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근영 씨가 각 병실로 챠트를 배달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순천향대학교부속서울병원(이하 순천향대서울병원)에 가면 진료실 복도를 쉼없이 누비고 다니는 하근영(20, 지적장애 2급) 씨를 만날 수 있다. 환자들의 진료 챠트를 기록실에서 진료실까지 직접 배달하는 ‘챠트맨’. 복잡한 구조의 병원 건물을 오가며 각 과의 외래 진료실을 정확히 찾아 챠트를 배부하고 수거한다.

하근영 씨는 순천향대학교부속서울병원에 취업한 중증장애인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원장 변용찬) 중증장애인직업재활 지원사업으로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직업적응훈련을 받고 취업알선을 통해 3주간 지원고용을 거친 후 2013년 9월 정식 채용됐다.

챠트를 전달하는 근영 씨의 표정이 밝다. ⓒ에이블뉴스

처음 근영 씨는 문을 열어주는 도어맨이었다. 그런데 본인은 병원안내 업무를 하고 싶어 했다. 그러려면 병원 구조를 알아야 했고, 일을 마친 후 매일 병원을 두 바퀴씩 돌기로 복지관 담당과 약속을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 두 바퀴씩. 근영 씨는 점차 무슨 과 진료실이 어느 건물 몇 층, 어디쯤 있는지 척척 맞추기 시작했다. 직접 돌아다니며 발로 익힌 위치를 말로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였다. 병원 안내 담당자로 OK.

이를 지켜본 병원 관계자와 복지관 담당자는 그동안 간호사들이 일일이 챠트를 가지러 다니는 것이 불편했는데, 건물 지리를 잘 하는 근영 씨라면 ‘챠트 배달’도 잘 해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근영 씨에게 딱 맞는 새로운 직무였다. 지금, 근영 씨는 챠트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됐다.

“하나도 안 무거워요. 재미있어요.”

챠트를 들고 병원 복도를 오가는 근영 씨의 표정에는 항상 미소가 넘친다. 그 모습을 보는 간호사들도 덩달아 함께 웃는다. 알 듯 모를 듯 병원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근영 씨는 스스로 병원 근무를 매우 즐거워하고, 보람도 느낀다. 한 팀에 소속돼 있는 비장애인 형들과의 관계도 아주 좋다. 병원 내 동료들과의 관계 맺기 등 사회생활을 잘 해내고 있고, 본인도 그 점을 뿌듯해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통합 중심에 근영 씨가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병원 복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마치 내집처럼 잘 알고 있는 하근영 씨. 얼굴에 항상 자신감이 넘쳐난다. ⓒ에이블뉴스

“사실 처음엔 고민이 많았죠. 어쩌면 모험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병원이 서비스업이라 장애인을 보는 환자분들의 반응이 어떨까 걱정이었죠. 그런데 우리 친구들이 워낙 잘 웃고, 또 인사도 잘 하니까 환자분들도 좋아하시더라고요.”

특히, 몸이 아픈 환자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남달랐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큰 아픔을 가졌을 수도 있는 장애인들이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문을 열어주니 오히려 고마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홍보팀 이상엽 씨도 큰 수술 후 회사로 막 복귀하였을 시기에 씩씩하게 일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근영 씨를 시작으로 순천향대서울병원은 장애인 고용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됐다.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의 지원으로 근영 씨 포함 14명의 장애인을 더 고용했다. 사무보조, 콜센터, 도어서비스, 안내, 챠트 등의 분야에서 근무 중인 장애인 직원은 총 20여 명, 그 중 10명이 중증장애인이다. 근무 중인 장애인 대부분은 근영 씨처럼 일이 재미있고 즐겁다. 그들의 밝은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근영 씨는 병원내 동료들과도 친하게 지낸다.(사진은 홍보실 이상엽 씨와 함께) ⓒ에이블뉴스

순천향대서울병원 박태성 사무처장은 “처음에는 염려스러웠지만 막상 그 현장을 들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도어서비스에 감사하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을 느꼈다. 그 모습에 오히려 직원들이 장애인과 장애인 고용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장애인이 아닌 우리가 고용한 평범한 한 명 한 명의 직원으로 함께 하고 있다. 그들이 있어서 특별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앞으로 더 많은 장애인 채용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자립기반과 담당 과장은 “하근영 씨와 같은 일자리창출 사례는 현장의 전문 기관과 정부에서 지원하는 직무지원인이 협력하여 근로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일자리를 개발한 사례”라며, “앞으로도 정부와 현장 전문기관의 협력을 통해 맞춤형 일자리가 많이 개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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