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3일 장애등급제 폐지 토론회장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에이블뉴스

보건복지부가 35개 장애인단체를 대상으로 내년 7월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후 적용하는 ‘종합조사표’를 공개했지만, “기존과 뭐가 다르냐”, “장애특성별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만 쏟아졌다. 복지부 이상진 장애인정책과장은 “오래 살 것 같다”며 진땀을 흘렸다.

특히 토론회 2시간 전부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 소속 시각장애인 및 직원 등 2~30명이 피켓 시위를 진행했으며, “복지부가 많은 노력을 했다”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가 박수를 요청했지만, 피켓을 들고 침묵을 지켰다.

복지부는 3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추진방향 및 그간의 민관협의체 논의경과에 대해 장애계와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현재 의료적 기준만을 적용해 획일적으로 주어졌던 서비스 방식에서, 장애인의 욕구와 주거환경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 주 골자다.

새로운 기준은 서비스별로 ▲종합조사 결과 활용 ▲장애정도 활용 ▲별도기준 마련으로 분류된다. 이날 토론회는 지난해 1년동안 민관협의체를 통해 논의된 내용을 장애계에 충분히 설명하고 의견 수렴을 위해 마련됐다.

3일 복지부 장애등급제 폐지 토론회에 참석한 장애인단체장들 모습.ⓒ에이블뉴스

■15개 유형, 하나의 종합조사표? “말도 안돼”

이날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은 예상했던 대로 내년 당장 적용될 활동지원 등 돌봄지원 종합조사표 속 ‘돌봄지원 필요도 평가’에 대한 불만을 가장 많이 쏟아냈다.

‘한시련의 경우 토론회 2시간 전부터 이룸센터 앞부터 지하 1층 행사장까지 2~30명의 당사자 및 직원들이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 수정하라', 시각장애인 차별하는 종합조사표 수정하라', 시각장애 특성 반영하여 등급제 폐지 시행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의견을 피력했다.

토론회에 앞서 인사말을 한 한시련 회장이자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홍순봉 상임대표는 “모든 장애유형을 한 가지 종합조사표를 갖고 서비스를 주겠다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면서 “시각장애인계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어떤 희생과 댓가를 치루더라도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또 본격 토론에서도 조선대학교 특수교육과 교수이자 한시련 김영일 부회장은 "모든 유형의 장애인을 평가하기 위한 도구라고 이해하기 힘들다. 뇌병변장애간에도 욕구가 다른데 15개 장애유형 간 동일한 문항을 갖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시각장애인과 관련 "문항 속 누운상태에서 자세바꾸기, 옮겨앉기 등은 시각이나 청각은 해당되지 않은 문항"이라면서도 "지체 뇌병변장애는 이 종합조사표가 맞고 발달장애 따로 시각 따로, 청각 따로 만들어야 한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상당히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 나기형 홍보위원도 "활동지원 종합조사표가 맞춤형이 아니라 하나의 포괄적인 종합조사표에 불과해 서비스가 필요한지 안한지만 판단할 수 있을 정도"라면서 "모든 장애유형별로 전문화, 세분화가 돼야 한다. 유형별로 세분화되면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 유형별로 보완도 가능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이상진 과장은 “장애유형별 요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시뮬레이션도 하고 있다”면서 “공개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공개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사상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노경수 소장은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궁금함을 해소하기 위해 차비 써가며, 피같은 활동보조 시간 써가며 부산에서 올라왔는데 답답하다"고 장애등급제 폐지 추진방향에 대한 느낌을 쏟아냈다.

노 소장은 "나는 슈퍼울트라초특급 중증장애인인데 뭐가 맞춤인지 모르겠다. 짜여진 틀 안에 장애인을 맞추는 게 아니라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하려면 예산이 중요하다, 예산 없이 공론을 한다는 자체가 무슨 의미냐"고 피력했다.

3일 보건복지부 장애등급제 폐지 토론회장에 참석한 복지부 관계자들 모습.ⓒ에이블뉴스

■“여성, 소수장애인 목소리도 반영”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양영희 회장은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 속 ‘기초상담’의 문제를 꼬집었다.

양 회장은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 속 '기초상담'을 보면 주거유형에 자가, 전세, 월세 등에 대한 내용만 담겨있다. 이 사람이 아파트에 사는지, 단독주택에 사는지, 50년 이상 지어진 주택에 사는지에 대해서는 담겨있지 않았다"면서 "5층이하 빌라에 살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장애인 주거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환경이 없다"면서 디테일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여성장애인 대표인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박혜경 상임대표는 "장애등급제가 폐지됐을 때 성인지적 관점이 반영될지 서비스 지원 조사표를 체크해봤는데 체크되는 부분이 많지 않다"면서 "아이를 양육하거나 모성 관련 부분이 묻어나지 않았다"면서 돌봄지원 필요도 평가 속 성인지적 관점 반영을 제언했다.

소수장애인으로 참석한 장루장애인협회 전봉규 이사장은 "장루장애인은 유형별로 받는 고통이 꽤 다르다. 왼쪽에 대장이 있는 경우는 편하지만 24시간 대소변이 흘러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장애등급은 똑같이 4급"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활동지원과 관련해서도 "장루요루장애인은 스스로 관리할 경우 괜찮지만, 관리를 못하는 경우 대소변을 모든 곳에 묻히는 짐승이 된다. 그 나이는 70대 후반정도인데, 활동지원이 65세까지만 가능하다. 활동지원이 모든 장애인으로 확대됐을 때 연령 제한 문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3일 장애등급제 폐지 토론회 모습,ⓒ에이블뉴스

■복지부 등급제 폐지 논의 비공개, 감수성 ‘도마위’

그런가하면, 장애등급제 폐지를 추진하는 복지부 태도 또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한동식 공동대표는 "장애등급제 폐지 속 자립생활 실현을 위한 활동지원 등의 이슈를 넣어놨는데, 종합조사표상 이름이 '돌봄지원'이다. 감수성의 포커스가 어디에 맞춰진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진철 조직국장은 "복지부에서는 장애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5년간의 소통현황 내용을 토론회 자료에 담았는데 4페이지에 걸쳐서 만났다는 내용 외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없다"면서 "장애인단체의 어떤 의견이 있었는지 공개해주시는 게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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