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이상의 장애등록을 거부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2개의 장애가 동시에 표기돼 있는 복지카드. ⓒ복지부

대구시에 거주하는 김지선(48·가명) 씨는 얼마 전 병원으로부터 시각장애 6급 진단을 받았다. 김 씨는 '견인성망막박리' 증상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은 것은 물론, 나머지 한 쪽 시력도 많이 나빠진 상태다. 책과 텔레비전도 보기 힘든 김 씨. 시력에 도움이 될 보조기기를 지원받고자 주민센터에 문의했지만 직원으로부터 "장애등록 서류에 시각장애를 올릴 공간이 없어 등록이 곤란하다"는 답변만 전해들었다. 이미 김 씨가 호흡기장애 1급과 지체장애 5급의 중복장애로 등록돼 있어 더 이상의 장애 등록은 힘들다는 답변이었다.

장애 등록은 오직 두 가지만, 장애 하나는 포기하라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게 아닌데…, 여러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게 참 서글프단 생각이 듭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 안경이나 독서확대경을 사는 것도 큰 부담인 김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저곳 전화해 문의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장애는 두 가지만 등록할 수 있다. 시각장애에 관한 보장을 받고 싶으면 기존 지체장애 등록을 포기하라'는 말 뿐이었다. 호흡기 장애로 가정산소치료서비스를 받으며, 고관절 인공다리수술로 전동휠체어를 지원받고 있는 그였다. 김 씨는 "휠체어가 없으면 다닐 수가 없다. 지체장애를 포기하면 휠체어를 지원받을 수 없는데 어떡하느냐"고 토로했다.

결국 김 씨는 지체장애를 선택하고 시각장애 등록을 포기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기 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됐다. 김 씨는 '시각장애'가 있지만 '시각장애인'은 아닌 것이다.

2010년 장애인복지사업안내에 나와 있는 '장애인 등록 및 서비스 신청서'. 장애유형에는 '장애명' 하나와 '중복장애명' 하나를 쓸 수 있는 공간(빨간 테두리 부분)만이 있다. ⓒ보건복지부

결국, 장애등급 상향 조정 막기 위한 조치인가?

김 씨 관할 지역의 장애등급심사를 맡고 있는 국민연금공단 지사 관계자는 "장애등급이란 게 여러 장애를 다 가진걸 중복합산하게 되면, 등급이 상향 조정 될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규정상에 주 장애와 부 장애 두 가지로만 등록할 수 있도록 한 걸로 안다"고 전했다.

이같이 장애 등록을 두 가지로 제한한 것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관계자는 "퍼센트로 매기는 장애등급 심사를 장애 유형별로, 등급별로 똑같은 잣대를 긋고 합산한다면 그 과정에서 애매한 상황이 발생한다"며 "1급 장애인과 6급이 6개 있는 장애인의 불편함은 1급 장애인이 더 중한데 같게 볼 순 없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즉, 중복장애 합산을 통해 장애등급이 상향 조정되는 것에 대한 기준을 잡기 어렵다는 것.

이어 이 관계자는 "장애진단서는 다 받아서 장애등급을 기록상 등록해두고 상황에 따라 (부 장애 등록을) 바꿔가면서 유동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받는 방법밖엔 없다"며 중복장애에 따른 서비스가 동시에 필요한 장애인은 불편을 감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현재 김 씨의 시각장애 등급 이력은 주민센터에 기록으로만 남겨 있다. 관절 운동을 위해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역 내 재활운동시설을 찾는 김 씨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사실 많은 부분이 걱정되지만, 다리 운동을 위해선 위험을 감수하고 다닐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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