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구근호 소장의 아내 변복순씨가 삼육대학교 윤재영 교수로부터 석사 학위기를 받고 있다.ⓒ에이블뉴스

평생 ‘자립생활’을 위해 헌신해 온 중증장애인의 기쁜 졸업식이 논문 유작 발표회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삼육대학교 학위수여식이 있던, 또 장애운동가 고 구근호 소장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여된 13일, 신학관 강의실에는 그를 기리는 논문유작 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그는 삼육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 졸업 예정자였다. 그의 마지막 논문은 함께 작업한 안형진씨가 발표했으며 많은 동료와 후배들에게 받았어야할 꽃다발은 눈물 속 유가족에게 전달됐다.

우리나라 장애인 자립생활 중심에 서 있던 고 구근호 소장.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 활동가로 입문한 그는 2008년 한국 DPI 소속 동대문새날IL센터를 설립했다.

특히 동료상담의 중요성을 인식,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장애인동료상담네트워크 회장직을 맡아 동료상담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이외 2009년 에이블뉴스 칼럼리스트로 활동했고, 장애인전문 체육인으로 보치아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자립생활의 실천을 몸소 보여줬던 그는 지금 ‘없다’. 지난 1월1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활동보조인 교육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횡단보도에서 지나가던 차량과 충돌하며 크게 다친 그는 5일만에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생을 마감한 그가 남긴 마지막 논문 역시 ‘자립생활’이었다. ‘자립생활을 지향하는 장애인의 삶의 경험에 대한 연구: 근거이론적 접근’ 논문은 자립생활서비스가 획일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 권익옹호 기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점, 복지 예산의 전환 등을 제언하고 있다.

‘당사자에게 주도권을 확보해 줄 수 있는 정책이어야 장애인들의 인간으로서의 삶의 회복과 다양한 자기 발전 욕구를 실현해 줄 수 있을 것이다’고 끝맺음한 그의 논문은 당사자로서 자립생활의 밝은 발전을 꿈꾸고 있었다. 노력의 결실인 석사 학위기는 그의 아내인 변복순씨가 대신 수여받았다.

교수들의 직인이 담긴 고 구근호 소장의 논문.ⓒ에이블뉴스

복순씨에게는 여전히 구 소장의 죽음이 믿겨지지 않는다. 2년 전, ‘신체적인 불편은 있지만 나의 장애가 결코 부끄럽거나 숨기고 싶은 대상이 아닌 평생 동반자다’라며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고 대학원에 입학한 남편, 그녀에게는 너무나 멋지고 든든한 남편이었다.

복순씨는 “늦은 나이에 쉽지 않은 공부를 선택한 남편이 멋있었다. 외곽에 있는 학교를 통학하느라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학교 측에 통학버스를 요구하지 않는다며 처음 부부싸움을 했을때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며 “논문을 준비하던 남편이 밤새 컴퓨터방에서 밤을 새우던 모습이 선하다”고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특히 그녀는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에게 “논문을 준비한다고 너무 수고 많았고, 이런 준비한 자료가 자립을 준비하거나 자립을 계획하는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마지막 말을 남겨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평생 아들 자랑으로 살아왔다던 구 소장의 아버지 구자수씨는 “주몽재활학교를 다닐 당시 공부좀 그만하라고 하세요란 소리를 들을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던 아이였다. 아직도 죽었다는게 실감이 안날 정도”라며 “아들이 보여준 것처럼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셔달라”고 말했다.

구 소장과의 인연이 깊은 삼육대학교 논문지도교수인 윤재영 교수는 “동대문구 복지관 관장에 있을때부터 함께 활동하며 늘 가까이 했으면 하는 그런 분이었다”며 “당사자로서 더 나은 장애인의 삶을 고민하셨던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구근호 소장은 떠났지만 그의 마지막 논문은 앞으로 자립생활을 시작하는, 계획하는 많은 장애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당사자로서 장애인 삶을 바라본 그의 논문은 한국장애인복지학회지에 정식 게재되기도 했다.

또 지난 2011년부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연합회 소속 자립생활대학의 교수로 활동한 그는 명예교수로 계속적으로 대학 홈페이지에 남아있을 계획이다.

자립생활대학 전정식 학장은 “구근호라는 사람이 씨앗을 뿌려서 씨앗을 통해서 많은 후배와 동료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힘빠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영원히 내마음속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3일 삼육대학교에서 열린 고 구근호 소장 논문 유작 발표회 모습.ⓒ에이블뉴스

고 구근호 소장의 아내 변복순씨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는 동료.ⓒ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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