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에이블뉴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을 맡고 있는 자칭 타칭 ‘장애계 블랙리스트’. 장애계의 보배이기도, 때로는 불편한 존재인 그를 장애계에서는 “미워할 수 없는 동지”라고 일컫고 있다.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거리에서 머리를 휘날리며 정부에, 경찰에 저항해온 장애운동계의 선봉장인 그가 웬일로 정장을 차려입은 분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7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주최 ‘2015년 장애인최고지도자포럼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의 강연자로 나선 것. 스스로 ‘블랙리스트’라고 소개한 그는 30여분의 강연 내내 때로는 웃음 속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박수를 받았다.

장애인의 ‘장’도 몰랐던 박 대표가 장애인이 된 건 지난 1983년. 해병대 제대 후 행글라이딩을 하다 추락, 지체장애 1급을 판정받았다. 어찌 보면 불편하고 숙연해지는 이야기지만 특유의 넉살로 그는 청중들을 이끌었다.

“저는 날라리였고, 놀다가 떨어져서 인생이 요렇게 됐어요. 5년 동안 구석에 처박혀서 내 탓이요 하면서 죽느냐 사느냐 했고요. 장애인이 된 건 엄마 말을 안 들어서예요. 엄마가 교회가라고 헌금으로 준 돈을 띵가먹고 놀다가 다쳤거든요.”

그랬던 박 대표가 5년이 지난 후 아파트 문을 열었다. 1988년도 복지관에 방문했던 그는 잊지 못할 장애운동계 선배를 만나게 됐다는데.

“술을 많이 사주니까 들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그 곳에서 그는 ‘현장’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당시 장애인계의 화두는 바로 양대 법안 투쟁.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과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장애인복지법으로 제정하는 것이었다.

“당시 데모를 가자고 했던 선배가 박흥수였다. 너무 가난하게 살다가 88년도 서울 장애인올림픽 조직위를 점거했던 사람이다. 재활의지니 봉사니 아름다움이니, 비장애인의 극복 대상이 돼야 하는 장애인의 현실을 규탄했다. 당시는 너무 과격한 거 아냐 생각했지만 그때 만난 형 이야기가 나에게는 뼈와 진실이 됐다.”

그렇게 시작된 ‘박경석표’ 투쟁. 2001년도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사망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이동권 투쟁에서 화려하게 빛났다.

당시 박 대표가 다니던 복지관에서는 ‘합리적’을 강조하며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한 수차례 공문만을 보냈다. 또 장애인의 날 시장님 리프트를 태우고 ‘고쳐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반면 그는 쇠사슬을 묶으며 지하철 투쟁을 외쳤다. ‘합리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당당히 얻어냈다.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해 우리는 지하철로 들어갔고 결국 바뀌더라. 저상버스를 만들어달라니깐 정부에서는 장애인들만 탈 수 있는 버스를 만들겠다 하더라. 권역당 5대로 복지관, 주민센터 이런 곳만 다니는 버스로 말이다. 이건 대중교통 이동권 보장이 아니다, 장애인은 왜 맨날 따로국밥만 먹느냐고 항의했다. 몇백만원의 장애인식 프로그램을 만들지 말고 대중교통을 통해 장애인을 만나는 것이 바로 장애인의 인식 개선이다. 술 먹고 지하철에서 오바이트하는 장애인을 봐야 하는 것 아니냐.”

결국 그의 투쟁은 성공적이었다. 현재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가 되고 있으며 서울시 박원순 시장은 저상버스 100% 도입을 약속했다.

하지만 모든 투쟁의 결과는 공짜가 아니었다. 무서운 벌금폭탄과 구속까지 당했다. 그는 올해 마로니에 공원 경사로 확보를 위해서도 뿅망치로 물감을 묻혀 두들겼다. 결국 투쟁으로 경사로를 얻었지만 이 같은 공공시설 낙서는 불법. 그가 해온 지하철, 버스 점거 역시 불법에 시민들의 발목까지 잡았다. 하지만 그는 이를 두고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표하는데.

“장애인운동은 합법 불법이 아닌 비폭력평화운동이다. 총 들고 싸우지 않았다.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평가하고 있다. 마틴루터킹의 경우도 합법만 한 것 아니다. 그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교통방해죄 등 구치소에 백번이고 왔다 갔다 했을 거다. 합법으로 모든 것을 제한해선 안 된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농성 1000일을 앞둔 현재, 그는 장애인문제를 사랑도, 봉사도 좋지만 지금도 그랬듯 앞으로도 ‘투쟁’으로써 이야기하겠다는 다짐이다. 특히 그는 2001년 이동권 투쟁 당시 랩을 선보이며 장애계의 투쟁을 동참하기도.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제대로 보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아파 뒤지겠는데 아이고 사랑해주세요 도와주세요는 아니지 않냐.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내 가슴에 차별의 칼이 찔려있다. 시혜와 동정의 떡고물 속이 아닌 권력이 돼야 한다. 장애인예산은 지금의 10배, 10조로 이야기할 때다.”

7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강연.ⓒ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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