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은 전생의 원수였거나 빚쟁이라고 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빚진 게 많아서 그 빚을 갚으라고 보내졌으니 아낌없이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말이지만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다.

아무도 부모는 자식을 선택하지 않았고 자식 또한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부모자식의 인연으로 만나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부모는 자식걱정에 세월 가는 줄 모른다. 더구나 그 자식이 장애인이라면 부모의 시름은 더 깊어진다.

A 씨 아들 4살 B 군은 '간질발작 뇌병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데, 지난 3월 초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기관삽관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할 경우 호흡곤란이 유발될 수 있고 특히 기관지염이나 폐렴 재발, 저산소성 뇌손상 등의 위험이 있어 '기관절개 수술'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생명권이 친권보다 상위개념’ 관련기사. ⓒ네이버뉴스

그러나 A 씨는 경제적 문제 등으로 수술에 동의하지 않았고, 이혼소송 중인 어머니는 친권을 행사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이에 서울대병원은 아버지의 치료 방해를 막아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1심 법원은 “가처분 신청이 부적합하다”며 각하 결정을 했다. “친권자의 동의를 갈음하는 재판”은 가정법원에 따로 청구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항고심 재판부는 병원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해당 가처분 신청은 “친권자의 동의를 갈음하는 재판”을 구하는 게 아니라, 친권자 동의가 없더라도 환자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진료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것이므로 가정법원에 재판을 청구해야 하는 사건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부모의 친권보다 아동의 생명권이 우선한다”고 했다. “친권 행사의 내용이 자녀의 생명·신체의 유지와 관련된 것이라면 반드시 그 행사가 자녀의 이익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고, 이에 반하는 친권의 행사는 법률적으로 존중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사능력 또는 행위능력이 없는 자녀에 대해 긴급한 의료행위가 이뤄져야 함에도 친권자가 합리적 이유 없이 친권을 남용하여 이를 거부한다면, 그 거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명권 존중 차원에서 필수적인 의료행위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는 인간의 생명권이 부모의 친권보다 상위개념에서 오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비록 B 군의 의사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순 없지만, 아직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만 3세의 아동임을 감안하면 B 군은 급사의 위험에 노출된 현재 상태를 벗어나 기관절개술에 동의해 생명을 연장하고 싶어 한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 군 아버지가 기관절개, 산소공급, 약물투여 등 B 군에 대한 일체의 치료행위를 방해해선 안 되고 기관절개 수술 전에 퇴원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명령했다.

이상은 필자가 “생명권이 친권보다 상위개념”이라는 뉴스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필자가 여러 가지 보도내용을 보면서 B 군이 기관절개 수술을 하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당시 A 씨는 경제적 문제 등으로 수술에 동의하지 않았고, 이혼소송 중인 어머니는 친권을 행사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서울대학병원은 “생명권이 친권보다 상위 개념”이라는 법원의 판결로 B 군을 수술하게 되었다는데, 그렇다면 B 군의 수술비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생명권이 친권보다 상위개념”이라는 사실은 여러 언론에서 보도했지만, 필자가 궁금했던 수술비에 관한 내용은 없어서 여러 군데 보도내용을 다 훑어보아야 했다.

수술비 관련 기사. ⓒ한겨레

A 씨는 수술비가 없어서 아들 B 군의 수술을 못하겠다며 퇴원시키겠다고 했는데, 법원에서는 생명권이 친권보다 우선하므로 서울대병원의 치료행위를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서울대병원에서는 A 씨의 방해를 받지 않고 B 군을 수술했다는데 그렇다면 수술비는 누가 어떻게 지불했을까.

'수술비용을 포함한 치료비 역시 응급의료기금이나 병원 후원금 등으로 처리될 예정'(한겨레 2020-06-25)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결국 서울대병원에서는 B 군의 수술비용을 포함한 치료비는 응급의료기금이나 후원금으로 처리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서울대병원에서 처음부터 A 씨에게 “경제적인 문제라면 수술비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더라면 굳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물론 필자는 서울대병원과 A 씨 그리고 B 군의 상황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런데 필자의 상담실에도 “병원비가 없는데 어쩌면 좋겠느냐?”는 문의가 가끔 온다.

그럴 때면 필자가 직접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므로 아는 방법을 알려준다. 일단 종합병원에는 사회사업팀이 다 있으므로 사회사업팀을 찾아가서 사회사업가와 의논해 보라고 한다. 그리고 동주민센터에는 긴급복지비가 있으므로 주민센터를 찾아가 보라고 안내한다.

단, 주민센터의 긴급복지비는 병원비를 정산하기 전이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야말로 땡빚을 내서라도 병원비를 정산하고 그 땡빚을 갚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데 주민센터 긴급복지비는 병원비를 지불해주는 것이므로 먼저 정산하면 안 된다. 그리고 국번 없는 129 또는 어린이재단이나 공동모금회 등 지원단체에 문의해볼 수도 있다.

무슨 연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병원비가 후불이다. 예전에는 선불이라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현재는 후불이라 치료를 먼저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생명권이 우선이라는 개념에서 나온 것일까.

아무튼 우리사회가 아무리 각박하기로서니 죽어가는 사람을 모른 체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생명권이 친권보다 상위 개념”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정말 치료비가 없어서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고 “나는 돈이 없어서 못하겠으니 죽이든지 살리든지 너희 병원이 알아서 하라”며 막무가내로 악용하는 사람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설마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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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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