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진행된 서울시 발달장애인 정책요구안 수용촉구 기자회견.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김남연 회장이 삭발을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DB

[2016년 결산]-⑨ 발달장애인 부모 투쟁

올해 2016년 장애계의 시작과 끝은 ‘투쟁’이었다.

정치참여가 물거품 된 제20대 국회에 대한 범장애계 투쟁을 시작으로, 30도가 넘나드는 더위 속 발달장애 부모들의 릴레이 삭발, 활동보조 수가 동결에 대한 삭발, 1인 시위, 12일간의 단식농성을 진행했다.

특히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지자, 장애계는 시국선언을 통해 국가적 이슈에 동참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시외이동권, 장애등급제 등 풀리지 않는 장애계 숙제에 대한 투쟁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에이블뉴스는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읽은 기사’ 1~100위까지 순위를 집계했다. 이중 장애계의 큰 관심을 받은 키워드 총 10개를 선정해 한해를 결산한다. 아홉 번째는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기반을 다진 평가를 받는 발달장애인 부모 투쟁이다.

■‘목숨 건’ 발달장애인 부모 투쟁=다사다난했던 올해 장애계에서는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투쟁이 유난히 돋보였다. ‘목숨 걸고 지켜줄게’라는 구호로 뭉친 서울의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숙은 물론 삭발까지 감행했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거리의 투사가 된 것은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됐음에도 서울시가 법에 따른 자립생활 지원방안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뿔난’ 서울시의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법에 따라 발달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역사회 중심의 주거모델 개발 및 시범사업 운영, 발달장애인 소득보장을 위한 자산형성 지원사업 실시 등 7개였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노숙농성을 시작한 것은 5월 4일. 정책요구안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청이 청원경찰을 통해 부모들을 시청 밖으로 쫒아내면서 부터다.

이 때 부터 서울시장애인부모연대와 서울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소속 회원들은 시청 후문 입구에 노숙농성장을 마련하고 ‘정책요구안 수용’을 촉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늦봄의 쌀쌀한 날씨에도 부모들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농성장을 지켰으나 시는 ‘농성을 진행하는 단체와 협의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노숙농성이 21차에 접어들었지만 시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았고 ‘벼랑 끝’에 내몰린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무기한 릴레이 삭발투쟁을 감행했다. 첫 번째 삭발자로 나선 사람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종술 회장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남연 서울지부장이었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시청 후문 노숙농성과 릴레이 삭발투쟁 전략으로 서울시를 압박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성과 삭발. 마침내 농성 한 달 만인 6월 3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늦은 밤 농성장을 전격 방문하면서 대화의 물꼬가 텄다.

이후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12일간 더 노숙농성과 삭발투쟁을 했고 마침내 6월 14일 서울시와 발달장애인 정책수립 TF팀 구성에 합의하면서 투쟁을 끝냈다. 노숙농성을 시작한 지 42일, 삭발투쟁 14일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발달장애인 부모는 지난 7월부터 서울시와 발달장애인 정책TF을 구성하고 3~4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TF는 발달장애인 정책요구안에 담긴 내용을 2017년도 시 예산안에 반영했고 지난 23일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 소속 회원들이 농성을 해제하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에이블뉴스DB

■지역에서 ‘꽃 핀’ 부모 투쟁=서울시의 발달장애인 부모투쟁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경기도와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등 지역에서도 발달장애인의 정책수립을 요구하는 부모들의 투쟁이 전개됐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는 지난 8월 25일 경기도를 향해 발달장애인 7개 정책, 13개 세부과제가 담긴 ‘경기도 발달장애인 정책제안’의 수용을 요구하며 도청현관을 점거,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이 제시한 7대 정책은 소득 보장을 위한 자산형성 지원사업, 직업교육 지원체계 도입, 주거모델 개발 및 시범사업, 가족지원 체계 구축, 자조단체 육성·발굴 및 피플퍼스트 운영, 재활 및 의료 지원 체계 구축이다.

경기도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노숙농성을 감행한 것은 6월에서 8월 세 차례에 걸쳐 협상을 벌였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숙농성 4일 째인 8월 29일 경기도청 보건복지국장과 한 협상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발달장애인 정책요구에 대한 도의 진일보된 입장을 확인했고 농성 5일 만인 30일 해제했다.

이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와 경기도청은 발달장애인 정책TF를 구성, 정책반영에 대한 논의를 했고 자산형성 지원사업, 주거모델 개발, 피플퍼스트 운영 등을 내년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반영하기로 합의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전지부 역시 9월 28일부터 대전광역시청 북문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하고 시를 향해 발달장애인 7대 정책요구안 수용을 촉구했다. 이들의 요구는 자산형성과 주거모델 개발 및 시범사업 실시 등 경기도가 요구한 정책과 비슷했다. 다만 성인발달장애인 주간활동지원서비스 이용 활성화 대책마련, 발달장애인 지원점담 부서 설치 등이 추가됐다.

대전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21일 간 천막농성 끝에 대전시로부터 발달장애인 정책협의안을 받고 농성을 해제했다. 이후 부모들과 대전시 관계자는 발달장애인 정책TF 회의를 통해 추경예산안에 반영할 부분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발달장애인 부모들 역시 광주시청을 상대로 노숙농성을 벌인 끝에 합의, 발달장애인 정책 TF를 구성하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지난 12일 진행된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자회견.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김 의원을 규탄하고 있다. ⓒ에이블뉴스DB

■14년 만의 특수학교 설립 “엄마가 지켜줄게”=특수학교 수가 부족해 1시간 거리의 특수학교로 통학하는 현실. 서울의 특수학교 신설을 요구하는 투쟁에도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있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소속 부모들은 3월 28일 서울시교육청을 점거하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향해 강남구와 중랑구, 강서구에 각각 특수학교를 설립할 것을 요구했다.

점거농성 5일 만에 조희연 교육감이 특수학교 3곳 설립에 대해 약속을 했고 장애인부모들은 교육청 농성을 해제했다. 교육청은 특수학교와 관련해 행정예고를 했고 2002년 서울 경운학교 이후 14년 만에 생길 특수학교에 부모들은 들떠 있었다.

강서구의 특수학교는 설립은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강서구 특수학교 부지인 공진초등학교를 두고 지역구 의원인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제동을 걸었다. 교육청이 특수학교 신설에 대한 행정예고를 했음에도 “지역주민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앞장서서 가로막은 것이다.

김 의원은 ‘서울시 교육청은 공진초 폐교부지에 특수학교를 건립을 위한 절차로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의 심사를 요청하였습니다. 이는 강서구민들의 동의 없는 독단적인 행위입니다.

보건복지부의 국립한방의료원 사업타당성조사가 곧 나올 예정입니다. 반드시 국립한방의료원이 설립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성태 드림-’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서울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소속 부모들은 지난 12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강서구 특수학교 건립을 막는 김성태 의원을 상대로 진정을 제기했다.

최근에는 강서구 특수학교 건립을 막는 지역주민과 김성태 의원을 상대로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특수학교 설립을 결정짓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의 특수학교 건립 심사결과를 앞두고 있다.

‘끈질긴 놈이 승리한다’ 입증한 부모들=발달장애인부모들의 투쟁은 척박한 지역사회 속 발달장애인 지원체계를 당사자 부모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린 중요한 사건이다.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함께 살 수 있도록 주거, 교육 등 기반을 마련한 의미도 있다.

하지만 투쟁의 불씨는 여전하다. 가장 큰 문제는 발달장애인의 지원에 관심이 부족한 지자체가 관련된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들이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 한 내년에도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목숨 건’ 투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조희연 교육감의 공약인 특수학교 설립을 이행하도록 만들었다. 특수학교 설립과 관련해 지역주민의 눈치를 보는 교육감으로부터 ‘백기투항’을 받아내는 성과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오는 30일 발표되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의 특수학교 건립 심사결과가 설립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의 '국립한방의료원' 추진과 고개를 들고 있는 지역주민의 장애인 혐오도 복병이다. 14년 만의 특수학교 설립이 이뤄질 지 우리 모두가 주의깊게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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