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식 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 ⓒ에이블뉴스DB

2020년 새해가 되면 과연 어떤 쟁점이, 어떤 담론이 장애계의 관심을 끌게 될까 생각해 본다. 장애인 법, 장애인 권리 보장 법, 장애등급제, 장애인 이동 권, 장애 인식 개선, 주류화, 시설 폐쇄 등등. 여기에다 장애인의 시민적 권리를 포함시켜본다.

생각해 보면 장애인들은 대체로 보편적으로 ‘시민’으로 인식되기 보다는 ‘지체, 정신, 여성, 뇌성마비 장애인 등’ 여러 가지 수식어를 동반해야 그 정체성을 인정받았다.

따라서 존경받는 ‘시민’의 반열에 서지 못했다. 본래 사회정책 문헌에서의 ‘시민적 권리‘의 개념은 공민권, 정치적 시민권, 사회적 시민권 이라는 각기 다른 권리가 달성되어야만 가능하며, 이를 발전시킨 유럽의 경우 때로는 2~3백년의 긴 시간이 소모되었으며, 각기 다른 계급간의 투쟁에 의한 승리의 결과이었음으로 이해한다. 물론, 에이블뉴스를 통하여 학술적 논쟁을 시도할 의도는 없다. 가치 간의 경쟁차원에서 본다면, 장애인의 권리가 쉽게 자리 잡기에는 집요한 투쟁과 시일이 요구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애인이 처해있는 여러 가지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의 맥락에서 볼 때 부당한 차별을 당하거나 권리를 침해 받는 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함은, ‘시민’으로서 평등과 차별당하지 말아야 할 권리를 침해당하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장애인이 ‘시민적 권리’를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UN 장애인권리협약」이 명시하는 전반적인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여기에서 ‘보장’은 권리의 실현을 위한 자유권은 물론, 사회권 차원에서 구체적인 자원의 확보와 분배를 의미한다.

「미국장애인 법(ADA 1990년)」의 제정을 이루어낸 미국사회에서도 취업과 전반적인 불평등상황, 사회적 배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부정적 이미지, 따라서 포괄적인 ‘시민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점에서는 한국의 현실과 과히 다른 것이 없다.

‘권리’란 도덕적·법적협약에 근거한 정당한 요구 또는 정당한 자격,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복지’만을 요구하고 주장하던 장애인들이 돌연 ‘권리’를 주장하면, 아주 생소하고 거북해 진다.

장애인의 권리는 누가 부여하며 보장하는가? 물론 헌법이다. 그런데 장애인들은 과연 6대 국민의 의무를 제대로 준수하면서 권리를 주장하는가, 아니면 권리만 주장하는가? 하는 반론도 가능하다.

사실 의무가 따르지 않는 권리는 추상적이며, 권리 없는 의무 또한 무의미할 것이다. ‘의무와 권리’는 다분히 성공 지향적이고 개인주의 적인 한국 국민들의 열망을 포함하여 ‘의무의 준수와 권리 보장’이라는 상호의 책임 관계가 성립된다.

그런데, 의무 수행을 할 수 없는 노약자, 무직자 등의 취약 계층에 속하는 국민들에게도 정치·사회적 재화를 제공을 할 수 있으며, 장애를 가진 시민들도 다양한 욕구충족과 권리 실현을 위하여 여러 가지 사회적 장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사회적 혜택이다. 헌법에 의한 국가적 책임으로서 ‘사회권-사회적 혜택’은 군복무, 납세의 의무 등과 같은 국민의 의무수행과 갈등관계에 있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에서의 ‘시민적 권리’는 단순히 의무 수행에 대한 국가의 보상으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시민으로서의 생활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애인과 같은 계층에게도 「UN장애인 권리협약」이 보장하는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일반적으로 당연하다고 간주되는 사회적 혜택을 향유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나 기회를 주어야 주류사회로부터의 배제당하지 않을 것이다.

자선이나 복지로 포장되면 그런대로 무방한데, 법적으로 보장되는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혜택’ 은 진보도 아닌 좌파적 구상으로 매도당하지 않는가? ‘시민적 권리’의 담론이 다소 생소하지만, 이것은 장애인들이 오랜 기간의 실질적인 사회·경제·정치학적 요소들 간의 갈등적 관계와 투쟁을 묶어 낸 결과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시민적 권리’는 사회성원의 신분 혹은 지위(Status)를 의미 한다. 실제로 ‘권리협약’은 적정수준의 경제적 복지 및 보장으로부터 사회적 유산을 충분히 공유하도록 보장한다.

장애인에게 일련의 신분적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을 능력 있는 사회의 성원이자 ‘시민’으로 인정하여 일련의 법적, 정치적, 경제적 및 문화적 조치가 해당 개인과 집단에게 자원이 공급되도록 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따라 차별 당하지 않고 문명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권리가 주어지면 어떤 형태의 신분 혹은 지위의 변화가 이루어지는가? 아마도 아래와 같은 변화의 모습일 것이다.

즉, 보호(protection)받는 신분에서→적극적 사회성원으로, 편견-차별의 대상에서→평등과 반차별로, 수동적, 의존적, 부정적 시민에서→ 능동적, 적극적 시민적으로, 소외, 배제(exclusion)에서→완전통합 (inclusion)으로, 무력함에서→역량강화(empowerment)로, 박애, 자선 시혜, 보호의 대상에서→‘권리’있는 시민으로, 포용에서→ 완전통합으로의 신분적 이동과 변화이다.

장애인들에게 ‘시민’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제적 기회와 정당한 사회적 처우로부터 배제되었던 그들을 사회의 주류로 포함시킴을 의미한다. 사회통합과 참여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시민적 권리’의 기회도 보장될 수 없을 것이다.

위의 →도식으로 요약된 장애인의 신분적 변화는 단순한 이론적 구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과제와 딜레마를 동시에 설명해 준다. 그런데 장애인의 현실에 눈을 돌린다면 이러한 주장이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긴박한 요청인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전체 장애인 가구 194.5만 가구 중 국민기초생활수급자 가구는 총 26만 가구로 전체 장애인 가구 수의 13.1%로서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비장애인가구의 국민기초생활보호대상자 비율 6.8%에 비해 2배 정도에 해당한다.

소득을 살펴보더라도, 통계청 경제활동 인구조사와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장애인의 고용 율은 36.5%로 일반 국민(60.2%)의 약 60.6%에 불과하다. 또한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421천원으로 전국 가구소득(3,617천원)의 66.9% 수준이다.

이와 같이 장애인의 경우 일반적으로 근로활동이 어려워 비장애인에 비해 생활수준이 열악하다. 장애인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는 장애인연금과 장애수당을 도입·시행하고 있다.

위에서 제시한 통계자료는 장애인들이 생활 속에서 여러 형태의 차별적 대우, 인간관계에 직면하는 것이 장애인들의 실상이며, 이것이 고착화되었음을 보여 준다. 지난 수년 동안 주류장애인 단체들은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당면하는 여러 장벽으로 인해 기본적 인권의 침해를 받고 있음을 지적해 왔다.

예를 들어, '200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87%에 달하는 장애인이 차별을 당하거나 인권침해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96.2%가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의례 있음직한 사회현상으로 간주되겠지만 「미국장애인 법(ADA 1990년)」의 제정을 이루어낸 미국사회에서도 취업과 전반적인 불평등상황, 사회적 배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부정적 이미지, 따라서 포괄적인 ‘시민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점에서는 한국의 현실과 과히 다른 것이 없다.

따라서 ADA는 보다 적극적으로 ADA의 입법정신을 시행함으로써만 장애인을 위한 평등한 사회가 구현될 것이라고 주장 한다. 위의 통계 속에 포함되는 계층은 거의 전적으로 사회참여도 전무하며 ‘시민’의 대우도 못 받는다. 즉 시민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배제'를 당한 것이며, 아예 2등 시민이거나 그 이하로 내려간다.

또 어떤 이들은 경쟁적인 고용시장에서 장애인들은 ‘식민지화’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서 ‘식민지화’는 무(無)권력층 또는 빈민에 대한 권력층의 정치적, 경제적 및 사회적 지배를 의미한다.

세계 어디를 보나 장애인은 ‘시민적 권리’로부터 배제된 2등 시민이라는 공감대의 형성은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장애인에 대한 지속적인 차별대우,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불평등적 제반요소야 말로 한국의 장애계가 극복해야할 2020년을 초월하는 지속적인 과제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단, 장애인 당사자들이 ‘시민적 권리’가 보장되는 미래를 원한다면, 그것을 당사자들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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