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인 20대 A씨의 어머니. “제발 생존권을 보장해달라”고 호소했다.ⓒ에이블뉴스

살아있는 지금이 생지옥이라고 했습니다. 매일매일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며 눈물을 계속 쏟아냈습니다. 제발 좀 들어달라고, 이 지옥 같은 현실을 알려달라고 손을 붙들고 애원했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그 가정에 아무 말도 덧붙일 수 없었습니다.

2년 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제발 장애인으로 인정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던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인 20대 A씨의 가정은 바뀐 게 하나 없습니다. 장애인 등록만 되면 살길이 열릴 줄 알았지만, 삶은 여전히 지옥입니다. 어머니의 바람은 그저 아들이 고통 견뎌낼 수 있도록,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생존권을 보장해달라” 그뿐입니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임을 알리는 안내문. ‘접촉금지, 조금이라도 건드릴 경우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라고 써있다.ⓒ에이블뉴스

■학폭 피해 교통사고로 CRPS, “매일이 지옥”

서울 강동구에 사는 A씨는 중학교 1학년이던 2014년, 동급생으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하는 과정에서 차도로 밀려 차에 깔리는 교통사고를 당해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를 갖게 됐습니다. CRPS는 외상 후 특정 부위에 만성적으로 극심한 통증이 계속되는 질환으로, 피부에 옷깃만 살짝 스쳐도 격렬한 고통을 겪는 ‘지옥’과도 같은 질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씨의 경우 현재 매일 통증으로 밤잠을 설쳐 마약성 진통제와 마취 연고를 투약해야 간신히 잠들 수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통증 경련 등으로 응급실로 달려가 정맥주사로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도 일상입니다. “아이가 새벽 2시에 통증으로 깼어요. 겨우 약 먹고 마사지하며 자다 깨다 6시에 겨우 잠드는 것이 일상이에요.” 하루하루 치열하게 견디고 있습니다. 제발 장애인이 돼서 이동지원, 생활지원을 받을 수 있길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CRPS가 장애인복지법상 장애로 인정되지 않았던 2020년 10월, 국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제발 장애로 인정해달라”고 호소하기까지, 7년간 민원을 안 넣어본 곳이 없습니다. 복지부, 서울시, 강동구청 갈 수 있는 곳은 다 갔습니다. 그때마다 ‘통증은 장애가 아니다’란 말만 받았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2021년, CRPS에 대한 장애등록 필요성이 제기되며 A씨는 처음으로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장애심사를 받아 ‘장애’로 인정받았습니다. CRPS에 대한 장애인 등록 본격 시행일인 4월에 한 달 앞선 날이었습니다.

“법이 바뀌어서 이제 등록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의사 선생님 10여 분이 오셔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며 ‘너 정말 힘들었겠다’, ‘장애가 심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아들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싶은 엄마가 어딨겠어요? 하지만 살길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어요.”

A씨의 활동지원 급여제공 일정표. 부족한 시간은 ‘전액자부담’, ‘한시적 돌봄지원’ 등으로 메우고 있다.ⓒ에이블뉴스

■어렵사리 ‘경증장애’로, 활동지원 턱없이 부족

하지지체기능장애에서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경증)'. 아이의 장애 상태가 심하다며 항의했지만, 통증은 무조건 심하지 않은 장애로만 등록이 된다고 했습니다. 장애인이 되면 살길이 열릴 줄 알았지만, 지옥은 계속입니다. “도움받은 것은 욕창방석 지원, 자부담 10% 이거 하나에요. 휠체어 3대는 장애등록 전에 모두 100% 자부담으로 사둔 것이에요.”

장애등록 후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신청을 했지만 판정 결과, 15등급 중 가장 아래 등급인 월 90시간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조사표상 통증 항목이 없어 안타깝다는 말만 따라옵니다. 2번의 이의신청, 그리고 조정신청까지 겪고 나서야 한 단계 올라 120시간을 받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오죽했으면 오피스텔을 얻어 아들을 1인 가구로 만들라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웠던 거죠. 오피스텔로 월세를 낼 정도로 여유가 있다면 활동지원을 신청했겠습니까?”

여러 호소 끝에 강동구로부터 지난달부터 월 20시간의 추가시간도 받아 월 140시간까지 얻었지만, 여전히 부족하기만 합니다. 직접 활동지원을 하거나, 지인, 친척까지 모두 동원해 활동지원비를 주고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절박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서울시 한시적 돌봄지원 서비스인 ‘돌봄SOS센터’까지 신청했지만, ‘연 12회, 하루 8시간’ 서비스는 두 달 안에 모두 끝이 났습니다. 3번의 연장을 받았지만, 앞으로 더 연장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내 서울수중재활센터에서 개별수중운동 프로그램을 받고 있는 A씨 모습.ⓒ에이블뉴스

■재활 치료 병원‧복지관 방문, 장애인콜택시 이용 NO

A씨는 재활치료를 위해 ‘CRPS 치료 클리닉’이 있는 분당서울대병원, 종로서울대병원, 중앙보훈병원, 그리고 일주일에 3번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내 서울수중재활센터를 방문해야 하지만 경증장애라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지 못합니다.

거주지인 서울장애인콜택시 이용대상이 ‘보행상 장애가 있는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국한됐기 때문입니다. 가장 절실했던 이동권이지만, 장애등록 전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난해 서울시 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 진정을 넣어 시정 권고 결정을 받았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비싼 비용을 감수해 민간업체의 밴을 호출하지만,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로 번번이 승차를 거부당합니다. ‘아이가 아픕니다. 제발 태워달라’고 빌거나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쥐여주며 겨우겨우 탑승합니다. 휠체어 탄 아들을 시트로 옮겨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다리를 감싸줘야 합니다. “서행해주세요.”, “안전턱 조심해주세요”란 말도 끝없이 해야만 합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해보려 했지만, 스치기만 해도 통증을 느껴 번번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제는 지하철 탑승 자체에 트라우마까지 생겼습니다.

“성남에서는 휠체어 타면 특별교통수단 이용이 가능해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돌아올 때는 이용할 수 있어요. 인근 하남시, 남양주시 등도 다 돼요. 근데 집이 서울이니까. 이사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어요.”

매일 휠체어 탄 아들을 들고 나르느라 50대인 어머니의 몸은 온통 파스 투성이다. 그럼에도 “내 다리를 내어주고 싶다”고 호소했다.ⓒ에이블뉴스

■8년간 아들 돌봄 파스 투성…“내 다리 내어주고 싶다”

매일 휠체어 탄 아들을 들고 나르느라 50대인 어머니의 몸은 온통 파스투성이였습니다. 옷을 들어 올려 허리에 붙인 파스까지 보여줬습니다. 미뤄둔 주사 치료도 최근에야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팔을 쓰지말라’고 야단을 맞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들을 돌볼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통증으로 두 시간 간격으로 깨는 아들을 돌보느라 한 시간도 못 자는 매일 눈에 핏발까지 섭니다.

“약을 먹이고 진정되길 기다려 마사지해주며 살피고 그것밖에 해줄 게 없습니다. 대신 아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다리를 내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중도장애 8년, 가해자로부터 치료비 한 푼 받지 못한 채 여전히 민사소송은 1심에 머물러 있습니다. 집안 경제는 무너진 지 오래. 어머니는 아들의 통증이 악화되지 않도록, 그저 견딜 수 있도록 재활 치료, 병원에 갈 수 있길 바랍니다.

24시간 활동지원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최소 병원 가고 수중재활치료를 받을 시간, 주 보호자인 어머니의 치료를 받으며 일하는 시간 최소 월 282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현재 받는 140시간에 추가로 142시간만 국가가 지원해준다면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당장 직업이고 학교를 떠나서 아이에게 마약 안 먹이고 그냥 견뎌낼 수 있도록 재활하고 병원 갈 수 있는 시간만 활동지원을 지원해줬으면 좋겠어요. 국가에서 자립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지금은 ‘집에만 있어라’, ‘집안 빨리 망하라’는 것 같아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인터뷰 당일, 어머니는 늦은 시간까지 인터뷰한 기자에게 고맙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다음날 꽉꽉 채운 8개의 문자 속에는 아들을 향한 애끓는 모정이 그대로 ‘훅’ 느껴졌습니다.

다음 달이면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지 3년이 됩니다. 과연 장애인들은 욕구와 환경을 고려한 필요한 서비스를 충분히 받고 있을까요? A씨의 어머니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동물원 원숭이처럼 이곳저곳에서 아들의 장애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 미안할 뿐입니다. 하루하루 견뎌내는 A씨의 가정에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길, 제도 사각지대의 벽이 허물어지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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