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정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는 엄상준(39, 가명)씨의 모습. ⓒ에이블뉴스

가족간에 서로 감사하고 축하하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가정의 달 5월.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따뜻하고 소중한 나날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부담감만 밀려오는 반갑지않은 달이기도 하다. 특히 하루하루 생활비를 걱정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가정에겐 더욱 그렇다. 새로운 가정으로 희망차게 시작하고 싶지만 자꾸 좌절이 뒤따르는 장애가정의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예쁜 딸아이도 태어나고, 가장 역할을 하고 싶은데··. 마흔이 다 되어서도 독립하긴 쉽지 않네요."

지체장애 2급의 엄상준(39, 가명)씨는 아내와 6개월된 딸을 보며 가정의 행복함을 사뭇 느끼고 있지만 앞으로 살 길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군 복무 중 뇌출혈로 인한 편마비로 왼손·발이 불편해 취업이 어려운 그는 일정한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면서 오로지 생계비 걱정 뿐이다. 아내도 뇌병변 2급 장애가 있는 상태라 엄씨의 책임감은 무겁기만 하다.

일정 수입이 없으니 가족 3명의 생활이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딸아이의 기저귀와 분유값을 합치면 한달 20만원. 아이 출생후 지자체와 장애인단체를 통해 받은 출산지원금 150만원을 아껴가며 아이를 위해 썼고, 한달에 두번 정도 복지관이 지원해주는 반찬으로는 아내와 끼니를 해결했다.

생활비가 부족해 청약저축 통장도 해약했다. 월 50만원의 방값은 그나마 아내가 받는 수급비 53만원으로 충당하며 살아왔다. 매번 임대아파트를 신청해도 떨어졌기 때문에 세식구를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비싼 방값을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 방값은 두달 밀렸고 각종 공과금을 못낸지도 세달이 넘었다. 엄씨와 아내가 혼인신고를 하면서 엄씨의 부모님 재산이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아내의 수급자격이 박탈됐기 때문이다. 생활비를 염려해 수급자 신청을 했던 엄씨도 당연히 수급자에 선정되지 못했다. 엄씨는 "빚만 있는 집이 부양능력을 대신할 수 있느냐. 말도 안된다"며 펄쩍 뛰었다.

일흔을 훌쩍 넘기신 엄씨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몸을 가누기 힘드시고, 어머니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식품 장사를 하고 있다. 장사 수입은 은행 이자로 모두 빠져 나가는 상황이고 얼마 전 어머니가 두번의 심장판막수술을 받으며 또 빚을 냈다. 부모님 집은 재개발 지역에 걸려 매매도 불가능한 상황.

엄씨는 "단돈 몇만원도 부모님께 지원받지 않으며 이제 마흔이 다 되어서 내 가정을 내가 꾸려 가야 하는 상황인데, 부모님 재산이 있단 이유로 수급 자격을 박탈하는 건 너무 억울하다"며 "수급신청을 하는 건 다 절실한 사연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자세한 사정도 살피지 않고 서류만 보고 판정할 수 있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결국 정기적인 수입은 아내가 받는 장애인연금 등 14만1,200원이 전부다. 엄씨도 장애인연금을 받을 자격은 있지만, 엄격하다고 소문난 장애등급심사를 받고 등급이라도 하락될까 싶어 장애인연금 신청을 미루고 있다.

엄씨는 그나마 지난달 21일부터 복지관 소개로 장애인재활시설의 영업부 수습 과정을 밟고 있어, 지난 4일 열흘가량의 월급 40만원을 미리 받았다. 그 돈으로 아기 옷가지와 이유식기, 기저귀 등을 구입하는데 다 썼다. 엄씨의 전체 월급은 식대포함 약 110만원 정도. 3인 가구 최저생계비 117만3,121원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엄씨는 힘든 마음에 농담삼아 아내에게 "짐싸갖고 이혼하자"고 말하기도 한다고.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데 이렇게 수급자격도 박탈해버리고 정말 경제적인 부분이 너무 힘드네요. 왜 장애인가정이 이혼해서 살려고 하는지, 제가 겪어보니까 알겠더라구요."

엄씨는 그래도 딸과 아내밖에 없다. 그래서 아버지이자 남편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잘 펴지지 않는 왼손을 주물러가며 영업일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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