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방법원 전경.ⓒ에이블뉴스

장애비하 발언을 해 피소된 국회의원들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지만, ‘배째라’식 대응으로 전원 출석하지 않은 채 5분여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재판에 자리한 장애인당사자 원고는 “허망하다”면서 무책임한 의원들의 태도에 다시금 분노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재판장 홍기찬)는 8일 장애인당사자 주성희 씨를 비롯해 총 5명이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등 총 7명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 소송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5개 단체는 2021년 4월 20일 오전 10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국회의원들의 반복되는 장애비하 발언에 대한 국회의장 및 국회의원 대상 공익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에이블뉴스DB

■“장애비하 발언 반복” 국회의원‧의장 소송 제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지난 4월 20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1년간 장애 비하 발언을 한 국회의원 6명(곽상도, 이광재, 허은아, 조태용, 윤희숙, 김은혜)과 박병석 국회의장을 상대로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비하 발언이 있을 때마다 수차례 기자회견 등을 진행했음에도 국회 자체의 자정 노력 없이 계속되는 비하 발언에 사법부의 개입을 요청하기에 이른 것.

연구소는 원고 1인당 100만원의 위자료와 함께 비하발언을 한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권 행사,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에 장애인 모욕 발언 금지 규정 신설도 함께 요구했다.

피고인 국회의원들은 ‘외눈박이 대통령’(곽상도), ‘정책 수단이 절름발이(이광재)’, ‘집단적 조현병이 의심된다’(허은아), ‘대통령의 대일인식 정신분열적(조태용)’, ‘우리 정부를 정신분열적이라고 진단(윤희숙)’, ‘꿀 먹은 벙어리(김은혜)’ 등의 장애비하 발언을 한 바 있다.

■답변서 제출 늑장, 발언 문제 없다 ‘빈축’

하지만 재판 시작 전부터 피고인 국회의원들은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소장을 송달 받은 후 한달 내에서 답변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제출 기한을 지키지 않고 늑장 대응을 보였으며, 일부 의원들은 답변서를 통해 ‘언론과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 ‘서로 다른 생각이나 행동, 주장이 동시에 배출되는 상황에서 사용되는 일반화된 용어’ 등이라며 아무런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한 것.

이에 연구소는 6월말 경 국회의원 대표 격인 박병석 국회의장을 상대로 공식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피고 국회의원들은 변론기일이 지정됐음에도 국정감사 기간과 중복되므로 기일을 연기해달라며 변론기일 변경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법원은 불허했다.

박병석 국회의장 또한 국외 출장 등의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장애인연맹 등 8개 장애인단체가 2019년 10월 25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장애인에게 상처 주는 국회는 가라”며 장애인 비하 발언한 국회의원을 퇴출해달라고 청원을 제기하고 있는 모습. ⓒ에이블뉴스DB

■허망한 첫 변론기일, “수백만 장애인 모욕감 준 행위“

결국 이날 첫 재판은 피고 없이 원고 주성희 씨와 원고 측 법률대리인만 참석한 채, 소송 이유 및 과정만 간단히 공유한 후 허무하게 끝났다. 피고들은 법률대리인을 따로 선임하지 않았으며, 답변서만을 제출한 상태다.

피고 국회의원들은 ‘기본적으로 모욕할 의도는 없고,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불쾌감을 주기 때문에 사과하겠다’면서도 ‘원고들에게 배상할 책임까지는 없다는 취지’라는 골자의 답변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박 의장 또한 ‘원고들이 의장을 상대로 사법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사건’이라면서 ‘국회의장을 상대로 징계와 개정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이 같은 답변서를 읽으며 “피고들은 출장, 회기 중을 이유로 변론기일 변경을 요청했지만, 답변서를 제출한 이상 그냥 (재판을)진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원고들이 요청한 전문심리위원 참여는 ‘사실관계 다툼이 아닌, 법리적 검토만 남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원고 대리인인 원곡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는 “사실 전문가 증인이나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의견이 반영되길 원했다”면서 “전문심리위원 참여가 어렵다면 의견서 형태로 제출하겠다” 말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로부터 발언 기회를 얻은 원고 주성희 씨는 “어렵게 열린 변론기일임에도 불구하고 피고들이 사유서를 제출하고 참석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본분을 책임지지 않는 행위다. 허무함을 느낀다”면서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수백만 장애인들에게 상처와 모욕감을 준 행위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고 대리인인 원곡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 ⓒ에이블뉴스DB

■“무관심한 태도 불쾌…재판과정 성실히 임해야”

한편, 다음 재판은 국정감사 중인 피고들의 사정을 헤아린 원고들의 요청에 따라, 국정감사가 모두 끝난 뒤인 12월 17일 오전으로 정해졌다.

재판을 마친 최정규 변호사는 에이블뉴스와 만나 “피고 쪽에서 불출석사유서만 내고 참석하지 않은 것이 많이 아쉽다. 출석이 힘들면 대리인을 선임해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 피력하던지, 그저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하냐’는 식의 반응인 것 같아서 불쾌하다”면서 “소송 이후에도 비하발언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재판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럼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는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국회의장 또한 단순히 자신의 권한을 침범 하냐는 식의 방어적인 자세가 아니라, 도대체 왜 의회에서 계속 비하발언이 일어나는지 살피고, 책임감 있게 윤리규범에 넣어야 한다”면서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인다면 원고들이 굳이 힘겹게 소송할 이유가 없지 않냐. 다음 기일은 피고들의 사정을 헤아려서 국감 후로 잡힌 만큼 꼭 출석해 법정에서 본인들의 말에 대한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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