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대안학교인 '큰나무학교'. 학교 앞에 '큰나무학교의 교육권을 보장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에이블뉴스

"딱딱 체체체체 딱딱 체체체체."

선생님의 장단에 맞춰 학생들이 하나 둘 북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장엄한 북소리가 교실에서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간다. 올 겨울 열릴 예술제 무대에서 뽐낼 캐롤송 ‘창밖을 보라’의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됐다. 북채를 쥔 모습도, 북을 두드리는 모습도 완벽하진 않지만 두드림에 몸을 실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모습은 일품이다. 북 수업은 학생들이 두드림을 통해 흥겨움을 즐기고 장단의 흐름에 몸을 움직이며 규칙을 익혀나가게 하는 중요한 수업이다.

같은 시각, 학교 마당에선 염색 수업이 벌어지고 있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파란 하늘빛 물이 들지요~ 어여쁜 초록빛 손이 되지요 ♬" 옹기종기 모인 학생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직접 빨간색으로 염색한 수건을 정성스레 매만진다. 학생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하다.

산책하고 목공작업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대안학교

발달장애 대안학교인 큰나무학교의 수업 풍경이다. 입시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돌아가는 일반학교와는 전혀 다르다. 큰나무학교의 수업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여유롭다.

큰나무학교는 “발달장애 아이들의 생애 주기에 맞게 지원할 수 있는 대안학교를 만들자”는 부모, 특수교사 등의 뜻이 모여 2006년 방과 후 대안학교로 문을 열었다. 현재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총 23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학생들은 국·영·수 대신 산행·노작·수공예·목공·북치기·체육·춤 등 자연 속에서 어우러져 할 수 있는 수업을 받는다.

문연상(45) 대표교사는 “아이들이 이 곳에 오기 전에는 학교, 치료실, 복지관 등에 머물며 '어디 나가면 안 된다'는 틀에 막혀 지냈다. 하지만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연을 벗 삼아 스스로 결정하고 활동한다”고 전했다. 큰나무학교는 세상에서 가장 불리한 교육 환경에 놓인 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한 ‘평생 삶의 터전’이다.

북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북 수업은 학생들이 두드림을 통해 흥겨움을 즐기고 장단의 흐름에 몸을 움직이며 규칙을 익혀나가게 하는 중요한 수업이다. ⓒ에이블뉴스

발달장애 아이들의 '평생 삶의 터전', 쫓겨날 위기

그런 큰나무학교가 조만간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부천시 소사구 옥길동 일대가 지난 해 10월 21일 2차 보금자리지구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기존 광명시에서 세입자로 지냈던 큰나무학교 식구들이 “아이들의 평생 터전이 필요하다”며 직접 돈을 모아 지금의 자리에 땅을 샀지만, 준공 허가가 떨어지기도 전에 나온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이후 지난 해 12월 보금자리지구 지정에 따른 확정 고시가 떨어졌다. 이에 따라 올해 말부터 보상 합의가 이뤄지며, 내년 8월부터 본격적인 개발 공사가 진행된다. 큰나무학교는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지 1년도 안 돼 또 다시 어딘가로 떠날 채비를 해야 하는 것. 하지만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갈 수도 없다. 비용도 문제지만, 개발 대란 속에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공간을 확보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특수교육이나 통합교육도 받았지만 늘 소외됐던 발달장애 학생들의 마지막 선택이었던 큰나무학교. 큰나무학교 식구들은 “아이들의 마지막 미래를 큰나무학교에 전부 걸었다”며 큰나무학교 지키기에 나섰다. 하지만 비인가학교인 큰나무학교는 학교로 인정되지 않아 대체부지가 최우선으로 확보되는 대책에서 제외됐다. 정규 학교교육을 실시하면서 이미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등 다양한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엄연한 ‘학교’에 해당됐지만 소용없었다.

문연상 교사는 “아이들이 이곳에 오면서 얼굴도 밝아지고 눈빛도 달라지며,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변했다”며 “이런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사회가 나서서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큰나무학교 측은 “학교가 지구지정 경계선에 위치해 있고 바로 뒷산이 지구지정에서 빠진 야산이기 때문에 큰나무학교의 존치가 전체 지구사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보금자리 내의 존치요청’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같은 처지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대안학교인 볍씨학교와 산어린이학교와 함께 공동대응도 전개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학교의 존치가 확정돼도 학교의 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학교 주변으로 당장 공사가 진행되고 2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결국 환경이 변화돼, 대안학교 본래의 취지에 어긋날 수밖에 없다.

큰나무학교 식구들은 "마을 전체가 보금자리지구에서 해지되거나, 학교를 위한 새로운 터전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대안학교는 더 이상 대안학교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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