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28일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선전전 참여에 앞서 이준석 당 대표의 발언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있다.ⓒ에이블뉴스

28일 오전 8시, 인수위원회가 있는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7-1) 앞.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혐오 조장’ 발언을 두고, 같은 당 시각장애인 비례대표인 김예지 의원이 무릎을 꿇고 장애인들과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이준석 대표는 지난 25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이동권 투쟁에 대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적어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갈라치기’라는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적절한 단어 사용이나 적절한 소통으로 여러분과 마음을 나누지 못해 정치권을 대신해서 사과드립니다.” 자신의 안내견 ‘조이’와 함께였다.

김 의원은 “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장도, 대통령 당선인도, 당 대표도 아니다. 집회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국민께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지를 조정하고, 조절하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가 말로만 통합하는 게 아니고, 또 말로만 국민의힘이 아닌 차기 정부의 목표인 사회통합을 위해 여러분과 함께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인수위에 여러분의 입장을 잘 전달해서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예산이 100%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해서 설득하고자 노력하겠다”면서 사회를 향해서도 “장애인이 편해야 여러분도 편하고, 우리 사회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도록 함께해 달라”는 말도 남겼다. 나아가 “여러분의 갈등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조율하고자 항상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며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28일 오전 8시 20분 인수위원회가 있는 3호선 경복궁역에서 충무로역 방면으로 떠나는 열차에 탑승했다. 시각장애인 김예지 의원도 함께 한 모습.ⓒ에이블뉴스

그리고 오전 8시 20분, 인수위원회가 있는 3호선 경복궁역에서 충무로역 방면으로 떠나는 열차에 탑승했다. 7대의 휠체어와 함께였다. 출근길 시민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조용히 대학생 6명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지지합니다’라는 피켓을 높이 올렸다. “불편해도 괜찮습니다.”

“출근 못 하게 방해하느냐”는 항의와는 달리, 실제 현장에선 전장연의 운행 방해도, 열차 지연도 없었다. 그저 지하철 안내 요원이 안전발판을 깔고, 7대의 휠체어 탄 장애인이 탑승하느라 시간이 걸린 것뿐이다. 약 5~6분 정도였다.

전장연은 함께 출근하는 장애인을 위해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 하나 마련해주는 것, 그리고 함께 타서 교육받고, 일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 그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이 필수다. 구체적으로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국비 책임 ▲평생교육시설 운영비 국비 책임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탈시설예산 6224억원 수준 증액 등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에 참여한 ‘2030정치공동체 청년하다’ 소속 활동가들이 “이준석 대표 발언 규탄합니다!” 피켓을 높이 들어올리며 응원하고 있다.ⓒ에이블뉴스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뒤에 지속적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의아하다’는 이준석 대표의 말도 틀렸다.

전장연은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의 수직형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이명박, 오세훈, 박원순, 다시 오세훈 시장을 향해 엘리베이터 100% 설치에 대한 약속을 지키라고 계속 외쳐왔다. 그 외침을 언론도, 정치권 어느 하나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들리지 않은 것 뿐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 모습.ⓒ에이블뉴스

‘순환선 2호선은 후폭풍이 두려워서 못 건드리고 3호선, 4호선 위주로 지속해서 이렇게 하는 이유는 결국 14만명이 환승하는 충무로역을 마비시키는 목적’이라고 주장한 이준석 대표의 말도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가볍게 반박했다.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의 외침을 전달하기 위해 3호선 경복궁역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도착지인 4호선 혜화역은 장애인 이동권의 상징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혜화역은 1999년 6월 뇌병변장애를 가진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휠체어 리프트에서 떨어진 사고로 중상을 입은 이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목소리가 퍼진 곳이다. 이 대표는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해 ‘이동권’을 인정받았으며, 이후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혜화역 2번 출구 앞 바닥에는 이 같은 내용의 ‘장애인 이동권 요구현장’ 동판이 새겨져 있다.

전장연은 그 혜화역 승강장 5-3(동대문 방면) 앞에서 지난해 12월 6일부터 이날로 77일째 출근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우리는 이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육받지 못했고, 교육받지 못해서 지역사회와 함께 사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시설이라는 것을 만들어 넣고 보내놨습니다. 우리는 2001년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에 끊임없이 이야기했고, 서울시를 향해서도 이명박, 오세훈, 박원순, 또 오세훈 시장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4호선 열차 안에서 발언하고 있다.ⓒ에이블뉴스

이날 선전전에 참여한 뇌병변장애인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4호선 열차 안에서 세종에서 서울까지 오는 새벽 5시 30분 출발 열차가 있지만, 지역 장애인콜택시가 야간에 운행하지 않아 전날 서울에 와야 하는 장애인이동권 현실을 알렸다.

그는 “지역사회에 살기 위해 장애인들은 인생의 반을 길거리에서 허비하고 있다. 우리의 시간도 소중하다”면서 “우리도 국민이고 시민이고 세금도 똑같이 내고 산다. 공부할 때 공부하고 직장 다닐 수 있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쳤다.

오전 9시 13분, 1시간여 만에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 도착했다. 비장애인이라면 13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지만,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그렇지 않다. 지하철 안내요원을 불러 안전발판을 설치하고 탑승하고, 일렬로 긴 줄을 서서 엘리베이터를 타 위층에 있는 4호선 환승 승강장으로 가서 또 안전발판과 함께 탑승하고, 그렇게 돌아 돌아와야 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출근길 선전전을 끝까지 동행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에이블뉴스

이 불편한 출근길에 ‘2030정치공동체 청년하다’, ‘진보당’,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이 끝까지 함께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장애인도 인간이고, 인간을 대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것부터가 최소한이다. 이준석 대표님은 어서 사과하고 이제는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를 보여달라”면서 “국민의힘 다른 정치인들 또한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2030정치공동체 ‘청년하다’ 이해지 활동가도 “이준석 당 대표의 불법시위 발언에 대해 서울시민으로서 불편했다”면서 “2020년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며 5박 6일간 행진을 했는데, 그때도 누군가의 출근길을 막았을 것이고 누군가의 이해를 받았다. 그 불편을 감내하는 것으로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면 함께 연대할 것”이라고 지지했다.

클론 강원래는 자신의 SNS에 2005년 발매된 클론의 ‘소외된 외침’ 뮤직비디오와 가사를 업로드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을 응원했다.ⓒ페이스북캡쳐

교통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된 클론 강원래 또한 자신의 SNS에 2005년 발매된 클론의 ‘소외된 외침’ 뮤직비디오와 가사를 업로드하며 전장연의 투쟁을 응원했다.

이 노래는 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을 그린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버스를 타자’를 보고 만든 것으로, 뮤직비디오에는 휠체어를 지하철 선로에 묶고 시위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이 삽입됐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또한 “이준석 당 대표님께 2005년에 외친 강원래의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다"면서, 지하철 선전전에 앞서 많은 취재진 앞에서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 보셔 당신이 하고 있는 평범한

일상의 일들 나도 한번 해보고 싶소.

친구도 만나고 공부도 하고 싶고

사랑도 하고 사랑에 울고 웃고

당신이 하는 평범한 고민도 나도 한번 해보고 싶소.’(클론 소외된 외침 中)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혜화역 승강장에 도착해 구호를 외치며 선전전을 마무리하고 있다.ⓒ에이블뉴스

같은 날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또한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지하철을 타지 않는 장애인, 지하철이 없는 지역에 사는 장애인도 불편함 없이 이동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장애인들이 왜 지하철에서 호소하는지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고 전장연의 투쟁에 힘을 실어줬다.

반면,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말 동안 전장연 지하철 선전전 관련 총 10건의 게시글을 올렸다. “전장연은 조건을 달지 말고 당장 서울시민을 볼모로 잡는 시위를 중단하십시오. 중단하지 않으면 제가 전장연이 불법시위하는 현장으로 가서 공개적으로 제지하겠습니다”란 엄포까지 놨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이 대표를 향해 “객관적 사실이 아닌 편집된 말로 정당화하는 것, 그렇게 해서 표로 모으려고 하지 말고, 진실을 봐달라. 그리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을 향해서도 “용산 이전보다 빠르게 결단할 문제”라고도 힘주어 말했다.

전장연의 출근길 선전전은 오는 29일에도 계속된다. 하지만 묵묵히 응원 피켓을 들고 함께 분노하는 이들이 있기에 더이상 외로운 싸움은 아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선전전은 더 이상 외롭지 않다. 피켓을 들고 함께 분노하는 이들이 있기에.ⓒ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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