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발생하는 장애인 노동력 착취사건과 낮은 수위의 처벌 문제의 개선을 위해 장애인학대범죄의 처벌 특례법 마련, 더욱 엄격한 노동착취행위의 양형 적용 등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람을 유인, 감금하고 강제로 노역에 종사하게 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은 각 가해 행위별로 결정된 죄목에 따라 형량이 합산되기 때문에 최종 선고형은 그 수위가 결코 낮을 수 없다. 하지만 장애인 노동력착취사건에 대해서는 그 가해자들의 처벌 수위가 낮거나 무혐의 처분으로 면죄부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장애인 노동력 착취 형사 처분 사례에 관한 질적 분석 및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연구’를 내놨다.

‘울력과 품앗이’ 장애인 노동 착취 정당화에 활용

보고서에 따르면 울력은 힘을 모은다라는 의미로서 협동의 우리말식 표현이며 품앗이는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을 의미로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를 담은 풍속이다.

하지만 울력은 한 사찰의 주지가 50대 지적장애 남성에게 30여년간 대가를 주지 않고 폭언과 폭행을 동반한 가혹한 노동을 시켰던 ‘사찰 노예’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면서 의견서에 사용했던 용어다.

품앗이는 60대 지적장애 여성에게 17년간 길게는 하루 12시간씩 각종 농사일과 밭일을 시키고도 아무런 대가를 주지 않은 사건에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서 검찰이 사용했다.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이 장애인 노동 착취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염전노예 사건 이후 장애인 노동력 착취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이목이 집중됐다. 이후 토론회, 법안 발의 등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와 시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장애인 노동 착취 문제에 관한 해결방안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계 단체 등으로 구성된 염전 노예 장애인 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지난 2014년 2월 25일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염전 노예 사건 가해자 엄중처벌 촉구 및 법적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에이블뉴스DB

불처벌이 관행이라도 된 듯한 장애인 노동력 착취

장애인 노동력 착취 형사 처분 사례 중 검찰 불기소처분 및 법원 무죄 사례는 흑산도 노예사건, 염전노예 사건, 사찰노예 사건, 잠실야구장 노예사건, 원양어선 노예사건, 후견인에 의한 착취사건, 모녀 노동력착취 및 수급비 횡령 사건, 상주노예 사건, 곡성 품앗이 사건 등이 있다.

이중 사찰노예 사건 피해자는 주지승으로부터 32년간 상습적으로 폭행, 폭언을 당하며 노동을 강요당하고 명의도용 피해를 봤지만 검찰은 폭행에 관련해서 형법상 단순폭행죄로 벌금 500만 원으로 약식기소했으며 노동력 착취와 관련해서는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사가 내사종결 됐다.

곡성 품앗이 사건 피해자는 지적장애 여성으로 17년 동안 이웃 주민인 피의자로부터 성폭력과 노동력 착취 피해를 당했다. 이에 2019년 1월 노동력 착취 사실에 대해 고발했지만 피해자 조사도 진행하지 않은 채 담당검사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에 피해자는 항고했지만 광주고등검찰청은 항고를 기각했다.

장애 특성에 대한 이해와 고려 없이 진행되는 수사

장애인 노동력 착취사건의 수사 과정상의 문제점을 분석해 보면 진술에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은 수사, 발달장애인 전담조사제도 형해화, 수사기관 내 사무분장에 따른 통합적 접근 부재, 장애인의 지적 능력에 대한 오판, 장애인의 취약성에 대한 고려 없음, 유인자에 대한 수사 미진, 소극적인 법적용 등이 있다.

발달장애인은 낯선 환경에서 진술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형사소송법 등의 법률에서는 진술에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를 위해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연구대상 사례에서는 수사기관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신뢰관계인 동석 없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대질조사하려 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신뢰관계인 동석 요청을 거부하고 퇴실을 요구하기도 했다.

노동력 착취 사건에서 장애인의 지적 능력 정도는 범죄 성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모든 사람은 자유의사에 따라 자기에게 불리한 선택을 할 수도 있기에 무상으로 노동을 제공한다고 해서 모두 노동력 착취해 해당하지는 않는다. 이때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노동을 제공했는지, 그 판단을 할 지적 능력이 있는지가 쟁점이 된다.

하지만 연구대상 사례에서 수사기관은 피해자의 지적 능력을 일방적으로 가해자에게만 유리하게 판단했다. 흑산도 노예 사건에서 검찰은 피해자가 일부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등의 사정으로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했다.

곡성 품앗이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사회 연령 8세의 지적장애인으로 가해자에게 성착취를 당했는데도 수사기관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등한 관계로 품앗이를 했다는 가해자 주장을 받아들였다.

2019년 8월 21일 서울 마포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잠실야구장 장애인 노동착취 사건 불기소처분 검찰 규탄 및 항고장 제출 기자회견'에서 공익인권법재단 염형국, 조미연 변호사가 항고장과 추가고소고발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에이블뉴스

임금체불, 준사기,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일관성 없이 적용되는 법률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의 실체법적 문제점은 관련 규정 해석의 문제, 관련 규정 적용의 문제, 양형상 문제, 장애 인지적 관점의 부재, 장애인 대상범죄의 통계 부재 등이다.

이번 보고서에서 연구대상으로 삼은 10건의 사례 중에서 6건(흑산도, 야구장 형, 후견인 노예, 모녀, 대구노동력 착취, 곡성 품앗이)은 검사가 불기소했고, 2건(사찰, 야구장 업주)은 불구속기소를 했으며 1건(염전노예)은 구속기소를 했다.

사례의 관련 법률규정 적용 문제에 대해 살펴보면 노동력 착취 사건은 피해자 장애와 취약성을 이용해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유사한 사건이지만 이를 임금체불 문제로 보기도 하고 준사기나 장애인복지법위반, 장애인차별금지법위반으로 보기도 하는 등 일관성 없이 법률이 적용됐다.

또한 장애의 특수성 고려하지 않은 법률 적용, 관련 법률 규정의 단편적 적용, 장애 관련 범죄의 소극적 적용, 금전적 착취에 대해 단순 임금체불 관련 법령을 적용, 유기죄나 방임죄의 소극적 적용 등 문제가 있었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구체적인 사건을 수행하면서 장애인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장애인 대상 범죄에 관한 통계를 분석해 형사사법시스템을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처리한 장애인을 피해자로 한 사건에 대한 통계는 없다.

엄격하고 통일된 처벌 위한 장애인 노동착취행위 양형 개선 필요

보고서는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의 개선을 위해 실체법상과 수사절차상의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실체법상 개선방안으로는 현재 장애인 범죄에 대한 처별 규정이 개별 법률에 산재 돼 있고 장애인 학대 관련 정의 등을 규정하는 장애인복지법도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 장애인 대상 범죄에 대한 정의를 포함한 장애인 대상 범죄와 처벌 법규를 정리하고 장애인학대범죄처리에 대한 특례를 규정한 ‘장애인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

또한 장애인 노동착취행위의 양형을 개선해 장애인학대 관련 범죄와 관련해 가해자에 대한 엄격하고도 통일된 처벌이 이뤄져야 하며 노동력착취사건의 경우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10년분의 임금만 배상액으로 지급되는 비상식적인 상황 개선을 제언했다.

수사절차상의 개선방안으로는 정당한 처벌을 위해 장애인복지법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적용해야 하며 수사기관 종사자는 장애인 노동력 착취사건의 특성을 이해해야 하며 국선변호사 및 진술조력인 제도 등 피해 장애인을 위한 제도를 확대하고 신뢰관계인 동석 등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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