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 #1 계단

나는 직장을 다니며 가끔 취미로 암벽등반과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리고 운동을 좋아해서 누구보다 더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 평범하고 건강하기에 때가 되면 좋은 사람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아서 크면 같이 스킨스쿠버도 즐기는...그런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연치 않은 사고로 평범했던 내 삶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며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999년 1월18일 밤늦은 퇴근길, 회사동료차를 타고 회사 정문을 나선지 채 5분도 되지 않은 급커브 길에서 커브를 틀지 못해 차가 전복되었다. 그 순간 나는 목을 다쳐 목 이하로 내려오는 신경이 끊기는 사고로 그만 전신마비장애인이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고는 과중한 업무로 피로가 쌓인 동료운전자의 졸음운전 때문이었다.

설상가상, 회사동료는 자동차보험을 종합보험이 아닌 책임보험만 들어 있었고, 회사에서도 퇴근길 교통사고는 산재보험적용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1년여의 병원생활을 하고 저에게 남겨진 것은 혼자서는 밀 수 도 없는 휠체어 한대와 목 신경 손상으로 인한 전신마비장판정의 장애인등록증이었고, 퇴원 후 나는 중증의 장애와 경제난이라는 이중고에 부딪치며, 이 사회에서 중증의 장애인으로 살기위해 치열한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는 27살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할 즈음 저의 집은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단독주택에 살다보니 계단이 많아 정든 집을 떠나 아파트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파트로 이사했어도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인터넷도 전동휠체어도 지금처럼 보편화되어있지 않다보니 밖을 나서기도 힘들고, 딱히 할 것도 없어 그냥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TV를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렇게 2년 가까이를 사회와 격리된 채 살다보니 서서히 마음의 병이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이렇게 평생을 방안 침대에 누워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산다는 게 너무나도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방을 벗어나야 겠다고...

그 이후 컴퓨터를 구입하여 인터넷을 하게 되었고 우선 장애관련기관을 찾아다니며 중증의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상담을 하였지만 “아직까지 중증의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꼬박 2년 동안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노력하였지만 고졸에 중증의 장애까지 있는 내가 일할 곳은 이 세상에 없는 듯 했다.

손을 쓸 수 없기에 생산직에서 일하기는 힘들고, 4년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지만 다시 공부할 수 있는 여건도 안되고 그래서 다시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생각 끝에 내린 선택은 보험업이었다.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인맥도 있었고 내가 자동차사고로 장애를 입었기에 누구보다 더 보험의 중요성을 알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바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만들어 보험대리점 소장님을 만나 설득하였지만 처음에는 허락해주시지 않아 찾아가기를 반복해 드디어 3번의 설득 끝에 허락을 받고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큰 장애는 계단

장애인이 된지 5년이 지난 2003년 12월, 드디어 다시 일을 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보험업이라는 것이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보니 문제는 계단이었다. 경기도의 중소도시인 이천에서 영업을 하려니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이 드물었다. 거기다가 1층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입구에는 계단이 한 두 계씩은 있었다. 일반휠체어도 아니고 무거운 전동휠체어를 타고 영업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이 계단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내가 일하는 사무실이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이전을 하게 되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으로 이전을 하게 되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미리 계약이 되 있던 터라 어쩔 수 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출근을 해서 사무실에 전화를 하면 직원 몇 분이 우르르 내려와서 나를 들고서 4층까지 올라가고 퇴근할 때도 1층까지 들고 내려가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4층까지 들고 올라가야 하는 나도 힘이 들었지만 매일 같이 전동휠체어와 같이 나를 들고 올라가야 했던 동료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했다. 그렇게 들려 다니기를 2년, 시내에 새로 지어진 5층짜리 건물로 다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 아싸! 하며 환호를 외첫다. 새로운 건물로 첫 출근을 하던 날 이제는 동료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는 데 이런 엘리베이터가 1층에 있는 게 아니라 반층의 계단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 그래서 어쩔 수없이 다시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동료의 도움을 받아야만했다. 그나마 4층이 아니라 반 층이라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일을 하고 있다.

출근하기위해 매일 올라가야하는 계단

2003년 12월에 첫 출근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010년 9월, 7년째가 되었다. 그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제일 힘들었던 일이 바로 계단과의 싸움이었다. 계단 때문에 올라가다 휠체어에서 떨어질 뻔한 일도 많았고 계단 때문에 실적을 놓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힘들어도 지금까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거워도 힘들어도 묵묵히 도와주신 직장 동료 분들의 배려와 알지 못하는 분들께 도움을 청해도 선뜻 도와주시는 분들의 성의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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