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7년, 현재 큰 틀에서 특별한 개정 없이 유지돼온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두고,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장애계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변화된 환경과 시대적 상황을 충분히 담고 있지 못해 곳곳에서 법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7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실효성 강화와 개정 방향 모색 토론회’ 속 장애인차별금지법 문제점에 대한 핵심 키워드를 꼽아 정리했다.

(왼쪽부터)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1과 이석준 과장,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양영희 회장.ⓒ에이블뉴스

■사각지대 하나, ‘쏙’ 빠진 발달장애인=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고용, 교육 영역 등에서 편의제공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편의제공의 내용은 확대 독서기, 수화통역사, 휠체어 접근로 등 신체적 장애인을 위한 것이 대부분.

희망을 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는 “구체적 편의제공의 내용에 발달장애인에 대한 것이 빠진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당시 발달장애인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법 안에 발달장애인의 편의를 위한 내용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뿐 아니라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편의증진법에서도 발달장애인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며 “지금이라도 고용과 교육 영역 등에서 사용자 또는 교육책임자 등의 편의제공 의무에 쉬운 단어나 그림으로 표현된 문서 등 의사소통 보조수단의 제공 등을 추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1과 이석준 과장은 “장애인차별 사건을 조사하면서 조사관들이 가장 많이 부딪히는 문제가 발달장애인의 편의제공문제다. 장애정도에 따라서 읽기 능력 등을 제공한다고 해도 해석하는 능력에 대해 표준적인 기준 설정이 안 돼 있다”며 “쉬운 단어, 그림으로 표현하는 매체 소스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보태 말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양영희 회장도 “발달장애인 부분은 신체적 장애와 다른 부분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공감한다”며 “장애유형별로 구체적으로 법에 명시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사각지대 둘, 빈약한 ‘문화향유권’=최근 들어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장애인의 영화관람 환경은 오히려 열악하다. 김재왕 변호사가 또 한 번 힘주어 말한 부분이 바로 ‘문화향유권’.

이는 이날 토론회 좌장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도 최근 다녀온 제주도 여행을 들며 언급한 부분이기도 하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출판물 발행사업자와 영상물 제작‧배급업자에게 장애인을 위한 편의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나 이는 의무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에 불과하다. 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비롯한 실질적 문화접근성 보장에는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할 터.

김 변호사는 “출판물 발행사업자와 영상물 제작 배급업자에게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출판물 또는 영상물을 접근, 이용할 수 있도록 이용 편의 서비스를 의무화하고, 상영관 경영자에게도 한글 자막 또는 화면해설이 제공된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문화향유권 중에서도 요즘 뜨는 ‘관광’. 그럼에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속에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이 현실. 김 변호사는 “관광과 관련해서 아무런 내용이 없다. 다소 추상적이다 하더라도 선언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7일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사무차장,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강완식 정책실장.ⓒ에이블뉴스

■진정해도 ‘높은 벽’ 좌절=장애인들이 차별을 당해 구제를 원할 때에는 법원보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로 향하는 것이 사실. 그만큼 인권위는 장애인들에게 ‘엄마의 품’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지만,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사무차장은 “장애인 차별에 대해서 인권위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역할을 다했느냐하는 질문에 비판적”이라며 실효성 부족을 들었다.

인권위의 차별진정사건 사유별 처리현황을 보면, 총 2만305건이 접수돼 1만9492건이 종결됐고 841건이 조사 중이다. 이중 장애와 관련된 차별진정사건은 9086건이 접수돼 44.7%에 달하는 등 매년 증가 추세다.

눈여겨볼 점은 이중 각하가 4379건, 기각이 3385건에 달한다는 점. 장애와 관련돼 종결된 진정사건 10건 중 9건이 각하나 기각 처리라는 지적이다.

이 사무차장은 “어렵게 인권위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 어떤 구제조치도 받지 못하고 차별이 아니라는 답변을 듣는 중”이라며 “차별 진정을 하더라도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업무처리속도 때문에 신속한 차별구제가 필요한 장애인들은 상황 종료된 이후에 개입하는 인권위에 한숨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강완식 정책실장도 "인권위에 진정하면 접수 후 사건 조사해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 짧게는 1년이고 길게는 2년 반이다. 장애인들이 차별받아서 진정을 할 때는 시급성이 있는 부분"이라며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것인데 다른 사건에 밀리고 인력부족해서 밀리면 나중에 자료도 없어질 수도 있고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 정책실장은 "물론 인권위의 인력적인 문제도 있지만 최소한 법에서는 차별 행위가 발생해 진정하는 경우 일정 시일 내에 사건을 조사하고 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보다 강력한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위의 구성원 선출에 있어 성별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지만 장애인을 포함한 인권취약계층에 대한 고려가 없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내용도 나왔다.

이 사무차장은 “지난 4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는 우리나라 인권위의 위원임명의 투명성과 다양성 미비를 이유로 인권위에 대한 등급보류 판정을 내린 바 있다”며 “사회의 폭넓은 대표성을 고려하도록 하는 다양성을 충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장애인당사자를 인권위원으로 선출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과 장차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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