멀기는 하지만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편이 낫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인천공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오사카 공항에 도착하여 도움을 요청했다. 시각장애인임을 말하고 안내를 요청하자 두 사람이 나에게 붙었다. 한 분은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제주항공사 직원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오사카간사이공항 남자직원이었다. 두 사람이 나를 게이트 안까지 안내해 주었다. 비행기 안에서는 우리나라 직원이 안내를 해 주었다. 좌석번호와 관계없이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내 옆에는 한 일본 아주머니와 어린 딸아이가 같이 탔다.

"쓰미마셍"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한테 미안할 일이 없는데 왜 이런 말을 하지? 아주머니의 서툰 한국말이 이어졌다.

"아이가 울 수도 있어서……. 미리 말해요."

"오, 오네, 오네가이시마쓰. 아, 괜찮습니다!"

엉겹결에 말이 나왔다. 아이는 처음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가 이륙하고 나니 갑자기 훌쩍 훌쩍 울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당황하지 않고 아이를 안더니 조그맣게 노래를 불렀다. 자장가 같았다.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냈다. 죄송하지만 녹음을 했다.

이번 여행 동안 내내 스마트폰으로 여행 전 과정을 녹음했다. 그냥 녹음기능을 켜 놓고 돌아다녔다.

"난 굳이 사진이 필요 없어. 나중에 보지도 못 할 텐데. 이 방법이 내게는 더 좋은 방법이야!"

오사카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녹음을 시작했다. 중간 중간 꺼 놓을 때도 있었지만 여행 내내 알 수 없는 말들과 풍경들을 녹음했다.

공항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 교토로 가는 급행열차 안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인파로 가득한 시내의 소리들을 되는 대로 녹음했다. 저장된 소리를 당장 듣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우연히 핸드폰을 뒤지다가 이 소리를 듣는다면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다.

특히 아주머니의 자장가 소리는 나도 잠이 오지 않을 때 한번 찾아서 듣고 싶다. 아마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아주머니는 아이의 등을 찬찬히 두드리며 아이를 진정시켰다. 어느 새 아이는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1시간 20분 정도 날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다른 승객이 다 내리고 나는 직원과 함께 마지막으로 비행기에서 내렸다. 무전기로 연락을 주고받더니 세관 밖에서 다른 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까지 나를 데려다 준 직원은 아마 그 문으로는 나올 수 없는 모양이었다.

"혼자 다녀오시는 길인가 봐요?"

"네, 나갈 때는 친구랑 갔었는데 올 때는 혼자 들어오게 됐네요."

"그래도 이렇게 혼자 다니시는 걸 보니 용기가 대단한 분 같네요."

"다 도움 주시는 분들 덕분이죠 안 그랬으면 엄청 헤맸을 겁니다."

"보통 사람들도 공항에 오면 헤매요."

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역시나 항공사 직원은 공항철도 역까지는 데려다 줄 수 없었다. 매표소 입구에서 다시 철도직원을 불러 나를 인계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에 앉았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상인도 장애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지만 반대로 장애인도 정상인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실은 내가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뻔히 보이는데 그걸 왜 못 찾아? 내가 보이기만 하면 다 찾을 텐데 왜 보고도 못 찾아?'

길을 못 찾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보인다고 해서 다 찾을 수 있는 것 아니었다. 빤히 보고도 못 찾는 사람도 만만치 않게 많다. 이 생각을 한번 더 뒤집어서 봤으면 좋겠다.

"정상인들도 못 하는 부분이 있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로 봤으면 좋겠다. 그냥 좀 못 보는 것이고 잘 걷지 못하는 것이지 장애인은 아니다. 장애인이라고 하면 다들 무겁게 생각하는데 그러지 말고 그냥 좀 부족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말 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이런 꿈을 꾸며 열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아름다운 비상

신계원

교통사고로 목을 다쳐 전신마비란 충격적인 장애1급 판정을 받은 뒤 꿈과 희망을 모두 잃어버렸다. 상실감으로 오직 생각하는 것은 죽음뿐 우울증으로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과 이웃, 특히 엄마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가 주름만 늘어가고 있었다.

  결국 가슴앓이로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셨고 몇 년 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한 번도 곁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죄책감으로 사람들과의 만남은 차츰차츰 줄어들고 마음의 문은 굳게 닫혀만 갔다.

나의 하루는 거의 반복적으로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스스로 마음을 위로하고 위로를 받는 것이 일상화였다. 그런 와중에 집안사정으로 갑자기 활동보조인이 바뀌었고 활동보조인은 무척이나 활동적이고 나에게 많은 용기와 도전을 갖게 해줬다.

  오월 어느 날 우연히 동료상담을 소개받고 9년이란 긴 세월 병원 외에는 한 번도 가족을 떠난 외출을 하지 않은 나는 용기를 내어 기초과정을 신청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발을 다치고 말았고 한 달이면 치료가 끝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과는 달리 두 달이 넘었는데도 좀처럼 반응이 없었다.

교육날짜는 코앞에 다가왔고 나의 첫 외출 비행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렵게 결정한 만큼 교육에 참석하기로 결심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딛고 할 수 있다는 신념하나로 교육에 참석했다. 첫 날! 첫 시작 상담선생님의 소개와 인사에 나는 그만 심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강사님은 경추손상으로 손가락 하나 까닥 할 수 없는 나 보다 더 심한 동료였다는 사실에 갑자기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지금까지 무얼 했는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강사님이 그동안 느꼈을 아픔과 고통은 물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었으며 당당하게 강의하는 강사님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리고 빡빡한 프로그램은 처음 접하는 나에겐 벅찬 과정이었고 모든 것들이 어색하고 낯설었다. 하지만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아픈 다리 한쪽을 의자위에 올리고 열심히 상담에 임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쌓였던 것들을 토해내고 알 수 없는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처음 보는 동료들 앞이라 창피하기는 했지만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듯 후련하고 시원해졌다.

그 후 우리는 서로를 지지해 주며 걱정하는 사이가 되었고 길게만 느껴졌던 2박3일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비록 입안이 헤어지고 입술은 부르텄지만 첫 외출은 나에게 다시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한 달 뒤, 아직 비행의 여운이 가슴에 남아있는 상태에 심화과정을 신청했다. 두 번째 경험이라 약간 두근거렸지만 첫 시간을 차분히 맞았다. 밝게 웃는 모습은 처음 대하는 얼굴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았고 가족과도 나누지 못했던 깊은 속내를 털어놓음으로 마음의 문을 쉽게 열 수 있었다. 우리는 빠른 시간에 동료에서 가족으로 변해갔으며 동료들과의 소통으로 자신감은 더욱 깊어졌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장애의 편견을 버리고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을 배워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해 본다. 그리고 무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강해지는 모습을 터득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신 강사님을 또 다른 나의 롤 모델로 내안에 우뚝 세웠다.

며칠 후 반가운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러 가지 조건들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비행에 대한 열정 때문에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강한 태풍이 몰려온다는 기상청의 날씨 보도가 TV를 통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중증 장애인으로 혼자 휠체어를 밀고 갈 수 없음은 물론 아직 전철을 한 번도 타 본 경험이 없는 나는 자칫 날씨 때문에 마음과 달리 비행을 접어야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날씨와 환경의 변화에 제약을 받아야하는 내 몸이 아주 싫었다. 그런데 나의 속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고맙게도 콜택시를 예약해 주신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배려에 또 다시 활력이 생겨났다.

다음 날 아침 나의 비행을 미리 반기는 듯 오던 비가 그쳤고 내 몸이 딱 좋을 만큼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였다. 전철을 타고 가는 동료들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 마음에 창밖을 보는 순간 이름 모를 들꽃과 푸른 초록의 숲과 나무들이 마음을 즐겁게 해주면서 진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상큼한 바람과 향긋한 꽃 냄새가 내 마음속 깊이 들숨을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눈을 감고 모든 자연들을 내 품안으로 불러들여 마치 새처럼 창공을 누비며 바람 따라 온 누리를 누비고 다녔다. 내가 정서적으로 변한 것인지 변한 자연을 내가 잊고 살아왔는지 사고 뒤 자연의 신비함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피부가 호흡하고 있을 즈음 그동안 생활하면서 자연에 대한 고마움도 자신에게 소홀함도 다 잊고 살아온 미안함에 잠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이런 혜택을 누려도 되는지 다시금 생각에 젖어들었다.

  교육장소로 도착한 나는 첫 비행과 두 번째 비행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 번 교육에 참석한 동료들은 현재 소장 직을 맡고 있거나 강사로 활동 중이며 대부분 센터직원들이었다. 모두들 자신의 위치를 당당하게 소개했지만 차례가 돌아온 나는 소개할 것이 없어 위축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곳에 참석하도록 배려해준 분의 얼굴이 스치는 순간 생각을 달리했다.

  교육은 계속 이어지고 인간의 권리는 물론 어떻게 하면 사랑받고 존중받는 사람이 될 것인지 어떠한 법들이 바뀌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토론하고 발표하는 모습은 참으로 든든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장애인의 삶을 살아오면서 항상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고민해 왔다. 불편한 몸이 되었으니 불편하게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으며 항상 자신은 뒷전이었고 아픔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해 오다 보니 육체의 장애는 장애라고 할 수가 없었다. 결국엔 마음의 장애까지 입게 되어 스스로 2차 장애까지 만든 동료가 있었다.

죄책감과 우울증으로 눈물만 흘리던 동료가 웃음을 되찾고 마음을 읽어주고 받아주는 모습들은 나를 더욱 살맛나게 했으며, 역시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지 말고 그 기회를 잡는 것도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나를 성장시킬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만남 때 보다 달리 아주 커 보였던 동료들과도 믿음과 신뢰가 생기면서 우정도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생각을 조금 바꾸고 나니 발전하는 내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기다림은 또 다른 설렘을 주듯 어느새 나는 4번째 비행의 첫 발을 내딛고 있었다. 이번 4차는 전국지역 80명중 교육태도와 원고작성 심사결과 지역대표로 뽑힌 동료들이라고 했다.

특히 “동료상담 양성과정 장기강좌 육성 프로젝트”로 각자 정해진 태마에 관한 시나리오와 원고를 준비하여 교육생이 직접 진행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졌다. 경기도 3명중에 포함된 나는 부족함이 많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감정해방 진행을 맡은 나는 갑자기 쌓였던 감정이 올라와 말을 잊지 못하고 원고를 준비해 갔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감정이란 자신도 억제할 수 없는 것이므로 상담을 하는데 강점을 가지고 있다며 강사님은 오히려 칭찬을 하셨다.

하지만 나는 자신에게 크게 실망하고 무엇이 나를 이토록 변하게 했는지 사고 전 모습으로 되돌아가 보았다. 언제 컴퓨터 학원을 운영했는지, 유치원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절이 있었는지, 당당했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소심해진 모습뿐이었다. 나는 이번 실습에서 동료들에게 기대시키기에는 충분하지 못했지만 나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우여곡절은 일본연수까지 이어졌다. “중증장애인의 지역사회 참여와 사회통합을 위한 동료상담 육성 프로젝트”는 4차 교육을 거친 교육생과 스텝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특히 일본연수 길은 그림자나 다름없는 활동보조인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만 했다. 중증 장애인인 내가 일본까지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도전과 열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은 어려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 탑승에서부터 언어와 문화 특히 이동은 모두 전철을 이용해야 했음으로 경험하지 못한 나로서는 몸도 마음도 모두가 힘들었다.

하지만 모든 어려운 것들을 극복하고 나니 다른 세상이 마음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자연풍경, 교육을 받는 즐거움, 동료들과의 우정, 진작 경험하고 누려서야할 마땅한 일을 십육 년이 지나서야 경험을 하면서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마냥 신이 났다.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신기해하며 도전하는 넉넉한 마음까지 생겨났다.

장애를 가진 뒤 불신과 원망으로 가득 차있었던 자신을 깊이 반성하게 되고 앞으로는 육체의 장애든 마음의 장애든 긍정으로 생각하고 장애의 멍에에서 벗어나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하는 생활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이 가족과 나를 위하는 길이라 믿고 오직 희망만 바라본다.

지금까지 많은 갈등과 고통이 따랐지만 나에게 다시없는 소중한 시간으로 새롭게 거듭 날 수 있어 얼마나 축복된 시간이었는지를 되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십육 년 동안 내 속에 얼어붙었던 것들을 녹여 낼 수 있어 다시 한 번 감사하게 생각하고 정체성 회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내 자신에게 묻고 자존감 회복은 물론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며 많은 경험들은 훗날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임도 확신한다.

짧고 굵은 여정을 마치고 몸은 힘이 들었으나 마음은 민들레 홀씨처럼 저 허공을 가볍게 날고 있다. 새끼 새가 스스로 먹이를 찾아 비행하듯 나 역시 날아오를 수 있도록 여러 번의 비행을 통해 앞날을 준비하며 겨우내 얼었던 심장을 활짝 열고 세상 밖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어딘가에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동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찾아가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하면서 십육 년 만의 외출로 새로운 삶을 다시 찾은 나의 경험을 들려줌으로 그들도 장애를 수용하고 가족이나 지역사회역할 안에서 인간관계를 재구축하여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도록 가슴과 마음을 다할 것이다.

그리하여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새 잎을 피워 올리는 봄같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동료들의 입가에 미소가 맴돌고 메마른 마음에도 희망의 봄꽃이 피어나길 꿈꾸며 나를 출발점에 세운다.

2014년 3월 21일 신 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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