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 날인 4일, 장애인들은 매년 선거 때마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서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 모여 “완전한 참정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에이블뉴스

“우리가 투표를 못 하는 것은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장애인들은 매년 선거 때마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서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 모여 “완전한 참정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참정권 보장을 위한 대응팀(이하 참정권 대응팀)’은 10여 년 동안 매 선거 시기 전국 모니터링 및 국가인권위원회 차별 진정, 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 등을 진행하며, 참정권 보장 실현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100%는 아니라고 입 모았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에 위치한 사전투표소.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입구 앞에서 ‘길거리 투표’를 해야 한다.ⓒ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90% 투표소 접근? 누군가는 ‘길거리 투표’ 굴욕

먼저 지체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1층 투표소 설치가 법으로 개정되었지만 투표소 설치에서 역시나 ‘예외조항’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김성연 사무국장은 “1층 투표소 설치가 의무조항이 아닌, 실제 설치되지 않아도 된다는 임의조항으로 규정됐다”면서 90% 이상 투표소의 접근을 보장했다고 해도 여전히 접근조차 못 하는 투표소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 양천구 신정2동주민센터 사전투표소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에 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대안으로 주민센터 입구에 임시기표대를 설치했지만, 바람에 날려 천막이 열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투표모습이 노출되는 ‘길거리 투표’ 굴욕에 놓인다.

지역 장애인들이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번 대선에도 똑같이 사전투표소로 지정됐다.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은 성명을 내고 ”더 이상의 분리투표는 용납할 수 없다“면서 ”모든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투표소를 선정하라“고 피력했다.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노진영 팀장은 4일 에이블뉴스에 "사전투표 날인 오늘(4일) 확인한 결과, 달라진 것 없이 기표대만 하나 더 늘은 상황"이라면서 "성명서를 내고 문제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해 또한 계속해서 모니터링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전투표를 하고 온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대표는 ”손발이 자유롭지 못해서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투표소에서 약간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서 별로 보기 좋지 않더라“라고 투표사무원들의 사전교육 문제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의 점자 공보물 모습.ⓒ김예지의원실

■시각장애인 선거공보 제각각 “내용 알기 힘들어”

시각장애인 참정권도 법 개정을 통해 점자 공보물 매수를 2배까지 확대됐지만, 디지털파일 저장매체(USB) 제공과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QR코드)는 의무 제공이 아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실에 따르면, 3가지 방식 모두를 제출한 대선 후보는 14명 중 3명(정의당 심상정, 기본소득당 오준호, 통일한국당 이경희 후보)에 불과하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유일하게 디지털 파일 저장매체에 문자 파일과 함께 음성 파일을 추가 제출했다.

장추련 김성연 사무국장은 “대선 후보 중 8명만이 디지털파일 저장매체(USB) 제공했고, 의무가 아니다 보니 각각 자기 방식으로 제공했다.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점자정보단말기가 없이는 볼 수 없는 형태로 제공되는 경우도 있다”고 비판했다.

시각장애인 A씨는 “대선 후보 중 점자형 선거공보 대신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만 보낸 경우, 직접 바코드의 위치를 찾기 힘들어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최대한 모든 종류의 선거공보가 시각장애인에게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2018년 6월 8일 종로구 삼청동 주민센터에서 사전투표를 하고 나오는 문재인대통령을 만난 장애인 활동가들(아래)‘2018년 우리의 약속 잊으셨나요’ 피켓을 든 사단법인 두루 이주언 변호사.ⓒ에이블뉴스

■발달장애인 참정권 ‘공허한 메아리만’

투표권에서 가장 소외된 장애 유형은 ‘발달장애인’이다. 법원의 임시조치 신청까지 진행해서야 이번 대선부터 ‘투표 보조 지원’ 권리를 되찾을 수 있었지만, ‘공직선거법 개정’이란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사단법인 두루 이주언 변호사는 “재판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공직선거법에는 시각장애인, 신체장애인만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면서 “매뉴얼만 바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법도 꼭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발달장애인이 당사자 의사대로 투표보조를 잘 할 수 있도록 교육받고 훈련받는 것도 선관위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참정권 대응팀은 지난달 14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각 대선 후보자들에게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선거자료를 제작해달라고 요구했다. 현재 선거자료에는 의미가 함축적인 한자어, 개념어 등으로 이뤄져 발달장애인이 의미 파악하기 어렵다며, 4개 주요정당에 요구안을 전달한 바 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한국피플퍼스트 문윤경 대표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이해하기 쉬운 자료를 만들겠다고 답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실제 자료를 만들었다”면서도 “국민의힘은 만들지 않겠다고 했고, 국민의당은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다. 후보자들이 공약을 쉽게 설명하고 많은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발달장애인들이 요구하는 그림투표용지 모습.ⓒ에이블뉴스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김대범 활동가는 지난 2018년 6월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주민센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해 ‘그림투표용지 제작’을 직접 요구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림투표용지 제작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투표용지에 소속정당을 상징하는 마크나 심벌 표시, 사진 등을 제공하는 내용이 담긴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 결국 지난달 18일에는 국가를 상대로 차별구제청구소송까지 제기했다.

법조공익모임 나우 이수연 변호사는 “후보자는 여럿인데 작은 글씨로 이름만 정당만 적혀 있어 글을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투표하기 쉽지 않다”면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선거권을 보장하도록 돼 있지만 지금의 선거체계는 발달장애인의 선거권을 소중하게 보지 않는다. 발달장애인도 국민의 한 사람이며, 소중한 한 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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