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버스의 탑승구. 버스 차체가 내려오고 램프가 반자동이어서 고장시 손으로 작동할 수가 있다. ⓒ샘

워싱턴 디시 지역 버스들이 새것으로 교체되고 있다. 아직 낡은 버스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새 것이다. 새 버스를 가장 반기는 것은 그동안 낡은 버스로 무척 고생을 한 장애인들이다.

낡은 버스들의 제일 큰 문제점은 승강기가 모두 전기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전선이 문제가 생기거나 다른 문제 발생시 운전기사는 꼼짝없이 기술자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장애인이 승차하기 전에 문제가 생기면 아예 장애인을 태우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가 버리게 된다.

그러나 새 버스는 다르다. 전기와 수동을 겸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고장이 나더라도 손으로 펴버리면 되니까 장애인이 차에 오르내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처음 미국에 와서 버스에 올라 목적지에 도착하니 승강기가 고장이 나버렸다. 운전 기사가 고쳐 보려 시도를 했으나 승강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몇 십분,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만두고 라도 대부분이 출근하는 사람일텐데 이미 지각한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그리고 운전 기사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나만 타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이제 곧 내게로 불평의 화살이 날아올 것으로 예상했다. 대 놓고는 못하더라도 속으로는 많이 원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흐르고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버스로 불편을 드려서...”

운전 기사는 내게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른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나를 원망하기는 커녕 모두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운전 기사는 결국 기술자를 불렀다. 기술자가 오기까지 거의 한 시간, 그 긴시간을 요동하지 않고 기다리는 승객의 참을성이 놀랍기만 했다. 한 두명이 불평을 털어 놓았다. 내가 아닌 버스 회사에... 장애인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태도며 의식들이 내 어릴 적 한국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가끔씩 버스 때문에 불편을 겪는다.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승객에 미안한 것이 아니라 버스 회사의 무능이 보이기 시작했고 당당하게 시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가끔씩은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렇게 변한 스스로를 보면서 장애에 대한 사회의 의식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깨달았다. 내가 소심해서 그랬는지 한국에 있을 때는 장애라는 것이 사회에 짐이 된다는 느낌과 나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이유야 어찌됐던 미안한 생각이 앞섰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문제 발생시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하게 되고 보다 합리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요즘 한국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은 어떨까? 내가 살고 있던 시대와는 다르게 한국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고 내가 겪었던 것과 유사한 사건들이 일어나도 나와는 다른 인식을 갖고 처리해 나가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 샘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전 미상원 장애인국 인턴을 지냈다. 현재 TEC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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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미국 탐 하킨 상원의원 장애국 인턴을 역임했다. 또한 서울장애인체육회 워싱턴 통신원, 서울복지재단 워싱턴 통신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출간한 수필집 ‘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은 1992년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워싱턴 문학 수필부문 가작에 당선됐다. 각종 미국 장애인 소식을 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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