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혜화역 승강장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하철에 탑승한 채 시민들에게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호소하고 있다.ⓒ에이블뉴스

13일 오전 8시 7분.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 서울역 방면 열차가 들어오자, 휠체어를 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백발의 긴 머리를 풀어헤쳤다.‘손해배상 말고 장애인이동권 보장하라’ 피켓을 어깨 위로 올린 채 지하철에 탑승한 그는 시민들에게 망설임없이 외쳤다.

“출근길 시민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는 비장애인과 함께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권리를 20년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희들에게 서울교통공사는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출퇴근길에 지하철을 막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것에 묵과할 수 없습니다.”

박 상임공동대표의 이야기가 계속되자, “(직장)잘리면 책임질 거야?” 라며 출근길을 재촉하는 시민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알아들었으니, 제발 지하철 갈 수 있게 해달라”는 다독이는 시민들도 있었다.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채 삿대질을 하며 달려드는 시민들 속 방패를 든 경찰들도 잔뜩 긴장했다.

13일 혜화역 승강장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하철에 탑승한 채 시민들에게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호소하고 있다.ⓒ에이블뉴스

그러나 박 상임공동대표의 피켓은 내려가지 않았다. “마음껏 욕하십시오. 우리는 20년째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에게 욕하는 만큼 서울시와 교통공사, 지자체에도 이야기해주십시오.” 열차가 혜화역에 매여있는 사이, 승강장 위 전광판에는 3대의 열차가 진입하지 못해 꽉 들어찬 모습이었으며, 시민들의 원성 또한 높아졌다.

“저희 돈 없습니다. 우리가 갖고있는 휠체어 차압 하실 겁니까. 이동해야 교육받고 이동해야 일하는 것 아닙니까.” 박 상임공동대표의 절규는 10여 분간 이어지다, 약 8시 21분 멈췄다. 그렇게 오늘의 선전전도 끝이 났다.

전장연은 지난 6일부터 매일 오전 8시부터 1시간 동안 혜화역 승강장에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 연내 개정을 촉구하며, 지하철 출근 선전전을 이어오고 있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교통약자법 개정안은 일반 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등으로, 국회 상임위에서 제대로 된 논의 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전장연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를 방문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만나 교통약자법 개정을 강하게 요구했으며, 윤 후보는 바로 국토교통위 간사인 송석준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교통약자법 초당적 처리를 당부했다. 이후 송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오는 22일 교통법안소위에 상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13일 혜화역 승강장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호소하고 있다.ⓒ에이블뉴스

풀어헤친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후 다시 나타난 박 상임공동대표는 서울교통공사가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분통을 이어갔다.

공사 측은 장애인들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7차례에 걸쳐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내에서 휠체어를 탄 채 승하차를 반복하는 식의 시위를 해, 열차 운행을 방해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장연 측은 지난 9일쯤 소장을 받은 상태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우리는 너무나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고 있고, 교통공사 측은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문제 대해서는 어떠한 손해배상도 하지 않고 있지 않냐”면서 “2022년까지 서울시 지하철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 약속부터 지켜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까지 우리들의 눈앞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겠다. 힘이 없으니까 타고 내리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욕하더라도, 교통공사와 서울시가 장애인들에게 공식사과할때까지 하겠다”고 피력했다. 또한 박 상임공동대표는 오는 14일까지 공사 사장과의 면담을 통해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고도 압박했다.

13일 혜화역 승강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호소하고 있다.ⓒ에이블뉴스

그와 함께 박 상임공동대표는 내년 1월 3일 오전 8시 광화문역에서의 지하철 투쟁도 예고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투쟁을 안 하는 조건으로 “22일 논의될 교통약자법 개정안에 중앙정부 예산이 반영된 원안이 통과되는 것”이라고 힘주어서 말했다.

또한 지하철 투쟁으로 불편을 겪는 시민들에게도 “우리에게 욕은 마음껏 하라. 대신 서울시, 서울교통공사,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로 욕을 해달라”고 “진짜 시민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수많은 권력을 갖고 있음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13일 혜화역 승강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 지하철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에이블뉴스

함께 지하철 투쟁을 펼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형숙 부회장도 “버스 타려면 계단이 있는 버스밖에 없어 탈 수 없고, 지하철을 타려면 엘리베이터가 없고, 이동할 수 없으니 교육을 받을 수 없다. 교육을 못 받으니 내가 일하는 곳이 없다”면서 “장애인은 선택권이 없다. 우리가 특별히 살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처럼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장연은 이날 교통약자법 개정과 함께 장애인평생교육법, 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을 연내 제정해달라고 촉구했다.

13일 혜화역 승강장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시민들에게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호소하고 있다.ⓒ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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