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구촌시대라고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까마득하게 먼 나라였던 곳도 이웃마을처럼 가까이 드나들고 있다. 그만큼 외국과의 왕래가 잦아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인들의 여행도 많아졌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장애인 중에 여행을 즐겨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예전에 비해 특별히 많아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장애인의 여행객은 확실히 늘었다. 그런 사람들은 여행가방 즉 캐리어를 끌고 다닌다.

필자의 사무실은 부산역 부근이라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여행객을 많이 볼 수 있다. 외국인이나 내국인은 물론이고, 방학 때면 학생들로 보이는 이들이 삼삼오오 캐리어를 끌고 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 씨가 하소연하기 전까지 캐리어와 장애인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필자도 미처 몰랐다.

어느 날 전동스쿠터를 이용하는 지체장애 1급 A 씨가 필자에게 하소연 했다.

“저는 (지하철) 사상역을 자주 이용하는데 사상역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면 내릴 때나 탈 때나 서 너 대는 기다려야 합니다.”

필자도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되물어야 했다.

“비장애인들이 캐리어나 유모차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때문에 제 스쿠터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몇 대 씩 보내야 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하! 그랬구나, 그런 어려움이 있었구나.

한 번에 엘리베이터를 타기 어려운 장애인. ⓒ이복남

아마도 다른 나라 또는 다른 지방에서 캐리어를 끌고 오는 여행객들이 지하철2호선 사상역을 많이 이용하는 모양이다. 사상역에서 서부경남으로 가는 시외버스터미널이나 김해공항 등으로 가는 경전철을 타기 때문인 것 같다.

A 씨의 하소연은 길게 이어졌다.

“엘리베이터를 한 대 더 해달라고 사상역에 부탁해 봤지만 자기 관할이 아니라면서 부산교통공사로 연락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통공사로 연락해 봤을까.

“교통공사에 전화를 하니까 상담원이 자기 소관이 아니라면서 위에 보고는 해 보겠다고 하던데 그 후에는 연락도 없네요.”

며칠 전 필자가 우연히 냉정역엘 갈 일이 있었는데, 어럽쇼! 3번 출구에 엘리베이터 두 대가 나란히 있는 게 아닌가. 당시 전동차는 없었지만 어르신이랑 유모차 등으로 한 대는 만원이라 필자는 옆에 있는 다른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그리고 부산교통공사에 전화를 했다. 전화 받는 상담원이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엘리베이터 설치에 대해서 문의할 게 있다면서 필자의 신상을 밝혔다. 전화를 돌려주었는데 그곳에서는 필자의 얘기를 듣더니 자기들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점검하는 곳이라면서 건설계획처로 문의 하라고 했다.

건설계획처로 다시 전화를 했다. 사상역에 엘리베이터가 한 대라서 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얘기했더니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고 했다.

“냉정역에는 엘리베이터 두 대가 있던데요?”

예산이나 땅값 보상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수요를 감안해서 그렇게 했단다. 그 수요가 뭘까 싶어서 냉정역으로 문의를 해 봤다. 냉정은 예전부터 교통의 요충지라서 그런지 특히 3번 출구 부근에는 동서대와 경남정보대 등 여러 학교들이 밀집해 있어 출퇴근 시간에는 엘리베이터 두 대도 모자란다고 했다.

냉정 우물터. ⓒ이복남

여담이지만 냉정(冷井)이란 찬샘이다. 괴나리봇짐 지던 시절 냉정 마을은 부산과 서부 경남의 나들목이었다. 냉정 마을이 북쪽으로 백양산, 남쪽으로 엄광산이 막혀있다. 그 가운데 냉정고개가 있고 냉정고개 아래 냉정우물이 있었다.

김해나 가야 등 서부 경남으로 오가는 사람들은 냉정 고개를 지나야 되므로 고개 아래 자리 잡고 있던 냉정 우물 즉 찬샘의 물을 마셨다고 한다. 예전부터 냉정 우물은 물맛이 좋기로 유명해서 한 때 이 부근에는 커다란 콩나물 공장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서 현재는 냉정 우물만 보존되고 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서 발췌-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게 물어보았는데 어느 날 B 씨는 성을 내며 한참을 떠들었다고 했다.

내용인즉슨 사상역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더니 먼저 탄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유모차나 캐리어가 있으면 전동차는 같이 타기가 어렵지만 그날은 다행히 유모차나 캐리어는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전동차를 들이밀었는데 먼저 탄 사람들이 조금도 비켜주지 않는 바람에 전동차의 바퀴가 옆에 있던 할머니의 발을 스친 모양이다.

그러자 할머니는 “와 이래 막무가내고, 병신들이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뭐…….” 할머니는 혼잣말로 한 모양인데 ‘병신은 다 그렇다’는 말을 듣자 B 씨는 너무나 성이 나서 자기도 좋은 말이 안 나오더라는 것이다.

“야, 이 할망구야! 니는 병신 안 될 줄 아나?” 그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사과했어도 그냥 끝냈을 텐데 할머니가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바람에 엘리베이터가 지상으로 올라가는 10여 초 동안 계속 떠들었단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참으라면서 말렸는데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더란다.

2~3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가 업고 다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이를 포대기로 업고 다니는 엄마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간혹 어깨띠로 앞으로 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유모차에 태워서 다닌다. 그렇다보니 지하철은 물론이고 백화점이나 마트 등 공중이용시설에서 ‘엘리베이터를 누가 먼저 타느냐’는 순서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가 두 대인 냉정역 3번 출구. ⓒ이복남

인터넷으로 엘리베이터 관련 사건들을 검색해보니 임산부나 유모차 엄마들이 밀려나서 눈물이 나더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올라와 있었다. 임산부는 법에서도 교통약자로 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에서는 후순위로 밀린다는 것이다.

아무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는 교통약자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을 꼽고 있는데 여기에 유모차와 캐리어가 합세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떤 역에서는 노인들이 임산부나 유모차를 밀치기도 해서 속상했다는 엄마들의 하소연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엘리베이터에는 사대육신이 멀쩡한 젊은이나 학생들도 타고 내리는데 과연 누가 누구에게 뭐라고 하겠는가. 굳이 순서를 정하자면 계단을 이용하기 어려운 장애인·노인·임산부·유모차 엄마·캐리어 여행객 등이면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먼저 온 순서대로 이용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캐리어나 유모차가 있으면 A 씨의 전동스쿠터는 들어가기가 어려워 자연히 양보하다보면 서너 대는 보내기가 일쑤란다. A 씨는 캐리어나 유모차 뿐 아니라 어린 아이들이 있을 때에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단다. 혹시라도 아이의 발이 전동스쿠터 바퀴에 다칠까 봐 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A 씨가 사상역에 내렸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인지 수리중인지 ‘점점 중’이라는 팻말이 보이면 계단으로 올라 갈 수는 없으므로 하는 수 없이 다음 역인 덕포역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제가 갈 곳이 사상역 부근인데 덕포역에서 한 정거장을 다시 내려와야 하므로 짜증도 나고 어떤 때는 눈물이 다 납디다.”

필자가 부산교통공사에 처음 전화 했을 때 상담원은 설비공사처를 바꿔 주었다. 설비공사처에서는 한 방향에 엘리베이터가 두 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두 대가 있으면 우리도 좋지요. 한 대를 점검 할 동안 다른 한 대는 가동을 할 수가 있으니까요.”

특히 지하철 사상역은 엘리베이터의 증설이 절실한 실정이지만, 다른 곳도 엘리베이터가 두 대씩은 있어야 될 것 같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던 시절, 휠체어를 이용하는 한 장애인은 턱 때문에 밥 먹을 곳조차 없는 현실을 개탄하는 유서를 언론사로 보내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었다. 그 후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인 편의시설’을 외치며 울며불며 투쟁한 결과에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그 무렵 장애인들의 구호는 ‘장애인이 편리하면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다’였다.

부산 냉정역 3번 출구처럼 비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두 대씩 설치한 곳도 있다지만, 누구라도 순간의 편의만 쫓지 말고 남을 위한 배려도 좀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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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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