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김현주씨.ⓒ에이블뉴스

인천 계양구에 거주하는 김현주(뇌병변1급·시각4급, 44세)씨는 얼마 전까지 임대아파트로 속이 타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7년 만에 꿈에 그리던 임대아파트에 당첨됐지만 중증장애인인 그에게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던 것.

지난 2006년까지 현주씨는 서울에서 부모님과 함께 거주해왔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그 때는 자립하기가 힘들겠다’라는 생각에 서울, 인천을 오가는 서러운 월세살이에 발을 들였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월세 37만원, 공과금 및 관리비 13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힘겨운 생활에도 임대아파트 당첨의 꿈을 그리며 그렇게 살아왔다.

몇 년이나 꾸준히 임대아파트를 신청해왔을까. 지난해 11월, 인천 갈산주공아파트 임대에 당첨됐다는 우편물이 도착했다. 현주씨는 기쁜 마음에 다음날 바로 입주할 아파트를 찾았지만, 그것은 믿고 싶지 않은 암담한 현실이었다.

“저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현관 출입구가 넓어야 하는데 출입이 안 되더라고요. 더군다나 화장실 입구의 턱은 육안으로만 봐도 30센티미터를 넘어서고 있었고요. 직접 재보니 27센티미터 정도 되더군요. 저는 활동보조 선생님에게 목욕의 도움을 받는데 둘이 들어가기는 커녕 혼자 들어가서 움직이기조차 버거웠어요. 선생님이 딱 서 있을 정도였나? 선생님이 한 바퀴를 못 돌 정도였으니까요.”

화장실 벽 또한 얇은 합판 재질로 되어있어 중증장애인인 그가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위험이 컸다. 활동보조인이 없는 혼자 있는 시간, 화장실을 찾았다가 넘어지면 어쩌나. 그의 두려움은 현실로 다가왔다.

현주씨는 ‘절대 이 아파트에서 살지 못하겠다’라는 생각에 해당 주택관리공단에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당첨된 아파트를 바꿔줄 권한이 없고, 권한이 있더라도 바꿔줄 수 없다”는 단호한 답변이었다.

순번을 기다릴 당시 주민센터나 구청 어디에서도 임대아파트에 대한 실제적 정보를 얻을 수 없던 현주씨. 사전정보 없이, 호수나 구조를 선택할 수 없이 그저 일방적으로 정해주고 ‘그냥 살던지, 포기하던지’ 선택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답답했던 현주씨는 지난 12월11일 청와대 신문고를 두드렸으며, ‘임대 주공아파트 당첨의 허와 실’이라는 주제로 그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 뒤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국민권익위원회 담당 조사관으로부터 답변 메일이 도착한 것.

도착한 메일에는 “(현주씨가 계약한) 갈산주공아파트는 전체 세대의 전용면적이 동일함에 따라 호수를 변경할 경우 고충민원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며 “지구변경을 희망하는 단지 및 전용면적을 담당조사관에게 보완해 달라”고 적혀있었다.

현주씨의 지구변경 내용이 담긴 합의서와 권익위 조사관이 보내온 메일.ⓒ에이블뉴스

메일 이외에도 전화를 걸어온 담당 조사관은 현주씨의 장애정도로 인한 주택생활의 어려움을 다시금 묻고는 현 12.5평형인 갈산주공에서 17평인 만수주공으로 변경 할 수 있도록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메일을 보내온 지 1주일 만에 인천갈산2 관리사무소에서 현주씨, 주택관리공단, 인천시 담당자, 해당 조사관이 참석한 가운데, 현주씨의 지구변경에 대한 합의서를 작성한 것.

합의서에는 1급 뇌병변 및 4급 시각장애를 가진 신청인 현주씨가 거주하기 어려운 구조로 시공된 갈산 주공에서 만수7단지로 지구변경, 오는 12월31일까지 입주할 수 있도록 했다. 조사관의 빠른 판단과 노력으로 현주씨의 간절한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또 그간 지구변경에 대한 민원은 많았지만, 현주씨처럼 관계자들이 모여 합의서를 작성한 것은 최초였다는데.

“변경된 만수7단지를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가보신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화장실도 넓어서 활동보조인이 제 목욕을 도울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고 해요. 그런 점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구요. 이렇게 지구변경을 위한 회의가 연 것도 처음이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상황에서 조사관님이 많은 노력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죠.”

해당 주택관리공단 관계자도 “영구임대주택이 대체적으로 평수가 작아서 관련 민원이 가끔 들어오는 편인데 이렇게 합의를 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던 것은 최초”라며 “저희 회사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지자체 등 모든 관계자들의 입장을 잘 정리해서 해결이 됐다”고 말했다.

7년이란 세월을 버거운 월세비를 지불하며 현주씨가 견뎌온 것은 오로지 영구임대 아파트 입주였다. 현주씨가 처음 아파트 배정을 받았을 때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포기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는 참지 않고 민원을 제기했던 점을 스스로도 “참 잘 했다”라고 표현했다.

“제가 입주를 포기했을 경우 제 순번이 뒤로 밀리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영구임대 주공아파트를 신청 자체를 할 수 없도록 되어있어요. 저의 이 상황을 누구도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거든요. 만약 장애인들께서 저 같은 상황을 겪었다면 참지 말고 억울함을 토로하고, 제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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