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주최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 강연자로 나선 에이블뉴스 백종환 대표.ⓒ에이블뉴스

“아침부터 재수 없게 장애인기사를 우리 독자들에게 내보낼 수 없다” 장애인이 아침에 택시를 타는 것이 재수 없게만 느껴졌던, 더욱이 이런 상황조차도 차별로 인식하지 못 한 1980년대.

누군가는 기사를 통해 장애인들의 차별적 사회문제를 알려야했지만 소위 메이저라 불리는 거대 언론은 철저히 무시했다. 분명 취재를 했지만 지면에는 실리지 않았다. 그저 “재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차별을 당연시 여기고, 정보를 알지 못해 지원조차 받을 수 없던 암울한 그 시절, ‘펜’으로써 자신만의 장애운동을 걸어왔다. 화려한 연예인 인맥도, 이력도 없지만 “동행하고 싶다”란 마음으로 기적을 함께 하겠단 남자. 국내최초 장애인인터넷신문을 만든 백종환 대표다.

23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 강연회에 오른 백 대표. “대표님 파이팅!”이란 응원 목소리에 웃음 짓는 그의 주름진 얼굴에서는 장애계와 함께한 오랜 세월이 그대로 묻어난다.

사실 그의 꿈은 언론인과 거리가 멀었다. 5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들어간 전남 나주의 한 고아원에서 그의 깊은 상처를 보듬어준 선생님. 마치 천사와도 같던 선생님의 모습에 백 대표는 아이들의 상처를 싸매주는 선생님을 꿈꾼다.

어느덧 청년이 된 그는 국가의 부름에 따라 군 생활을 마친 후 교회에서 중고등부 지도교사로 일하며 처음으로 장애인을 마주하게 된다. 한 장애인시설에 봉사활동을 하러 간 것. 몸이 뒤틀리고, 무언가를 홀로 내뱉는 장애인들의 모습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감과 편견 오묘한 생각이 뒤틀렸을 뿐.

하지만 그는 지도교사였다. 아이들 앞에서 보란 듯이 장애인과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가 선택한 사람은 시설에서 가장 깨끗하고 얌전한 시각장애인 한 분이었다. 어물대다가 마주잡은 그의 손은 너무나 따스했다. 마네킹처럼 차가울 것이라 여겼던 장애인의 손, 그 손에서는 엄청난 열기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저는 장애인의 손이 마네킹과 같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체온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손에서는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어요. 엄청난 열기가 나면서 신기한 이 조화가 뭘까 라고 생각했죠.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죄책감에 시달렸고 그 다음날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했어요.”

그는 무언가 홀린 듯 장애계에 빠져들었다. 1985년 한국시각장애인복지회에서 녹음도서 제작 봉사를 시작으로, 한 언론사에 취직했다. 물론 그의 첫 기사는 장애인 관련 기사였다. 이후 1989년 처음으로 장애인전문지가 창간하며 새 둥지를 틀었던 백 대표. 2002년도에는 에이블뉴스를 창간하며 장애계 중심에 섰다.

“시골에 산다하여, 방송조차 알려주지 않는 장애인복지정보를 알려야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장애인전문지의 필요성이었습니다.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저 섬에서도, 농촌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에이블뉴스였죠.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장애계 이슈를 따라가기도, 리드했습니다. 꺼져가는 장애인계 이슈를 재점화하기도 했고요.”

23일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주최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 강연자로 나선 에이블뉴스 백종환 대표.ⓒ에이블뉴스

2002년부터 현재까지 장애인의 든든한 언론이 되어온 에이블뉴스. 장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업무의 시작은 ‘에이블뉴스’와 함께”란 말이 낯설지 않는데. 13년째 함께해온 에이블뉴스의 성과는 결코 적지 않다.

“2003년 전동휠체어 건강보험 적용을 위해 장애인분들에게 적용의 필요성 등을 기고를 통해 알려냈습니다. 객원기자로 일하고 있는 박종태 기자의 경우 편의시설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기동대처럼 달려가는 열정적인 기자고요. 마지막 척수장애인의 넬라톤 문제를 누구도 해결하리라 믿지 못했죠? 에이블뉴스는 끈질긴 보도로 해결했습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장애인문제의 제도화에 일심양면한 에이블뉴스, 그 선봉장인 백종환 대표. 그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머쓱해하며 “이 일들을 장애운동이라고 평가해주신다면 받아들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곧바로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성경에는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오병이어 기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에이블뉴스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어가는 신문이라고 확신합니다. 현금 10만원으로 1만원씩 10명에게 나눠주는 것보다 정보제공을 통해 보장구를 지원받을 수 있다면 100만원에 비하겠어요? 오천 명을 먹임에도 남았던 기적처럼 에이블뉴스는 장애인복지정보를 500만 장애인에게 전파하고도 남을 겁니다.”

비장애인으로서 카메라 한 대와 펜 하나만 들고 왕성한 활동을 하던 백 대표. 혹자는 그를 향해 “장애인에게 빌붙어 먹고 산다”라는 험한 말들을 내뱉었다. 한 번이 아닌 수십 번까지도.

하지만 그는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다. 빌붙어 먹지 않는다는 것을 보란 듯이 ‘펜’으로 보여줬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었나? 그는 펜으로서 날카롭게 장애계 현안을 비판하기도, 장애계 이슈 선봉장에 서기도 했다. 물론, 절실한 사각지대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1980년대 암울했던 그 시절 열정적인 청년기자에서 이제는 주름진 장년으로, 한 언론사의 얼굴로 청중들에게 선 백 대표. 그는 가득 채워진 청중들을 향해 차분히 마지막 말을 이어나갔다.

“장애인의 삶 변화를 위해 노력해온 것들을 장애운동으로 평가해준다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계와 함께 동행했었노라고, 빌붙어먹고 살지 않았노라고 평가받고 싶습니다”

23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 강연회.ⓒ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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