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해설사를 통해 설명을 듣고 있는 충주 성심학교 이상남 학생.ⓒ에이블뉴스

32도의 무더위로 뜨거웠던 30일. 까맣게 그을린 청소년 20명이 이른 아침부터 서울길에 나섰다. 바로 지난 2011년 개봉된 영화 ‘글러브’의 주역들인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 학생들.

이들은 방학을 맞아, 우리 역사 중 가장 치열했던 대한제국의 시간이 남아있는 덕수궁과 정동길 일대를 돌아보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과연 청각장애인들이 장애라는 장벽 없이 생생한 역사와 문화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이번 여행은 좀 더 특별했기에 가능했다. 청각장애인 서울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수화해설을 통해 역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는 ‘시‧청각 장애인 도보관광’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총 20명의 학생들은 5명씩 4팀으로 나뉘어져 4명의 청각장애인 서울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대한제국의 이야기를 들었다. 무더위에 연신 땀방울을 훔쳤지만 학생들의 눈만은 수화를 하는 해설사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신기한 표정으로 덕수궁 안에서 열심히 설명만 듣던 학생들,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중명전에 도착하자, 적극적으로 질문에 나섰다.

1897년 황실도서관으로 러시아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중명전은 대한제국 1대 황제인 고종이 헤이그 특사를 접견한 장소며,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됐어요. 만약 해방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에 살았어요.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 수 없고, 여러분들은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거예요.” 박순미(52) 해설사의 을사늑약의 설명이 이어지자, 한 학생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다행이네요. 그렇다면 북한은요?”라고 질문을 던지는 이상남(16세)군. 앳된 얼굴의 상남군은 야구부에 들어온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입이다. 예전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는 상남군은 나이는 어렸지만 가장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박 해설사가 헤이그 특사의 3개월간의 일정을 설명하는 순간에도 궁금한 표정으로 “밥을 어떻게 먹었어요?”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상남군은 “예전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해설사 선생님이 잘 설명해주셔서 너무 재밌어요. 수화로 해설해주니까 자세히 알 수 있게 되고 너무 좋네요”라고 머쓱한 듯 웃었다.

수화해설사를 통해 설명을 듣고 있는 충주 성심학교 학생들.ⓒ에이블뉴스

상남군과 함께한 3명의 학생들도 재밌다는 반응이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체구가 월등히 큰 배청희군. 청희군은 야구부에 들어온 지 벌써 4년이 됐다. 1루수의 포지션을 맡고 있다는 청희군은 “내일부터 전지훈련인데, 훈련에 앞서 도보관광을 와서 너무 재밌다”고 수줍게 말했다.

박순미 해설사는 “작년 6월부터 해설사를 시작했다. 성심학교 학생들 같은 어린 층과 어르신층 등 다양한 연령층 모두를 담당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학생들이다보니 어려운 설명을 동화처럼 풀어내듯이 하고 있다. 무더운데도 학생들이 질문도 많이 해주고 재밌어해서 덩달아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재밌어하는 학생들의 반응에 지켜보는 선생님들의 마음도 뿌듯했다.

성심학교 문선희 교장은 “야구부 학생들이 방학을 해도 합숙훈련 등 힘든 과정을 거치는데 오늘 같이 문화체험을 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 해설사의 수화설명에 마음으로 서로 공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문화체험은 물론, 해설사 선생님을 통해 다양한 직업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시·청각 장애인 도보관광은 시·청각 장애인 서울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시·청각 장애인 및 장애인을 동반한 관광객들에게 서울의 역사, 문화, 자연 등 관광자원 전반에 대해 상세하고 알기 쉽게 전문적인 해설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신청대상은 시·청각 장애인 및 장애인을 동반한 비장애인으로 운영 시간은 1일 2회(오전 10시, 오후2시), 소요시간은 2시간이며, 해설시간은 조정가능하다.

시각장애인 도보관광은 촉감과 체험위주의 음성해설이고 청각장애인 도보관광은 수화해설로 진행된다. 이용요금은 무료이며 휴관일은 월요일이다. 시각장애인 도보관광코스는 덕수궁이며 청각장애인 도보관광코스는 덕수궁, 정동길이다.

자세한 사항은 서울도보관광 홈페이지( dobo.visitseoul.net)에서 확인 가능하다.

수화해설사를 통해 설명을 듣고 있는 충주 성심학교 학생들.ⓒ에이블뉴스

수화해설사를 통해 설명을 듣고 있는 충주 성심학교 학생들.ⓒ에이블뉴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