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외치며 4호선 당고개행 열차 첫 번째 칸을 점거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에이블뉴스

“시민 여러분! 저희는 오이도역에서 20년 전 있었던 추락 참사를 추모하고 서울역까지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열차는 오이도역 추락 참사 20주기 특별열차입니다.!”

22일 낮 12시 30분경, 4호선 오이도역에서 출발하는 당고개행 열차 첫 번째 칸은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들과 활동가들로 북적였다. “이동권은 자유권이다!”, “모든 장애인 이동할 권리가 100% 보장될 때까지!”, “20년 전 죽음이 다시 나오지 않도록…” 10명의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이 열차에 들어서며 저마다의 각오를 밝혔다.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방송에도 “우리는 20년을 기다렸다!”며 ‘장애인이동권 보장 중앙정부 책임 분명하게 하라!’,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 개정하라!’ 등의 피켓을 붙이고,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참사 20주기 장애인 이동권 추모식’이 적힌 긴 현수막을 내걸며 저항했다.

“20년을 싸웠는데도 아직 장애인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사회, 정부, 지자체에 대한 분노입니다. 우리는 몇 명이라도 같이 싸울 수 있다면, 5000명의 투쟁을 만들 것이고, 5만 명의 투쟁을 만들 것이고, 백만대군을 만들어서 정부가 약속한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다 설치할 수 있도록 싸울 겁니다.”(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리프트 추락사망사건 이후, 장애계는 ‘장애인이동권연대’를 결성해 지하철 선로, 버스를 점거하며 이동권 투쟁을 펼쳤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년 전 황망한 죽음, 장애인운동 ‘불씨로’

‘내 모습 지옥 같은 세상에 갇혀버린 현실’. 20년전 당시 서울시 지하철 202개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13.74%로 저조했다.

1988년 서울 장애인올림픽을 계기로 확대된 것은 엘리베이터가 아닌, 휠체어 리프트. 안전장치 하나 없이 맨바닥에 만들어진 리프트 위에서 장애인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위험에 떨어야만 했다. 그리고 불안은 현실이 됐다.

2001년 1월 22일, 설을 맞이해 역 귀성한 장애인 노부부가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수직형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 사고 현장에 폴리스라인만 쳐진 채, 단지 뉴스 한 줄로 끝난 허무한 죽음. 장애계는 분노했다. 이 죽음은 장애인운동의 새로운 불씨가 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에이블뉴스

곧바로 ‘장애인이동권연대’를 결성,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특별교통수단 도입 등의 요구를 외치며 지하철 선로를 수없이 점거한 것.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며 버스와 도로를 점거하며 저상버스 도입을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해인 2002년 발산역에서 장애인리프트 추락 참사가 또다시 발생했다. 이에 장애계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해 서울시 공개사과 촉구를 외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39일 만에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특별교통수단 도입을 약속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2005년, ‘이동권’이 명시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이 만들어졌다.

“이동권이라는 단어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지하철로 내려가고, 버스를 점거하고, 이순신 장군 동상에 가서 붉은 카드를 내리고, 종로 버스에 쇠사슬을 매고 점거했습니다. 사람이 많지 않아도 싸울 수 있는 몇 명이 있으니 싸움이 되덥니다.”(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4호선 오이도역 승강장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 내용이 담긴 선전물을 붙이고 있다.ⓒ에이블뉴스

■“장애인 이동권 멀었다” 시혜와 동정을 거부하며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이 20년 흐른 현재, 분명 성과는 있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0년 278개 역사에 엘리베이터 1동선 확보역사가 255개 역사로 91.73%로 늘어났고,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 도입도 50%를 넘기며 법정대수를 채운 것.

그럼에도 장애인들은 이동권이 여전히 머나먼 권리라고 외친다.

전국 저상버스 도입 수준이 10대 중 3대 수준인 9791대로, 정부가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 기준에 5000여대 모자라며, 4년여전 2017년 신길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사한 사건은 계속되고 있다며.

그래서 다시 20년이 흐른 현재, 장애인운동의 새로운 출발점인 오이도역에서 투쟁의 깃발을 다시 올렸다. 장애인이동권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규정한 권리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당장 법제화해야 한다는 경고다.

이들의 요구안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전면 개정 약속 ▲노선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 법제화 ▲장애인특별교통수단 지역 간 차별철폐 법제화 ▲2022년까지 서울 모든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2024년까지 서울 저상버스 100% 도입 예산 반영 등이다.

22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오이도역에서 장애인리프트 추락참사 20주기를 맞아 투쟁을 펼쳤다. 당고개행 열차를 점거한 후, “투쟁”을 외치고 있는 장애인 활동가.ⓒ에이블뉴스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돌아보면, 가장 목마르고 가장 열망하는 사람들이 질기게 싸우면 조금씩 변화하더라고요. 하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 사회의 기준을 완전히 바꾸는 것, 그게 우리가 지금까지 싸워오는 목표입니다.”(김병태 안산단원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고 선로 막고 투쟁할 때, ‘X신들이 집에 있지 불편하게 한다’고 욕먹어 가며 싸웠고, 지금 그 엘리베이터 누가 더 많이 이용합니까? 장애인들의 이동할 권리는 아직도 그저 기다리고, 참아야 하고, 감수해야 하는 겁니까. 장애인들이 내가 가고 싶은 곳 이동권 때문에 못 간다는 목소리가 없었으면…”(권달주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서울역으로 향하는 ‘오이도역 추락 참사 20주기 특별열차’에 탑승한 장애인 활동가들은 의자와 바닥 할 것 없이 모든 곳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 담긴 선전물을 붙이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새로운 20년을 만들어나가기로 의지를 다졌다.

2001년 1월 22일 황망한 죽음이 다시금 일어나지 않도록, 단 하나의 리프트라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가 된다는 것을 경고하며, 장애인의 권리가 ‘사랑합니다’로 취급되는 시혜와 동정을 거부하며.

‘장애인 이동권 지역간 차별을 멈춰라’ 피켓을 든 중증장애인 활동가.ⓒ에이블뉴스

‘오이도역 추락 참사 20주기 특별열차’에서 내리며 소감을 밝히는 활동가 모습.ⓒ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2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외치며 4호선 당고개행 열차 첫 번째 칸을 점거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에이블뉴스

지하철 곳곳에 붙여진 장애인 이동권 보장 선전물.ⓒ에이블뉴스

지하철 곳곳에 붙여진 장애인 이동권 보장 선전물.ⓒ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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