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교통약자 이동권소송연대가 2심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에이블뉴스

지루한 법정다툼을 끌어왔던 장애인 등 교통약자 시외이동권 소송이 2심 판결에서 또다시 일부승소했지만 사실상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버스회사들에 대해서만 휠체어 승강설비 설치를 주문할 뿐,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아쉬운 선고에 변호인단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장애인은 “어이없는 판결”이라며 개탄했다.

서울고등법원 제30민사부(부장판사 배준현)는 25일 김 모씨 등 교통약자 5명이 국가와 버스회사 등을 상대로 낸 차별구제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원고 일부승소를 내렸다.

재판부는 “교통약자법상 장애인은 이동권을 정당히 받을 권리가 있고,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휠체어 승강설비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차별행위”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동 편의 제공 실천 방법으로 승하차 편의를 제공하는 휠체어 승강설비 설치 의무만 인정했으며, 설치 의무 주체 또한 교통행정기관이 아닌 교통사업자로만 한정했다.

재판부는 “금호고속은 시외버스에 대해, 명성운수는 시내버스 중 광역·급행·직행좌석 ·좌석형버스에 대해 휠체어 승강설비를 제공하라”며 1심과 마찬가지로 버스회사에 대해서만 책임을 인정한 것.

저상버스 도입 요구에 대해서는 “저상버스 도입 요구는 지난해 교통약자법 개정 이후 시행령이 입법예고됐기 때문에 1심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가 책임 부분에서는 “교통약자법에 의한 이동편의증진계획 속 저상버스 도입이나 휠체어 승강설비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겨있고, 계획 특성상 도입 시기나 세부적인 실천방안이 담겨있지 않았다고 해서 교통약자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하기는 어렵다” 기각 판결을 내렸다.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고의나 과실이 필요한데,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할 때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교통약자 이동권소송연대가 지난 2017년 6월 2심 판결을 앞두고 “시외이동권을 보장하라”며 500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했다.ⓒ에이블뉴스DB

앞서 지난 2014년 3월 장애인, 노인, 영유아동반자 등 5명은 ‘교통약자가 시외구간에서 이용할 수 있는 버스가 도입되지 않아 편의를 제공해달라’며 법무부장관,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버스회사 대표이사 2명 등 총 5명을 상대로 차별구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다음해인 2015년 7월, 교통 사업자의 책임만 일부 인정할 뿐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경기도 등 교통행정기관에 대해서는 “이동편의 증진계획에서 저상버스 등의 도입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은 위법하지 않다”며 기각했다.

이에 즉각 항소했지만, 소송 진행과정에서 국토부는 시외구간 저상버스 도입에 대해서 ‘2021년까지 연구개발을 한다’는 외 어떠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버스회사 또한 “회사 개인적으로 할 문제가 아니다”며 정부에 책임을 미뤄왔다.

1심부터 총 5년간 끌어온 시외이동권 보장 재판이 끝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도돌이표’가 되자, 변호인단과 장애인들은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실망스러운 판결”이라며 비판했다.

법무법인 지평 김태형 변호사는 “법원이 국가의 의무를 인정해줬으면 행정기관에서 책임있는 자세로 정책을 펼치고, 시외이동권에 대한 진일보한 정책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사실상 1심과 같은 판결”이라면서 “대단히 유감스럽다. 자세한 판결 이유에 대해서는 판결문을 검토해보고 향후 상고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오영철 소장은 “결국 국가나 지자체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너무 어이없는 판결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임에도 국가와 지자체, 버스회사는 자신의 이득만 생각하며 이동권을 배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끊임없이 시외 이동권 보장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울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선영 소장도 “있는 자들의 야박한 횡보다. 당사자들의 마음만 헤아려줬다면 충분히 배려할 수 있는 문제”라고 판결 내용을 비판하며 “법관들도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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