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의 내용이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법원 앞에는 오른손에는 공정하다는 천칭저울을 들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은 정의의 여신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여신상은 그리스의 디케(Dike)에 형평성이 추가 된 로마의 유스티치아(Justitia)라고 한다.

법의 날(4월 25일) 기념우표. ⓒ우정사업본부

KBS2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도 법조인을 다루고 있다. 보육원에서 자란 조들호(박신양 분)는 개천에서 난 용이었다. 출세를 위해서 죽어라 공부를 했기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잘 나가던 검사였으나 검찰 내부 사건에 휘말려 추락한다.

조들호는 아내에게 이혼 당하고 딸도 뺏기고 노숙자로 전전하다가 보육원에서 같이 자란 동생의 죽음으로 약자를 위한 정의로운 꼴통변호사로 거듭난다. 그러면서 쫓겨나는 세입자를 위해 건물주와 맞서고, 아이들에게 쓰레기 음식을 먹이는 유치원장, 공사대금을 떼먹는 대기업과 싸운다.

이번에는 카페인 함량이 많아 이를 마시고 죽은 여학생을 위해서 파워킹를 조사하는데 파워킹을 만든 회사는 조들호의 원수 같은 정회장의 대화그룹 자회사였다. 정회장은 조들호에게 누명을 씌워 검사에서 물러나게 한 장본인이다.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KBS2의 월,화 드라마인데 3월 28일부터 시작된 20부작으로 지난 화요일에 16회를 방영했다.

‘동네변호사 조들호’ 기획의도에도

‘진실을 밝히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이 진실이라는 법정.

변호사 2만 명 시대건만,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변호인은 없다.

그래서, 여기 한 꼴통 변호사가 등장했다.’라고 되어 있다.

‘동네변호사 조들호’ 기획의도.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 지 않아 지체장애 4급 A 씨가 찾아 왔다. A 씨는 4남매의 막내인데 소아마비로 어렸을 때부터 다리를 절었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내 죽으면 이 집은 막내한테 줘라’고 했기에 형이나 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A 씨가 캐나다에 있을 무렵 작은 형이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법 많은 돈을 빌려 주었다. 얼마 후에는 큰 형이 전화로 ‘어머니가 위독하니 돌아가시기 전에 집을 자기 앞으로 넘기고 A 씨가 오면 돌려주마.’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A 씨가 부산으로 돌아오니 큰 형은 A 씨가 집을 내 놓으라고 행패를 부린다며 경찰을 불렀고, 작은 형은 A 씨의 돈을 갚지 않은 채 죽고 말았다.

필자 앞에서 A 씨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큰 형이 고소를 해서 경찰신세도 졌고, 딸이 혼자 캐나다에 있는데 갈 차비도 없고, 현재는 수급자로 달 셋방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계속 형과 싸워 왔는데 이번에는 누나도 증인을 서겠다고 해서 법률구조공단에도 가 봤는데 너무 지나서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물어물어 필자를 찾아왔다면서 하는 말이 큰형과 소송을 해서 집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거였다.

필자가 보기에는 집을 다시 찾을 가망은 없어 보였다. 간혹 A 씨 같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어머니가 생전에 A 씨에게 집을 넘겨주든지 유언장이라도 써 놓았어야지, 몇 년이나 지난 지금 와서 형제끼리 법정싸움이라니…….

결국 A 씨가 도와 달라는 것은 조들호 같은 변호사를 소개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45도로 틀어진 배종덕 씨의 다리와 발. ⓒ이복남

며칠 전 배종덕(65세) 씨가 찾아 왔다. 배 씨는 혼자 살면서 십여 년전에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다쳐서 D병원에서 족관절과 고관절에 핀을 박았다. 그 후 지체4급으로 수급자가 되었고 10년이 다 되가니 고관절에 박은 핀이 삐걱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D병원에 갔으면 될 건데 수급자라 부산의료원을 찾아 간 것이 제 실수였습니다.”

2009년 9월 부산의료원에서는 무혈성괴사라며 인공관절 수술을 권했다. 그런데 수술한 지 6일 만에 탈구가 되어 다시 수술을 해야 했다.

“부산의료원에서는 길을 가다가 주저앉을 수 있다고 겁을 주면서 안 해도 될 수술을 하는 바람에 다섯 번이나 재수술을 하게 되어 제가 실험용이 된 것 같았습니다. 법이 있는 국가라면 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단 한 번의 수술도 힘들고 고통스러울 텐데 그런 수술을 5번이나 했다. 그 후 오른쪽 다리가 45도로 틀어지고 7cm나 짧아진데다 반복되는 진통으로 견디기가 어렵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다시 재수술을 권했지만 그 지긋지긋한 수술을 다시 받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 알아보니 아무래도 의료사고 같으니 한국소비자원에 분쟁조정신청을 해 보라고 했다.

부산의료원에서는 ‘무혈성 괴사의 진행 가능성이 있어서 인공관절치환술을 시행했다’고 주장했으나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서 전문위원들이 심사한 결과 인공관절 치환술의 적절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배 씨가 제기한 ‘병원의 의료과실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에서 6:4로 조정을 했는데 4로 조정된 배 씨에게 주어진 보상금은 500만원 정도였다.

“그 돈을 안 받았어야 되는데, 그 때는 다섯 번의 수술로 제가 살던 영구임대아파트 월세도 밀리고 생활이 말이 아니어서 그 돈으로 빚을 청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비자원의 조정결정 통보. ⓒ이복남

지금은 LH공사에서 얻어 준 단칸 원룸에 살고 있는데 생각할수록 억울해서 소비자원에 다시 청구를 했더니 그 때 이미 500만원을 받았으므로 이제 와서 재심을 할 수는 없으니 법정으로 가 보라고 하더란다.

“그 때 법으로 하라고 하지, 이제 와서 춥고 배고픈 소외계층에게 법정으로 가라니 말이 됩니까.”

배종덕 씨는 울분을 참지 못해 언성이 높아졌다.

“법원에도 가 봤는데 돈이 없으니까 국선변호사도 이런 재판은 안 하려고 합디다.”

생각다 못해 청와대로 편지를 보냈더니 다시 돌아오는 것은 한국소비자원에서 였다.

“그 일로 웃음과 행복을 잃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내 소원은 다시 활동하는 것인데 도대체 이게 뭡니까?”

필자와 만나는 순간에도 배 씨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다. 오른쪽 다리는 정형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오른 발은 왼 발과 일자로 평행이 되지 않고 45도로 벌어져 있었고, 다리는 흔들리고 삐걱거려서 겨우 한 발짝씩 걸을 수가 있었다.

“이 나라 구조가 가난한 사람에게 법정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 편이라고 했다. 필자에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눈물을 글썽였지만 조들호 같은 변호사가 나서서 재판 좀 맡아 주면 좋겠다고 했다.

필자가 혹시나 싶어서 ‘의료소비자연대에 문의를 해 보았다. 소비자원에서 조정을 받은 사건은 1심에서 기각되기가 쉽고, 그래도 억울하다고 소송을 할 수야 있겠지만 의료사고를 잘 아는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고 기일도 1~2년을 잡아야 할 것이므로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동네변호사 조들호’를 방영하기 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필자를 찾아오는 장애인이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 장애인의 사연을 들어보면 별 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물론 현실에서 조들호 같은 변호사가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과연 누가 장애인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 바치겠는가.

얼마 전 어느 장애인모임에서 필자가 ‘‘동네변호사 조들호’얘기를 꺼냈었다. 대부분의 장애인이 조들호를 보면서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고, 미처 못 본 사람들은 재방송을 챙겨 볼 거라고도 했다. 그들이 하는 말은 없는 사람들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그나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 위안을 받는 것 같았다.

누구 조들호 같이 정의로운 변호사 있어서 억울한 지체장애인 A 씨나 배종덕 씨 사건 좀 맡아 주면 정말 좋으련만.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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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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